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국계몽기의 서사문학
Ⅰ. 들어가는 말
1876년의 개항에서 1910년의 국치까지는 조선의 근대화와 외세의 침략적 접근이 동시에 진행된다는 점에서 변화와 혼란의 소용돌이가 역사상 어느 시기보다 거칠었다고 할 수 있다. 이 중 1905년 을사늑약을 전후로 해서 1910년 국치까지를 구별하여 애국계몽기라고 한다.
이 시기 전개된 국권회복을 위한 노력은 크게 문화계몽운동과 의병운동으로 분류될 수 있다. 문화계몽운동은 개화 운동의 연장으로서, 일본을 이기기 위해서는 조선의 실력을 우선적으로 기를 수밖에 없다는 방향이었고, 의병운동은 위정척사와 농민 운동의 연장선에서 반외세와 국권회복을 최우선 과제로 하였다. 그러나 문화계몽운동과 의병운동은 국권회복이라는 공통의 목적에 의해 연결되기도 했으나 그 방법의 다름으로 인해 단절되기도 하였다. 그 차이는 일본에 저항하는 방법 뿐 아니라 생활기반과 교육제도 등에서도 뚜렷하게 나타났다. 문화계몽운동이 도시와 지식인, 양반계층, 근대교육을 기반으로 한다면 의병운동은 농민, 보수적인 유생, 전통 교육을 기반으로 한다고 할 수 있다.
애국계몽기 <개량>의 논의와 함께 부상한 소설 역시 계몽을 위한 방법 중의 하나였다. 따라서 소설에 대한 미학적 관심보다 사회적 기능을 더 중시하였다. 그러나 계몽 단체 간에도 성격 차이가 있듯이 소설의 사회적 기능에도 차이가 있었다. 즉 역사전기소설과 신소설뿐만 아니라 신소설 작가인 이인직과 이해조간에도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
신소설은 한말 개화기 당시에는 ‘새로운’이라는 관형사로 씌었는데 김태준과 임화를 거치면서 문학사적 용어로 사용되었다. 임화는 신소설의 특징으로 언문일치, 소재와 제재의 현대성, 인물과 사건의 실재성을 들고 있다. 그 후 많은 연구자들은 신소설의 특징이 선악의 주제가 신구로 바뀐 점, 주인공이 영웅에서 평범한 사람으로 변한 점, 한글의 사용, 일상의 공간, 시간의 역순 등이라고 하였다.
본론에서는 애국계몽기 시기의 문학과 그 배경을 알아보고 본격적으로 이인직과 이해조의 신소설을 통찰해 볼 것이다. 그리고 애국계몽운동의 연속선상에 있는 신소설과 대응되는 의병운동의 연속선상에 있는 역사전기소설에 대해서도 잠시 알아보고 이 둘의 관계도 살펴보고자 한다.
Ⅱ. 본론
1. 애국계몽기(개화기) 단형서사문학
한국 근현대사에서 이른바 개화기는 다른 시기와 구별되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그것은 무엇보다 전래적 통치양태가 새로운 시대의 요구에 의해 변전되는 과정을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다. 정치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또는 문화적으로나 이 시기의 이전과 이 시기를 겪고 난 이후의 양상이 중요한 여러 차이를 드러내고 있으므로 이 시기를 간과할 경우 이들은 자칫 과거와 단절된 별개의 사실처럼 오해될 가능성조차 있다. 실제로 이 시기를 간과함으로 인해 문학의 경우 이전과 이후를 단절된 것으로 파악하는 일이 있었다.
이른바 1906년 <혈의 누>를 기점으로 신소설이라고 불리는 장형의 완결된 서사양식은 많은 비슷한 점에도 불구하고 구소설과 현저히 구별되는 상이점을 가지고 있으며, 그것은 일순간에 완성된 형태가 아닐 것이라는 점에서 분명히 해명되어야 할 예비단계를 가졌을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이 가교 역할을 하는 형태의 문학이 단형 서사문학이다. 단형서사문학은 형식적으로 다양한 시도를 보였다. 단형서사문학은 작자의 의도를 직설적으로 표현하는 경우와 전환하여 표현하는 경우의 둘로 대별되며 그들은 다음과 같은 형식으로 나뉠 수 있었다.
우선, 논설적 형식으로 표현되는 경우는 의도를 직접 드러내는 경우와 그렇지 않은 경우로 나뉠 수 있는데, 후자의 경우가 작자 개입 없이 의도를 전달해야 하므로 형식적으로 다양한 시도를 보이고 있었다. 이들은 이미 조선인에 의해 긍정되고 있던 전래적 가치관이나 이야기를 원용함으로써 의도표현을 용이하게 하였다. 대화체는 표현의 생동감으로 인해 이 시기에 자주 사용되었고 이는 대화의 구어화에 힘입어 문체 전체의 구어화에도 기여하였다.
또한 몽유록은 작자의 의도가 정당성과 설득력을 확보하는 방법으로 자주 사용된 바, 이전 시기 몽유록의 경우와 달리 이 시기에는 서사적인 짜임새는 긴밀하지 않은 채 현실적인 상황에서 교훈이 될 것을 경험하는 몽유자를 설정하였다.
한편 의인문학 형식도 이전 시기의 것들이 이룬 성과를 원용하였으며 서술자를 현실적 인물로 성정하였다. 사물을 의인한 가전체의 경우는 나타나지 않으며 동물의인이나 심성의인이 나타났다. 동물의인의 경우는 동물의 행위나 성격을 통해 인간의 그것을 직접 연상하도록 하였다.
개화기 단형서사문학의 내용적 특징은 우선 현실 문제에 대응하는 태도의 표현이라는 점이 지적될 수 있다. 이 시기에 독자의 흥미를 끄는 것만을 목적으로 하는 글은 발견되지 않는다. 모두 작자의 의도를 대신 표현하되 그것은 현실에 대한 경각심을 표현하거나 사회적 모순을 형상화하는 것이었으며, 작자의 전통지향적 의지나 개화지향적 가치관을 드러내는 것이기도 하였다.
개화기 단형서사문학은 한 시기를 담당한 문학활동으로서 전래적인 가치관의 혼란과 시대적 격동에 대한 현실반영과 방향제시의 기능을 수행하였다. 이전 시기 한문단편이 이룬 다양한 인식방법의 문학적 성과를 압축된 형식으로 계승하여 다양한 기법을 시도함으로써 다음 시기의 단편소설이 형성되는 데 기여하였다. 또한 이들은 서사의 중심 갈등이 제시된 뒤에 후일담을 서술해야 한다는 부담을 벗을 수 있었으므로 단편소설의 사거 제시 태도를 발전시킬 수 있었다.
2. 애국계몽기의 서사문학
기존의 문학사는 대체적으로 1894년 갑오경장 이후부터 1910년에 이르는 시기의 문학을 개화기문학으로 지칭한다. 국치 이후 신소설의 경우 문명개화, 국권회복의 이념적 성격이 제거되고 오히려 통속적이고 친일적인 성격이 강화되어 나타나는 등 그 성격이 변화하기에 1910년대 문학은 개화기 문학에서 제외할 필요가 있다.
갑오경장에 의해 촉발된 근대적 계몽운동, 문화운동이 구체적으로 문학작품에 반영되는 것은 1905년 이후에 이르러서니, 특히 서사문학의 경우 우리들에게 잘 알려진 작품들은 1905~10년 사이에 대부분 집중된다. 이렇게 놓고 볼 때 이른바 개화기의 서사문학이란 기존의 문학사 서술에서 규정된 시기와 달리 거의 모두가 5년이라는 축소된 기간에 이루어진 것임을 알 수 있다.
한말의 개화운동은 갑신정변에서 독립협회로 이어지나 독립협회의 해산으로 상당수 개화파 인물들은 친일파로 변신하며 개화파 운동은 그 순수한 변혁의 의미를 잃게 된다. 그러나 러일전쟁 후 1905년 이 땅이 반식민지 상태로 전락하면서 그 이전에 개화파가 전개했던 정치적 운동의 사회적 역량이 국권회복 혹은 애국계몽의 운동으로 집결되어 전국적으로 새로운 고양기를 맞이하게 된다. 즉 침략의 실체로서 일본 제국주의에 대한 인식이 심화되고 국권회복을 위한 민족적인 투쟁의지가 강력하게 일어나게 되는 것이다.
요컨대 이 시기의 우리 민족의 절실한 과제는 근대민족국가의 건설이었고, 이를 수행키 위한 반봉건, 반외세 운동이 전국적으로 대중적인 차원에서 활발하게 전개되는 것이니, 이 시기의 문학은 바로 이러한 시대적 문제들은 본격적으로 형상화하기 시작함으로써 우리 근대 민족문학운동의 단초를 마련하고 있다. 따라서 당대의 문학을 민족적 모순의 문제가 사상되고 단순한 근대주의를 지향하는 개화기 문학이라고 부르는 것보다 반봉건과 반외세의 적극적이고 주체적인 의미를 담고 있는 애국계몽기의 문학이라고 부름이 민족문학사의 기술이라는 관점에서 합당한 것이다.
이 시기를 대표할 수 있는 서사문학은 신소설과 역사전기 소설이다. 신소설은 주로 반봉건. 문명개화의 과제, 역사전기소설은 반외세. 애국의 과제에 초점을 맞추어 시대적 과제를 해결해나가고자 한다. 가령 이해조는 당시 지식층들간에 폭넓게 확산되던 개화자강론을 소설 안으로 수용하여 대중을 계몽하고자 했다. 물론 이인직의 작품들은 친일개화론에 의존하고 있어 문제점이 노정되나 이인직 문학에서 드러나는 격렬한 반봉건의 의미는 주목할 필요가 있다. 한편 역사전기소설은 소설적 형상화의 미흡함 내지 소설 전반에 걸친 추상성 등이 한계이기는 하나 이 역시 작품에서 제시된 적극적인 반외세의 의미를 애국계몽기라는 시대적 맥락에서 음미해볼 필요가 있다.
3. 반봉건 문명개화의 신소설 -이인직의 작품세계
애국계몽기의 대표적 서사문학 중의 하나가 신소설이다. 신소설이란 말은 1906년 만세보에 연재되었던 이인직(1862~1916)의 혈의 누(1907)가 단행본으로 발간될 때 이 명칭을 붙인 데서 유래한다. 신소설은 우리 근대소설 발전에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지만 이전의 소설을 결정적으로 극복하지 못한 과도기적 형태의 소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신소설을 주목해야 하는 이유는 그것이 애국계몽기의 반봉건 문명개화라는 시대적 과제를 새롭게 드러냈다는 점 때문이다. 신소설의 대표적 작가는 이인직과 이해조다. 먼저 이인직을 살펴보자.
이인직의 행적이 드러난 것은 1900년 관비유학생으로 동경정치학교에 입학한 시기로 그의 나이 38세에 이르렀을 때이다. 그는 러일전쟁 때 일본군 사령부에 통역관으로 종군하던 중 1906년 귀국하는데, 이 시기 즉 애국계몽운동의 고양기에 언론기관(<만세보>)에 관계하여 이를 매개로 신소설을 창작하여 우리 문학사에 그 모습을 드러냈다. 사실 그가 창작한 신소설은 그 후 대부분의 신소설들이 크게 의지하는 기본틀을 이뤄놓았다. 그는 한미한 가문 출신으로 일본에 관계하여 입신출세하고자 한 자로서 봉건조선의 배타적인 양반중심의 정치. 사회에 대하여 깊은 원한을 품은 혁신추구세력의 일원이었음에 틀림없다. 이인직의 이러한 신분적 한계는 반봉건의 문제에서 적극적인 위치에 놓이게끔 한다. 가령 순국문으로 새로운 소설을 창작하고자 했고 그의 작품에서 보이는 생동감 있는 국문은 봉건지배계급의 문화에 반발하는 평민미학의 발로라 할 수 있다. 이는 양반으로 상징되는 봉건체제에 대한 격렬한 비판이며 이를 대체할 세력으로 새로운 근대적 지식인으로서의 역사적 역할을 기대한다는 점이다. 그러나 그가 근대적 지식인으로서의 역사적 역할을 수행해가는 이면에 일본 제국주의가 놓여 있다는 사실은 그의 행적 및 문학에서 매판성이라는 치명적 한계를 낳는다.
이인직의 소설에서 개화사상이 표층적 주제라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이다. 문제는 그 이면의 주제이다. 조동일의 경우 이면적 주제는 ‘전통적 가치관’ 내지 ‘일본에게 나라를 내어주기 위한 매국적 책동화’라고 보았고, 김윤식의 경우 구 정치인에 대한 증오와 개화사상이 표층주제라면 이면적 주제는 우리 민족의 전통정서인 원통함, 사무침이라고 보고 있다. 그의 대표적인 작품을 간단하게 살펴보면서 이인직 소설의 주제를 살펴보기로 하자.
『혈의 누』는 청일전쟁으로 야기된 당대 조선 민중들의 수난의 삶을 그리는 데서 시작된다. 우리민족과 일본군과의 관계 양상은 일본군으로부터 보호받는 관계가 아니라 일본군과 그 헌병들이 이 땅을 짓밟고 다닐 때 우리 민족은 이들의 발아래 시체가 되어 있거나 말 못하는 가축처럼 이들의 호령에 따라 움직여야만 하는 비참한 상황의 현실로 묘사되고 있다. 이 같은 상황묘사는 침략자 일본에 대한 우리나라와 민족이 처해있는 현실이 위기의 상황임을 대변하는 것으로 읽을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참상과 민중의 고통을 봉건지배체제의 무능함에서 발견하고 지배계급에 대한 통렬한 증오를 드러낸다.
봉건체제의 위기를 극복하고 국가를 부강케 하기 위해 옥련 및 구완서, 김관일 등은 미국으로 유학 가 문명개화를 받아들여 사회. 정치 개혁에 힘쓸 것을 다짐하기에 이른다. 작가는 정치적으로 부패한 기존의 봉건지배층을 대체할 수 있는 새로운 세력으로서 개화한 신진 지식인의 역사적 역할을 기대하는 셈이다. 구시대의 봉건체제에 대한 증오. 반발심은 이인직 소설 도처에 나타난다.
『은세계』(1908)는 반봉건이라는 점에서 이인직 소설의 정점에 놓이는 소설이다. 주인공 최병도는 19세기 말 성장한 평민부농층으로서 봉건지배층의 수탈에 항거하여 희생되는 인물로, 이러한 이야기를 통해 붕괴할 수밖에 없는 봉건조선의 모습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최병도라는 인물이 문제적 인물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은 그가 타락한 봉건 관리들의 수탈대상인 단순한 부농의 의미를 넘어서 쇠퇴한 나라를 바로 세우고 근대적 강대국을 만들겠다는 원대한 포부를 가졌기 때문이다. 최병도가 꿈꾸는 조선의 미래에 대한 열망과 그가 재물을 빼앗겨도 이루어 질 수 없고 그가 죽어도 이루어질 수 없는 일이었다. 작가가 최병도의 죽음을 선택한 것은 1908년 당시 이인직이 바라본 조선의 역사적 반영이며 민족의 현실에 대한 비극적 세계 인식의 표현이라 할 수 있다. 즉 그것은 최병도와 같은 새로운 시민계급에 의한 자주적 근대화를 가로 막아온 봉건 지배층이 기어이 나라를 지키지 못하고 근대 일본에게 빼앗기게 된 역사적 사실을 반영하는 동시에 그러한 비극적 현실에 대한 민족적 울분을 나타낸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혈의 누』에서 작가는 청일전쟁을 배경으로 중국인을 비하하고 일본인을 미화함으로써 반청친일을 고취하고 있고, 또한 미국으로 유학 간 구완서가 일본. 만주. 조선을 합하여 연방국가를 만들어 나라를 부강케 해야 한다는 발언 등은 백인제패의 제국주위적 판도에서 일본이 정점이 되어 동양의 평화를 지켜야 한다는 일본의 식민지이론에 어처구니없이 동조하는 꼴이 된다. 한편 『은세계』에서도 미국으로 유학 간 옥남이 1907년 일제에 의한 강제적인 고종의 양위를 조선의 근대적 개혁과 국가부강의 계기로 생각하여 귀국을 서두르니 이인직 문학의 매판성은 여기서도 입증된다.
요약하면 이인직 소설은 신흥 평민인텔리 세력을 주체로 하는 반봉건. 문명개화의 과제를 과감히 제시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봉건제적 모순의 지양을 통한 근대주의의 결정적인 한계점을 노출시키고 있다. 즉 봉건체제를 타파하기 위한 부르조아 개혁을 수행해나가는 데 제국주의와 결합해 그 협조를 받을 수 있다는 개화파의 사고방식은 결국 제국주의 세력에 복속될 수밖에 없음을 보여주고 있다.
4. 개화자강의 신소설 -이해조의 작품세계
이해조(1869~1927)는 이인직과 마찬가지로 애국계몽기를 즈음해 출현, 활동한 새로운 유형의 근대적 지식인이다. 그러나 이인직과 신분적 배경이 달라 그 사회역사적 성격은 다소 상이하게 나타난다. 이해조는 명문출신으로 신분적. 경제적 안정을 누린 듯하다. 이해조의 경우 이인직과 같은 매판적 성격이 부재할 뿐 아니라, 문명개화의 힘을 얻은 개화된 양반계층들이 점진적이고 개량적인 방식으로 국가와 사회질서를 개선시켜나감으로써 시대적 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고 생각한 점에서 당시의 시대적 과제를 충실히 수행해나간 계몽적 지식인이라고 할 수 있다.
『빈상설』(1908)은 『귀의 성』 『치악산』(1908) 등과 유사하게 처첩의 갈등을 다룬 고서설의 유형을 답습하고 있기는 하나 가부장적인 일부다처제의 해악과 봉건양반층의 부패성을 폭로하며 결국은 문명개화 세력의 승리를 형상화한다. 『홍도화』(상 1908, 하 1910)는 시집간 지 몇 달 만에 청상과부가 된 태희가 개화양반 자제인 총각 청년과 재혼하는 이야기로 여권신장. 혼인제도 등의 풍속개량을 통한 계몽사상을 이 시대의 어느 소설보다 구체적으로 드러낸다. 『구마검』(1908) 역시 미신타파를 주제로 문명개화의 시대풍조를 드러내고 있다. 이 작품에서는 시정세태의 뛰어난 묘사(굿 장면 묘사 등)를 통해 풍요로운 구체성을 획득하고 있다.
요컨대 애국계몽기 이해조의 작품들은 당대의 문명개화라는 시대적 과제를 일상적인 인간 삶의 관계 안에서 구체적으로 드러내며 더욱이 시정세태의 풍요로운 묘사를 통해 보여주기에 우리 소설사가 사실주의로 나아가는 점에서 일정한 기여를 한다. 특히 『자유종』(1910)은 여성의 자유권을 내세우며 이를 국권회복운동과 결합시키고 있어 애국계몽기 소설에서도 각별한 성격을 지닌다. 토론에 참가한 개명양반 부인들은 국권회복의 방향으로 봉건적인 백성이 근대적인 국민으로 전화해야 함을 주장한다. 그리하여 외부적으로는 중세적 보편주의 곧 화이론적 세계관으로부터 해방되고, 내부적으로는 일체의 봉건적 질곡 예컨대 여성차별. 신분차별. 적서차별. 지역차별로부터 해방된, 그리하여 자유로운 개인의 자발적 결합으로 이루어진 근대적 국민의 출현이 온전하게 실현될 때 국권회복의 문제가 옳게 해결될 수 있다는 부르주아 개혁사상을 드러낸다.
그러나 이해조의 소설은 반봉건 문제가 심각하게 제기되지 않을 뿐 아니라 때로는 향수를 드러내기도 한다. 가령 이해조 소설에서 기생첩이 자주 등장하는데 이들은 양반들의 성적 탐욕의 대상으로 부패한 양반의 탐욕성을 부채질하는 매개인물로 빈번히 나타난다. 따라서 양반계층의 타락은 제도의 모순에서 기인하다기보다 개인적인 성품의 비속함으로 이해한다. 한편 『구마검』의 경우 언뜻 보면 미신타파가 주제인 듯하지만 실제 의도는 반미신운동을 통해 도학적 질서 혹은 양반체제의 안정된 질서에 대한 복귀를 은연중에 드러내기도 한다. 나아가 『자유종』의 경우 적극적으로 부르주아 개혁을 내세우고 있지만 부르주아 개혁의 내용이라는 것이 사실 부국강병이지 내면적 진리인 민족주의나 민주주의에 대한 관심은 본격적이지 못하다. 이는 그의 소설에서 하층민들이 한결같이 부정적으로 그려지는 데서도 잘 보여진다. 또한 『모란병』에서 여필종부에 대한 작가의 의식을 알 수 있듯 이해조 소설은 고소설의 관습을 계승함으로써 남성, 지배층 중심의 체제순응적인 세계관도 물려받았다고 할 수 있다.
이해조 소설은 고소설의 이야기 방식을 계승함으로 문학의 전통을 이어갔으나 시대에 따른 변화도 있었다. 소설의 서두와 종말처리, 생산 분배 방식, 작가 이름의 명기 등은 낯설게 하기의 기법으로 함께 작동했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소설의 구성은 그 당시 사회 구성원의 봉건 의식과 일본에 대한 소극적 저항감과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었다. 결론적으로 이해조 소설은 지배층, 남성 중심이었으며 체제순응적인 고소설의 세계관을 이어받아 일본의 식민 담론에 동화되어 갔다고 할 수 있다. 요컨대 이해조 소설은 반봉건의 문제가 근본적인 사회. 정치구조의 변화와 관련을 맺지 못하고 있어 반동화될 여지가 항시 있었고, 근본적인 개혁에 접근하지 못하다 보니 대체적으로 혼인제도니 미신타파니 하는 등의 풍속개량의 문제에 경도되는 한계를 지니게 된다.
다만 이해조는 30여 편에 이르는 가장 많은 신소설을 남김과 동시에 개인적 경험을 신소설의 형식을 통하여 어느 정도 성공적으로 형상화시킨 신소설 작가로서 중간노선을 택해 논란의 시비를 피하면서 주제의 전달보다는 흥미로운 읽을거리로서 환영받을 수 있는 대중 소설을 정착시키는데 노력하였다는 평가를 받기도 한다. 그는 스스로 교훈성과 흥미성을 소설의 제일의 목적으로 보는 등 나름대로의 소설관을 피력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당시의 사회적 현실을 소설 속에서 절실한 삶의 문제로 부각시키지 못하였고, 신소설의 대중화에 기여한 것은 사실이나 신소설의 성격을 통속 소설로 전락시킨 실질적인 책임을 지고 있다는 부정적인 평가를 받기도 한다.
5. 반외세의 역사전기소설
역사전기소설은 일본 제국주의 침략에 대응하여 민족의 자주독립을 견지함으로써 민족적 역량을 배양하고 민족의식을 고취시키려는 애국계몽운동의 이념에 부응하고 있어 신소설에 비해 투철한 민족의식을 그 특징으로 한다. 역사소설의 출현은 당시의 정치적 상황과 연관이 있다. 독립협회가 해산된 후 정변이 자주 일어나고 시운은 기울어가며, 외국의 간섭은 날로 심각해져갔다. 이 때 뜻있는 인사들이 정치운동에 실패하자, 외적 저항의 어려움을 깨닫고 문화와 교육에 대한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한다. 그 결과 신문학 연구가 활성화되고 잡지 등이 발간되면서 신사상도 소개된다. 이러한 문화적 분위기 속에서 새롭게 성장한 것이 역사소설이라는 것이다.
우선 당시 등장한 역사전기소설 중에는 외세의 침략에 맞서 조국을 수호하거나 재건하는데 기여한 유럽 약소국의 민간영웅들에 대한 번역(번안)전기들이 있다. 장지연의 「애국부인전」(1906), 박은식의 「서사건국지」(1907), 신채호의 「이태리건국삼걸전」(1907)의 작품들은 모두 애국 애족을 선양하면서도 소설의 무대가 외국으로 설정되어 있어 우리 민족이 처한 구체적 현실과 유리된 채 막연한 느낌을 주기도 한다.
따라서 신채호. 박은식 등은 이민족의 침입을 막아내고 조국을 수호한 우리의 민족적 영웅을 소재로 한 전기류를 창작하기에 이른다. 신채호의 「을지문덕전」(1908)은 을지문덕의 ‘강토개척주의’를 칭송해 마지않는다. 그러나 강토개척주의와 같은 자강주의는 바로 우승열패. 약육강식을 내용으로 하는 사회진화론의 원리를 그 근간으로 하고 있어 의도와는 달리 침략전쟁을 고무하는 제국주의의 논리를 소용하는 셈이 된다. 「이순신전」(1908)에서는 이순신이라는 민족적 영웅의 생애를 통해 반외세의 민족주의 사상을 고취시키고 「최도통전」(1909)에서는 북벌계획을 주장한 최영을 기리어 제국주의 시대에 직면한 우리민족에게 자주적이고 진취적인 대응자세를 촉구하고자 했다.
그러나 이러한 영웅적 열정이라는 것은 결국 충군애국적인 북벽주의를 지향할 수밖에 없는 한계를 지니고 있다. 아울러 민족적 영웅의 생애를 통한 민족주의의 고취는 영웅사관의 발현으로 역사는 민중에 의해 창조되는 것이라는 사회발전의 객관적 법칙을 인식하지 못하고 영웅. 재사. 천재 등 지도자 격의 엘리트계층의 계도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라는 역사적 관념론의 오류까지 안고 있는 셈이다. 애국이 끊임없이 강조되지만 구시대의 봉건적 위기와 외세를 극복할 수 있는 근대적 계급의 미성숙으로 인하여 사물의 변혁을 관념적으로 파악하며 따라서 일정한 예술적 형상화에도 도달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러나 역사전기소설은 전통적 서사 양식 가운데 하나인 傳과 군담계 소설에 뿌리를 두고 있는 문학이며, 개화기 역사물과 전기물의 번역에 영향을 받아 형성된 문학 장르이다. 이러한 역사 전기 소설은 근대 문학 장르의 하나로 정착되기 이전에 개화기 신문의 ‘인물기사’라는 단계를 거쳤다. ‘인물기사’는 근대전환기 애국계몽적 민족주의자들에 의해 창안된 서사적 논설의 한 변형이었다.
동서양의 영웅적 인물에 대한 이야기는 기사나 논설 속에서 간단히 거론되던 단계를 거쳐 신문의 ‘인물기사’와 잡지의 ‘인물고’의 단계로 진행된다. ‘인물기사’와 ‘인물고’는 기사나 논설 속에서 간단히 언급되던 영웅의 이야기가 독립된 기사로 자리잡은 것이다. ‘인물기사’를 서사적 논설의 한 변형이라고 할 때, 같은 맥락 속에서 역사전기 소설은 논설적 서사의 한 유형이라고 볼 수 있다. 역사전기소설이 신소설로 양식 표기를 하는 등 외형상 소설을 표방하고 있었지만, 작가의 마음속에는 소설을 짓는 일보다 애국계몽적 의식을 드러내려는 의도가 더 강하게 살아 있었다. 즉 역사전기소설의 작가 의식 속에서는 아직도 서사보다 논설이 중요하게 자리하고 있었다.
역사전기소설은 1910년 대 신채호의 꿈하늘 등의 작품을 거쳐, 1920년대 이후 역사소설로 이어진다. 역사전기소설은 서사보다 역사 자체가 중요한 소설이라면, 역사 소설은 역사 자체보다 서사를 더 중요시 하는 소설이다. 역사전기소설의 작가가 과거의 역사를 중요시 했던 것은, 그 역사를 통해 현실을 이야기하기를 원했기 때문이다. 이들 작가의 현실에 대한 관심은 곧 역사전기소설이 지니는 논설적 성격의 강화로 나타났다. 한국 근대 소설 발전사의 중요한 한 축은 논설 중심 소설에서 서사 중심 소설로 옮겨 가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역사전기소설에서 역사소설로의 전이 역시 이러한 과정을 밝고 있다.
애국계몽기의 역사전기물 중 서사적 형상화라는 점에서 거리가 멀어졌고 순전한 번역물이기는 하지만 특기할 만한 작품이 있다. 현채 번역의 「월남망국사」(1906)와 안국선 번역의 「비율빈전사」(1907)가 그것인데, 월남과 필리핀의 민족운동에 관심을 표시한 것은 곧 일제를 비롯한 모든 제국주의 세력에 저항하는 국권회복운동의 한 표현으로 이들은 애국계몽기 문학사에서 나름대로의 의미를 가진다.
Ⅲ. 결론
갑오개혁 이후에 밀려든 개화의 물결은 국문학의 외형적 형식뿐만 아니라 내면적 특질까지도 서서히 변모시켜 이 국문학은 과거의 것과는 그 형식과 내용이 무척 달라졌다. 그러나 과거의 문학과 완전히 절연된 것이 아니라 거기에 바탕을 주고 서구 문학의 영향을 흡수한 까닭에 기존의 질서를 거부하고 새롭게 합리적인 것을 찾으려 하면서도 조선조의 봉건적 성격이 남아 있는 이중적 모습을 보였다. 이러 까닭에 이 시기의 문학은 중세적인 요소와 근대적인 요소가 공존하는 ‘중세에서 근대로의 이행기 문학’, ‘과도기적 문학’, ‘발전적 계승기의 문학’이라 할 수 있다.
이 시기의 문학은 외세의 도전에 맞서고, 서양 문화와 문학의 자극에 대응하면서 근대 문학을 이룩하기 위해 애쓴 까닭에 두 가지 경향을 보였다. 하나는 개화를 실현하는 것이 더욱 중요한 과제라고 인식하여 문학을 개화, 문화계몽운동의 선전 도구로 여기는 태도였는데, 신소설 등에서 이런 모습이 두드러졌다. 다른 하나는 당면한 현실을 우리민족의 위기라 인식하고 민족정신의 각성을 통한 애국계몽운동 중 의병운동의 일환으로 문학을 인식하는 태도였는데, 역사전기소설에서 두드러졌다.
신소설에서 이인직은 신소설의 틀을 형성했다는 평가와 원각사에서 공연한 신극 운동의 선구자라는 업적이 있기는 하지만 적대적 반봉건사상을 드러내며 개화 만능론에 빠져 결국 친일 의식과 반민족 의식의 노출로 일제의 식민지론에 동조하는 결과를 가져왔으며, 이해조는
가장 많은 신소설을 남긴 작가로 신채호로 대표되는 항일 문학과 이인직의 친일 문학이 첨예하게 대립되는 가운데 중간노선을 택해 논란과 시비를 피하면서 직접적으로 반봉건 문제를 드러내지 않은 채 자유연애, 미신타파 같은 미시적인 문제만 노출시키고 만다. 반외세 역사전기소설은 애국계몽 중 의병운동의 일환으로 민족의식을 고취하고 애국. 애족하여 독립을 쟁취할 수 있도록 정신과 혼을 불러일으키는데 역점을 두어 썼다. 교훈적 의도가 지나쳐 문학으로서의 성과는 높지 않으나 그것은 이들의 관심 밖이었고, 일제를 포함한 모든 제국주의에 저항하는 국권회복운동의 한 표현으로 나름대로 의미를 가진다고 할 것이다.
<참고문헌>
1. 한기형, 『근현대문학의 사적 전개와 미적 양상(Ⅰ)』, -반교어문학회 편-, 보고사, 2000.
2. 김윤규, 『개화기 단형서사문학의 이해』, 국학자료원, 2000.
3. 강만길, 『한국근대사』. 창작과 비평사, 1984.
4. 이기백, 『한국사 신론』, 일조각, 1997개정증보판.
<참고논문>
1. 김영민, 「역사. 전기 소설 연구」, 애산학보.Vol.19, 1996.
2. 최종순, 「이인직 소설의 세계인식과 그 비극의 의미
-<혈의 누>, <은세계>를 중심으로-」, 목원국어국문학, Vol.6, 2000.
3. 정영선, 「애국계몽기 이해조 소설의 담론 분석」, 부산대학교 대학원 석사논문, 20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