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풍>
젊음을 찬양하고 늙음ㆍ죽음을 싫어하는 마음이야 세계 모든 사람들이 마찬가지겠지만, 한국사람처럼 지나치게 젊음에 대해 찬양하고 늙음에 대해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나라도 없을 것이다. 한국에서‘동안’이라는 말은 최고의 덕담이고 ‘노안’이라는 말은 최악의 말 아닌가. 여기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늙음은 없어져야 하는 것, 죽어야 하는 것, 쓸데없는 것이라는 인식이 지배적이다. 늙은 사람이 무슨 말만 하면 꼰대라고 한다. 젊은 야당 대표 정치인은 노인들의 지하철 무임승차를 없애겠다고 공약을 했다. 이 공약에는 노인들이 쓸데없이 무임으로 지하철 타면서 지방제정을 축낸다는 인식, 즉 노인에 대한 혐오 인식이 깔려있다. 또한 동안이 되려고 별의별 성형이 유행하는 시대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 한국은 세계 최고의 초고령화 사회다. 이런 사회에 반발하는 인식이 조금씩 나오고 있기는 하다. ‘너는 늙어봤느냐, 나는 젊어 봤다.’라는 우스갯소리가 그것이.
영화 <소풍>은 죽음을 앞둔 두 여자 노인에 대한 로드무비 영화다. 은심(나문희)은 파킨슨 병을 앓고 있는 노인이다. 아들(류승수)은 사업 실패할 위기에 처하자 은심에게 집을 팔아서라도 돈을 해달라고 한다. 며느리는 손녀 유학자금을 달라고 야단이다. 후레자식들이다. 자식들과 싸우고 있는데 고향 친구이자 사돈지간인 금순(김영옥)이 10년 만에 집에 찾아온다. 옥신각신하다가 오랜만에 고향 남해로 떠난다. 남해에서 짝사랑의 대상 태호(박근형)를 만난다. 셋은 60년 전의 기억을 떠올리며 인생의 마지막 추억을 쌓는다. 그러나 고향도 옛날의 고향이 아니다. 개발을 놓고 고향사람들이 둘로 갈라졌다. 그러던 중 태호는 몸싸움으로 죽고 만다. 그러나 사고가 아니라 앓고 있던 지병(뇌종양)으로 죽은 것이다. 금순도 말할 수 없는 병을 앓고 있고, 셋은 또 다른 친구(치매앓고 있음)가 입원하고 있는 요양원을 방문한다. 자식들은 모두 어머니에게 이런저런 불만을 가지고 있어 부모와 사이가 좋지 않다. 이 모든 인생의 황망함과 아련함을 안고 은심과 금순 둘은 마지막 소풍을 떠난다.
영화는 전반적으로 중심을 잘 잡으면서 늙음과 병 또는 죽음, 그 사이에 끼어든 가족간 불화, 그리고 고향이라는 아득한 추억을 잘 맞추고 있다. 그러나 이 매끈한 중심잡기에 몰두한 나머지 너무 클리세가 남발되고 있다. 가령, 집이라도 팔 돈이 있는 노인들에게는 100% 후레자식 같은 불효자식이 있다. 류승수와 그 아내, 그들의 딸이 이 역할을 맡았다. 사업자금과 유학자금을 죽음을 앞둔 어머니에게 집을 팔아서라도 내놓으라고 하는 것이다. 영화 주제(늙음, 죽음, 인생의 마지막 등)를 더 깊이 있게 다루기 위해서는 이런 설정을 과감히 없앴어야 했다. 고뇌의 흔적이 안 보인다. 너무 안이하고 쉬운 설정이다. 그리고 영화는 디테일이 부족하다. 감독의 고향이 어디인지는 모르겠으나 영화 배경은 경남 남해로 되어 있다. 경남의 사투리와 경북의 사투리는 다르다. 시나리오를 누가 썼는지는 모르겠으나 경남 남해가 배경이면 경남의 사투리가 나와야 하지 않겠는가. 이 정도의 디테일은 이제 영화의 기본이다. 그런데 세 주인공 연기자 모두 경남 출신이 아닌데다 사투리 연기가 조금 어색했다. 아무리 훌륭한 연기자라도 디테일이 약하면 좋은 연기를 할 수 없는 것이다. 가령, ‘하모, 하모(그래, 그래)’는 경북 사투리에 가깝다. 경남 사투리(진주일부 사람은 쓰기는 하지만)는 아니다. 이런 디테일을 시나리오에서부터 감독, 배우 모두 놓치고 있다. 단어뿐만 아니라 전반적으로 경남의 억양과 사투리가 아니었다. 그러다 보니 부산경남 사람이면 영화 몰입도가 떨어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또 하나 아쉬운 점은 영화 결말에 은심(나문희)은 결국 집을 팔아 아들과 며느리에게 주는 것으로 끝낸다. 그것도 한 장면으로. 금순(김영옥)도 개발에 동의하고 집을 팔아 아들을 아파트에 살게 해주려 한다. 빌드업도 없이 영화가 끝나가니 급하게 내린 결말이다. 또 하나 지적하자면 나문희 아들 류승수가 사업이 망하자 엄마 집에 무작정 쳐들어와 장롱을 뒤진다. 집문서를 훔쳐 가려고 한다. 이런 망나니 자식이 어디 있는가! 그리고 요즘 시대가 어떤 시대인데 집문서를 장롱에 두는 사람이 어디 있는가. 설령 집문서 가져가 봐야 본인이 아니면 대출 못 받는다. 완전 80년대식 설정이다. 이런 장면들이 꽤 많다. 너무 안이하다.
좀 더 깊이 있게 주제를 드러내려면 클리세를 과감히 없애고 정말 노인, 늙음, 죽음에 대한 진지한 질문과 사고가 있어야 한다. 이재용 감독, 윤여정 주연의 ‘죽여주는 여자’는 이런 점에서 정말 훌륭한 영화였다. 늙음과 죽음(존엄사), 부재한 사회안전망에 대해 은근하면서 신랄하게 비판하고 성찰하고 있다.
사람은 누구나 태어나면서 죽음을 향해 달려가는 존재다. 기술이 발달해 영원히 살 수 있다고 한들 정말 영원히 사는 것이 인간에게 행복한 일일까?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죽음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고 성찰해야 한다. 갑작스러운 죽음이 아닌 늙어서 죽는 죽음은 반드시 병과 연관되어 있다. 즉 노후에 따른 병과 외로움, 그리고 이것을 현실적으로 치유하게 하는 돈이 노인들에게는 중요한 실존의 문제다. 이것을 개인 각자가 알아서 하라고 하며 사회안전망을 구축하지 않는 대한민국은 세계 최고의 노인 자살률, 노인빈곤율을 기록하고 있다. 재벌들은 천조에 가까운 사내보유금을 비축하고 있고 대통령은 수백억, 수천억 세금을 펑펑 쓰면서 해외로 순방을 떠나고 있는데 말이다. 천민자본주의는 이런 곳에서도 명약관화하게 드러난다. 한 마디로 돈이 없어서 노인에 대한 사회안전망을 구축하지 못하는 것이 아닌 것이다. 결국 의지의 문제다. 그런데 앞서 말했지만 전 국민이, 심지어 젊은 2ㆍ30대들이 노인에 대해 더 부정적이다. 노인에 대한 건강, 노인빈곤율, 노인자살률에 대해 심도 있게 고민하지 않고 지방재정이 안 좋아진다는 이유로 노인에 대한 지하철 무임승차를 막겠다는 젊은 대표 공약에 젊은이들이 엄청 환호하는 것만 봐도 노인에 대해 얼마나 혐오의 정서가 깔려 있는지 알 수 있다. 지방재정 악화는 노인의 지하철 무임승차가 문제가 아니라 방만한 지방운영이 근본문제다. 상위 1%들을 위한 세제 혜택과 지방공기업 사장의 과도한 임금과 방만한 운영, 지방재정과 관련한 실질적인 자치권이 부족한 법적인 문제 등이 더 근원적인 문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갈라치기에 능한 젊은 정치인에 환호하는 2ㆍ30대라니 이 나라에 무슨 희망이 있겠는가! 젊은이들만 힘든 것이 아니라 이 천민자본주의에 사는 서민들 모두가 힘들다. 그런데도 서로 갈라치며 상대에 대해 혐오하고 있다. 한 마디로 전반적인 사회안전망이 없는 각자도생의 시대, 모두가 병을 앓고 죽음과 같이 살고 있는 것이다. 절망뿐인 디스토피아의 시대에 우리 모두 살고 있다. 희망이 없다.
<소풍>은 늙음, 죽음, 늙음에 따른 질병, 죽음을 앞둔 노인에게 가족이란, 개발에 따른 명암, 어린 시절 아련한 추억 등을 말하고 있는 영화다. 이런 소주제들을 여성 노인 두 명의 로드무비라는 외피에 살짝 걸쳤다. 조금 더 깊이 있게 다가가지 못한 한계가 뚜렷하다.
노인들도 반성해야 할 점이 있다. 영화 보는 내내 웅성웅성 맞장구치며 떠들어 대며 영화를 본다. 아무리 자기들 처지와 비슷한 영화라지만 자기들 안방도 아니고 공중도덕이라곤 없는 노인들이 너무 많다. 왜 한국을 동방예의지국이라고 했는지 모르겠다. 멋있게 늙어가는 것에 대해 찬양까지는 아니라도 박수치는 날이 오기를 기대한다.
개인별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