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중의 발견과 민족문학의 새로운 도약

by 방정민

민중의 발견과 민족문학의 새로운 도약

1. 모더니즘에 대하여


모더니즘이라는 용어는 근대문학 연구 및 문학비평에서 일반적으로 널리 사용되는 대표적인 대념 주의 하나이지만, 아직까지 그 내포와 외연은 매우 모호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 근현대문학을 이해하는데 모더니즘은 필수적인 개념 중의 하나이다. 1920년대 이후 30년대 한국모더니즘 문학의 성격을 논의하는 데에 있어서 모더니즘 개념에 관련된 대략 세 가지의 문제가 제기된다.

첫째, 모더니즘이 자명한 미학적 개념이 아니라는 점이다. 극히 최근에 이르기까지 모더니즘은 영미 비평계 바깥에서는 널리 사용되지 않았으며, 심지어 오늘날까지도 독일이나 프랑스 비평가와 학자들의 저술에서는 이 개념과 마주할 기회가 드물다는 점이다. 모더니즘은 문학 텍스트로부터 직접 파생하는 개념이 아니라, 그 개념 자체가 특정 유형의 텍스트를 엄밀한 비평적 탐구로 빚어낸 구성물이라 할 수 있다. 모더니즘 개념의 실제 적용에 있어서 그 개념의 내포에 대한 정립을 통한 비판적 작업의 필요성이 발생한다.


둘째, 모더니즘 내부의 차별되는 개념을 둘러싼 두 경향에 대한 해석의 문제이다. 이것은 핵심적으로 모더니즘과 아방가르드의 관계에 대한 문제라고 할 수 있다. 이와 같은 구별 방식으로 모더니즘이라는 상위 범주 하에 영미 모더니즘과 대륙의 모더니즘을 설정하는 것으로 환치되기도 한다. 즉 모더니즘과 아방가르드 운동을 구조적인 파괴나 부정의 관점에서 차별화하려는 시도나 사회에 대한 참여의 촉구 등의 기준을 통해 구별하려는 방식은 실제 운동과 작품에서 설득력있는 근거를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구분은 모더니즘과 아방가르드 개념을 역사적 개념으로 설정하면서 결국 모더니즘 운동으로부터 아방가르드적 성격을 배제하고 그것을 정전화된 작품들의 차원에 고정시키는 결과를 낳게 된다. 실제로 한국근대문학에 있어서도 실제 작품에 적용될 경우 이 구분의 규정력은 실효성을 거두기 힘들다고 본다.

셋째, 1930년대에 사용되었던 모더니즘 개념과 해석적으로 구성된 모더니즘 개념 사이의 낙차를 고려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당시 사용되고 있던 모더니즘 개념은 20세기 초반의 반전통주의 문학의 흐름을 지칭하는 포괄적 개념으로 사용되었다고 보기 어렵다. 과거의 모더니즘 개념과 현재 재구성된 모더니즘 개념을 동일시하는 경향이 많다. 즉 1930년대 모더니즘 문학에 대한 기존 문학사의 서술은 1970년대 이후의 문학사적 인식과는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다. 우선 백철의 『조선신문학사조사』에서는 모던이즘과 주지주의를 구분하고, 전자를 현대적인 감각시 운동으로, 후자를 풍자, 지성, 그리고 심리주의적 경향으로 규정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한편 조연현의 『한국현대문학사』의 경우에는 주지주의라는 상위 개념 하에 시에 있어서의 모더니즘과 소설에 있어서의 신심리주의 혹은 초현실주의 등의 하위개념을 설정하고 있다. 이처럼 재구성된 개념으로서의 모더니즘 개념을 무반성적으로 차용하여 기존의 문학사에 있어서 모더니즘에 대한 서술의 입장을 무지의 소치로 돌리는 사례를 볼 수 있다.


1) 1930년대 모더니즘론

우리문학사에 모더니즘 문학이 시도되기 시작한 1930년 전후는 일제가 심화된 체제모순을 해결하기 위하여 대외적으로는 침략전쟁을 수행하는 한편 대내적으로는 국민을 군국주의 체제에 적응시키는 황국신민화정책을 펴던 시기이다. 한국은 경제적. 군사적 수탈이 심화되어 생존권마저 위협받게 되었다. 이 시기에 민족 운동은 농민운동과 노동운동이 그 명맥을 유지하고 있었고 국외에서는 항일통일전선을 추구하고 있었다. 이런 시기에 모더니즘이 태어났다.

모더니즘의 개념에 대해서는 동서를 막론하고 논자들 사이에 많은 견해 차이가 있고 그에 대한 태도에는 상반된 경향이 노출되고 있다. 서구에서 모더니즘을 일반적으로 전위예술과 등가적 개념으로 받아들여지지만 두 개념의 차별성을 중시하는 이론도 분명한 논거를 갖고 있다. 1930년대 한국의 모더니즘은 제도화된 문학에 반발보다는 새로운 문학적 수법의 획득이라는 측면에 비중이 두어지고 스스로 제도권 문학에 편입되거나 제도권 문학으로서 행세하는 경향이 두드러졌던 것이다. 실제로 프랑스 계통의 초현실주의나 다다이즘이 전위예술의 대명사로 알려져 있었으나 한국에서는 그것이 큰 세력을 얻지 못하고 영미 계통의 이미지즘이나 주지주의가 주류가 되었건 것은 전자가 제도예술을 부정하는 데 있어서 훨씬 강고한 태도를 가졌다는 점에서 한국 모더니즘의 성격을 뚜렷이 시사하고 있다 할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1930년대 한국의 모더니즘은 전위적이고 실험적인 성격을 뚜렷이 드러내지 않는 일종의 새로운 문예사조로서 수용되는 양상을 보였다고 해석할 수 있다. 우리가 당시의 주도적인 문학경향이었던 리얼리즘에 맞서는 자리에서 예술의 자율성을 주장하고 내용의 우위성보다는 형식에 대한 관심을 촉구한 주의, 주장들을 전위문학이 아니라 모더니즘 문학으로 한데 묶는 이유를 여기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이 시기의 모더니즘 문학은 최초부터 민족이 처한 역사적 상황과 민중의 삶의 현장보다는 문학적 현상을 고립시켜 관심의 초점으로 부각시키고 그 타개가 문제의 해결이라고 본 것이다. 이와 같은 점들은 30년대 모더니즘의 특성을 조건짓고 있으며 그 한계까지 여기에서 비롯된다 할 수 있다.

2) 1950년대 모더니즘론


전쟁이 일상생활의 터전을 폐허로 만들어버린 1950년대 한국의 상황은 불안과 부조리 의식, 삶의 무의미성에 대한 자각증상이 심하게 나타난 세계대전 이후의 서구 사회와 유사한 풍토에 자신들이 놓여 있다는 환상을 문학인들에게 농도 짙게 불러일으킨다. 모더니즘의 두 지주가 현대 사회의 병리적 증후나 산업문명적 감성을 예술에 수용하는 것과 기존의 사회제도와 관습에 반발하는 태도라는 점을 인정할 때 50년대 한국 사회의 분위기는 모더니즘과 쉽사리 결합될 수 있는 충분한 소지를 갖추고 있었다.

인간 존재와 삶의 의미를 질문하는 실존주의가 문학 논의에서 필수품이 되고 문학작품과 현실의 관련성을 괄호 속에 넣은 채 텍스트 내로 관심을 한정시키려는 형식주의적 비평방법이 주도적인 비평방법으로 채택된 것은 그러한 정신적 분위기를 반영한다.


1950년대 비평에서는 바로 이 실존주의 문학에 대한 논의와 엘리엇을 정점으로 한 모더니스트들의 문학에 대한 논의가 압도적인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우리의 문학 작품이 아니라 구미의 문학 현실이 관심의 초점이자 비평의 주요대상이었던 셈인데, 원조물자와 함께 밀어닥치는 서구 문화에서 정신의 고향을 찾고 민족의 특수성보다는 세계적 보편성을 주로 주장하던 당시의 일반적 풍조 속에서는 지극히 당연한 일이 되었던 것이다. 이처럼 엘리엇과 카뮈, 사르트르 등이 50년대 문학 논의에서 하나의 준거틀이 된 것은 그들의 문학이 당대에 선진적인 것으로 생각되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세계대전을 치르고 정신적으로 불모의 땅에 서 있던 그들과 한국전쟁 직후 폐허 속에서 자신을 발견한 한국 문학인들의 현실의식이 유사한 방향을 취한 데 더 큰 원인이 있다고 파악해 볼 수 있다. 서구의 모더니즘이 전통적인 가치와 질서 및 세계관을 부정하고 기존의 예술형식을 파괴하면서 그것이 인간의 본질을 더욱 명확히 인식할 수 있게 하는 길이라고 내세운 것과, 전후의 황폐한 현실을 산업문명이 고도화한 서구의 현실과 동일시하면서 문병비판과 보편적 인간의 본질탐구를 추구한 50년대 문학인들의 지향 사이에는 유사성이 있는 것이다.

2. 리얼리즘에 대하여

1) 리얼리즘의 개념의 역사

리얼리즘이란 개념은 모방(minesis)이라는 용어를 통해 알려져 왔다. 모방과 리얼리즘 사이에는 분명히 말의 의미상의 차이뿐만 아니라 이념적 지향에도 차이가 있지만 리얼리즘 개념의 성립과정을 알기위해 그 용어를 동렬에 놓고 개념의 역사적 전개를 알아볼 필요가 있다.

모방이란 개념이 예술에 나타난 것은 그리스시대인데, 그 범주가 나타난 시초는 고대 그리스인들이 자신들의 일상적 삶을 소재로 해서 모방한 예술을 ‘미무스’라고 부른 데서 찾을 수 있다. 플라톤은 절대적인 진리인 이데아의 존재를 상정하고 이데아의 모방으로서의 자연, 자연의 모방으로서의 예술이라는 도식 속에서 예술의 진리가치를 부정했다. 즉 예술은 진리에서 한 단계 떨어진 현상, 현실에 감각적으로 주어져 있는 것만을 모방함으로써 진리로부터는 두 단계나 멀어져 있다고 주장했다. 이에 반해 아리스토텔레스는 예술이 현실의 감각적 자료를 모방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의 본질을 재현하는 것이기 때문에 현실 그 자체보다는 우월한 것이며 진리에 가까운 것이라고 생각했다. 예술작품에 모방되어 나타난 형상은 현실의 본질적 양상이며 사물이 마땅히 그렇게 될 바의 개연성을 표상하므로 그것은 개별적 특수성이 아니라 특수 속의 보편을 나타내고 보편의 구체화가 된다고 보았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이 모방론은 리얼리즘 이론의 선구가 된다고 할 수 있다.


이후 르네상스는 모방개념의 이원화를 가져왔다. 시대적 필요성에 고대작가의 수법이 연구되었고 그 수법을 그대로 답습하는 행위에도 모방(imitatio)이라는 이름이 붙여졌으며 자연의 모방(mimesis)과 명확한 구분이 없이 그 용어가 사용되었다. 그러나 17, 8세기의 고전주의 시대에 이르러서는 고대 작가의 모방이라는 생각보다는 이상적인 미의 원천으로서 자연을 모방한다는 개념이 우세해졌다. 현실의 자연을 있는 그대로 모방의 대상으로 삼는다기보다는 보다 낮게 고쳐진 가능적 자연을 모방한다는 관점이었다. 이러한 태도는 현실세계에서 경험적으로 인식한 것이 모방의 토대가 되기는 하지만 형상화에 있어서 작가의 창조적인 작업이 허용되어야 한다는 창조적 모방론을 가능하게 해주었다.

리얼리즘시대라고 불리는 19세기에는 모방의 범주를 대체하면서 리얼리즘의 범주가 나타났다. 유명론의 반대개념인 철학적 실재론의 용어였던 Realism이 최초로 문학에 쓰이기 시작한 것은 독일의 실러와 실레겔에서부터였으나 널리 퍼뜨리는 데에는 평론지 『레알리즘』을 펴낸 프랑스의 뒤랑티와 화가 쿠베르, 작가 샹플레리 등의 기여가 컸다. 이들은 예술이 현실세계를 진실되게 표현해야 한다고 주장했으며 이를 위해서 현실의 삶을 정확하게 관찰하고 분석해서 객관적으로 표현해야 함을 역설했다. 그러나 이후에 일어난 리얼리즘에 대한 견해의 차이는 리얼리즘과 자연주의를 구분하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자연의 충실한 재현’이라는 것이 어떻게 가능할 수 있느냐 하는 점에서 그들은 현실의 사물과 표현된 사물의 일치를 강조하는 ‘삶에의 충실성’을 추구하는 쪽과 현실과 표현의 표피적 일치가 아니라 ‘삶에관한 진실’을 표현해야 한다는 쪽이 갈리게 되었고 전자가 현대과학의 방법을 문학에 응용하면서 현실묘사의 수법을 개발해 나간 데 반해서 후자는 고전적 서사의 방법을 유지 발전시켰다. 이 사실주의와 자연주의의 분해과정에서 모방범주가 ‘전형적 상황하의 전형적 인물의 진실된 재현’이라는 리얼리즘범주로의 질적 변화를 이루었다는 사실을 주목해야 한다. 즉 작품의 분석을 위한 기준을 제공하고 작품 상호간의 경향성을 준별케 해주는 이념형적 개념으로서 리얼리즘 범주가 등장한 것이다.


전세기의 양극분해적 전통을 물려받은 20세기의 리얼리즘 이론은 고전적 리얼리즘 작품을 이상형으로 간주하는 비판적 리얼리즘 이론과 새로운 사회의 건설을 위한 실천으로서의 문학을 강조하는 사회주의 리얼리즘 이론으로 발전했다. 특히 이 이론들은 모방론과 창조론의 대립을 지양하고 예술적 현실이 외부현실과 맺는 관계 속에서 갖게 되는 작품의 인식적 가치에 근거하여 개개 작품의 리얼리즘을 판별할 수 있게 해주었다.

2) 비판적 리얼리즘과 사회주의적 리얼리즘

(1) 비판적 리얼리즘

비판적 사실주의가 발생해서 발전하게 된 역사적 조건은 산업혁명과 프랑스 혁명으로 상징되는 근대사회의 형성과 밀접하게 관련된다. 산업혁명은 그 자체로는 생산력의 급속한 신장만을 의미하지만 분업체계를 전체 사회에 파급시키고 대규모 공장을 가능하게 했으며 공장 주의에 도시를 형성하게 한 점에서 여러 가지 사회 변화의 진원이었다. 또 프랑스 혁명은 정치. 경제. 사회 제도를 부르주아 민주주의로 개혁하는 일을 지향함으로써 시민사회의 성립을 촉진시켰다. 두 혁명을 중심으로 일대변혁을 이룬 근대사회는 사회구성이나 사람들의 신분. 역할. 관계 등이 상대적으로 명확했던 봉건제사회와는 달리 사람들의 관계가 한층 다양해지고 다변화됐다. 특히 자본주의적 생산에 의한 상품의 거대한 움직임으로 특징지워지는 이 사회는 사람들의 관계가 그 물질운동의 이면에 숨겨짐으로써 사회관계가 표면에 드러나지 않았다. 따라서 사회는 이제 개인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굴러가는 이해할 수 없는 괴물로서 존재하고 사람들은 개인적인 삶에만 열중하는 미약하고 고립된 존재가 되었다. 비판적 사실주의는 이러한 자본주의 사회의 물화현상 속에서 소외된 개인과 사회 현실의 변증법을 이해하려는 인간의 의지와 노력이 문학예술의 방법으로 채택한 현실인식과 형상화의 방법이다.

이 비판적 사실주의가 19세기 사회에서 가능할 수 있었던 주체적 조건은 대체로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 사회 현실이 인간적인 요인들에 의하여 조성되고 그 현실에 대한 깊이 있고 포괄적인 이해는 사회를 변화시키고 개혁하는데 필수적이라는 의식이 생겨난 점이다. 이 의식은 인간에 대한 새로운 이해를 가져온 르네상스운동 이후 점진적으로 성장해온 것으로 볼 수 있으며 문학에서는 작품의 구조를 현실의 구조에 접근시키고자 한 사실주의의 추구로 표현되었다. 둘째, 여러 과학의 발달로 사회 현실의 총체성을 인식할 수 있는 능력이 발전되어온 점이다. 18세기 백과전서파의 활동으로 드러나듯이 이 시기에 사회과학과 자연과학의 급격한 발전은 사회와 인간에 대한 이해를 크게 증진시켰다. 특히 헤겔에게서 정점에 이른 독일 고전철학은 분과과학의 성과를 종합하여 객관현실을 총체적으로 인식하려고 기도함으로써 똑같은 관심을 지니고 있던 작가들에게 중요한 시사를 던져주었다. 셋째, 표현수단이 발전했다는 점이다. 그리스. 로마의 고전전통을 부활시킨 고전주의 정형적인 수법과 인간의 상상력을 한껏 고양시키려 한 낭만주의에서 개발된 표현수단을 흡수함으로써 비판적 사실주의는 현실을 재현하는 다양한 수단을 구사할 수 있게 되었다.


객관현실의 변화와 주체적 조건의 성숙을 바탕으로 하여 형성된 비판적 사실주의는 소재, 문체, 구성, 주제 등에서 많은 혁신을 이루었다. 소재는 민중의 일상적 현실이 문학적 묘사의 대상으로 등장했다. 문체는 고상한 것과 천한 것을 구분하여 수사적인 배려를 하지 않고 현실에 있는 그대로 객관성을 가지고 묘사함으로써 문체혼합이 이루어졌다. 일상어가 문학어가 되었으며 상층계급과 하층계급의 언어가 한데 섞였다. 구성은 모든 현상들이 서로 연관되어 있고 하나로 통일되어 현실을 구성하는 요소로 제시되어야 했으므로 현상들에 내재하는 원리로서 보편적 법칙성에 관심이 모아졌다. 주제는 각각의 사실이 지닌 의미가 그 개성에 따라 다양하게 이해되고 연관관계들이 새롭게 조명되었다.

비판적 사실주의 문학은 자본주의 현실의 암울한 측면을 비판하는 문학이라고 평가된다. 부르주아의 추악한 탐욕과 이해관계에 기초한 인간관계의 타락성, 노동자계급의 비참한 생활 등 사회의 부정적인 측면이 주로 그려진다는 이유에서이다. 다른 한편으로는 비판적 사실주의는 사회의 발전경향을 보여준다고 평가된다. 현실의 총체성을 드러냄으로써 역사를 움직이는 동력을 찾아내고 현실에 잠재해 있는 미래의 모습을 엿볼 수 있게 해준다는 것이다.

(2) 사회주의적 리얼리즘


사회주의적 사실주의도 19세기 후반부터 혁명적 작가들의 창작에서 싹을 틔우고 그에 대한 이론적 규명이 이루어지면서 일정한 틀이 만들어졌으나 직접적 계기는 러시아의 볼셰비키혁명이다. 사회주의적 사실주의가 발생한 역사적 조건은 다음과 같다. 첫째, 자본주의의 발전이 제국주의 단계에 이르러 현실의 모순이 첨예해졌다는 점이다. 이것은 한 사회의 내부에서는 계급적 모순이 심화되어 노동자와 자본가의 대립. 갈등현상으로 나타났으며, 나라와 나라 사이에서는 제국주의적 침략과 그에 대항하는 민족해방운동으로 나타났다. 둘째, 사회주의사회가 현실로서 대두된 점이다. 볼셰비키혁명으로 창출된 사회주의 현실은 사람들의 삶의 양식을 변화시켰으며 변화된 생활의 내용을 표현하는 데 적합한 예술적 방법이 요구되었다. 셋째, 현실에 대한 인식의 변화가 일어났다는 점이다. 근대사회에서 민중들이 역사의 주체로 부각되었지만 그들이 어떻게 주체로서 역할하게 되는지 명확히 파악되지는 않았다. 그러나 사적 유물론에 의해 고대 이후의 인류의 역사가 계급사회의 역사로 인식됨으로써 계급모순이 사회변혁의 추동력이고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노동자계급이 새로운 미래를 개척할 계급이라는 점이 밝혀졌다. 넷째, 현실인식의 방법으로서 변증법적 유물론이 확립되었다는 점이다. 이 방법론에서는 세계를 해석하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변혁시키는 것이 문제라는, ‘정당한 이론은 세계의 변혁을 목표로 하는 하나의 실천의 자각’이란 인식이 성립하는데, 그것이 현실에서의 이론과 실천의 분리를 극복하기 위한 노력, 문학예술 분야에서는 사회주의적 사실주의 예술을 수립하려는 노력으로 나타났다. 다섯째, 부르주아 문화가 위기에 놓임에 따라 전통유산을 흡수하여 예술의 적극적 사회기능을 회복하는 일이 요청되었다.


사회주의적 사실주의의 기본적 특징으로 사실주의와 사회주의적 당파성을 들 수 있다. 이 특징은 당파성과 사실주의의 결합에 의해서 새롭게 나타난 특징들로서 공산주의적 사상성, 인민성, 계급성, 당파성, 전형성이라는 다섯 가지 범주를 중심축으로 하는 사회주의적 구성요소를 이룬다. 작가는 의식적으로 사회주의를 지향하는 인민의 투쟁에 봉사하는 것을 자신의 과업으로 삼는다. 인민과 당에 봉사하는 작가의 임무는 작품에 표현된 주체사상이 인민을 사회주의적으로 교육하는 데 적합한 것이 될 때 이행된다. 작가는 자신의 계급적 입장을 자각하고 사회주의적 당파성을 창작의 모든 과정에 관철시킴으로써 예술적 성과를 높이고자 한다. 이를 위해 작가는 생활의 진실을 탐구하고 그 내용을 적절한 형식으로 표현한다. 여기서 내용은 반영된 생활 그 자체가 아니라 예술가의 당파성에 의해 개개 현상에 대하여 의의가 부여되고 평가된, 창조적으로 재현된 현실이며, 그 형식은 작품이 사회적인 기능을 수행하는데 적합하고 내용으로부터 필연적으로 요구되는 형식이다. 그것은 사회주의적 내용과 그것을 담기에 적합한 민족적 형식을 획득하기 위한 노력이며 내용과 형식의 통일을 성취하려는 기도이다.


3) 리얼리즘 논쟁

문학을 하며 글을 쓰는 명분은 선이나 악을 보도록 하는데 있다. 리얼리즘은 그의 전수, 학습, 유지를 위한 구체적 수단이다. 그것은 사회의 사상 규제와 분리해 생각할 수 없다. 리얼리즘이란 자유의 이면이기 때문이다. 리얼리즘은 자유가 완전히 실현되지 않았더라도 그 자유가 원칙적으로는 인정된 사회에서만 생각할 수 있다. 개인의 자유가 보장된다는 것은 각 개인이 저마다 가치체계를 가지는 일을 말한다. 공동의 문화라는 일정한 전통 양식 속에서 저마다의 개별적 가치체계를 아슬아슬하게 대비시킬 때 솟는 긴장감이 리얼리즘의 바탕이다. 이런 관점에서 70년대 리얼리즘 논쟁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① 이어령은 리얼리티를 현실과 환상의 결합이라는 의미로 사용했다. 따라서 한국소설은 전혀 리얼리티를 구현하지 못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기법에 대한 철저한 반성이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② 김순남은 기법으로서의 리얼리즘을 비판하고, 현실을 대하는 문학정신으로서의 리얼리즘의 중요성을 주장했다. 기법보다 긴급하고 절실한 것은 진리와 인간존재의 권리를 위해 절규하는 오늘의 한국 현실을 대변하는 건전한 문학정신이며, 격동적 소재와 주제사상을 드러내려는 기백이라 주장한다.

③ 염무옹은 이제 19세기 리얼리즘을 요구하는 시대는 지났다고 단언한다. 당시에는 모든 개인은 그 사회에 자기를 일치시킴으로써 자아를 완성할 수 있었다. 집단과 개체는 행복한 결합을 이루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현대는 이런 집단과 개인의 행복한 결합이 깨진 시대이다. 새로운 리얼리즘의 가능성을 찾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④ 리얼리즘의 본질을 사회와 인간을 보는 ‘원숙한 관점’과 이에 수반되는 ‘균형’으로 파악한 영국 비평가 윌리엄즈의 주장을 인용한다. 원숙한 관점은 개인을 무시한 전체화도 아니고 전체화를 외면한 개인주의도 아닌 ‘인격화하는 전체화’라 할 수 있다.

⑤ 1930년대 염상섭, 채만식 등의 문학적 성과를 리얼리즘적 성과로 볼 것인가 자연주의적 성과로 볼 것인가 하는 논란이 인다. 이에 김윤식은 원칙적으로 자유가 보장되는 사회에서만 리얼리즘이 구현될 수 있다는 이유를 들어 4.19이후부터 한국에 본격적인 리얼리즘 문학이 꽃필 수 있었다고 진단한다. 그러나 김현은 자유를 획득하려는 노력을 할 만한 사회계층이 형성될 수 있느냐 없느냐에 문제의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30년대 리얼리스트들은 자기계층을 가졌기에 4.19 이후의 리얼리스트보다 훨씬 박력 있는 작품을 내놓을 수 있었다는 것이다. 다시 김윤식은 4.19 이전의 리얼리즘은 기법으로서의 리얼리즘이라고 정리한다. 구중서는 1930년대 염상섭이나 현진건의 문학을 리얼리즘이라 보지 않고 자연주의 문학이라 규정한다. 그들이 사회와 인간을 객관적으로 묘사하는데 그쳤고, 역사의식의 지향이라든가 이상주의적 요소를 작품 속에 담아내는 작업을 하지 못했다는 것이 그 이유이다.

⑥ 김현은 한국에서 리얼리즘 문학의 존립은 불가능하다고 주장한다. 한국에는 그것을 밀고 나갈 시민계급 혹은 중간계급이 형성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는 한국사회의 구조적 모순을 리얼리즘의 수법으로 드러내는 것은 소시민적 영웅주의에 빠지거나 소시민적 패배주의에 빠질 위험성이 있다고 경고한다. 리얼리즘이라는 도식성을 탈피하고 상상력을 통해 시대의 핵심에 접근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⑦ 임헌영은 ‘민족적 리얼리즘’의 길로 나아갈 것을 제안한다. 그는 리얼리즘은 휴머니즘이며 리얼리즘에서는 기법보다 자세가 중요하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리얼리즘은 곧 객관적 진리를 예술미로 형상화시키는 것이라고 결론한다. 객관적 인식이 만든 구상예술이 리얼리즘이며, 관념이 낳은 추상예술은 반리얼리즘이라는 것이다. 여기에 최일수는 오늘의 민족적 현실에서 주목할 것은 분단이며, 이를 극복하고 통일로 향하는 의지와 행동이 중요하다고 본다. 따라서 민족적 리얼리즘은 이런 바탕 위에서 그 미학이 확립돼야 하고 또한 창작 방법론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⑧ 김양수와 염무웅은 임헌영의 주장이 사회주의 리얼리즘이라고 비판한다. 또 염무웅은 30년대 염상섭의 소설을 리얼리즘인가 자연주의인가 구별하는 것은 무의미하고, 그보다 염상섭의 작품을 놓고 사안에 따라 리얼리즘이 성취된 경우와 한계를 드러낸 경우를 분석. 비판하는 일이 중요하다고 지적한다.

⑨ 김병걸은 리얼리즘의 수용을 적극 주장하면서 그것이 민족문학과 어떤 연관성을 갖는가에 대해 논의했다. 그는 리얼리즘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개인적 문제일지라고 그것이 모든 개인. 사회. 시대의 공통적 문제로 제기되는 것이라 주장했다. 특히 민족문제는 지금의 우리에게 절실한 문학 주제의 하나가 된다. 아울러 그는 문학이 소외된 민중의 삶에 관심을 보여야 한다는 사실을 강조했다.

⑩ 원형갑은 리얼리즘에 대한 경도가 문학의 상상력을 말살시키고 문학 자체를 고사시키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고 우려한다. 리얼리즘의 정신 속에는 문학적 창조의 근원이 되는 상상력이 살사 숨쉴 수 없다는 것이다. 사회적 효용성을 강조하는 리얼리즘론 속에서는 문학이 그 스스로의 실존성을 잃고 사회학적. 경제적. 정치적 요소로 환원될 것이라 비판한다. 이에 김동리도 문학을 목적의식의 도구로 만들려는 경향에 반대 입장을 천명했다.

⑪ 김우종은 1920년대 프로문학과 해방 직후 좌파의 문학, 그리고 60년대의 참여문학과 70년대의 리얼리즘 문학을 동일한 것으로 파악하는데 우리 문단의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들 문학의 공통점을 사회주의 문학이라 보고 비판하는 것이 오늘날 문단에서 일고 있는 문제의 핵심이라는 것이다.

한국 현대문학비평사에서 참여문학론과 리얼리즘론, 그리고 민족문학론은 서로 연관성이 깊다. 1950년대와 60년대의 참여문학론은 리얼리즘론을 만나면서 그 논의의 깊이를 더할 수 있었다. 그런가 하면 60년대와 70년대의 리얼리즘론은 민족문학론을 만나면서 논의의 구체성을 확보할 수 있었다. 그렇게 본다면 50년대 이후의 참여문학론이 리얼리즘론과 결합하여 논의의 깊이와 구체성을 더해가면서 70년대 이후 민족문학론으로 발전해 가는 과정이 곧 한국 현대문학비평사의 가장 큰 줄기를 이룬다고 보아도 별 무리가 없다.

3. 1970년대 한국문학

1) 민족문학의 개념과 성격


민족이란 자본주의라는 경제적 사회구성체가 형성되면서 이루어진 경제, 사회, 정치 및 이데올로기 발전 과정과 역사적 계급투쟁의 산물로서 생겨난 인간 사회 구조 형태와 발전 형태를 말한다. 한국의 경우 자본주의로 진입하게 된 60년대 민족의 구성원은 누구인지가 문제된다. 한국에서 60년대는 개발의 시대였고, 그 주체는 국가였다. 국가는 근대화의 주체로서 국민을 이끌어 나갔지만 궁극적으로 국가는 민족의 주체일 수 없었다. 70년대에 들어서면서 비로소 ‘소외받는 자’, ‘고통받는 자’로서 막연하게 민중이 민족주체자로 새롭게 인식되기에 이르렀다.

민족문학을 한마디로 정의 내리기 어려운 이유는 역사적 변화에 따라 민족문학의 성격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한국 근대문학에서 민족문학론은 1920-30년대 계급문학에 대한 대타의식에서 출발한 국민문학에서 시작되었다. 카프문학에 대한 반발로 우리 고유의 ‘시조’의 형식부활 등을 주장하고 나선 것이 <국민문학파>이었는데, 그들은 자신의 문학을 민족문학이라 주창했다.

해방직후 <조선문학건설본부>에서 활동한 임화는 ‘인민’이라는 용어를 끌어들여 민족문학을 반봉건, 반제, 신국가 건설에 이바지하는 문학이라고 규정한다. 김영석은 민족문학론(1947)에서 민족문학을 민족의 문학으로, 민족의 문학이란 전 민족의 자유와 평등을 위한 문학이라 보았다. 민족 구성원을 노동자계급을 선봉으로 농민층, 소시민층, 자본가계급의 일부까지를 포함한 민족전체라 보고 민족문학은 이들의 해방을 위한 문학을 수립해야 하는 것이라 했다.


50년대 최일수는 통일을 지향하는 민족정신에 입각한 문학을 민족문학으로 보았다. 민족문학이 분단극복과 인간소외 극복을 지향한다는 측면에서 주목할 만하다.

70년대 백낙청은 민족문학을 “민족문학의 주체가 되는 민족이 우선 있어야 하고 동시에 그 민족으로서 가능한 온갖 문학활동 가운데서 특히 그 민족의 주체적 생존과 인간적 발전이 요구하는 문학”이라 정의한다. 그러나 민중의 구성원을 구체적으로 제시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민족문학은 민중의 구성원이 누구냐에 따라 민족문학의 개념이 달라져 왔고 달라지며, 달라질 것이다. 민족문학을 한 마디로 정의내리기는 어렵지만 “민중의 고통과 그 지향을 형상화한 문학”이라고 정의할 수 있을 것이다.


2) 민중의 개념


민중은 역사적으로 변화 속에서 파악되어야 할 개념, 변화하는 주요모순에 대응하는 확정되지 않은 개념, 계급. 민족. 시민 등 여러 개념을 포용하는 상위개념으로서, 그것을 보는 위치에서 그 표현이 달라지도록 되어 있다. 또한 민중은 역사에 있어 진보의 현에 서고 역사발전의 기초이면서 능동적 주체자로 되는 계급. 계층. 사람들로서, 직접적 생산자로서의 성격과 위치를 갖고, 한 사회 안에서 피억압자. 소외된 계층(계급, 사람들)이었다.

따라서 민중은 역사적 개념으로서 그 당대의 상황이 어떠한가에 따라 당연히 민중의 구성원이 달라지고 민중에 대한 인식이 달라지며, 그 인식에는 개념의 인식차이와 변화가 있기 마련이다. 이것을 염두에 두고 민중이란 용어가 빚어내는 세계관이나 당파성, 헤게모니 등등을 살펴보아야 한다.

민중이란 그들이 처한 역사에 따라 구체적인 민중의 구성원이 달라지는 역사적 개념이다. 70년대 후반 민족문학론에서 민중의 개념에 대한 일정한 합의를 보지 못한 채, 80년대 ‘민중문학론’으로 넘어가 버리는 이유는 바로 민중의 역사적인 성격 때문이다. 대부분의 민족ㆍ민중문학론자들은 민중을 노동자, 농민, 도시빈민층, 중간층에서 진보적 지식인층(때로는 학생층)을 포함한다.

그러나 80년대에는 노동자계급이 민중의 중심이라는 시각도 있었다. 하지만 70년대 후반부터 노동자계급에 대한 자기인식에 의해 노동자계급이 현실변혁의 중심에 서야 한다고 민중문학론자들은 주장하고, 실제 노동자계급이 부분적으로는 그 역할을 담당했다. 그러나 여전히 노동자, 농민, 도시빈민, 진보적 지식인들을 두루 포함하기에는 민중이란 용어만큼 적합한 개념이 없기 때문에 이 용어를 70-80년대 민족문학 주체 논쟁에서 두루 쓰였다.


3) 70년대 민족문학론의 흐름


1970년대 ‘민족문학’이라는 용어가 주목을 받기 시작한 것은 70년 10월 <한국문인협회>에서 발행하는 기관지 『월간문학』의 특집을 통해서였다. 김현은 민족문학이라는 용어가 국수주의적인 냄새를 풍기며 지나치게 복고적. 교조적이라는 점을 비판한다. 김현이 민족문학이 복고적이라고 지적한 이유는 1920년 이후 민족문학론이 시조부흥 등을 주장하며 현실도피적 성향을 보였기 때문이다. 이런 생각을 바탕으로 김현은 민족문학이라는 용어 대신 한국문학이라는 용어를 쓸 것을 제안하였다. 『월간문학』은 1972년 10월 다시 「민족문학재론」이라는 특집에서 김동리. 김승현. 윤병로. 김상일 등의 글을 실어 민족문학의 정의를 내린다. 첫째, 그 민족이 가진 모든 문학 가운데서 대표적인 문학작품, 시대와 사회를 초월하여 그 민족이 자랑으로 생각하며 애독하는 문학. 둘째, 그 민족의 특성인 민족성을 가장 잘 나타낸 문학. 셋째, 민족이란 개념이 형성된 것은 근대라고 볼 수 있으며 따라서 근대문학이 곧 민족문학이다. 이 보수적 민족문학론에 대해 진보적 민족문학론에서는 백낙청이 중추적 역할을 담당했으며 그 글로는 1974년에 발표한 「민족문학 이념의 신전개」를 들 수 있다.

이 글에서 백낙청은 기존 문단의 민족문학론이 복고주의와 국수주의의 색채를 띠고 있다고 비판하면서 새로운 민족문학론의 방향을 제시한다. 그는 먼저 민족문학 논의가 관념적 유희에 흐르지 않으려면 민족문학이라는 개념의 고수를 요청하는 구체적인 민족적 현실이 있어야 한다고 봤다. 민족문학의 계기가 되는 민족이 우선 있어야 하고, 민족의 주체적 생존과 발전을 위해 필요한 문학을 민족문학이라는 이름으로 구별할 필요가 현실적으로 존재해야 한다는 것이다. 민족문학은 민족의 주체적 생존과 그 대다수 구성원의 복지가 심각한 위협에 직면해 있다는 위기의식의 소산이며, 이러한 위기에 임하는 올바른 자세가 국민문학 자체의 건강한 발전을 좌우하는 요인이 된다는 판단에 입각해서 나오는 문학이라 한다. 여기서 백낙청은 민중의식을 민족의 역사적 사명에 부응하는 시민의식으로 발전시키는 과업이 곧 민족문학의 본질을 이룬다고 주장한다.


또 백낙청은 「민족문학의 현단계」에서 정부가 주도하는 민족문학과 민족적 양심. 문학적 양심이 요구하는 민족문학의 개념에 차이가 있음을 지적하고, 근대이후 우리문학사에서는 민족적 위기의식에 바탕을 둔 문학이 민족문학이라는 사실을 강조한다.

이런 일련의 글들을 통해 민족문학론의 기틀이 마련되는데, 리얼리즘을 통한 민족문학 실현, 민족문학을 통한 민주회복과 분단극복 성취, 제3세계 문학의 일환으로서 민족문학의 역할과 세계문학적 위상 정립 등에 관한 중요한 논의의 틀이 마련되는 것이다. 민족문학은 말하자면 민중문학이 우리 시대에 구체화되는 한 중요한 형태이며, 민족문제가 절실한 곳에서는 바로 현단계의 민중문학 그 자체로 되는 것이라고 말한다. 제3세계적 시각의 민족문학론은 필연적으로 리얼리즘에 대한 관심을 표명하게 되는데 제3세계 민중의 아픔을 깊이 체험한 작가일수록 당대 현실을 있는 그대로 정직하게 그려내고자 하는 리얼리즘에 기울기 쉽다고 보기 때문이다. 백낙청은 양심적 작가라면 누구나 제3세계와의 연대감을 갖고 창작하는 일이 필요하다고 결론짓는다.

4) 70년대 한국문학이 가진 문제의식


70년대 문학은 정신이나 지향성으로 인해 시보다는 산문이 우세한 경향을 보였고, 그 제재들의 다양성으로 해서 몇 가지 집중적인 문제로 나누어 생각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첫째, 도시빈민. 산업 노동자 문제이다. 산업사회에로의 개편은 산업 노동자의 수요를 낳게 마련이고 이는 자연스럽게 농촌 인력을 흡수하는 방법으로 해결되었다. 농촌 인구의 도시 유입은 먼저 농촌의 황폐화를 낳게 되었지만 이보다 먼저 도시 산업 노동자들의 삶이 보장되지 않은 저임금으로 해서 도시빈민층이 급속도로 증대하는 현상을 야기시킨다. 경제개발에 따른 부의 불균형으로 소비가 미덕으로 믿었던 산업 노동자나 도시 빈민층은 경제 발전의 허울만 보개 되고 전혀 그 혜택을 나누어 가지지 못함은 물론 상대적 박탈감이나 직접적인 피해만 입게 된 데에 불만이 고조되고 이의 해결방안은 제시되지 않고 강압적 힘으로 억제당하게 된다. <호스티스 문학>, <작부문학>이 이런 문제를 다루고 있다.

둘째, 도시의 거대화, 근대화의 표본은 아파트의 건설로 상징된다. 소형 아파트 건립이 투기의 대상이 되면서 실수요자여야 할 도시 서민. 빈민들은 감히 몫을 차지할 수 없게 되었다. 이는 삶의 근거를 빼앗겼다는 박탈감을 증대시켰고 제 몫을 찾고 살 집을 마련해야 한다는 절박한 서민. 빈민층의 집단시위. 항의가 잇달아 일어나고 이를 강압하는 공권력이 투입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충돌은 위험수위를 넘고 있었다.


셋째, 계층간의 갈등 문제로 경제 개발에 따른 경제 발전은 사회 구성원의 계층화를 촉진시켰다. 가진 자와 못 가진 자가 분리되고 그들 사이에 깊게 팬 불신의 골은 서로 어울려 살기에 불편할 정도의 적대감에까지 이르게 된다. 여기다가 공권력은 언제나 가진 자의 편에 서 있거나 못 가진 자의 불만을 억제하는 쪽으로 작용하고 있었으며 현실을 합리화하는 방향으로만 유도하고 있었다. 이런 사회 현상은 사실주의 문학에서의 ‘전형성’과 ‘총체성’의 이론을 효과적이게 만들었고 이에 충실한 문학은 대단한 설득력을 획득할 수 있게 되었다. 이런 의미에서 60년대 문학이 ‘소시민문학’, ‘개인의 존재의미의 확인’이었다면 70년대 문학은 ‘서민계층의 문학’, ‘집단. 계층의 존재의미의 확보’라는 점에서 구별된다.

넷째, 자유. 민주화의 문제가 가장 쟁점이었다. 70년대는 유신 제4공화국의 시대다. 경제 발전에 따른 이익의 사회환원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을 뿐 아니라 정경유착이라는 부당한 수단에 의한 일방적 ‘하면 된다’는 식의 밀어붙이기는 강압적 공권력을 동원하게 되었고 정치적 합리화를 위해 단행되었던 유신정권의 탄생은 독재성향을 뛸 수밖에 없었고 이것은 자유의 제한을 필수적으로 불러 오게 되었다. 자유. 민주화의 요구가 이데올로기적 차원으로 발전한 것은 다른 한편으로 강압적 공권력의 입지를 마련해 주는 결과를 가져 왔다는 점에서 정치. 경제적 부정과 비리의 폭로가 그 본래의 목적에서 이탈하지 않는가 하는 염려를 낳게도 하였다. 이 문제는 70년대의 문학에서 사실주의 문학 정신에 투철한 작품이 크게 자리하는데 공헌했다.

5) 70년대 문학의 배경과 동향


70년대 민족문학의 가장 커다란 의의는 무엇보다도 6.25 이후 냉전체제와 반공이데올로기의 지배로 거의 단절되다시피 한 민족문학과 리얼리티의 전통을 되살렸다는 점이다. 민중적 전망을 기초로 농민과 노동자의 삶과 고난과 투쟁을 형상화한 70년대 리얼리즘 문학의 성과가 없었다면 80년대 민중문학의 성장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70년대 민족문학이 노동문제. 농민문제. 분단문제 등에 대한 새로운 인식의 지평을 열어준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70년대 민족문학은 크게 두 흐름이 두드러진다. 하나는 철저한 민중적 관점에 기초하여 당대 민중들의 삶과 투쟁 등을 형상화하거나 그들을 둘러싼 삶의 질곡과 모순을 집중적으로 비판한 문학적 흐름이다. 이들의 작품은 노동자와 농민 등 기층민중들의 구체적인 생활상을 대단히 생동감있게 묘사하는 동시에 그들이 현실의 모순을 자각하고 그러한 모순을 타파하기 위해 적극적인 실천으로 나아가는 과정을 작품상에 반영하는 특징을 보여준다. 대표적 작가로는 소설에서는 황석영. 이문구. 송기숙. 박경리, 시에서는 김지하. 신경림. 정희성 등을 들 수 있다. 그러나 이들의 작품에서 종종 드러나는 민중주의적이고 낭만주의적인 편향은 중요한 한계로 지적된다.

다른 하나는 보편적 휴머니즘의 관점에서 당대 현실의 제반 모순을 비판적으로 그리거나 소시민들의 계급적 이중성과 동요성을 자기비판한 문학적 흐름이다. 이들의 작품은 당대 민중들의 소외된 삶에 대한 휴머니즘적 공감을 표현하거나 민중과 지배층의 중간에서 올바른 삶의 행로를 찾아 방황하는 양심적 소시민들의 고뇌를 세밀하게 묘사하는 특징을 보여준다. 특히 소시민계급의 동요와 고뇌에 대한 진지한 형상화는 높은 예술적 성취를 보여준다. 이 계열은 80년대 비판적 리얼리즘과 모더니즘으로 계승된다. 그러나 역사발전에 대한 비관주의적 전망, 현실반영의 파편화, 민중의 생활상에 대한 추상적 이해 등은 한계로 지적된다. 소설에서는 조세희. 윤홍길. 김원일. 박완서, 시에는 김광규. 정현종. 황동규 등이 있다.


6) 민중의 삶과 투쟁에 대한 리얼리즘적 형상화


70년대 민족문학의 가장 커다란 성과는 민중적 전망에 기초한 리얼리즘 문학이 본격적으로 형성화되었다는 점이다. 이는 민중적 관점에 섬으로써 현실의 본질적 모순들과 그것들의 상호연관을 분명히 인식할 수 있게 되었고 그것이 현실의 총체성의 리얼리즘적 형상화로 이어진 것이다.

먼저 소설을 보면 황석영과 이문구의 작업이 돋보인다. 황석영은 산업화로 인한 인간소외를 서정적으로 형상화한 「삼포 가는 길」, 본격 노동소설인 「객지」, 분단의 비극을 다룬 「한씨연대기」 등을 발표하여 70년대 리얼리즘 문학의 새로운 장을 여는데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 황석영은 당대의 민족사적 과제가 무엇인지를 예리하게 포착하여 그것을 소설화하는데 어느 작가보다도 탁월한 능력을 보여주었다. 이는 민족사의 흐름에 적극적으로 동참하려는 참여의식과 민중의 삶에 대한 강한 연대감 덕분에 가능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삼포가는 길」에서 전근대적 세계의 낭만적 이상화라는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고, 「객지」에서는 동혁에 대한 영웅주의적 형상화로 인해 낭만주의적 편향이 한계로 지적되곤 한다.


이문구는 독특한 문체와 유려한 문장을 바탕으로 70년대 농촌현실의 다양한 면모를 풍자적으로 그려낸 작가이다. 당시 농촌의 일상언어를 거의 그대로 재현한 듯한 그의 문체는 구어와의 밀착도가 너무도 강해 오히려 낯설게 보일 정도이다. 주술관계가 명료하지 않을뿐더러 문장의 끝이 어딘지를 구별하기가 때때로 어려울 정도로 그의 작품에 나오는 대화는 독자들의 자연스런 독서를 방해하기까지 한다. 이문구의 문체는 일상언어가 곧 문학어임을 실증함으로써 진정한 의미의 언문일치가 무엇인지를 반성하게 하며, 더 나아가서 민중의 언어생활이야말로 문학어의 거대한 광맥임을 다시 한번 일깨워준다. 그러나 『관촌수필』은 농촌사회의 공동체적 건강성에 대한 지나친 집착으로 말미암아 전통사회의 긍정적 측면과 부정적 측면의 구별이 불분명해지는 한계를 보여주며, 이로 인해 전체적으로 농촌사회의 계급모순과 전근대성에 대한 비판적 형상화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했다는 아쉬움을 준다. 『관촌수필』의 이런 한계를 벗어나 농촌현실의 제반 모순을 풍자적으로 비판한 작품이「우리 동네○씨」연작이다. 그러나 이 소설은 세태소설적 경향이 강하다. 세태소설적 경향은 근본적으로 표면적 현상에만 집착할 뿐 그것과 본질-즉 자본주의적 생산관계-과의 연관을 깊이있게 탐구하지 않은데서 기인한다. 무엇보다 농촌사회의 계급관계가 거의 두러나지 않고 있는 것이라든가 각각의 문제들이 연관성 없이 산만하게 흩어져 있는 것, 그 결과 작품의 대부분이 우연적 해프닝으로 끝나거나 윤리적 해결이나 냉소주의적 비판으로 마무리되고 만다.

이외에 송기숙의 『자랏골의 비가』와 『암태도』, 『녹두장군』이 농촌문제에 대한 꾸준한 천착을 보여준다.


시의 경우 김지하와 신경림의 활약이 주목된다. 김지하는 70년대 민족문학의 수난과 영광을 상징하는 시인이다. 군부독재세력과 독점재벌을 풍자적으로 비판한 ‘담시’들은 풍자의 통렬함과 상상력의 대담성에도 불구하고 대상을 지나치게 희화함으로서 오히려 대상의 본질을 희석시켜버리는 한계를 종종 보여준다. 그러나 김지하 시의 본령은 ‘담시’보다는 정통 서정시에 있다고 할 수 있다. 특히 「타는 목마름으로」와 「1974년 1월」은 70년대 민족시의 백미이다. 유신체제를 기반으로 민주주의를 말살하려는 독재정권에 대한 분노, 시인의 소시민적 비겁성과 패배주의에 대한 자기비판, 그러한 비겁함과 패배주의를 딛고 일어서는 저항정신 등은 서정성과 철저한 감정절제를 통해 노래한 이 시는 그다지 길지 않은 시행 속에서 당대의 민족사적 과제와 변혁의지를 핍진하게 형상화하는 데 성공하고 있다. 이러한 시적성취는 무엇보다도 객관현실에 대한 냉철한 인식과 시인의 내면세계에 대한 정직한 성찰이 조화롭게 어우러졌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신경림은 시집 『농무』와 장시 『남한강』으로 농민시의 새로운 경지를 개척한 시인이다. 『농무』는 당시 농촌의 구체적 현실과 농민들의 생활감정을 탁월하게 재현해 리얼리즘 시의 한 전범을 보여준다. 이 시집은 농촌의 피폐하고 암울한 현실, 농민들의 좌절과 절망, 그러한 절망감 밑에 깔려 있는 민중의 근원적 건강성 등을 절제된 감정과 서사적 디테일을 바탕으로 노래하고 있다. 신경림의 성공한 농민시들은 이처럼 서사성과 서정성의 절묘한 결합에 의해 이른바 ‘민중적 서정성’이라 부를 수 있는 높은 예술적 성취를 이루어내고 있다. 반면 실패한 시들은 이야기를 평면적으로 전달하는데 그치거나 주관적 감정을 과장되게 토로하는 경향을 보여준다.

이외에 민족시의 삶과 생명력과 소시민적 일상에 대한 자기성찰을 절제된 서정의 형식을 통해 잔잔하면서도 명징하게 표현하고 있는 정희성의 작업 또한 70년대 민족시의 중요한 성과로 평가할 만하다.

7) 소시민적 자기성찰과 현실에 대한 휴머니즘 비판


70년대에 들어서 민족문학의 급속한 성장에 발맞춰 보편적 휴머니즘에 기초한 비판적 문학의 전통이 다시금 상당한 발전상을 보여준다. 특히 민족문학진영과의 생산적 경쟁 속에서 계급문제나 분단문제에까지 관심 분야를 확대시켰을 뿐 아니라 소시민적 삶에 대한 섬세한 자기성찰을 통해 삶의 내적 복잡성을 치밀하게 그려낸 점은 70년대 문학의 중요한 문학적 성취임에 분명하다.

소설에서는 조세희. 윤흥길. 김원일 등이 우선적으로 꼽힌다. 조세희는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에서 전위적인 기법 실험과 독특한 형식구조를 보여줌으로써 문단에 상당한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이 연작소설의 특징으로 현실과 환상의 혼재, 내면세계에 대한 집요한 묘사, 시점의 다양한 이동, 환상적인 문체 등 형식의 전위성을 들 수 있다. 그러나 『난쏘공』의 탁월한 점은 형식 실험이 그 자체로 끝나지 않고 당대 현실의 다양한 국면들, 특히 각 계급과 계층의 복잡한 삶의 모습들을 효과적으로 그려내기 위해 사용되었다는 점이다. 즉 내용과의 유기적 연관을 기반으로 새로운 형식이 고안되었다는 것이다. 그 결과 이 소설에서는 부르주아계급의 야만성과 허구성, 소시민계급의 이중성과 고뇌, 노동자계급의 절망과 희망 등이 서로 복합적으로 얽히면서 우리 사회의 중층적 구조가 설득력있게 제시된다. 또한 다른 작품을 통해서도 보여주었는데, 연대를 기반으로 한 조직적 저항만이 진정한 인간해방의 사회를 만들어가는 힘임을 강조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조세희는 진보적 모더니즘의 전통을 적극적으로 계승한 작가로 평가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런 문학적 성과에도 불구하고 『난쏘공』은 이상 대 현실의 이분법적 대립이라는 현실인식을 바탕으로 당대의 사회를 바라보고 있다는 점에서 심각한 문제점을 갖는다. 이상의 실현은 현실에서 불가능하다는 인식을 소설 전체에 깔고 있다. 이럴 때 가능한 결론은 초월주의나 허무주의 밖에 없다. 이 소설의 환상적 분위기와 비관적 정서는 바로 그런 초월주의와 허무주의의 한 표현이다. 즉 한편으로는 연대에 기반한 저항에서 변혁의 가능성을 찾으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개인의 윤리적 결단을 통해 문제 해결을 시도하는 딜레마가 발생한다. 그런데 이상 대 현실의 이분법 밑바닥에는 일종의 초시간적 이념형을 설정하고 그에 맞춰 현실을 평가하는 윤리주의가 숨어 있다. 윤리주의는 언제나 현실의 실상에 대한 객관적 인식을 어렵게 만드는 법이다.

윤흥길도 『아홉 켤레의 구두로 남은 사내』 연작에서 한 평범한 소시민의 눈을 통해 당대 민중의 삶과 노동현실의 문제점을 형상화하고 있다. 70년대에 연작소설이 다수 산출된 것은 주목할 만하다. 이는 단편 형식으로는 더 이상 현실의 복잡성을 충분히 잡아낼 수 없음을 깨달았지만 현실의 총체적 연관에 대한 조망력을 온전히 갖추지는 못한 상태에서 나온 대안이라 할 수 있다. 이 소설은 권씨가 공장생활을 통해 점차 노동자와의 공동운명을 자각하게 괴는 과정을 그리고 있는데, 이러한 자각의 과정이 상당히 돌연하고 작위적으로 이루어진다는 인상을 강하게 준다. 이 연작이 일정한 성취에도 불구하고 전체적으로 삶의 표면에 대한 세태적 묘사에 그친 채 현실의 깊은 본질에까지 접근하지 못하고 만다.


김원일의 장편 「노을」은 해방 직후 좌익폭동에 적극적으로 가담했다가 몰락한 한 백정 일가의 가족사를 통해 분단문제의 본질을 파헤침으로써 황석영의 「한씨연대기」와 함께 분단문학의 발전에 중요한 기여를 한 작품이다. 「노을」은 분단의 비극적 상처를 치유할 수 있는 길이 무엇인가를 진지하게 모색한다. 그러나 이 작품은 해방 직후의 좌익폭동이 왜 일어났고 그것이 갖는 역사적 의미가 무엇인지에 대한 근본적 질문은 포기한 채 일종의 야수적 광기로만 쉽게 재단해버리는 문제점을 보여준다.

오히려 김원일의 진면목이 드러난 작품은 「도요새에 관한 명상」이다. 이 중편은 실향민인 아버지, 학생운동으로 제적된 형, 재수생 동생 등 부자간의 삶을 다양한 시점의 교체를 통해 보여주면서, 환경문제와 분단문제를 비롯한 우리 사회의 제반 모순을 치밀하게 파헤치고 있다. 이 중단편 형식이 현실의 총체성을 내포적으로 담아내는 데 있어서 이룰 수 있는 가능성의 한 극단을 보여주는 모범 사례라 할 수 있다.

시에서는 황동규. 정현종. 김광규 등이 활발한 활동을 벌였다. 황동규는 초기의 낭만주의적 성향을 유지하면서도 당대에 대한 날카로운 통찰을 문득문득 보여준다. 특히 유신 초기에 씌어진 「계엄령 속의 눈」 「세 줌의 흙」 「정감록 주제에 의한 다섯 개의 변주」 등은 소시민적 삶에 대한 자기비판과 치밀한 시적 구성이 조화를 이룬 수작들이다. 이런 부분적 성취에도 불구하고 황동규의 대부분의 시편들은 그러한 각성이 깊은 현실인식에까지 나아가지 못한 패 현실에 대한 낭만적 환멸이나 이데아에 대한 초월적 동경에 멈추고 있다. 이후 그가 형이상학적 문제들에 집착하거나 도교적인 초월주의를 노래하고 있는 것은 그런 점에서 당연한 귀결이라 하겠다.


70년대 시에서 정현종이 차지하는 위상은 매우 독특하다. 그의 독특함은 우선 이율배반적인 가치나 이미지들을 융합시키는 상상력으로부터 나온다. 가령 고통/축제, 절망/희망, 불행/행복, 무거움/가벼움, 죽음/삶 등의 대립적 가치들을 상호의존적 관계로 이해하는 것이 그것이다. 두 항 사이에는 상호의존성과 함께 화해 불가능한 긴장이 모순적으로 공존한다. 이같은 독특한 시적 발상은 6,70년대의 억압적 체제에 대한 미학적 저항의 일환이라 할 수 있다. 정현종은 고통스러운 삶의 조건에 대한 정직한 성찰을 기반으로 진정한 희망의 가능성을 탐색한다. 통합적 상상력을 방법적 전략으로 삼고 있는 그의 70년대 시들이 갖는 미학적 저항력이 이로부터 생성된다. 그러나 시인에게 현실의 비극성은 너무도 압도적이어서 거의 운명에 가까울 정도이다. 그래서 희망의 가능성은 여전히 현실적 근거를 찾지 못한, 부재의 흔적으로서의 가능성일 뿐이다. 정현종의 시가 전체적으로 강한 비관주의적 분위기를 풍기는 것도 이 때문이다.

70년대 후반 김광규의 활약은 눈부시다. 「도다리를 먹으며」 「내일 내가 죽데 된다면」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 「늦깎이」 등은 절제된 이미지와 특유의 산문적 문체에 기대 억압 대 자유의 대립을 명료하게 시화하고 있다. 김광규는 4.19의 원동력이 된 비판적 시민정신을 대표하는 시인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그의 산문적 문체가 발휘하는 시적 효과에 대해 강조할 필요가 있다. 그의 산문적 문체는 시적 현실성과 논리적 객관성을 강화시키면서, 억압과 자유의 팽팽한 대립과 살려는 결의를 긴장감 넘치게 전달해준다. 한가지 짚고 넘어갈 것은 김광규의 이러한 결의가 개인의 윤리적 결단으로 그친다는 점이다. 서정시가 갖는 장르적 특질을 고려해야겠지만 그의 시에 연대의 정서가 결여되어 있다는 점은 매우 아쉽다.

8) 역사소설의 새로운 모색


70년대 본격 역사소설이 재등장하게 된 이유는 민중의 삶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점과 현실의 총체성을 과거 속에서 구현해보려는 의욕이 커진 점 등을 들 수 있다. 이런 점에서 70년대 민족문학의 비약적 발전과 본격 역사소설의 등장은 서로 긴밀한 상관관계를 맺고 있다. 70년대의 본격 역사소설들은 식민사관과 실증사관을 극복하고 우리 역사를 주체적 견지에서 해명하려 한 민족사관이 본격적으로 대두된 시대였다. 이런 민족사관의 성장을 바탕으로 우리의 근대사를 새롭게 바라보려는 시도가 광범위하게 이루어졌는데, 이른바 내재적 발전론은 그 과정에서 나온 대표적 논리이다. 내재적 발전론은 식민사관과 실증주의 사관이 만들어낸 심각한 역사 왜곡을 민족사의 주체적 발전이란 맥락에서 바로잡는 것을 가능하게 해준 것이다. 이 시기의 역사적 동향이야말로 현재가 어떻게 형성되었는지를 밝혀줄 수 있는 결정적 단서였기 때문에 70년대 민족사학의 주된 관심영역이었다. 민족문학 역시 이에 부응하여 근대 이행기를 거치면서 우리 민족이 겪어야 했던 고난과 투쟁을 형상화하려는 다양한 노력을 벌였다. 황석영의『장길산』과 박경리의『토지』는 그러한 노력의 연장선상에서 나온 70년대 역사소설의 성과이다. (시부문 성과로는 신동엽의『금강』이나 신경림의『남한강』을 꼽을 수 있다)

『장길산』조선 숙종 때 광대 출신의 장길산을 중심으로 한 당시 민중들의 반봉건투쟁을 대서사시적으로 그린 소설로써 조선 후기 사회의 총체적 모순과 그에 대한 민중들의 저항을 박진감있게 보여준다. 요컨대 인물과 환경의 상호작용을 통해 봉건체제가 몰락할 수밖에 없는 역사적 필연성과 민중이 변혁의 주체가 되어야 하는 당위성을 자연스럽게 독자들에게 전달하는데 성공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당시의 생활상과 풍속을 홍명희의 『임꺽정』에 필적할 정도로 충실하게 재현해낸 점도 이 소설의 리얼리즘적 성취를 풍부하게 해준 주요한 요인이다. 즉 디테일의 진실성이 인물과 환경의 전형성을 보강해주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중심인물인 장길산과 박대근의 형상이 당시의 현실에 비해 지나치게 앞서 있는 점은 이 소설의 결정적인 한계이다. 역사소설은 현재의 전사(前史)를 다루는 소설양식이다. 따라서 역사소설은 일차적으로 대상 시대의 상황을 있는 그대로 그리는 것을 과제로 하며, 그럴 때 다음 시대로 나아가는 객관적 경향성이 올바로 드러나게 된다. 그렇지 않고 현재적 의의에 집착하여 당대의 현실적 한계를 초월한 인물이나 상황을 그릴 경우 그것은 일종의 ‘낭만적 허위’에 빠져 예술적 전형성을 잃게 된다. 『장길산』 역시 동일한 문제점을 보여준다. 결말부의 작위적이고 황당한 처리도 이런 문제점의 필연적 귀결이다. 황석영의 상당수 소설이 보여주는 인물의 영웅주의적 형상화나 비현실적 낙관주의 등의 반리얼리즘적 편향은 여기에서 기인한다. 작가가 역사소설을 현재의 ‘전사’로 이해하지 않고 현재의 ‘우화’로 생각한 데 따른 산물이다.

70년대 역사소설의 쌍벽을 이루는 박경리의 『토지』는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중반까지를 시대적 배경으로 하여 지주인 최참판 집안의 몰락과 재기를 다루는 가운데 당대 현실의 총체상을 그려내려는 야심찬 시도를 보여준다. 특히 토속어의 탁월한 구사, 생동감있는 인물 묘사, 당시의 생활상에 대한 풍부한 재현 등을 기반으로 하여 길상. 용이. 월선이. 윤보. 김환. 윤도집. 등 당대 민중들의 다양하면서도 궁극적으로 민족해방운동의 길로 귀착되는 삶의 행로를 감동적으로 형상화한 점은『토지』의 압권이다.『토지』는 민중에 대한 역사적 재인식으로부터 출발한 70년대 민족문학의 성과를 총괄하면서 민족문학의 새로운 단계를 예감케 해주는 하나의 귀결점이라 할 만하다.


그러나 아쉬운 점은 토지가 양반 대 평민 혹은 지주 대 소작간의 계급적 대립이라는 당시의 객관적 정황을 애써 무시하려는 경향을 보여준다는 점이다. 물론 최참판과 서희 같은 인물도 있을 수 있고 최참판이 몰락한 지주라는 점도 고려해야 할 것이나 이것 또한 대단히 특수한 경우이다. 따라서 그러한 특수한 경우를 일반화라는 것은 리얼리즘의 기율에 어긋난다. 이는 작가의 민족주의적 편향에서 기인한 결과로 보인다. 이와 함께 일종의 운명론적 세계관이 작품 전체의 서사구조를 지배하고 있는 점도 문제이다. 이 소설이 구한말부터 식민지시대까지의 민족사적 격동기를 시간적 배경으로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역사의 동향보다는 ‘운명의 순환’이라는 주제가 도드라져 보이곤 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이 두 주제를 통일적으로 다루겠다는 것이 작가의 의도겠지만 그러한 의도가 충분히 실현되었다고 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이런 한계에도 불구하고『토지』는 근대사의 전개과정을 통해 우리의 현재가 어떻게 형성되었는지를 웅대한 스케일 속에서 탐구하고 있다는 점에서 역사소설의 고전으로 평가하기에 손색이 없다.

<참고문헌>

*도서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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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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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한석종, 「70년대 한국의 문학현상과 사회현상」, 어문연구, 19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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