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시-박노해 『노동의 새벽』-연구
1. 서론
한국 문학사 연구에 있어서 1980년대를 노동시의 시대로 자리매김은 1960~70년대의 이른바 선성장. 후분배론을 내세워 이룩한 경제성장의 그늘에서 온갖 고난과 핍박 속에서 희생만을 강요당하여 온 노동자들의 처절한 삶과 관련지어 논의되어야 가능하다. 저금리와 장시간 노동의 열악한 노동조건을 극복하기위해 목숨을 건 투쟁 속에서 노동자들은 그들의 신음소리에 가까운 노동현장의 목소리를 노래로 불러서 그들만의 현장감 넘치는 노동시를 낳았다. 급속한 경제발전으로 인한 대가는 국가와 자본가의 부를 팽창시켰을 뿐 노동자들의 현실은 상대적으로 더욱 빈곤해졌으며, 인간다운 권리를 박탈당한 채 그저 일하는 기계로 전락하고 있었다.
1980년대 노동시는 세계경제의 발전으로 인한 풍요로운 삶과 그에 알맞은 인간의 권리나 노동자의 권리에 대한 인식이 높아진 상황과 이와는 극한적으로 대비되는 노동탄압과 인권탄압이라는 국내정치 하에서 탄생하였다. 즉 80년대 노동시는 자본과 국가와의 대치 속에서, 지배에서 벗어나 자유를 획득하는 주체성 형성을 보여주었다. 그 주체성 형성-바로 자유 그 자체인-을 위한 고투는 제도화된 문학의 벽을 부수고 삶과 문학, 정치가 서로 작동하도록 했다.
문학이 ‘문학’이라는 자율적 영토에 게토화되고 권력화되고 제도화되면서 삶-주체성 형성-과 문학이 유리되어가고 있는 지금, 80년대 노동시의 미덕-처절하고 힘겨웠던 80년대 노동자들의 삶이 곧 문학으로 재현된 점, 그래서 그들의 문학은 곧 삶이었던 점-을 살펴보는 것은 나름대로 의미가 있는 작업이 될 것이다.
1) 노동문학의 일반적 정의와 한국에서의 이론 정립
노동문학(Arbeiterliteratur)이란 독일어의 ‘노동자(Arbeiter)'와 ‘문학(literatur)'이라는, 역사적으로 전혀 상관이 없는 두 개의 단어가 결합된 합성어인데 정확히 옮기자면, ‘노동자문학’이 될 것이다. 이는 노동자가 자신의 문제를 표현하고 자신의 의사를 관철시키기 위해 문학을 자기 것으로 만들어 이용한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그리고 이상적인 노동문학은 조직화된 노동운동과 관련을 맺으면서 노동자에 의해 노동자를 위해, 노동자와 노동세계를 다룬 문학을 뜻한다 할 것이다. 바꿔 말해 노동자문학이란 노동자가 쓴 전통적인 형식의 문학을 말한다. 문학의 주체는 노동자이지만 그 문학형식은 중산시민층 문학의 주요 장르인 시, 소설, 희곡 등으로 한정돼 있고, 그 주체는 노동세계뿐만 아니라 인간의 모든 체험세계까지 포함한다.
이재현은 “노동(자)문학은 노동자에 의한, 노동자를 위한, 노동자의 문학”이라며, “노동문학이란 우리 사회가 당면한 민중 주체의 민주주의 변혁을 지도하고 주도하는 노동자계급의 과학적 세계관을 바탕 삼아서 노동자 계급의 현실 또는 진보적 노동운동의 현실을 제재로 하는 문학이다”라고 하였다. 노동자의 계급 확대의 필요성을 “노동의 의미를 육체노동에 한정시키지만 않는다면, 인간의 삶이 기본적으로 먹고사는 것이므로, 먹기 위해 하는 ‘일’인 노동의 구조와 현실을 다루는 노동(자)문학은 민중문학, 아니 문학 그 자체와 바꿔 쓰일 수 있다”는 주장을 펼친다. 또한 기존의 문학적 소외현상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소외된 문학의 지양은 노동(자)문학의 임무일 뿐만 아니라 농민문학. 도시빈민문학. 지식인문학 등 모든 민중문학의 필수적인이고 정당한 과제가 되는 것으로 궁극적으로는 무엇을 다루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다루느냐가 문제된다는 것이다.
이처럼 80년대 한국의 노동문학은 현장 노동자들의 글쓰기와 지식인 작가들의 글쓰기라는 두 가지의 흐름이 ‘운동으로서의 문학’이라는 단일한 흐름으로 합류하면서 나타났는데 그것은 1987년 민중항쟁과 노동자 대 투쟁의 효과이자 산물이었다. 노동자들의 글쓰기가 공식 문단의 주변에 모습을 나타내면서 문학 활동에 신선한 자극을 주기 시작한 것은 80년대 초부터였고 억압당해온 노동자들의 느낌과 목소리가 충격적으로 표출된 것은 1984년 박노해의 「노동의 새벽」과 백무산의 「지옥선」 시 연작에서이었지만 그것이 노동문학이라는 새로운 문학범주를 현실적인 것으로 만들만큼 힘을 갖게 된 것은 1987년 이후였다. 지역 민주노동조합들의 자주적 협외체들의 결성에 발맞추어 이루어진 지역 노동자문학회들의 결성과 공장 문학반들의 건설이 대부분 1988년 전후에 집중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이 자발적인 글쓰기의 움직임들은 노동자들로부터 소외되어 있었던 문자와 문학의 노동자적 전유를 의미했는데, 정인화, 김해화, 박영근의 시들을 포함하여 1988년 발간된 백무산의 『만국의 노동자여』는 복종을 거부하는 노동자들의 아래로부터의 자기표현의 욕구가 더 이상 억누를 수 없을 만큼 깊고 강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당시 노동문학은 작업장을 의미하는 것으로서의 현장성을, 자본가와의 투쟁을 의미하는 것으로서의 투쟁성을, 민중연대성과 계급성을 갖추도록, 그리고 전형을 창조하도록 요구받았다. 그리고 전형의 창조를 통한 객관적 진리의 재현을 위해서는 작품에 당파성이 구현되어야하며 이를 위해서는 작가가 노동자계급 당파성을 체득해야 한다고 이야기 되었다.
2) 80년대 노동문학의 형성 배경
80년대 노동문학은 무엇보다도 6, 70년대의 민족문학이 성취한 현실주의적 방법과 그 성과를 바탕으로 한 것이다. 황석영의 「객지」가 있었고 조세희의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연작을 쉽게 떠올릴 수 있다. 80년대 노동문학의 또 하나의 연원은 70년대 중반 이후 나오기 시작한 노동자들의 자연발생적인 글쓰기이다. 농민의 아들딸이 공장의 ‘공순이’, ‘공돌이’가 되기까지의 자신의 삶을 슬픔과 분노로써 기록한 일련의 수기들이 있었고, 또 시의 형식을 빌려서 자신의 삶의 모습들을 기록한 시적 성과들도 있었다. 석정남, 유동우. 정명자 등의 글쓰기가 그것들이다. 이런 자연발생적 글쓰기는 비록 자기 계급의 역사적 운명을 총체적으로 인식한 것은 아니었지만 자신들의 삶과 분노와 싸움을 자신의 손으로 표현한 것이라는 점에서 의미를 갖는다. 이러한 노동자들의 자연발생적인 글쓰기는 80년대 초반의 ‘공동체문화’론을 바탕으로 하여 더욱 발전하였고, 문학의 생산과 수용에서 소외되지 않은 새로운 소통 형식의 가능성까지도 점칠 수 있게 하였으며 또 한편으로는 노동조합운동의 부문운동인 문화운동의 한 형태로 기능하기도 하였다. 80년대 중반에 시작된 본격적인 노동문학은 한편으로는 이전의 민족문학적 성과를, 또 한편으로는 노동자들의 자연발생적인 글쓰기를 바탕으로 하여 성장할 수 있었다.
2. 본론
1) 80년대의 성격과 시적 상황
1980년대의 이 땅의 시대 상황을 일별해볼 때 우리는 이 연대가 극도의 양극성을 지니고 있음을 알게 된다. 탄압과 저항, 허위와 폭로, 보수와 진보, 한계와 가능 등 우리 사회의 어두운 면과 밝은 면이 함께 엇갈리고 있었던 것이다. 전체적으로 조망할 때, 탄압시대인 5공시절과 1988년 종반기 해금시대로 요약해볼 수 있는 이 시대는 그만큼 불행하면서도 가능성이 열리기 시작한 전화기적 성격을 지닌다.
1980년대는 ‘광주의 5월’을 전후하여 이 사회가 전반적인 전환기에 접어들었다는 점에서 젊은 시인들의 시에 전화기적 성격이 확실하게 드러난다. 그것은 갈등과 혼란, 생성과 모색이라는 복합적인 특성을 지닌다. 80년대 시인들은 ‘광주의 5월’로부터 자유롭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70년대 유신시대의 압제적인 성격과 분단 후 이 땅의 파행적인 역사전개과정에서 누적되었던 모순과 부조리가 폭발한 것이 1980년 초의 광주 민중항쟁이다. 1980년대 시인군들은 대략 이 무렵을 전후해서 신인으로 작품 활동을 시작했기 때문에 그에 대한 고통 또는 저항의 몸부림을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어떤 형식으로든지 자신들의 작품에 반영하게 될 것이 당연한 일인 것이다. 따라서 80년대 시인들의 문학은 내용적인 면에서 민중지향적인 것이 주류를 이루며 양식사적인 측면에서는 해체. 저항적인 성격을 강하게 지니게 된다. 특히 이들은 기존 문예지가 지나치게 보수적인데다가 계간지마저도 강제 폐간되는 80년대 초의 상황에서 마땅한 지면을 얻기 어려운 것은 물론 그들의 성향과도 맞지 않는 경향이었기 때문에 무크지운동이 활발하게 일어났다. 무크지는 기존 문학에 대한 저항성. 파괴성과 함께 진보적인 이념지향성을 형상화하는 데 적절한 형태일 수 있었다. 80년대의 열악한 상황에서 무크지는 젊은 시인들의 울분과 욕구를 해소하는 데 다소나마 기여한 것이 사실이기 때문이다. 이 무크지 운동을 통해서 그들은 자신들의 공동체 이념을 함께 표출하고 갖가지 방식을 실험할 수 있었던 것이다.
80년대 시에서 문학 전반에 걸쳐 대두되기 시작한 부정정신과 비판정신이 내용이나 형식면에서 전대에는 볼 수 없었던 진보적 성향을 보여준 것이 사실이다. 장르혼합형식, 변두리 양식의 중심화 문제, 장르해체, 도시파 시의 본격적 대두 현상 등은 이러한 1980년대 부정정신과 파괴정신이 강력히 작용한 결과라 할 것이다. 그래서 이른바 해체시라는 개념이 등장한 것도 한 특징이라 하겠다. 해체시란 굳어 있는 정신과 낡은 양식의 해체를 통해서 새로운 정신의 탄력과 생명력을 획득하고자 하는 몸부림을 반영한 것이기 때문이다. 이른바 텍스트를 합목적적으로 해체하고 변형함으로써 언어와 정신의 혁명을 성취하고자 하는 안간힘에 해당하는 것이라 하겠다. 민중시와 실험시는 이 점에서 하나의 저항시적인 성격을 지니는 것으로 보겠다. 이러한 실험정신과 함께 해체의 몸부림과 안간힘 자체가 실상은 1980년대 시대정신의 부정정신과 비판정신에 기반을 두고 있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2) 박노해의 『노동의 새벽』 읽기
전쟁 같은 밤일을 마치고 난/ 새벽 쓰린 가슴 위로
차거운 소주를 붓는다/ 아
이러다간 오래 못 가지/ 이러다간 끝내 못 가지
설은 세 그릇 짬밥으로/ 기름투성일 체력전을
전력을 다 짜내어 바둥치는/ 이 전쟁 같은 노동일을
오래 못 가도/ 끝내 못 가도/ 어쩔 수 없지
탈출할 수만 있다면,/ 진이 빠져, 허깨비 같은
스물아홉의 내 운명을 날아 빠질 수만 있다면
아 그러나 어쩔 수 없지 어쩔 수 없지
죽음이 아니라면 어쩔 수 없지/ 이 질긴 목숨을,
가난의 멍에를, / 이 운명을 어쩔 수 없지
늘어쳐진 육신에/ 또다시 다가올 내일의 노동을 위하여
새벽 쓰린 가슴 위로/ 차거운 소주를 붓는다
소주보자 독한 깡다구를 오기를/ 분노와 슬픔을 붓는다
어쩔 수 없는 이 절망의 벽을/ 기어코 깨뜨려 솟구칠
거치른 땀방울, 피눈물 속에/ 새근새근 숨쉬며 자라는
우리들의 사랑/ 우리들의 분노
우리들의 희망과 단결을 위해/ 새벽 쓰린 가슴 위로
차거운 소주잔을/ 돌리며 돌리며 붓는다
노동자의 햇새벽이/ 솟아오를 때까지
「노동의 새벽」 전문
‘얼굴 없는 시인’으로 알려졌던 박노해(본명 박기평, 1958년 전라남도 고흥 출생. 선린상업고등학교 졸업. 1983년 『시와 경제』에 「시다의 꿈」외 6편을 발표하여 등단.)는 고등학교를 졸업한 직후 산업 현장으로 뛰어들어 자신의 일상적인 노동 체험을 시적 언어로 형상화한 시인이다. ‘박해 받는 노동자의 해방’의 약자인 ‘박노해’를 그의 필명으로 삼은 그는 노동운동사상 ‘전태일’ 이후 노동자의 대표적 상징체이기도 하다. 그의 첫 시집 『노동의 새벽』은 대학가를 중심으로 급속히 독자층을 확대해 나감으로써 1980년대 노동문학, 혹은 노동자 문학의 활성화에 불을 당긴 것으로 평가되기도 한다. 그 후 소의 시국 사건에 연루되어 공식적인 활동이 불가능하게 되었다가 1987년 민주화 운동의 결과로 1988년 제 1회 노동문학상을 수상하게 된다. 1989년 결성된 세칭 ‘사노맹(남한사회주의노동자동맹)’의 중앙 위원으로 활동하던 그는 이 사건에 연루되어 복역하였으며, 옥중에서 쓴 작품들을 모아 1993년 『참된 시작』을 출간하였다.
『노동의 새벽』은 우리 문학사에 있어 하나의 충격으로 받아들이는 작품이다. ‘현장적 구체성’, ‘체험의 진실성’, ‘최고 수준의 정치적 의식과 예술적 형성화 능력’ 등의 말로 칭송받았던 이 시집의 작품들은 지식인의 관념이 아닌, 노동자의 노동 현장의 일상적 삶이 노동자의 언어로 형상화되었다는 점에서 더욱 충격적이었다. 그에게 있어 현실은 극복의 대상이 아니라. 새로운 질서에 의한 부정의 대상이었다. 『노동의 새벽』의 표제시인 이 시는 5연 40행으로 이루어진 작품으로 의미상 네 단락으로 나눌 수 있다.
첫째 단락은 1연으로 철야 작업을 끝내고 나서 피곤한 몸을 달래기 위해 소주를 마시는 장면으로 시작하여, ‘이러다간 오래 못가지’라고 위기를 느끼는 발단 부분이다. 둘째 단락인 2. 3연은 화자의 서로 상반되는 자세가 나타나는 전개 부분이다. 즉 2연은 ‘오래 못가도/어쩔 수 없’다는 체념을 나타내며, 3연은 ‘진이 빠진/스물 아홉의 운명’으로부터 벗어나고자 하는 욕망과 ‘운명을 어쩔 수 없다’는 갈등이 상반된다. 셋째 단락인 4연에서는 ‘차거운 소주를 붓는’ 행동이 ‘분노와 슬픔을 붓는’ 행동으로 바뀌는 전환 부분이다. ‘슬픔’은 앞에서 나타났던 갈등의 연속이라면, ‘분노’는 체념을 넘어서는 힘이 된다.
넷째 단락인 5연은 절정과 화해를 이루는 부분으로, 4연에서의 분노의 힘이 더욱 확산되어 ‘절망의 벽을/기어코 깨드려 솟구칠/거치른 땀방울’로 퍼져나간다. 절망은 사리지고, 그 대신 ‘햇새벽이 솟아오를 때까지’ 희망과 단결의 의지를 다지는 화자의 모습이 나타난다. 그러므로 이 시의 제목 ‘노동의 새벽’에서 ‘노동’은 현실의 고통과 절망을 의미하며, ‘새벽’은 그러한 현실 속에서도 희망과 사랑을 지피려는 결연한 의지를 상징하는 것이다. 이와 같은 삶의 고통과 초월이라는 대립 구조가 우리에게 감동을 주는 것은 물론 단순한 대립 구조 때문만은 아니다. 그의 갈등과 전환은 ‘절망의 벽’으로 제시된 노동 현실을 벗어나지 않으며, 그 운명을 감싸안고 살아가려는 몸부림을 절실히 그려낸다는 점에 있다고 할 것이다.
이불홑청을 꿰매면서/ 속옷 빨래를 하면서
나는 부끄러움의 가슴을 친다
똑같이 공장에서 돌아와 자정이 넘도록/ 설거지에 방청소에 고추장단지 뚜껑까지
마무리하는 아내에게/ 나는 그저 밥달라 물달라 옷달라 시켰었다
동료들과 노조일을 하고부터/ 거만하고 전제적인 기업주의 짓거리가
대접받는 남편의 이름으로/ 아내에게 자행되고 있음을 아프게 직시한다
명령하는 남자. 순종하는 여자라고/ 세상이 가르쳐준 대로
아내를 야금야금 갉아먹으면서/ 나는 성실한 모범근로자였었다
노조를 만들면서/ 저들의 칭찬과 모범표창이
고양이 꼬리에 매단 방울소리임을,
근로자를 가족처럼 사랑하는 보살핌이/ 허울 좋은 솜사탕임을 똑똑히 깨달았다
편리한 이론과 절대적 권위와 상식으로 포장된/ 몸서리쳐지는 이윤추구처럼
나 역시 아내를 착취하고/ 가정의 독재자가 되었었다
투쟁이 깊어갈수록 실천 속에서/ 나는 저들의 찌꺼기를 배설해낸다
노동자는 이윤 낳은 기계가 아닌 것처럼/ 아내는 나의 몸종이 아니고
평등하게 사랑하는 친구이며 부부라는 것을/ 우리의 모든 관계가 신뢰와 존중과
민주주의적이어야 한다는 것을/ 잔업 끝내고 돌아올 아내를 기다리며
이불홑청을 꿔매면서/ 아픈 각성의 바늘을 찌른다
「이불을 꿔매면서」 전문
이 시에서 화자는 두 개의 공간으로 시의 무대를 분리한다. 이불 빨래를 하고 이불홑청을 꿔매고 있는 화자의 방(집)과 노동하는 공간으로서의 회사가 그것이다. 집은 그에게 안온함과 일체감을 주는 어머니 같은 장소라면, 회사는 부조리와 차별과 계급성을 부각시켜 그를 피폐하게 하는 위협의 공간이다. 그가 제대로 자신의 삶을 꾸려나가기 위해서는 집의 편안함을 회사의 살벌함 위해 투사하여, 회사 역시 편안한 장소로 바꾸어 나가지 않으면 안 된다. 자신의 자아가 실현되어야 할 장소로서의 회사가, 오히려 그것을 가로막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그것을 바꿀 수 있는 논리를 ‘외부로부터’ 배운다. ‘노조 일’이 그것이다. “편리한 이론과 절대적 권위와 상식으로 포장된/몸서리쳐지는 이윤추구”의 틀을 깨기 위해서라고 그는 말하고 있다. 여기까지가 80년대의 저돌적인 변혁 운동의 구조에 그대로 대응된다. 시인은 스스로 그 구조에 몸바침으로써 실천의 화신으로 산화했던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거기에 내재되어 있다. 이윤추구의 틀을 깨기 위해 화자가 선택한 대응 논리가 100여 년 전의 현실에서 배태된 이론을 1980년대 한국 사회에 그대로 적용하려 했다는 것 자체가, 그의 대응 논리가 교조주의였을 가능성을 내비치고 있는 것이다.
시에서 화자는 이 점을 알고 있는 듯 보인다. 그 동안 그가 그토록 안온한 장소라고 믿었던 집이, 실제로는 착취와 피착취의 생피 나는 쳇바퀴가 굴러가고 있는 곳이라는 걸 고발하는데, 시의 나머지가 바쳐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 시가 이 시대에도 여전히 어떤 의미를 지닐 수 있다면, 바로 이 지점이 될 것이다. 모든 변혁의 진원지이자 출발점이, 자기 자신이자 방 안이자 집 안이라는 것, 바늘에 손끝을 찔려가면서 남자와 여자 사이라는 또 하나의 공적을 깨부수는 일이야말로 모든 큰 변혁의 시작이라는 것, 그것이 그가 도달한 변증법이자 거대담론의 결론이 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이불을 꿔 매면서」 안에는 그동안 시인이 겪었던 실패와 새 출발의 이유가 잠복해 있다. 이불 빨래와 홑청 시치기라는 구체적 형상성에도 불구하고 관념과 작위의 냄새가 묻어 있기 때문이다. 노조일을 하고부터, 문득 집안일도 같은 구조로 되어 있다는 점을 깨닫는다는 것은, 계기가 매개가 없는, 이론의 자동 반영에 불과하다. 그것은 사유와 행위의 변증법이 아니라, 시적 직관이나 유추의 힘에 기댄 결과일 뿐이다. 직관이나 비약이 때로 소중한 결과를 만들 때도 없는 것은 아니겠지만, 변혁이 결코 시적일 수 없다는 것은 자명한 일인 것이다.
3) 『노동의 새벽』 이후의 박노해
박노해는 두 번째 시집 『참된 시작』(1993년 창작과 비평사)이후 변화를 하게 되는데, 이 점에 대해서 논란이 많다. 보수 언론의 박노해 ‘신화’ 만들기가 있었고, 박노해 스스로가 자신의 ‘신화’를 상업적으로 이용하기도 했다는 비판이 있다. 실제 박노해의 변화는 무조건 거부할 수만은 없는 나름대로의 진정성과 정당성을 확보하고 있는 듯 하다.
나는 정말 내가 사심 없이 순수하게 온몸을 바쳐온 혁명가인 줄 믿었는데, 그게 아니었다. 내 안에는 거대한 욕망이 숨어 있었다. 나는 나의 시린 눈빛과 뜨거운 열정의 가슴가지만 보았던 것이다. 내 가슴 아래 형이하학, 내 뱃속을 들여다보니 거기에 욕망이 꿈틀거리고 있는 게 아닌가.
인용문에서 박노해는 혁명에 대한 자신의 열정과 헌신이 지공무사의 순수함만은 아니었다는 사실을 고백하고 있다. 이런 고백은 죽음이라는 극한 상황을 전제하고 있다는 점에서 비극적 깊이를 획득하고 있는 듯 보인다. 그러나 과거의 자신의 죽음과 대면시키고 그 죽음과의 대결을 통해 변화된 자신을 상정하는 이러한 방식은 모든 전향논리의 예정된 수순이기도 하다는 점에서 문제이다.
80년대는 나와 너의 대립에 근거한 너의 해체만이 문제되던 시기였다. 그 해체의 주 대상은 독재 권력, 독점 재벌과 같은 정치. 경제적 틀이었으며, 나아가 해체되어야 할 너(독재 권력과 독점 재벌)에 대해 변혁의 목표와 방법을 달리하는 작은 너(다양한 변혁 논리들)조차도 이러한 해체의 대상으로 간주되었다. 이를 달리 표현하면 자기동일성에 대한 과도한 집착이 타자를 극복하고 복종시켜야만 할 대상으로 전락시킴으로서 결국에는 자기 자신마저 소외당하는 결과를 초래한 것이다. 결국 우리는 해체의 대상이 ‘너’뿐만 아니라 ‘나’ 역시 예외일 수 없음을 깨닫지 못했던 것이다. 자기 성찰을 포함하지 않는 자기동일성에 대한 과도한 집착은 필연적으로 맹목과 편견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런 맹목과 편견에서 노동자 개념 역시 자유롭지 못했다. 노동자 계급을 ‘순결’ 또는 ‘무죄’의 은유 개념으로 상정함으로써 현실의 외부적 총체성을 왜곡하고 예정된 결론으로 나아가는 노동 문학의 한계는 이러한 맹목과 편견의 비근한 예이다.
내가 꿈꾸던 그 사회주의가 마침내 현실로 나타났을 때 끔찍한 모습이 되어 있었다. 숨막히는 절대주의, 유일주의, 관료사회의 부패상, 피 어린 숙청, 저급한 평등주의, 전통 가치와 문화의 파괴, 개성과 인간성의 상실... 그 참담한 삶의 풍경, 우리가 소리 높여 주장하던 그 사회주의를 이 땅에서 이루어냈을 때, 나는 과연 그것을 책임질 수 있을까? 소련, 동유럽, 북한 등지에서 벌어진 프롤레타리아 독재의 참상과 얼마나 다른 현실을 이루어낼 수 있을까? “그래도 우리는 다르다”고 말할 수 있을까? 그들도 우리만큼 똑똑하고, 우리만큼 헌신적이고, 우리만큼 품성 좋고, 나름의 최선을 다했을 텐데, 그들인들 이런 결과를 상상이나 했을까? 그렇다면 나는 피 뭍은 스탈린 일당과 얼마나 다를 수 있을까?
박노해의 시인에서 혁명가로의 변화가 역사적 필연성을 함축하고 있지만, 최근 박노해의 변화는 역사적 필연성을 확보하고 있지 못하다. 그 역사적 필연성의 부재로 인해 박노해의 자아성찰과 자기비판은 그 수사적 강렬함에도 불구하고 별 설득력을 갖지 못하고 있다. 박노해는 자신이 추구하던 사회주의를 스탈린주의와 동일시하고 있다. 이런 자기비판은 준열하지만 또한 저열하다. 자신의 변화를 합리화하기 위해 자신이 몸담았던 조직을 통째로 부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박노해가 자신의 변화에만 집착한 나머지 자신이 추구하던 사회주의적 가치들(임규철에 의하면 ‘평등한 푸르른 대지’)의 소중함을 너무 쉽게 폐기 처분하고자 하기 때문일 것이다.
박노해는 자신의 변화에 대한 집착이 ‘성찰’과 ‘실천’의 결과물이라기보다는 사회주의 몰락과 신체적 구속이라는 극한 상황의 결과물처럼 느껴져 안타깝다. 그리고 80년대의 박노해가 사회적 변화에만 맹목적으로 경도 되어 있었듯이 90년대 이후의 박노해가 내적 ‘변화’에만 맹목적으로 경도 되어 있는 것이 아닌가 하고 우려할 뿐이다. 때문에 지금 그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것은 ‘변화’에 대한 집착이 아니라 ‘성찰’과 ‘실천’을 매개로 ‘사회적 변화’와 ‘내적 변화’의 균형을 회복하는 일이다.
4) 80년대 노동시의 재인식
80년대에 나타난 노동시의 분출은 문학이란 테두리를 넘는 의미를 갖고 있었다. 당시 지식인들이 이 분출이 안고 있는 역사적. 사회적 의미에 주목했다. 그들은 자본주의의 착취대상이자 가장 약한 고리이기도 한 임노동자, 그리하여 자본주의 변혁-역사의 질적 도약이 될-의 담당자일 임노동자가 노동시를 통해 그 체제에 대한 저항을 표현하기 시작했다는 점을 중요시했다.
80년대 노동시가 드러낸 어떤 래디컬(근본적이라는 의미에서)한 것은 포즈화된 불온성의 유행으로 빠질 위험을 보이고 있는 현 시단에 유효한 교정의 기능을 할 수 있을지 모른다. 정말 불온한 무엇을 당시 노동시는 갖고 있었던 것이다. 하나 당시 노동시가 자본주의를 무너뜨리고 사회주의-노동의 나라-를 건립해야 한다는 사상의 선전 무기로 쓰였다는 점을 들어 그 불온성을 운운할 일이 아니다. 80년대 노동시의 가장 큰 특징이자 불온성은 삶을 변혁시키고자 하는 운동의 일환으로서 당시 노동시가 기능했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 그 불온성은 당시의 노동시가 ‘운동-행동’이 되어 삶과 시의 분리선을 와해시켰다는 점, 그리고 삶이 되어가는 시에 의해 주체성 형성이 시도될 수 있었다는 점에 있다.
80년대 노동시의 주요 참조 대상은 아방가르드 예술운동이다. 아방가르드는 삶과 유리되어 권력화된 제도예술을 파괴하려고 했다. 아방가르드는 예술이 삶이어야 한다고, 즉 행동이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자율화되면서 제도화된 예술은 삶에서 예술이 나온다고, 예술은 삶을 반영하는 거울이라고 가르친 반면, 아방가르드는 삶을 반영하고 재현하는 거울을 깨야 한다고 생각했다. 거울 자체는 삶이 아니기 때문이고, 또한 예술이 거울이라면 그것은 구경거리에 불과할 수 있기 때문이다. 거울에 반하면서 아방가르드는 부르조아적 삶의 형태를 파괴하며 새로운 삶을 창출하기 위해 제도화되고 자율화된 예술을 지양하면서 예술과 삶의 거리를 없애려고 했다. 즉 예술과 삶을 융합하려 했던 아방가르드는 예술이 삶의 변화를 직접적으로 이끌고 표현할 수 있도록 노력했다.
80년대 노동시는 아방가르드와 마찬가지로 문학제도의 문학 발표 절차나 문학제도가 요구하는 미학적 질 등을 무시했다. 노동시인들은 ‘시인’이라는 제도적 명예를 얻을 생각도 없었다. 그들은 극심한 고통과 비애 속에 있었기 때문에 무엇을 ‘표현’하지 않으면 견딜 수 없었을 뿐이었고, 그 표현 형태가 시와 같은 문학이었을 뿐이었다.
80년대 노동시는 자본과 국가와의 대치 속에서, 지배에서 벗어나 자유를 획득하는 주체성 형성의 불온성을 보여주었다. 그 주체성 형성-바로 자유 그 자체인-을 위한 고투는 제도화된 문학의 벽을 부수고 삶과 문학, 정치가 서로 작동하도록 했다. 운동과 삶을 시를 통해 결합시키려 했던 80년대 노동시의 미덕을 현재화하는 일은 삶과 문학이 유리되어 가는 현재의 삶을 창조적으로 재전유할 수 있는 의미 있는 일이 될 것이다.
3. 결론
80년대 노동시들은 지나친 현장성과 맹목적인 목적주의를 강조한 나머지 계급적 편견과 계층간의 위화감이나 증오심만을 촉발시켜 전체 민중에게 설득력을 잃은 면도 없지 않다. 노동운동의 당위성과 합목적성 때문에 전체 민중과의 이해가 상충된 점이 80년대 노동시의 한계점이었다.
그러나 80년대 노동시와 더불어 노동문학이 민족문학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는 점에서 부인할 수 없다. 노동문학은 우리 시대의 모순이 집약되어 표출되는 노동현장의 삶과 투쟁을 노동자계급의 시각에서 형상화함으로서 이제까지 포착하지 못했던 ‘현실’을 제시하였다는 점에서 의의가 크다. 또한 초기 노동문학에 내재되어 있던 필연적인 경향이 노동문학의 내적인 발전을 통해 자신을 제한하고 있던 노동문학이라는 외피를 벗어나 우리 민족문학을 발전시킬 수 있는 새로운 문학으로 자리잡을 수 있을 가능성을 드러낸 것도 노동문학이 지닌 역사적인 의미라고 할 수 있다.
근대는 사회적 측면에서는 개인의 인권과 평등을 내세우는 민주주의를 탄생시켰으며, 경제적 측면에서는 노동자의 노동의 가치보다 자본가의 자본의 가치를 더 우선시하는 자본주의를 탄생시켰다.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민주주의는 백성, 즉 국민(또는 인민)이 主가 되는 사회인데, 자본주의는 자본이 主가 되는 사회라는 말이다. 여기에 근본적으로 국민이나 노동자의 아픔이 도사리고 있다. 사회시스템은 노동자를 포함한 국민이 주인이라고 해놓고선 경제 시스템에서는 노동자보다 자본가가 우선이 되는 시스템을 취하고 있기 때문에 이 둘, 즉 사회시스템과 경제 시스템은 영원히 평행선을 달릴 수밖에 없는 것이다. 자본가의 자본을 우선시하는 시스템인 이상 국민이나 노동자의 권리가 철저하게 보장될 수가 없는 것이 근대가 가져다 준 최고의 고민이요 난센스이다.
근대 이후 선진국들은 경제를 발전시키기 위해 개인의 인권이나 평등을 철저히 무시해 오다가 국민이나 노동자들의 저항에 부딪쳐 그들의 권리와 인권을 존중하게 되었다. 즉 지금 선진국에서의 노동자의 권리는 그저 누군가가 준 것이 아니라 그들의 피땀과 목숨을 건 투쟁으로 일궈낸 결과물들이다.
87년 6월 항쟁이후 이 땅에도 민주정권이 들어서고 민주주의와 인권이 널리 확립되었다. 어떤 면에서는 민주주의의 나라의 메카라고 불리는 영국과 미국보다 인권과 평등이 더 잘 실천되고 있다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이런 사회의 혜택은 7, 80년대 노동자들을 포함하여 민중들의 각성과 투쟁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임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박노해의 『노동의 새벽』은 열악한 노동현실을 극복하고 인간다운 삶을 살고자 하는 민중의 열망이 담긴 처절하고 아름다운 노래이며, 자기반성을 포함하여 진정한 민중의 각성을 말하고 있다. 인간의 가치 수단화 등으로 인한 인간성의 황폐, 이윤 추구를 최대 목표로 한 결과 인간이 살아야 할 생태계마저 파괴하고 있는 자본주의적 모순을 총체적으로 인식하고 있지는 않지만 인권과 평등의 이념인 민주주의 확립을 위한 박노해의 노력과 이 시집이 의미하는 상징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공산권이 무너진 현재, 이념을 넘어서 새로운 시대의 패러다임을 어떻게 구축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과 논의가 다양하다. 자본주의도 인류 역사의 발전과정 중의 하나라고 본다면 영원하지는 않을 것이다. 지구상의 자원이 거의 고갈되는 50년 후에서 100년 사이 자본주의를 대체할 새로운 경제시스템이 탄생할 것이다. 그 때를 대비하듯 박노해는 90년 중반 이후 변화를 보이고 있다. 마르크스의 사회주의는 이론일 뿐, 아니 희망일 뿐 현실에서는 실현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은 탓인지, 아니면 투쟁의 대상이 사라진 것에 대한 자연스런 변화인지, 그것도 아니면 자기 자신이 본래 이념적으로 무장된 사회주의자가 아니고 시대에 편승한 소시민인지는 알 수 없으나 그의 변화를 굳이 나쁜 시각으로 볼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어떤 식으로 변화하는지 시간을 갖고 더 지켜 볼 일이다. 다만 자본주의식 상업화 전략의 선봉장이 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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