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청준 소설 『남도사람』의 공간 연구
Ⅰ. 들어가는 말
사람은 시간과 공간을 떠나 살 수 없는 존재다. 이 말을 역으로 하면 시간과 공간 또한 그 자체로 실재하느냐, 하지 않느냐 하는 철학적이고 물리학적인 질문을 떠나 사람에 의해 그 존재가 의미부여된다는 말이다. 즉 사람이 시간과 공간에 대해 의미를 부여함으로써 비로소 시간과 공간은 의미가 있는 것이지 그 자체로는 별 가치가 없다는 것이다. 순수물리학에서는 그 자체가 의미 있을지도 모르나 최소한 문학에서는 의미가 없다. 이것을 다른 말로 하면 사람은 시간과 공간 속에서 자신의 존재를 의미부여하고 삶을 살아간다는 말이다.
사람이 시간과 공간 속에서 자신의 의미를 부여하며 살아간다는 것은 시간과 공간이 객관적인 것이라기보다 주관적인 것에 가깝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문학에서는 작가의 경험과 상상력에 따라 시간과 공간의 의미가 새롭게 부여되고 재창조되는 것이다. 따라서 소설이나 시에서 주인공이 움직이는 시간과 공간에 작가는 그 나름의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다. 이를 바슐라르는 작가가 경험한 어떤 것에 비추어 설명하려고 하는 원리를 ‘인과성’이라고 하였고, 또한 작가의 상상력이 외계의 대상들의 이미지와 관계없이 독자적인 법칙에 의한 작용을 가지고 있다고 하여 작가가 경험하는 공간이 그 인과성의 법칙과 작가의 상상력에 의해 새롭게 태어나고 창조되는 것이라 하였다.
문학적 상상력에 있어서 공간은 거리감과 시각, 청각, 촉각을 유발시키는 감각적 경험의 집합적 장소로 기능한다. 공간은 모든 가치들의 중심지이며 모든 순간과 경험을 지속시키는 곳이기도 하다. 물리적 공간은 경험과 상징에 의해 새로운 공간으로 인지되며 추상적 공간의 성격을 벗어나 정체성을 부여받기에 이른다. 이처럼 자신의 정체성을 유지함과 동시에 실제 환경에 적응해야 하는 인간 존재에게 있어서 공간은 객관적으로 주어진 세계가 아니라, 자아의 심리에 의해 주관화됨으로써 독자적 의미를 부여받게 된다. 인간의 의식과 감각은 공간과의 상호작용에 의해 발현될 수 있다는 점에서 공간은 인간의 근원적 삶의 조건이다. 세계 내 존재로서 인간이 자신의 의식과 신체에 현실성을 부여하기 위해서는 구체적인 공간에 대한 인지를 전제로 한다. 즉 공간 없이는 인간 존재 자체에 대한 실재적 규명이 불가능한 것이다. 공간에 독특한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인식의 주체에 달려 있으므로 공간에 대한 이해는 공간과 그것을 인식하는 주체의 상호 작용력을 바탕으로 하고 있는 것이다.
소설은 언어를 통해 인간의 가치 있는 삶의 모습을 형상화하여 보여주는 대표적인 문학 양식이다. 여기서 형상화란 작가가 파악한 현실을 언어로 바꾸는 일련의 과정이자 그 현실에 담긴 삶의 본질을 언어를 통하여 효과적으로 전달하여 독자들이 충분히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일련의 과정을 말한다. 이 과정에서 사실, 허구, 상상, 상징 등의 다양한 개념들이 작용하게 된다. 소설의 역사는 바로 이러한 제 개념들의 상호관계와 작용원리들이 어떻게 나타나는지를 잘 보여준다. 본 연구는 이런 의미에서 소설의 여러 구성 요소들 가운데 공간이라는 양상에 주목하여 이청준의 소설 『남도사람』을 살펴보고자 한다.
소설가는 그가 실존하는 현실공간에서 작품이라는 허구적 세계의 공간을 창조한다. 작품 안에서의 공간이란 인물의 내적 세계를 반영하는 상징이며, 행위의 기점으로서 그 구조나 이동 자체가 서사 진행의 원동력이자 의미 생산의 출발점이 되기도 한다. 즉 소설에서 소설가는 공간을 통해 등장인물의 성격을 창조하기도 하고 서사진행을 공간과 밀접하게 연관 지음으로써 새로운 의미를 창출하기도 하는 것이다.
소설에서의 공간은 ‘인물이 서 있는 장소와 배경으로서의 의미론적 측면으로부터 소설의 구조적 특성, 서술방식의 특성, 나아가 하나의 세계가 구축되어 독자에게 전달되는 과정을 포괄하는 개념’이다. 소설에 있어서의 공간시학은 첫째, 텍스트에 있어서 형태론적 구성으로서 공간이 어떻게 사용되는가라는 문제와 둘째, 텍스트 독서에 있어서 공간성은 그 구성 요소로서 점, 선, 볼륨, 면 그리고 동시성 등과 같은 공간적 특성을 포함한다. 여기서 공간성은 일차적 환상인 시간성을 확장하고 보충해주는 기능을 한다. 텍스트 비평에 있어서 공간적 해석은 공간과 시간의 미학으로부터 비롯된 것인데 문학작품 또는 텍스트의 해석은 비평행위의 공간적 설명을 마련하고 더 나아가서 그것은 소설에 있어서 제2의 환상인 공간성을 인지하는 설명을 가능하게 해준다. 소설의 공간시학은 시간의 연속체로서의 소설 구조에서 공간의 형태가 플롯의 구성, 작중인물과 초상화, 작중인물과 조각, 종합적 독서과정의 발생동원적 공간성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국면을 포괄한다.
또한 소설에서의 공간은 작가의 무의식이나 잠재의식과 밀접한 관련을 가질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작가가 구성해 낸 공간은 선험적 의식의 소산에서 치밀한 의식의 소산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속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소설에서 나타난 특수한 사회적, 문화적 상황에서 공간은 인물들간의 관계에서 존재하고 인물들의 의식을 지배하면서 인물의 성격을 부각시키기도 한다. 더 나아가 사회, 문화적 변화들을 다양하게 내포하는 등 종합적 기능을 담당한다.
본고에서 고찰하고자 하는 이청준 연작 소설 『남도사람』은 한(恨)의 세계를 형상화하고 있는 작품이다. 작가는 동일한 주제를 서로 다른 접근법을 통해 다루고자 인물이나 사건을 중첩시키고 있다. 반면 각 작품의 차별성은 인물이나 사건이 아닌 다른 요소를 통해 드러나는데 그것이 바로 ‘공간’이다. 『남도사람』 연작은 이청준 초기부터 중기까지 지속적으로 그가 추구해왔던 한 개인의 역사적, 생리적 상처의 치유를 탐색한 작품이다. 비극적 시간과 공간에서의 한 맺힘과 그 풀어짐의 서사로 구성되어 있으며, 한 맺힘과 화해의 전형을 보여주고 있다. 따라서 본 연구는 『남도사람』의 특징을 맺힘과 풀림이라는 의미에서, 또는 작품의 주제인 용서와 화해라는 측면에서 공간이 차지하는 소설적 의미와 가치를 살펴보고자 한다.
전남 장흥에서 태어난 이청준(1939~2008)은 1965년 『사상계』에 단편 「퇴원」이 당선되면서 문단에 등단한 이후 40여 년 동안 많은 문제작을 발표해 주목을 받아온 작가이다. 그는 장인계 소설로 분류되는 「병신과 머저리」(1966)를 비롯하여 「줄」(1966), 「과녁」(1967) 등을 발표하였다. 1970년대에는 「언어사회학서설」, 「남도사람」, 「다시 태어나는 말」, 「이어도」(1975), 「당신들의 천국」(1976)을 발표하였고, 1980년대 이후에는 「비화밀교」(1985), 「자유의 문」(1986), 「흰옷」(1994), 「축제」(1997)등을 발표하였다.
이청준에 대한 연구는 작품의 내용에 대한 고찰, 작품의 형식에 대한 고찰, 작가론적 고찰로 나눌 수 있다. 첫째, 작품의 내용적 고찰은 인물과 소재, 그리고 주제의 다양함을 지적하고 있다. 둘째, 작품의 형식에 대한 고찰은 주로 격자소설의 형식에 대하여 설명하고 있다. 셋째, 작가론적 고찰로서 이청준을 지적인 작가로 본 연구이다. 이 세 가지의 연구들을 요약하면 그는 지적이면서 의식 조작적인 작가라는 점, 그는 관념지향적이면서 다양한 소재와 주제를 다루고 있다는 점, 정신주의 세계를 다루는 탐색지향적이라는 점, 중층 구조를 통해 끊임없이 자기를 분석하면서 독자와의 대화를 지향해 왔다는 점이다.
본 연구와 관련된 공간 연구를 살펴보면, 최혜영은 이청준 소설에 나타난 낙원의식을 현대적 입장에서 재해석하여 낙원이 곧 현실이라고 하였다. 박경삼은 『남도사람』 연작을 중심으로 ‘주막’, ‘길’ 등이 갖는 공간적 의미를 토대로 ‘한의 맺힘과 풀어짐’을 분석하였다. 신계철은 인물들의 행위를 통해서 공간의 이동양상을 살펴봄으로써 이청준 소설의 공간의 의미를 파악하려 했다.
이청준의 『남도사람』에 대한 연구는 정신분석적으로 고찰한 최종배, 한의 측면에서 고찰한 은정해, 신화적 측면에서 고찰한 이상우, 낙원의식 측면에서 고찰한 이지영, 관념소설로 고찰한 이상숙의 논문이 있다.
Ⅱ. 『남도사람』의 공간 분석
공간은 단순히 사건이 발단하고 전개되는 배경적 의미를 지닐 뿐 아니라 작품의 주제를 효과적으로 부각시키는 요소로 활용된다. 따라서 이청준의 『남도사람』에서 공간 연구는 공간 자체의 성격 규명에 머무를 것이 아니라 작품 속에서 공간의 특징이 어떻게 작용하고 있는지 밝혀야 한다. 한이 맺히고 풀리는 과정에서 공간이 어떤 성격을 지니고 있으며 그것을 통해 작가 이청준이 말하고자 하는 바가 무엇인지 밝히고자 한다. 본고에서는 『남도사람』의 공간을 지리적 공간과 그 공간이 지니는 상징성으로 나누어 분석하고자 한다. 즉 지리적 공간과 그 공간의 상징성을 밝혀 『남도사람』의 주제에 다가가고자 한다.
1. 『남도사람』의 지리적 공간
『남도사람』은 「서편제」, 「소리의 빛」, 「선학동 나그네」, 「새와 나무」, 「다시 태어나는 말」로 된 연작 소설이다. 여기에서 나타난 공간들의 실제 지명은 보성, 장흥, 회진, 강진, 해남(대흥사)으로 볼 수 있다. 「서편제」의 배경이 되는 전남 보성과 주막은 소설의 주인공인 사내의 여정이 시작되는 공간이다. 사내가 남도가락을 찾아 헤매는 표면적 이유는 아직도 어딘가 살아있을지도 모르는 누이동생과 소리를 찾기 위해서인데, 이를 위해 일차적으로 투영된 공간이 바로 보성과 주막이다. 소설에서 공간이 중요한 이유는 배경과 인물과 사건이 활동하고 발생하는 무대이기 때문인데, 『남도사람』에서 보성과 주막은 단순히 사건의 전개를 위한 배경이나 장소의 요소로서만 임무를 다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이 공간은 『남도사람』 작품 전반에서 인물과 사건에 신빙성을 주면서 주제를 구체화시키는 출발점이 되고 있다.
「소리의 빛」의 공간인 장흥의 주막에서 사내는 드디어 누이를 만나게 된다. 동생을 만난 곳이기에 새로운 삶의 출발점이 될 수도 있었으나 그곳이 나그네들이 그저 하룻밤 묵고 떠나는 장소인 ‘주막’임을 상기시키기라도 하듯 사내는 자신이 누구임을 밝히지 않고 다시 길을 떠나게 되고, 누이동생 역시 사내가 오라비임을 알고 있으면서도 내색하지 않고 말없이 떠나보낸다. 이는 두 오누이가 도달해야 할 그 어떤 경지를 향한 삶의 여정이 아직도 끝나지 않았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이처럼 장흥과 주막은 남도에서 누이동생과 소리를 찾아 헤매던 사내가 누이동생과 상봉하고 과거와 유사한 환경에서 자신의 과거의 갈등을 다시 떠올리게 하는 공간이다.
「선학동 나그네」의 공간 회진은 보성이나 장흥과 달리 전체 스토리 전개상 중복되어 나타나는 공간이다. 회진이 처음 등장하는 때는 의붓아비가 사내와 누이동생을 이끌고 소리품을 팔러 다니며 들렀던 곳이고, 다음은 누이동생이 죽은 아비의 유골을 묻기 위해 잠시 머물렀던 곳이다. 세 번째는 누이동생이 장흥 주막집 주인 사내와 같이 와서 아비의 소리를 회상하던 때이고, 마지막은 사내가 30여 년 전의 기억을 떠올리며 이곳을 찾았다가 의붓아비의 유골이 이곳에 묻혀 있고 2년 전에 누이동생이 왔다 갔음을 확인한 때이다. 선학동을 찾는 이유는 혹시 누이동생을 만날 수 있을까 하는 기대감과 선학동의 학이 다시 나는 모습을 보고 싶은 기대 때문이다. 그러나 실질적으로 사내의 기대는 무너지고 대신, 의붓아비에 대한 한을 묻고 학처럼 승화한다는 의미로서 의붓아비에 대한 적개심을 해결하는 공간으로 볼 수 있다. 결국 사내와 누이에게 이 공간은 재결합보다는 스쳐지나간다는 일회성, 일의성이 강조된다. 이 이후로 두 남매의 만남은 더 이상 이어지지 않게 된다.
「새와 나무」의 공간인 강진은 소리가 존재하는 곳으로 설정되어 있다. 어머니와 관련된 이야기가 나오면서 사내가 도착한 곳이 과수림이다. 처음 가보는 곳이지만 아늑한 휴식감을 느끼게 하고 어머니 품안 같은 분위기를 느끼게 하는 곳이다. 그러나 「새와 나무」에서의 소리는 실제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고 환청에 가까운 것이다. 하지만 주인공이 평생을 두고 가슴에 묻어 두고 귀에 달고 다니던 남도 소리이기에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실재 존재하지 않지만 소리를 들을 수 있었던 것은 전형적인 남도의 공간이기 때문이다.
「다시 태어나는 말」의 공간은 해남의 대흥사에 속해 있는 일지암이라는 암자와 유선여관이라는 구체적인 공간으로 구성되어 있다. 여기서 사내의 후일담이 김석호라는 다도 연구가의 이야기를 통해 나타나고 있다. 이 공간에 이르러 소리를 따라 진정한 자기자신을 찾아 떠돌아다니던 사내의 여정이 일지암(또는 여관)에서 모든 것이 정리된다. 이 공간은 연작소설 『남도사람』의 도달점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아직도 그 소리에 의지하여 자기 몫으로 점지된 회한과 용서를 필생의 빚으로 살아가는 것’이라는 자기인식의 여정을 보여준다.
『남도사람』의 지리적 공간(보성, 장흥, 회진, 강진, 해남 대흥사)은 남도 창(판소리)의 대표적 장소로서의 의미를 지니고 있고, 따라서 동일선상의 해변을 따라 동쪽에서 서쪽으로 이어지고 있다. 그에 따라 주인공 사내의 자기인식 및 누이와의 갈등이 소리라는 매개체를 통해 한으로 승화되는 과정을 보여주고 있다. 이는 판소리의 발달과정과도 상통하는 것으로, 동편제에서 서편제로의 이동과정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를 통해 한을 소리로 풀고자 하는 작가의 간절한 소망을 읽을 수 있다. 결국 『남도사람』의 지리적 공간은 한의 부정적 속성을 긍정적 속성으로 전환하고 있고, 판소리와 같은 열린 구조를 지향함으로써 생의 본질을 드러내는 상징적 의미를 부여하는데 보조적 역할을 하고 있다.
2. 『남도사람』의 공간적 상징성
우리가 소설의 공간을 다룸에 있어서 주의할 점은 소설은 하나의 유기체적인 구조라는 것이다. 시간과 공간을 따로 떼어내어 분석하는 것은 자칫 오류를 범하기 쉬우며 그 분석에서 한계를 드러낼 수밖에 없다. 그래서 바흐친은 시공간성(chronotope)이라는 개념을 제안했다. 따라서 『남도사람』의 공간적 상징성을 분석함에 있어 바흐친의 ‘크로노토프’라는 개념을 첨가하여 다루고자 한다.
1) 인생의 의미 공간 - 주막, 포구
「서편제」, 「소리의 빛」, 「선학동 나그네」에서 공통적으로 의미 있는 공간은 ‘주막’과 ‘포구’이다. 우선 주막은 조선시대 이후 시장과 더불어 서민들의 애환이 담겨 있는 공간이다. 장꾼들과 길 가는 나그네를 위해 숙식을 제공하는 장소이기도 한 주막은 장이 서는 날을 기해 소리품이나 곡예품을 파는 남사당, 소리꾼들이 머물기도 하는 공간이다. 소리가 좋아 소리를 배우고 소리품을 파는 또랑광대나 화초광대에게 주막은 중요한 생활의 근거가 되는 공간이다. 따라서 이 주막에는 많은 소리꾼들의 애환이 서려 있게 마련이다. 『남도사람』에서 주막의 이미지는 이런 공간의 속성을 잘 알고 있는 작가의 경험적 상상력의 소산이라 할 수 있다.
주막집에는 과연 심상치 않은 여인의 소리가 있었다. ...... 한 여자의 도도하고도 구성진 남도소리가 뒤에 숨어 있었다.
게다가 알 수 없는 것은 그 눈먼 여자에 대한 사내의 태도였다. 그는 처음 술손을 맞는 주막 여자 가 눈이 먼 장님인 것을 알고서도 조금도 이상해하거나 꺼림칙스러워하는 눈치를 안보였다. ...... 여기서는 이제 아무것도 조급해야 할 일이 없었다는 듯 추근추근 술청마루에 걸터앉아 술잔만 비워내고 있었다.
남도의 주막이 지니는 공간적 의미는 다음과 같다. 소리가 존재하는 공간, 언제나 들고 날 수 있는 공간, 그리고 만남과 이별이 격식이 될 수 없는 공간이지만 그 떠남이 뚜렷한 목적지나 도달점이 없는 상태에서 이루어지는 공간이기에 기약 없는 삶의 모습들을 형상화하기 위한 배경으로 잠시 머물다 떠나는 나그네성 공간이다. 나그네는 떠남을 속성으로 한다. 그 떠남에서 잠시 머물다 가는 곳이 바로 주막이다. 따라서 주막에서의 만남은 순간일 수밖에 없는 것이고 그곳에서 만남과 떠남을 반복한다. 이 순간적인 만남, 만남과 떠남이 바로 인간 삶의 본질이라고 작가는 말하고 싶은 것이다. 주막에서 삶의 진실을 추구하고자 하는 작가의 소망이 짙게 배여 있다. 이 삶들을 통해 우리가 배워야 할 그 어떤 진실을 위해서 주막이라는 공간이 큰 비중을 차지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물이 있어야 할 곳에 물이 없었다. ...... 돌고개 기슭과 관음봉의 오른쪽 산자락 끝을 건너 이은 제 방이 포구의 물길을 끊어 버리고 있었다. ...... 여자의 소리는 언제나 포구 밖 바다에 밀물이 들어오 는 때를 맞추고 있었다. 그것도 마치 성한 눈을 지닌 사람이 바닷물이 차오르는 포구를 내려다보는 듯한 눈길로 반드시 마루께로 자리를 나앉아 잡고서였다.
「선학동 나그네」에서 포구 또한 넓고 시원하게 펼쳐진 바다를 향한 공간이 아니라 그저 그곳만 벙긋 열린 듯 자리하고 있는 포구이다. 그곳에 사는 사람들이 바라보는 포구는 넓은 곳, 바깥세상으로 향하는 길목이 아닌 영원한 떠남을 전제로 하지 않고서는 벗어날 수 없는 오히려 폐쇄된 공간이다.
이 포구는 바슐라르가 말한 조개껍질처럼 내밀하고 보호해주는 집과 같은 공간이 아니다. 또한 어릴 적의 추억이 담겨 있는 낭만적인 곳도 아니다. 힘겨운 생존을 위해 바다로 나간 가족을 기다리며 망연하게 바라보는 삶의 터전이요, 때로는 가족의 죽음 소식을 전해오는 공간이다. 그래서 남도의 독특한 한의 정서를 물씬 풍기는 곳이기도 하다. 삶을 유지하기 위해 고기잡이로 나서는 일 외에는 떠날 수 없는 곳, 떠났다가 반드시 돌아와야만 하는 곳, 그렇다고 풍요롭지도 못한 곳으로 애절한 가락이 저절로 생길 수밖에 없는 공간이다. 태어난 곳을 떠날 줄 모르는 사람(어부)들이 사는 곳, 그러나 사랑과 낭만, 아늑한 추억이 아닌 삶과 죽음을 넘나들면서 생존을 위해 처절하게 살아야 하는 곳이 바로 포구가 가지는 공간의 의미이다. 작가의 태생적 경험이 바탕이 되는 상상력에서 선택된 공간으로 주막과 같이 소리꾼들의 삶과 정서의 미적 형상화를 위한 의미 있는 공간 장치이다.
바흐친의 크로노토프에 ‘문턱의 크로노토프’라는 개념이 있다. 이것은 만남의 모티프와 결합될 수도 있으나 기본적으로 인생의 위기와 분기점의 크로노토프로 기능한다. ‘문턱’이라는 단어 자체가 이미 일상적인 용법에서도 문자 그대로의 의미와 함께 비유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으면서 삶의 분기점이나 위기의 순간, 삶을 변화시키는 결정 등과 연결된다. 문학에서 ‘문턱의 크로노토프’는 위기의 사건, 몰락, 부활, 재생, 현현, 사람의 전 인생을 좌우하는 결정 등이 일어나는 장소이다.
남도의 주막을 바흐친의 ‘문턱의 크로노토프’식으로 해석하자면, 주막의 제한된 추상적인 공간에서 시간적 흐름은 정지한다. 그렇게 정지된 시간은 영원성과 순간성을 동시에 지니며, 따라서 정지된 시간은 공간의 수평적 이동을 불가능하게 하고 단지 수직적인 이동만을 가능하게 한다.
‘공동 묘지 길의 초입께에 엎디어 있다’는 주막은 이승과 저승을 연결하는 하나의 경계이며 전기적 시간성의 진행이 멈추는 지점이다. 또한 소릿재와 소릿재 주막의 명칭의 내력이 소리꾼의 무덤에서 연유한다는 사실에서 소릿재 주막은 일상의 언어가 소리로 넘어가는 지점이기도 하다. 소릿재 주막을 넘어서는 순간 일상적인 삶과 언어의 질서에서 벗어나 일상적인 삶과 언어의 질서의 반대항의 극점인 죽음으로 이동하게 된다. 하나의 세계에서 그것과 전혀 다른 질서가 지배하는, 다른 차원의 세계로 이동시키는 장소가 문턱이다. 문턱은 하나의 장소에서 다른 장소로, 하나의 세계에서 다른 세계로 넘어가기 위해 지나가야 하는 하나의 경계선, 한 일순간일 뿐이다. 넘어가야 할 문턱에 사로잡혀 있다는 것, 그것이 사내의 숙명이다. 문턱에 사로잡혀 있는 것이 사내의 숙명이라면 그 당연한 귀결로 문턱을 벗어나고자 하는 갈망과 그 시도 또한 사내의 숙명일 것이다. 하지만 ‘문턱 크로노토프’는 문턱을 넘어서는 것에 대한 공포, 우유부단함과 결합되어 있다. 주인을 알 수 없는 무덤가에 허리 고삐가 매여 놀던 사내의 어린 시절 경험담과 연결되어 더욱 그렇다.
문턱을 넘어서지 못하는 한 길은 없거나 무한하다. 주막은 소리의 무덤이 현실의 공간으로 열어놓은 문턱이다. 그러나 수평면을 따라있는 현실적 시간성의 길은 소릿재 주막에 이르기 전까지 보이지 않고 소릿재 주막 이후에도 보이지 않는다. 길은 소릿재 주막 안에만 있다. 길이 없는 것은 아니다. 다만 진정한 길은 수직으로만 나있다. 그래서 『남도사람』의 허무주의는 초월적 허무주의인 것이다. 문턱은 압축된 길이다. 만남과 떠남(죽음을 의미하기도 하고 만나지 못하는 운명을 말하기도 함)의 교차로에서 주막과 포구는 그 문턱에 있는 크로노토프이다.
2) 인생의 성숙 공간 - 길
모든 길은 상징으로 통한다. 길은 시간과 공간이 결합된 최고의 상징이다. 시간의 비가역성과 공간의 불변성이 길에서 만난다. 그러나 현대 소설에서의 길은 고전적인 시간과 공간의 의미를 뛰어넘는다. 특히 『남도사람』의 길은 선형적이고 불변적인 시공간을 넘어 세상 모든 것과 공유하며 순환하는, 즉 만남과 떠남을 이어주는 공간이다.
『남도사람』 속 주막들은 오가는 사람도 별로 없는 고갯길이 있거나, 굽이굽이 들판과 산 사이에 동그랗게 얹혀 있는 형상으로 그려져 있다. 여기에는 남도의 길이 지니고 있는 정서를 충분히 드러내고자 하는 작가의 태도가 내재되어 있다. 즉 이 작품이 보여주고자 하는 것은 그저 어떤 한 기구한 일생을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아닌 시감각으로서의 정서를 표현하고자 하는 것이다.
소리를 들을 때마다 그의 머리 위에서 이글이글 불타오르는 뜨거운 여름 햇덩이가 하나 있었다. 어렸을 적부터의 한 숙명의 태양이었다. ...... 소리꾼 일행은 그날도 어느 낯선 고을의 산길을 지나가고 있었다. 쉬엄쉬엄 소리를 뿌리며 산길을 지나가던 일행이 이윽고 한 산마루의 고갯길을 올라섰다. ...... 녀석이 사내의 곁을 떠난 것은 그러니까 그런 일이 생겼던 바로 그날 오후의 일이었다. 사내는 끝내 녀석을 모른 체했고, 녀석은 더 이상 자신을 견디고 서 있을 수가 없었다. 그는 마침내 끌어안은 돌멩이를 버리고 용변이라도 보러 가듯 산길가 숲속으로 들어가 그 길로 영영 두 사람 앞에 모습을 감춰 버리고 만 것이다.
권력의 상징인 햇덩이는 사내(주인공)의 동경의 대상이자 사내를 괴롭히는 존재다. 이런 햇덩이를 맞이하는 곳도 바로 남도의 길 위에서이다. 어릴 적 어머니에게 묶여진 채 햇덩이를 맞이하였던 길가는 사내에게 괴로움과 원망의 공간이었다. 과거의 아픈 공간이 의붓아비, 누이동생과 함께 소리를 팔러 가는 현재의 공간(산길)으로 이어진다. 현재도 역시 길은 사내에게 고통과 원망의 공간인 것이다. 그러나 사내는 그 공간인 산길에서 의붓아비를 죽이지 못하고 아비와 동생 곁을 영영 떠난다. 숲속으로 이어진 길, 그 공간은 고통과 원망의 공간이자 인생의 고독과 원망을 한으로 승화시키는 공간이기도 한 것이다. 『남도사람』에서 주인공들이 수행하는 길은 바로 이 정서를 형상화하여 보여주기 위해 설정된 것이다.
고통과 삭막과 원망의 길은 동시에 삶이라는 역경의 여정이기도 하다. 그 역경의 여정을 어떻게 한으로 승화시킬지는 온전히 자신의 몫이다. 남도의 길은 인생을 배우는 공간인 것이다. 남도의 길은 흥이 겨워 가는 길이 아닌 고즈넉한 분위기 속에서 그 무엇을 찾아가는 애상이 담겨 있는 길이어야 한다. 남도소리인 판소리에서 나오는 한의 정서는 단지 소리 자체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삶에서 우러나온 것이기 때문이다. 그 한의 정서를 보여줄 수 있는 것이 바로 남도의 길이다.
고통과 원망의 공간, 일자리와 삶의 터전을 잃어도 흥을 돋우는 공간이 남도의 길이다. 소리로 흥으로 삶을 견뎌내는 곳, 그곳이 남도의 길인 것이다. 마음에 맺힌 한을 소리로 풀고 힘겨운 인생을 살아가는 곳, 만남과 떠남이 부질없어도 끊임없이 인생과 소통하고 걸어가야 하는 곳, 뼛속깊이 사무친 한을 예술혼으로 승화시키려는 노력의 여정이 바로 남도의 길이다. 또한 삶의 무게를 지고 걸어가면서 인생과 우주의 섭리를 배우는 공간이 바로 남도의 길이기도 하다.
길은 유랑과 모색, 이주와 갱신이 역동적으로 이루어지는 공간이다. 길은 집의 타자화된 공간인 셈이다. 길에서 사람들이 집에서는 생각하지 않는 근원적인 존재론적 성찰을 하게 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러한 ‘길의 크로노토프’가 지니는 반일상성은 일상적 삶에 대한 반성적 사유의 원천이 된다. 이것이 바로 바흐친의 ‘길의 크로노토프’다. 길에서는 인간의 운명과 삶을 규정하는 시공간적 연쇄들이 독특한 방식으로 서로 결합한다. ‘길의 크로노토프’는 새로운 출발점인 동시에 사건의 결말이 일어나는 장소이기도 하다.
남도의 길은 삶에 대한 근원적이고 존재론적인 물음을 제기하는 크로노토프다. 자신의 비극적 운명을 가슴에 묻고 소리로 승화시키는 공간이요, 그래서 자기구원이 아닌 자기 위안의 길이자 인생을 터득하는 길이다. 길에서 만나기도 하고 헤어지기도 한다. 만남은 긍정의 모티프이고 헤어짐은 부정의 모티프이다. 그러나 길에서는 이 만남과 헤어짐을 동시에 한다. 긍정과 부정이 모두 존재하는 곳이 길인 것이다. 이 말은 긍정과 부정 모두를 길에서 해소하여야 한다는 말이다. 개인의 상처, 한이 인간존재의 근원적인 것이든 아니든 우리는 길에서 이 모두를 가슴에 녹여야 하며 악마 같은 삶을 살아내야 한다. 그래서 남도의 길은 인생과 우주의 섭리를 배우고 터득하는, 소리로 승화된 시공간(크로노토프)이다. 인생이 진실로 성숙되는 공간이다.
3) 예술적 승화, 소리의 완성 공간 - 선학동
『남도사람』이 결국 도달하고자 하는 공간은 선학동인 것으로 파악된다. 「선학동 나그네」에서 사내는 어린 시절 한 번 왔던 적이 있던 선학동을 다시 찾는다. 이 마을이 선학동인 까닭은 마을 뒷산의 관음봉이 포구에 물이 들면 한 마리 학의 모습으로 날아오른다는 전설 때문이었다. 그러나 사내가 찾았을 때에는 이미 이전의 모습을 잃은 후였다. 포구에 제방이 쌓여지면서 물이 들어오지 않아 학이 날지를 못하게 된 것이다. 그런데 이 눈먼 여인(누이)의 소리로 인해 선학동에는 다시 학이 날아들게 된다.
여자가 마침내 소리를 시작하고 있었다. 사립에 기대어 눈을 감고 가만히 여자의 소리를 듣고 있자니 사내의 머리속에서 오랫동안 잊혀져 온 옛날의 그 비상학이 서서히 날개를 펴고 날아오르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여자의 소리가 길게 이어져 나갈수록 선학동은 다시 옛날의 포구로 바닷물이 차오르고 한 마리의 선학이 그곳을 끝없이 노닐기 시작했다. ...... 그리고 그러다 여자는 어느날 밤 문득 선학동을 떠나갔다. 하지만 사내는 여자가 그렇게 선학동을 떠나고 나서도 그녀의 소리가 여 전히 귓전을 맴돌고 있었다. 이제는 그 소리가 아니라 여자 자신이 한 마리 학이 되어 선학동 포구 물위를 끝없이 노닐었다.
물은 가능성의 우주적 총체를 상징하며 그것은 일체의 존재 가능성의 원천이며 저장고이다. 그것은 모든 형태에 선행하며 모든 창조를 뒷받침한다. 간척공사로 물길이 끊긴 선학동은 이미 생명력을 잃은 황폐화된 공간이며 태초의 순수성을 상실한 불모의 공간이다. 우주적 생명력으로서 풍요와 재생의 의미인 물이 말라버린 선학동은 생명력의 상실공간이며 폐허의 불모 공간이 되어 현실적 삶의 희망이 사라진 곳이다. 그러나 눈 먼 여인의 소리는 조금씩 선학동 사람들의 가슴속에 스며들면서 사람들의 마음을 열고 확장하는 상상력의 세계를 형성한다. 여인의 소리가 길게 이어지면서 선학동은 다시 옛날의 포구로 돌아가 바닷물이 차오르고 한 마리 선학이 끝없이 노니는 공간이 된다. 여인의 소리는 점차 넓게 퍼져 선학동 사람들의 집단 무의식의 넓은 공간을 형성한다. 여인 소리의 울려 퍼짐은 인간 보편적인 삶의 의지를 획득하는 세계인식의 확대를 의미하는 것으로 공간 영역의 확대와 상응, 비례한다고 볼 수 있다. 소리에 의한 세계 인식의 확대는 끊긴 물이 흐르고 선학이 나는 공간 확대로 본래의 선학동의 모습을 찾게 한다.
여인이 맹인으로 설정된 것은 비상학의 신화와 무관하지 않다. 육체적인 시력의 상실은 영적인 소리의 힘을 더욱 강화시킴으로써 성한 사람이 볼 수 없는 물과 산 그림자를 마음으로 볼 수 있게 한다. 이제 소리는 들려지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볼 수 있는 것이 된다. 어둠(육체적 시력 상실)속에서 신비(영적인 소리의 힘, 소리의 빛)는 드러난다.
『남도사람』에서 여인의 소리는 대부분 밤(어둠)이라는 시간과 바닷가라는 공간으로 설정되어 있다. 어둠, 여인의 소리, 바닷물 모두는 시공간적으로 요나적 이미지들이다. 밤의 어둠은 모든 존재를 부재(不在)하게 만든다. 밤의 어둠은 우리 모두를 무의 세계에 잠기게 한다. 그러나 무는 부재가 아니라 실존이다. 즉 밤은 모든 것을 무화시키는 비극이 아니라 무한한 신비를 지닌 존재의 내밀성을 지니고 있다. 밤은 무한한 가능성을 잉태하고 있는 것이다. 이 무한한 가능성이 곧 ‘빛’, ‘소리의 빛’이다.
어둠과 빛의 역동 관계처럼 한으로부터 소리는 더욱 깊어지고 깊어진 소리는 한의 매듭을 풀어낸다. 이러한 어둠과 빛의 역동성은 현실 상황의 고통을 초연히 견디게 하여 부정적인 현실 공간을 긍정적 공간으로 변모시킨다. 따라서 여인의 소리는 맹인이라는 육체적 상실과 무한한 가능성을 잉태하는 밤이라는 시간 속에서 한 마리의 비상학이라는 자연물이 되어 인간의 경지를 극복하고 초월의 경지에 들어선다.
한이 그리움으로, 그리움이 소리의 빛으로, 한이 자연을 통해 승화하는 가장 아름답고 애절한 순간이 바로 ‘비상학’이 날아오르는 순간이다. 이처럼 소리가 한 마리의 비상학으로 날아가는 순간은 인간적인 모든 질곡과 고통에서 해방된 순간으로 무한한 공간 확대를 이루며 인간과 자연, 인간과 인간, 인간과 세계를 하나처럼 넘나들어 그 두 사항간의 대립을 초월케 한다. 그 초월로 인해 인간은 현실에서의 좌절감과 갈등에서 벗어나게 된다. 비상학이 날아오르는 선학동은 이제 존재론적 전환의 공간이 된 셈이다. 즉 여인(누이동생)은 보이지 않는 학을 발견하고 주위 사람들에게 그것을 인식시킴으로써 비로소 지난한 삶의 여정을 마무리할 수 있는 여지를 얻게 된 것이다. 이제 오라비를 만나지 않아도 되는 체념과 달관의 상태가 그녀를 그러한 상태로 이끌게 된 것이다. 그래서 이 선학동은 누이동생의 삶의 도달점, 도달공간이 되는 것이다.
바흐친은 순순한 동시성의 상태, 동시적 공존의 환경에서 “과거에도 그러했으며 현재에도 그러하고 미래에도 그러할 터인 것”의 진정한 의미가 드러날 수 있다고 했다. 여인의 소리는 하이데거적인 의미에서 순수 존재, 혹은 절대적 타자를 연상시킨다. 모든 존재자에 대한 절대적 타자는 다름 아닌 무이며 어둠(또는 죽음)이다. 무는 부정이 아니라 부정의 부정, 즉 긍정이다. 따라서 사내와 여인이 찾아 헤맨 길은 모든 것을 초월하고 존재 자체를 무화시키는 대긍정의 길이었다. 그곳이 바로 선학동인 것이다.
선학동에서 학이 날고 여인이 소리를 하는 것은 이를 비유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실제로 학이 난 것이 아니라 상징이요 비유인 것이다. 이 또한 바흐친의 ‘반일상성 크로노토프’적 성격을 지니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일상의 인간적인 질곡과 고통에서 해방되고 인간과 자연, 인간과 인간, 인간과 세계의 경계마저 허물어버리는 존재론적 무화의 단계로 소리의 완성 공간이 선학동인 것이다. 무수한 떠남과 되돌아옴을 반복하는 사이에 결국 처음의 길인 선학동으로 되돌아 왔다는 것은 바로 이를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바흐친의 크로노토프식으로 해석하면 존재 근원을 탐색하며 수직적인 구조에서 수평적인 구조로 수렴하였다고 볼 수 있다. 결국 남도소리는 죽음과 삶의 경계를 해소하고 두 영역을 자유로이 넘나든다. 누이동생과 사내, 아니 우리 모두가 도달해야 하는 공간인 셈이다.
3. 『남도사람』의 공간이 추구하는 이상
『남도사람』의 마지막 연작 「다시 태어나는 말」은 소리가 가진 한풀이의 경지, 즉 용서와 화해의 경지에서 말과 삶의 화해 가능성을 담고 있다. 대흥사 일지암을 찾은 차 연구가 김석호의 말을 통해 사내의 행적을 알 수 있다. 사내는 일지암에 이르러 비로소 기나긴 삶의 의미를 정리하고 여기에서 사내는 기다림과 용서라는 말의 뜻을 깨달았다고 한다. 따라서 『남도사람』이 최종적으로 추구하는 이상적인 공간은 화해와 용서의 공간인 셈이다.
초의 선사의 다도를 통해 수십 년 동안 모르고 지냈던 진정한 의미의 용서를 배우고 나서 비로소 사내의 여행은 끝난다. 자신이 그토록 누이동생을 찾아 헤매었지만 아직도 그 가슴 속에서는 그러한 한을 심어 준 의붓아비에 대한 미움이 자리잡고 있었다는 것, 누이는 아무래도 자신을 장님으로 만든 아비를 증오하고 있을 터이기에 자신과는 쉽게 화합할 수 있었으리라는 생각 등을 이 기다림과 용서의 의미를 깨닫고 나서는 버리게 되었고 비로소 여정을 마무리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사내의 헤매임은 말할 것도 없이 자신의 삶에 대한 깊은 화해와 용서의 마음 때문이었다. 아비를 죽이고 싶어 한 부질없는 자신의 원망을 후회하고, 그 아비와 누이를 버리고 달아난 자신의 비정을 속죄하고… 그러나 이제 와선 이미 서로를 용서하고 용서받을 길이나 사람이 없음을 덧없어하면서, 그 회한을 살아가고 있는 사내였다. … “하지만 아마 작자가 그때 깨달은 것 중엔 이런 것도 있었지 않았나 싶습니다. 그가 설령 그때 그 누이 앞에 모습을 드러내고 화해와 용서를 구하고 그걸 누이가 받아들여 주었다 하더라도 그 누이가 자신 앞에는 여전히 그 회한과 용서로 살아내야 할 자기 몫의 삶이 남을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그래 사내는 누이를 단념하고 길을 되돌아섰던 것 일 거외다. 그리고 아직도 그 소리에 의지하여 자기 몫으로 점지된 그 회한과 용서를 필생의 빚으로 살아가는 걸 거외다. 그러고 보면 아마 그 위인이 누이를 찾아다닌다는 것은 처음부터 구실에 불과했을 수도 있는 일이겠구요.”
누이동생은 이미 선학동에서 용서와 화해를 구하려고 하는 사내의 여정이 자신에게는 더 이상 의미가 없음을, 즉 자기 자신은 사내에게 그 어떤 말도 힐 필요가 없음을 간접적으로 전하고 있다. 자신이 비상학이 되어 날아 오른 것으로 알아달라는 말을 대신 남겨 두고 홀연히 사라져 버린 것이다. 그러나 아직 사내는 그 용서와 화해라는 굴레 속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던 차에 일지암에 이르러 초의 선사의 차마심의 법도 속에서 그것을 깨닫게 된다. 사내가 깨달은 법도란 다름 아닌 차를 마시는 일은 곧 기다림이요 그 기다림은 용서의 마음이라는 초의선사의 마음이었다.
그런데 용서라는 마음은 어떤 특별한 경지를 터득해야 하는 것이 아니다. 심오한 이론이나 힘겨운 수행을 통해서 터득되는 것이 아니라 바로 평범한 우리네 일상의 삶 속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자신이 무엇인가 특별한 것(도)을 깨달았다고 생각하는 순간 그것은 부질없는 일이라는 말이다. 그리고 남들이 겪지 않은 특별한 일이나 수행을 한 후에야 도를 깨달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진정한 의미의 용서와 화해가 아니라는 것이다.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여야 한다’는 말처럼 인생의 참의미는 어떤 특이한 사건이나 특별한 수행을 통해서 이룩되는 것이 아닌 것이다. 무엇을 깨달아야 한다는 마음가짐 자체가 깨달음과는 멀어지는 일이다. 그래서 누이는 용서와 화해의 굴레마저 벗어던지고 비상학이 되어 날아 가버린 것이다. 사내는 차마심의 평범한 법도 속에서 삶의 진정한 법칙을 깨닫고 유선여관에서 한 여자를 품에 안음으로써 그 기나긴 여정을 마친다. 삶의 진정한 의미를 깨닫는 공간이 바로 일상의 평범한 사람들이 쉬기 위해 드나드는 여관이라는 점에서 더욱 『남도사람』의 공간이 주는 의미는 깊다.
참 다도를 익히려는 사람들이나 소리를 찾아 헤매는 사람이나 모두가 용서라는 그 한 마디 말에 자신의 삶을 바쳐 살아가는 사람들이었기에 ‘용서’는 ‘다시 태어날’ 수 있다. 남을 용서하고 자신을 용서하고 그리고 세상사 모든 것을 용서하고 감사하는 일이 바로 차 마시는 마음가짐이라는 것인데, 이 말의 뜻은 다도는 형식적인 방법이 아닌 마음가짐에 있고 그것은 소리를 하거나 즐기는 마음과 통하는 바 그 바탕은 용서라는 것이다. 말이 형식적인 절제와 균형의 노력을 통해 제 모습을 찾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이 세계의 모든 것을 용서하고자 하는 마음가짐 속에서 되살아날 수 있다는 것이다.
사내는 누이를 만나고서도 결국 용서라는 말을 꺼내보지도 못했는데, 그 까닭으로 다시금 소리가 내세워지고 소리를 듣는 순간 한으로 굳어진 아픈 매듭이 모두 풀려나갔다. 즉 용서는 맺힌 것을 풀고 말과 삶의 화해를 도모하는 것이다. 이 모든 것을 종합하면 결국 말은 그 말에 걸맞은 삶을 지닐 때 살아 있는 말, 믿음을 가질 수 있는 말이 된다는 것이다. 그것을 작가는 ‘말이 차라리 삶 자체’라고 말하고 있는데, 우리의 삶에 대한 문학적 인식의 실체는 그 삶을 이해하고 설명하는 언어의 질서이며 기능이라는 것이다. 즉 작가 이청준은 『남도사람』을 통해, 또는 『남도사람』의 공간을 통해 남도소리나 참 다도에서 보이는 예(禮)나 도(道)의 정신을 용서로 보고 있으며, 말을 인간의 삶에 깊은 뿌리를 내리고 있는 가장 자유스러운 한 원형으로 파악하고 있다.
물론 이청준의 소리 연작소설 『남도사람』이 한과 소리의 관계를 통해 억압과 예술과의 관계를 가장 바람직스러운 명제로 세워놓았지만, 과연 그것이 올바른 예술인식의 태도일 수 있겠는가 하는 문제가 있을 수 있다. 즉 지나치게 수동적이며 때로는 체념적이라는 것이다. 사회와 사회 언어의 구조적 타락과 배신에 대해 개인의 진실에 입각한 말은 속수무책일 수 있기 때문이다. 즉 「다시 태어나는 말」이 제 목소리를 내기도 전에 이미 오염된 기존의 타락한 말의 분위기에 감염되고 휩쓸릴 우려가 있다는 것이다. 또한 사회적 현상으로서의 말의 타락과 배신에 대한 구제방식이 용서와 화해라는 개인적 덕성으로 충분히 가능하겠느냐는 의문점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남도사람』을 통해 보여준 이청준의 소리와 말에 대한 의미천착은 원한→한→자연→초월로 이어지는 현실구조, 생명구조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가져왔으며 말에 대한 진지한 접근을 보여주었다. 또한 남도소리를 통해 인생의 참의미를 추구하였다는 점만으로 높이 평가되어야 할 것이다. 남도공간이 가지는 독특한 정체성을 소리와 연결하여 한국인의 정서와 인생의 의미를 깊이 있게 천착하였다.
Ⅲ. 나오는 말
이청준의 연작 소설 『남도사람』의 공간은 주제구현의 한 장치로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소설의 배경으로서의 공간이 그리 적극적이고 본질적인 역할을 하지 못하는 점에 비추어 볼 때 『남도사람』의 공간은 독특한 정체성과 의미를 지니고 있다. 일반적으로 소설에서의 공간을 고정된 것, 이야기의 도입이나 전개를 위해 필요한 기본 형식 정도로 이해해 왔다. 공간은 다른 요소에 비해 유형화되기 어렵다는 성격 때문에 그것들을 구조화하는 과정을 통해 보편적인 법칙을 찾아내는 일이 어려운 과제가 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청준의 연작 소설 『남도사람』은 공간적 정체성 속에서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주제(한의 의미)나 특유의 정서가 형상화되어 있는 작품이다. 따라서 동일한 인물이나 사건이 중첩되는 양상을 보이고 있으며 심도 깊은 하나의 주제를 향한 공간의 탐색이 두드러지고 있다.
본 연구는『남도사람』의 공간을 인생의 의미 공간인 즉 만남과 떠남, 인생의 성숙 공간인 맺힘과 풀림, 그리고 예술적 승화인 소리의 완성 공간으로 나누어 보았다. 남도의 주막은 나그네의 공간으로 여기서는 만남과 떠남을 반복한다. 이 순간적인 만남, 만남과 떠남이 바로 인간 삶의 본질이라고 말하고 있는 공간이 주막이다. 또한 포구는 삶을 유지하기 위해 고기잡이로 나서는 일 외에는 떠날 수 없는 곳, 반드시 돌아와야만 하는 곳, 그렇다고 풍요롭지도 못한 곳으로서 애절한 가락이 저절로 생길 수밖에 없는 공간이다. 주막과 포구로 대표되는 만남과 떠남의 공간은 작품 전반에 깔려 있는 한의 정조가 응결되어 드러나는 곳으로서, 작품의 서사에 결정적 역할을 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공간은 한이 풀어지는 곳이 아니라 잠시 머무는 곳으로 형상화되어 화해의 가능성만을 내포하게 된다.
반면 맺힘과 풀림으로 대표되는 길은 한이 맺히고 풀어지는 장소로서 남도소리의 전파경로인 ‘동에서 서로’라는 경로를 가지며, 한을 넘어서는 더 깊은 한의 경지에의 전망을 가능케 하는 공간이다. 마음에 맺힌 한을 소리로 풀고 힘겨운 인생을 살아가는 곳, 만남과 떠남이 부질없어도 끊임없이 인생과 소통하고 걸어가야 하는 곳, 뼛속깊이 사무친 한을 예술혼으로 승화시키려는 노력의 여정이 바로 남도의 길이다. 삶의 무게를 지고 걸어가면서 인생과 우주의 섭리를 배우는 공간인 것이다.
예술적 승화인 소리의 완성 공간으로서 선학동은 『남도사람』의 주제를 완성하고 형상화하기 위한 공간이다. 한이 그리움으로, 그리움이 소리의 빛으로, 한이 자연을 통해 승화하는 가장 아름답고 애절한 순간이 바로 ‘비상학’이 날아오르는 순간인데 비상학이 날아오르는 선학동은 바로 존재론적 전환의 공간이다. 선학동은 누이동생, 나아가 이청준이 생각하는, 인간의 삶의 도달점이자 도달공간이다.
『남도사람』의 공간이 추구하는 이상은 용서와 화해다. 그러나 아직 사내는 그 용서와 화해라는 굴레 속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던 차에 일지암에 이르러 초의 선사의 차마심의 법도 속에서 그것을 깨닫게 된다. 사내가 깨달은 법도란 다름 아닌 차를 마시는 일은 곧 기다림이요 그 기다림은 용서의 마음이라는 초의선사의 마음이었다. 그러나 그 용서는 특별한 공간과 심오한 깨달음을 요구하지 않는다. 그래서 누이는 용서와 화해의 굴레마저 벗어던지고 비상학이 되어 날아 가버린 것이다. 결국 사내는 차마심의 평범한 법도 속에서 삶의 진정한 법칙을 깨닫고 유선여관에서 한 여자를 품에 안음으로써 그 기나긴 여정을 마친다. 삶의 진정한 의미를 깨닫는 공간이 바로 일상의 평범한 사람들이 쉬기 위해 드나드는 여관이라는 점에서 더욱 『남도사람』의 공간이 주는 의미는 깊다. 일상, 그 평범한 공간에서 삶을 살아가는 것, 그 삶 속에서 용서하고 화해하는 것이 진정한 깨달음이라는 것을 남도의 공간을 통해『남도사람』은 보여주고 있다.
참고문헌
*기본 자료*
이청준 문학전집, 『서편제』, 열림원, 1998.
*도서류*
김병욱ㆍ최상규, 『현대 소설의 이론』, 예림기획, 1997.
김병익, 『이청준론』, 삼인행, 1991.
김윤식, 『한국현대소설비판』, 일지사, 1981.
김치수, 『박경리와 이청준』, 민음사, 1982.
김현, 『문학과 유토피아』, 문학과 지성사, 1980.
삼인행작가연구, 『이청준론』, 삼인행, 1991.
송명희, 『현대소설의 이론과 분석』, 푸른사상사, 2006.
오세영, 『한국낭만주의 시 연구』, 일지사, 1986.
이상섭, 『언어와 상상』, 문학과지성사, 1984.
이상우, 『현대소설의 원형적 연구』, 집문당, 1985.
이태동, 『이청준론』, 삼인행, 1991.
전영태, 『한국현대작가연구』, 문학사상사, 1991.
천이두, 『한국문학과 한』, 이우출판사, 1985.
가스통 바슐라르, 곽광수 역, 『공간의 시학』, 동문선, 2003.
미르치아 엘리아드, 이동하 역, 『성과 속: 종교의 본질』, 학민사, 1983.
미하일 바흐친, 전승희ㆍ서경희ㆍ박유미 역, 『장편소설과 민중언어』, 창작과 비평사, 1998.
*논문류*
권영택, 「이청준 소설의 중층구조」, 『외국문학』 가을호, 1986.
김동환, 「이청준 소설의 공간적 정체성-<남도사람> 연작을 중심으로」, 『한성어문학』 제 17호, 한성대학교 국어국문학과, 1998,
김정아, 「이청준 <남도사람> 연작의 크로노토프 분석」, 충남대대학원 석사학위논문, 2001.
김종건, 「소설의 공간구조가 지닌 의미」, 『대구어문논총』 제 13호, 대구어문학회, 1995.
고현제, 「이청준 소설연구-고향의 상징적 의미를 중심으로」, 경희대교육대학원 석사학위 논문, 2001.
김소륜, 「이청준 소설의 환상성 연구-모성 추구 양상을 중심으로」, 이화여대대학원 석사 학위논문, 2006.
김순진, 「여성의 몸과 몸의 공간」, 『중국연구』 25호, 한국외국어대학교 중국연구소, 2000.
김인경, 「이청준 소설의 공간연구-인물의식과의 상관성을 중심으로」, 한성대대학원 석사 학위논문, 2004.
김정아, 「이청준 남도사람 연작의 크로노토프 분석」, 충남대대학원 석사학위논문, 2001.
-----, 「이청준 ≪이어도≫에 나타난 일탈의 크로노토프」, 충남대교육대학원, 석사학위
논문, 2004.
김종건, 「소설의 공간구조가 지닌 의미」, 『대구어문론총』 13호, 대구어문학회, 1995.
김지원, 「원형의 샘」, 『현대문학』 6월호, 1979.
마희정, 「이청준 연작소설 ≪남도사람≫에 대한 고찰-‘시김새’로부터 ‘그늘’에 이르는 여 정」, 『인문학지』 제20집, 충북대학교 인문학연구소, 2000.
-----, 「이청준 소설에 나타난 고향탐색의 과정」, 『한국현대문학회 학술발표회자료집』 동계호, 한국현대문학회, 2004.
박강림, 「이청준 소설의 고향의식 연구」, 관동대교육대학원 석사학위논문, 2004.
박경삼, 「이청준 소설의 공간 구조 연구: 연작 ≪남도사람≫을 중심으로」, 한양대
교육대학원 석사학위논문, 2001,
박소유, 「서정주 시의 공간의식 연구」, 대구가톨릭대대학원 박사학위논문, 2006.
서정철, 「바흐친과 크로노토프-라블레의 소설연구를 중심으로-」, 『외국문학연구』 제 8 호, 한국외국어대학교 외국문학연구소, 2001.
성민엽, 「겹의 삶, 겹의 문학」, 『문학과 사회』 여름호, 1990.
신계철, 「이청준 소설의 공간 연구」, 이화여대교육대학원 석사학위논문, 1998.
은정해, 「이청준 소설에 나타난 한의 양상연구」, 동국대문화예술대학원 석사학위논문, 1996.
이상숙, 「이청준 소설 연구」, 중앙대대학원 석사학위논문, 1998.
이소진, 「이청준 소설 연구」, 동덕여대대학원 석사학위논문, 1995.
이윤경, 「공간 Motiv를 통해 살펴본 여주인공의 자의식 연구」, 『연구논집』 19호,
이화여대대학원, 1990.
이지영, 「이청준 소설의 낙원 지향성 연구」, 숭실대대학원 석사학위논문, 1998.
장윤호, 「소설에 나타나는 고향탐색 모티프 양상 연구-김승옥, 이청준, 한승원 소설을 중 심으로」, 동덕여대대학원 박사학위논문, 2005.
조남현, 「문제적 인물에 대한 끊임없는 탐구」, 『문학사상』 8월호, 1984.
조두영ㆍ 최동배, 「이청준 연작소설 ≪남도사람≫에 대한 정신역동적 고찰」, 『신경정신 의학』 제35권 제6호, 대한신경정신의학회, 1996.
주지영, 「이청준 소설에 나타난 고향의 변모양상과 주체의 동일화」, 서울대대학원 석사학 위논문, 2004.
천이두, 「계승과 반역」, 『문학과 지성』 6월호, 1971.
최종배, 「이청준 연작소설 <남도사람>에 대한 정신역동적 고찰」, 서울대의학대학원 석사 학위논문, 1996.
최혜영, 「이청준 소설에 나타난 낙원의식 연구」, 경기교육대대학원 석사학위논문, 2002.
한순미, 「이청준 소설의 시간 인식과 예술관」, 『국어국문학』 139호, 국어국문학회, 20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