<콘크리트 유토피아>
수많은 학자나 사람들이 후기자본주의를 비판하고 있다. 인간의 본성이 악한지 선한지는 고대부터 많은 철학자들에 의해 논의되어 왔지만 그걸 어떻게 과학적으로 분명히 말할 수 있겠는가. 그런데 그런 논의 자체를 무의미하게 만든 것이 바로 자본주의다. 자본주의는 인간의 욕망을 선으로 규정하고 그 욕망을 최대로 끌어내는 사회시스템이다. 그 욕망으로 인간 호모사피엔스는 역사 이래 엄청난 문명의 발전을 이루었다. 대략 300만 년 중 고작 자본주의 300년 만에 어마어마한 발전을 이룬 것이다. 거기다 후기 자본주의는 그 인간의 욕망을 사악한 수준까지 끝없이 밀어붙여 욕망을 욕망하는 수준까지 왔다. 그러다 보니 타인을 밝고서라도 무조건 이겨야 하고 타인을 증오하고 타인을 죽여야 한다. 그 갑질 속에서 자신의 존재를 확인한다. ‘나는 욕망한다. 고로 존재한다.’는 명제가 후기자본주의를 대표하는 말이다. 이 욕망은 이제 지구 생태계를 파멸하기에 이르렀고 그 결과 기후 위기 속 호모 사피엔스는 22세기를 맞이 못할지도 모른다는 경고가 여기저기에서 나온다. 이렇게 가야 하는가, 라는 철학적 질문을 강하게 요구받기에 이르렀다. 이런 천민 자본주의에 선봉장 대한민국의 현실은 어떠한가! 대한민국의 대표적 욕망은 바로 아파트다. 90년 초에 3천만 원이었던 강남 아파트가 최근엔 평균 15억이란다. 거기다 최근엔 고급(?) 영어 아파트가 주를 이룬다. 아파트를, 아파트 가격을 너무나 사랑하는 대한민국이다. 이렇듯 아파트에서 태어나 아파트에서 죽는 대한민국 국민의 현실을 아주 신랄하게 꼬집고 있는 영화 <콘크리트 유토피아>다.
대지진으로 모든 곳이, 모든 아파트가 무너졌지만 황궁 아파트만 남았다. 계절은 겨울이다. 살기 위해 외부인들도 황궁아파트에 한둘 모여든다. 황궁 아파트는 혼란 그 자체다. 그러다 보니 아파트 주민들이 모였다. 부녀회장(김선영)이 주민을 모아놓고 이렇게 살아야 하느냐고 목소리를 높인다. 조를 나누고 대표를 뽑자고 한다. 얼떨결에 주민대표가 된 영탁(이병헌)과 공무원 민성(박석준)은 서로 의지하며 황궁 아파트 주민들을 리드한다. 주민 회의에서 입주민 아닌 사람들을 쫓아내기로 한다. 이 과정에서 엄청난 싸움이 난다. 결국 입주민들이 이긴다. 황궁 아파트에서 더부살이하던 외부인들은 쫓겨난다. 영탁은 주민들을 회유하고 강요하여 철저히 외부인과 입주민을 나누고 차별한다. 그러면서 서서히 악랄해진다. 더불어 민성도 악해진다. 민성의 아내 명화(박보영)는 이렇게 변해가는 남편이 무섭고 그 모습에 불안해한다. 음식을 찾기 위해 외부로 나선 조직대는 외부인과 죽음을 불사하며 싸운다. 그러면서 아파트 입주민들도 점차 악랄해진다. 그 악함은 서로를 불신하게 만든다. 아파트 한 주민이 외부인을 숨겨둔 것을 입주민회의에서 알아내자 그 외부인을 쫓아내는 과정에서 한바탕 소란이 일어난다. 외부인을 숨겨준 주민(김도윤)은 자살한다. 한편 혼자 살아남아 뒤늦게 아파트에 돌아온 20대 혜원(박지후)은 영탁이 이 아파트 주민이 아니라고 말하자 아파트 주민들은 대혼란에 빠진다. 그때 외부인들이 쳐들어온다. 아파트 주민들과 외부인은 한바탕 전쟁을 하고 심지어 내부인끼리 싸운다. 무엇을 위한 차별이었는지. 누가 살아남을 것인가.
영화 제목부터 역설이다. 결코 유토피아일 수 없는 곳, 디스토피아가 바로 우리가 살고 있는 아파트다. 아파트를 유독 사랑하는 대한민국 국민들, 아니 정확히는 비싼 아파트(돈)를 너무 사랑하는 대한민국 국민들에 대한 강한 경고다. 비싼 아파트는 영어로 아파트 이름을 짓고 외부인은 그 아파트 내부는 물론이고 아파트 주위 도로도 이용하지 못하게 한다. 철저한 차별이다. 영화 초반에 ‘드림 팰리스’ 주민들도 이전에 아주 차별적이었다며 자기들(황궁 아파트 주민)도 그들을 받아주면 안 된다며 이전의 설움을 말한다. 한국 사회를 정확히 비꼬는 장면이다. 참 아이러니한 상황이 아닐 수 없다.
짧게 보면 차별을 하면 내가 잘 살지만, 길게 생각하면 같이 가야 다 같이 살 수 있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것을 모른다. 일단 나만 잘 살면 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온갖 차별을 하고 상대를 억압하고 학대한다. 그러나 그것이 결국은 모두의 파멸을 초래한다는 것을 인간은 모른다. 무지하고 미개하다. 그리고 악하다. 인간의 본성이 악한지는 모르겠으나 위에서 말했듯 이 후기자본주의는 인간의 본성 중 악을 더욱 부추기는 제도다. 이 제도 하의 인간은 악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감독은 극단의 상황을 설정해놓고 인간의 본성을 보고 싶었을까. 인간이 얼마나 어리석고 악한지를 보여준다. 이는 결국 모두의 파멸을 초래한다는 것을 강하게 경고한다. 어쩌면 인류의 미래가 이렇게 암울하다는 것을 경고하는 묵시록일 수도 있다. 이병헌도, 박서준도 처음에는 악하지 않았다. 상황이 그들을 악하게 만들었고 뒤에는 그들이 상황을 더 악하게 만들었다. 결국 차별은 내부인과 외부인과의 전쟁을 낳았고, 급기야 내부인끼리 싸운다. 그리고 모두 죽는다. 이 얼마나 아이러니하고 어리석은 짓인가! 이런 디스토피아가 어디 있는가! 그런데도 인간은 모른다. 이런 제도를, 환경을 바꿀 생각을 하지 않는다. 오히려 더욱 즐긴다. 더 비싼 아파트를 선호하고 더 화려한 이름으로 아파트 이름을 짓는다. 그것이 행복이라며. 그리고 외부인을 차별한다. ‘너와 나는 다르다며. 너는 노예고 나는 왕이라며.’ 온갖 차별과 갑질을 즐긴다. 이쯤 되면 인간이 악한지 환경이 악한지 그 경계가 무의미해진다. 더 우려스러운 것은 한국의 젊은이들이다. 그들은 세계에서 제일 보수적이고 극우적이다. 일베에서 온갖 악행을 즐기고 차별을 공정이라고 우긴다. 이 나라에 미래가 없다. 감독은 이런 한국의 세태(이미 한국은 지옥이다, 디스토피아다.)를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강한 경고를 보내고 있는 것이다. ]
우리는 무엇을 지키려고 하는가!
어디에서 사는 것이 행복인가!
같이 가고 같이 살면 진정 안 되는가!
남편을 잃고 혼자가 된 박보영에게 외부인 여성이 손길을 내민다. ‘어디 갈 데 있냐고. 없으면 같이 가자고.’ 이때 한 줄기 빛이 비친다! 박보영의 맑은 눈과 선한 얼굴이 우리의 미래가 아닐지.
평범한 시민에서 악랄한 지도자로 점점 변해가는 연기를 보여준 이병헌의 존재감은 가히 입이 떡 벌어진다. 그의 연기는 말 그대로 압권이다! 그 외 박서준, 김선영, 박보영 등의 연기 모두 영화를 잘 받쳐준다.
개인별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