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림 시론
1. 리얼리즘 개념과 그 시적 세계의 한국적 수용
문학에서 리얼리즘(Realism)이란 용어와 개념은 19세기 중반 유럽 문단을 중심으로 처음 생겨났다. 그런데 어떠한 문학이든 전적으로 현실을 도외시한다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에 리얼리즘이란 개념은 본질적으로 광범위하고 모호한 개념이 될 수밖에 없다. 따라서 리얼리즘이라는 용어는 발생된 유래에 따라 다양한 내포를 갖기 때문에 항상 일정한 한정사와 더불어 사용되곤 하였다. 예를 들어 부정적 리얼리즘, 프롤레타리아 리얼리즘, 부르조아 리얼리즘, 환상적 리얼리즘, 자연주의적 리얼리즘, 변증법적 리얼리즘, 비판적 리얼리즘, 사회주의적 리얼리즘, 양심적 리얼리즘, 의식적 리얼리즘 등이 그것이다. 그런데 한국에 수용되고 논의된 리얼리즘은 모더니즘의 상대적 개념으로 사용하는 것으로, 그 의식 속에 당대의 역사적 현실에 대한 사실적 관심이 함유되어 있는 경향을 한정적으로 지칭하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리얼리즘이 우리 시단에서 의식적으로 추구된 것은 1920년대부터다. 일제의 식민지 지배라는 정치적 배경 속에서 탈식민의 한 방법으로 1920년대 초 마르크시즘이 한국에 도입되고, 1920년대 중반에 이르러 마르크스주의적 세계관에 기초한 문예운동단체 ‘카프(KAPF)’가 조직되면서 문학의 창작과 이론에 걸쳐 본격적으로 리얼리즘이 추구되기 시작하였던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리얼리즘은 창작 측면에서 고찰해볼 때 1920년대 초기부터 두 갈래로 대립적 모습을 보이고 있는데, 그 하나는 비판적 리얼리즘이라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사회주의적 리얼리즘이라고 하는 것이다. 오늘날 이렇게 두 용어가 정리되어 인식되고 있지만, 여기에 이르기까지 오랜 기간 여러 모양의 발전적 계보를 형성하며 논쟁 및 논의가 있었다.
사실 역사적으로 볼 때, 근대는 모더니즘이 아니라 리얼리즘과 함께 열렸다. 즉 19세기말 유럽 선진 자본주의 국가들이 제국주의 단계로 급속히 이행하면서 자본주의의 모순을 노골적으로 드러내었으며, 한편으로는 부르조아 예술의 퇴폐적 경향이 나타났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일시적으로 쇠퇴했던 리얼리즘적 경향이 그 모순 된 현실을 직시하고 비판하는 내용으로 다시 활기를 띠고 나타났는데 이처럼 자본주의 모순에 대한 비판적이라는 의미에서 비판적 리얼리즘이라고 하는 것이다. 그리고 모더니즘은 비판적 리얼리즘이 자본주의를 비판하면서도 예술적 관습에 있어서는 부르조아적 근대성을 탈피하지 못한 데 대한 각성으로 자본주의적 근대성에 근거한 예술적 관습에 저항하는 것을 본령으로 탄생하였다. 그리고 원래 비판적 리얼리즘이라는 용어는 사회주의를 전제로 한 리얼리즘과 구별하기 위해 생겨난 것이었다. 즉 자본주의의 모순은 자본주의란 전제를 인정하는 한 그 해결이 불가능하다는 인식에서 사회주의가 발생하였고 이러한 사회주의의 발달에 따라 사회주의 리얼리즘이 생겨났는데, 이처럼 비판적 리얼리즘이란 용어는 사회주의 리얼리즘의 이론적 정립과정에서 변별적으로 분류된 개념이며 명칭인 것이다. 우리문단에서도 이러한 리얼리즘 문학에 대해 특히 1930년대 중반과 해방 직후에 진보적 문학 진영에 의해 높은 이론적 수준에서 심도 있는 탐구가 집중적으로 행해진 바 있다.
그런데 6.25 한국전쟁과 더불어 한반도는 사상 측면에 있어 흑백논리가 지배하는 통제사회가 전개되었고, 그 결과 발생에 있어 마르크시즘과 연결되어 있다고 생각되는 리얼리즘에 관한 논의는 남한에서 더 이상 설 자리를 찾지 못하고 사라지게 되었다. 논의의 주역들이 거의 대부분 월북하였고 문단에도 냉전의식이 깊이 스며들어 매카시즘이 기승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서구 자본주의가 본격적으로 들어오면서, 즉 구체적으로 1950년대와 1960년대 이후의 파행적 경제발전이 초래한 농촌사회의 황폐화 및 도시빈민층의 창출과 그리고 정권유지를 위한 과도한 자유의 억제, 부정부패의 만연 등 정치사회적 모순은 문학의 눈을 가리고 머리를 짓누르고 있는 허위의식과 무관하게 심화되어갔다. 하진만 냉전 이데올로기를 지지기반으로 하는 당대의 국가 권력과 반공 이데올로기를 수단으로 가장 초보적인 수준인 자유민주주의의 문단은 1960년대에 이르기까지 이른바 순수문학이 문단을 지배하는 문학적 특수성을 보이게 된다.
그러나 서서히 자각되기 시작한 민주주의의 의식은 4.19 학생의거를 불러왔고 이후 전개된 5.16 쿠데타 등 일련의 사건은 문학도 더 이상 ‘현실’을 외면할 수만은 없다는 인식을 확산시켰다. 그리하여 리얼리즘은 60년대를 들어 ‘순수-참여 논쟁’의 형태로 다시 수면위로 부각하였는데, 당시 참여론의 입장은 문학도 인간의 삶을 기반으로 한 것이고 따라서 그 삶의 배경인 ‘현실’을 외면한 것은 아니라면서 참여문학은 곧 문학의 ‘정치’에의 예속을 의미하는 것이거나 혹은 그것에로 귀결되는 것이 아니냐고 의문을 제기하고 또한 그 ‘정치’란 것은 일반적인 의미에서의 그것이라기보다는 좌익적 이데올로기를 의미하는 것이어서 결국 참여론은 과거 카프나 문학가동맹의 주장, 또는 공산주의자로 전제된 사르트르의 참여론에 은밀히 혹은 공공연히 연결되게 된다고 비판하였다. 그리고 이런 ‘순수-참여’ 논쟁과 연관되어 김수영과 이어령 사이에 전개되었던 문학에 있어서의 ‘정치적 자유와 창작의 자유’에 관한 논쟁이 《조선일보》 라는 일간지에 게재됨으로써 일반 독자들의 관심을 끌었다. 이 과정을 통해 문학에서의 냉전의 벽을 깨부수는 데까지는 이러지 못하였지만, 우리 문학은 다시금 문학의 현실 연관성이라는 명제를 획득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정치세계에 있어서는 ‘자유민주주의’를 표방하면서도 그것이 실천되지 못하는 역사현실에 대한 강한 부정정신에서 출발하여 우리 문단에 새로운 리얼리즘이 등장하였는데, 이것은 이후 자본주의적 생산관계의 모순과 열악한 노동현실을 계기로 하여 민중적 자아의식의 획득 등을 내용으로 하는 민중문학론, 분단현실이란 부조리 상황의 극복을 내용으로 하는 민족문학론으로 이어지게 되었고, 이들은 모두 반독재투쟁 및 통일운동에 있어서의 문학적 대응으로 출현한 것이었다. 그리고 그 주류는 비판적 리얼리즘의 계통이었지만 방법론에 있어 사회주의 리얼리즘을 일부 받아들이는 등 혼효의 양상을 보여주는 등 다양하게 전개되었다. 하지만 1990년대 들어 공산권의 붕괴 및 군사독재정권의 종식 남북관계의 변화 제반 상황의 변화와 아울러 포스트모더니즘 등 새로운 사고관점의 등장은 기존의 다양한 리얼리즘에 대한 입장에 더하여 또 다른 변화를 가져오고 있는 시점인데, 최근에는 모더니즘과의 회통에 대한 논의도 제기되고 있는 것이 현재의 상황이다.
리얼리즘 문학은 본래 소설을 중심으로 발전해온 논의인데 리얼리즘에 관한 기존 이론을 장르적 특성이 다른 시세계에 그대로 적용하는 것이 과연 적절한 가에 대한 문제가 있을 수 있다. 리얼리즘 문학에 있어 이론적 토대를 세운 엥겔스는 창작방법으로서의 리얼리즘을 논함에 있어 ‘세부의 진실성, 전형적 환경, 전형적 인물’을 시창작에서도 적용되어야할 기준으로 제시하였고, 시에 있어서도 일단 준거의 틀로 삼아야 될 것이라고 하였지만 사실 이러한 기준을 시에 그대로 적용한다는 것은 상징과 생략, 응축과 비약 등을 다양하게 구사하는 장르적 특성상 많은 어려움이 많았다.
그리하여 리얼리즘 시론을 논하는 연구자들은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기존 리얼리즘 문학의 원칙을 시대적 장르적 상황에 맞게 재구성하고 있는데, 크게 시에 있어서는 ‘시인의 주관’ 과 ‘현실의 총체적 반영’ 즉 ‘세계관’ 과 ‘전형’의 문제로 압축됨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아직도 ‘분석의 준거’를 구체적으로 어떤 내용으로 할 것이냐에 관해서는 견해의 통일을 이루지 못하고 연구자마다 자신이 연구하는 작가에 맞추어 다양한 스펙트럼을 제시하고 있다. 이러한 이유로 같은 리얼리즘 시세계인데도 불구하고 시인에 따라 논하는 연구 진영이 나뉘어 있고 이들 각 연구 진영은 자신들만의 이론적 준거로 연구하고 있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실정이다. 리얼리즘 문학은 리얼리즘의 본질상 시대적 배경에 따라 다르게 전개되지만 그 기본적인 함의는 ‘연속적 세계관’과 ‘현실반영’이라는 점에 있어서는 다를 수 없는 것인데, 시세계마다 다른 논거를 제시한다는 것은 이론이 갖춰야할 일반적인 요건, 즉 보편성에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리얼리즘 시론을 논하는 연구자들의 견해에 의하면 1920년대 ‘카프’에 의해 처음 도입된 리얼리즘은 1930년대 이용악, 오장환 등에 시적성취 면에서 결실을 보여주었는데, 6.25와 냉전체제로 인해 단절되었다가 1960년대 부조리한 현실에 대한 김수영과 신동엽의 참여문학으로 다시 회생하게 되었고 이후 민중, 민족문학으로 이어진다고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런데 일제하 리얼리즘 문학이나 민중, 민족 문학을 논의하는 경우 보통 엥겔스나 루카치의 이론을 적용 또는 변용하여 작품분석을 하는데, 이러한 기존 리얼리즘 시에 관한 이론적 준거는 한국의 많은 시인들의 시에는 적용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이는 리얼리즘 이론이 처음 소설을 중심을 발달하였는데, 시와 소설은 그 형식에 있어서 전혀 다른 장르인데도 불구하고 소설에서 사용되는 인식의 틀을 리얼리즘 시의 ‘전형’을 논함에 있어 그대로 적용하거나 또는 근본적인 수정 없이 변용하여 원용한 까닭에 분석의 구체적인 대상이 뚜렷이 표착되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리얼리즘 시를 연구하기 위해서는 먼저 시의 장르적 특성을 고려하여 리얼리즘 시에 있어서 보편적으로 적용될 수 있는 인식의 틀을 설정해야 할 것이다.
2. 모더니즘의 변증법적 수용과 김기림의 시론
모더니즘(Modernism)이란 무엇일까? 한마디로 단언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모더니즘은 그 특성상 주관성과 개인주의를 본질적인 속성으로 하기 때문에 다원적이고 상대적인 관점에서 파악될 수밖에 없다. 따라서 로이시(Roicy)의 언급처럼 ‘모더니스트의 수만큼 많은 모더니즘이 존재한다’고도 할 수 있고, 그 결과 모더니즘에서 탐구의 본질적 대상인 모더니티(modernity)는 매우 광범위하고 다양한 의미로 쓰인다. 하지만, 모더니즘은 본질적으로 아도르노(T.W. Adorno)가 지적한 것처럼 연대기적 범주가 아닌 질적 범주로서, 대체로 과거적인 것을 거부하는 새로운 질적 변화, 혹은 하버마스(J. Habermas)의 표현을 빌면, ‘자기 자신을 자발적으로 갱신하는 시대정신’을 의미하며 현상에 대한 비판과 자기비판을 폭넓게 전개하는 사고방식을 말하며, 시에 있어서는 주로 기존 양식을 거부하고 새로운 형상화의 방법을 모색하는 형태로 표출되었다.
우리 문단에서 모더니즘이라고 할 때 보통 고전주의적 성격의 모더니즘(영미계: 주지주의, 이미지즘 계통)과 낭만주의적 성격의 모더니즘(유럽계/대륙계: 초현실주의, 다다이즘, 미래파, 입체파, 표현주의 등 소위 ‘avant-grade' 계통)을 통달해 왔다. 전자가 고전주의 정신을 지향한다면 후자는 낭만주의적 정신을 지향하므로 각기 고유한 세계관에 입각하여 그 이론의 정당성을 주장하였던 만큼 초기 단계에 있어 상호 영향없이 별도로 발달하여 왔다. 이 상반하는 두 가지 예술사적 경향이 ‘모더니즘’이라는 용어로 한데 묶이게 된 것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의 영미인들의 문화적 패권주의와 더불어 상대적으로 높아진 미국의 문화적 위상 때문에 유럽 쪽에선 거의 쓰이지 않던 이 용어가 서구 문학 전체를 대상으로 확산될 수 있었다. 하지만 이처럼 서로 다른 경향들이 하나의 명칭으로 묶일 수 있었던 것은 양자는 근대세계의 특성과 경험을 미학적으로 재구성하려했다는 점에서 그 차이점 못지않게 공통점을 공유하고 있었으며, ‘문명사에 대한 위기의식과 전환 기점으로서의 역사 진보의 개념’이라든가 ‘전통, 신념 등에 있어서 과거 유산의 거부와 기존의 관습, 가치, 도덕, 신념으로부터의 해방’ 및 ‘크리스챤 휴머니즘의 극복을 위한 네오 휴머니즘의 탐구'라는 그들이 지닌 공통된 이념과 공통된 문명사 의식 때문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모더니즘이 우리 시단에 최초로 소개된 것은 1920년대다. 1918년 9월 처음 발간된 《태서문예신보》가 서구적인 개념의 문예사상을 본격적으로 소개하기 시작하였는데, 1920년대에 들어서면서 미래파, 입체파, 표현주의, 이미지즘, 다다이즘, 아나키즘, 소용돌이파, 초현실주의, 그리고 프로문학 등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흐름의 서구의 새로운 예술사조들이 ‘신흥문예ㆍ신흥예술’이란 이름으로 소개되면서 들어온 것이었다. 하지만 이렇게 일찍부터 우리문단에 모더니즘이 소개되었지만 1920년대에는 이러한 흐름이 의미 있는 하나의 집단적 창작 작업으로 이어지지는 못하였고 본격적인 모더니즘 운동은 1930년대 와서야 가능하게 되었다. 왜냐하면 1920년대 중반에 이르러 일본 제국주의와 봉건적 사회질서라는 ‘이중적 압박과 착취에 허덕이는’ 현실에 대한 지식인들의 각성이 확산되면서, ‘인생의 예술화’를 추구하는 예술지상주의적 신흥사조들은 ‘뿔조와의 자유주의 의식과 사상이 혼혈된 것’이며 ‘국부적 생의 표현인 병적 예술’이라는 비판을 받고, 앞으로의 신흥예술은 모순의 사회현상을 타파하는 ‘혁명예술’이 되어야한다는 주장에 압도되었기 때문이다. 즉 모더니즘 운동의 효시라고 할 수 있는 개인적 차원의 부정정신에 근거를 둔 초기의 미학적 전위주의 성향의 신흥문예는 일제 식민지 치하라는 당시의 현실 상황에 비추어 볼 때 역사의식을 망각한 부르조아계급의 개인주의적, 비사회적인 향락적 퇴폐적 사고 경향에 불과한 것이라고 비판을 받았고, 그 결과 세계를 개조하고 무산계급의 전면적인 해방을 목표 투쟁해야 한다는 목적의식이 강화된 프로문학이 ‘카프’를 중심으로 세력을 얻어 우리문단의 흐름을 주도하는 세력으로 군림하게 된 것이다.
하지만 1930년대 들어서자 일제는 세계적인 경제공황으로 인한 자국의 위기를 타파하기 위하여 대륙침략을 획책하였는데 그 정치작업으로 반제국주의적인 상향인 ‘카프’를 탄압하는 정책을 실시하였다. 그리고 이러한 일제의 혹독한 사상통제는 이념문학의 입지를 축소시킨 반면 순수문학이 다양한 형태로 분화 발전되는 계기가 되었다. 그리하여 일본에서 외국문학을 전공하고 귀국하는 이른바 ‘해외문학파’ 멤버들이 문단에 편입되는 것을 계기로 1930년대에 와서 한국의 근대시는 전대와는 다른 ‘현대적’인 모습들을 지니기 시작하는데, 문학 활동에 있어서 내용보다는 기법에 관심을 두었다. 그들의 동인지라고 할 수 있는 《시문학》은 1930년 3월 창간되었고, 박용철, 정지용, 김영랑, 신석정, 이하윤 등이 중심이 되어 활동하였다. 《시문학》은 다양한 성격의 구성원들이 참여하였음에도 불고하고 그 내부에 하나의 공통적 특질을 형성하고 있었다. 그것은 반이념적인 순수 서정의 추구와 시어에 대한 예술적 자각이었다. 그리고 이렇게 우리 문단에 본격적으로 뿌리를 내리기 시작한 현대적은 특징들은 1930년대 중반 무렵에 이르러 개화하게 되는데 바로 ‘모더니즘 문학 운동’이 그것이다. 그리하여 1930년대 우리 시단에서 ‘모더니즘 운동’이 활발하게 전개되어 김기림, 정지용, 김광균, 이상 등 여러 모더니스트 들이 등장하여 활발하게 활동하며 시론도 개진하고 작품도 발표하였다. 그들은 주로 ‘구인회(九人會)를 중심으로 활동하였으며 도시적 감각과 시의 회화성을 중시하거나 초현실주의적 경향을 보여주었는데, 이러한 모더니즘 문학의 이론적 근거는 김기림과 최재서 등에 의해서 주로 구축된다. 이 시기 모더니스트들의 시작은 주로 서구화와 도시화라는 현대 문명의 시대적 풍경과, 점점 가혹해지는 일제의 식민지 지배로 말미암은 지식인의 자기 소외, 고향 상실감과 무력감의 반영을 그 특색으로 하였는데, 우리 시단의 주요 흐름의 하나로 자리 잡게 되어 이후 현대시의 발전에 있어 커다란 영향을 끼치게 되었다.
그런데 이시기 우리 문단에 모더니즘이 등장한 것을 역사적인 관점에서 조망해보면 일제 파시즘의 지배에 따른 자유주의의 위기에 대한 문학적 대응의 또 다른 한 측면이었던 사실로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즉 사회 개혁적 성향의 리얼리즘이 내용 측면에서의 자유 추구를 목적으로 출현한 반면, 형식측면에서의 자유 추구를 목적으로 미학적 혁신을 지향하는 모더니즘이 등장한 것이었다. 그리고 이후 우리 시단을 살펴보면 그 두 흐름이 시대에 따라 자리바꿈을 하며 문화적 지배소로 작용하고 있다. 따라서 이 두 흐흠은 서로 다른 이론과 실천 양상을 보여주었지만 근본적으로는 ‘근대성’이라는 공통된 인식론적 기반 위에 있다고 할 수 있는데, 바로 이점이 많은 작가들의 작품에 있어 리얼리즘과 모더니즘의 변증법적 통합을 가능하게 한 근본 바탕이라고 생각된다. 또한 모더니즘과 리얼리즘의 변증법적인 통합이 가능했던 것은 본질적으로 미적 모더니즘과 사회적 모더니즘의 관계를 변증법적으로 해석한 아도르노가 언급한 것처럼, 모더니즘 예술은 사회현실에 대한 부정을 목표로 하되 내용이 아니라 형식을 매개로 하는 것이기 때문에 가능할 수 있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한국 모더니즘이론의 선구자 김기림의 초기 시론을 살펴보면 문명에 대한 새로운 태도에서 출발하는데, ‘좋은시’가 되기 위해서는 전대의 시적경향인 감상주의적 로맨티시즘과 카프의 편내용주의를 탈피하여 시가 언어예술이라는 자각을 갖고 문명에 대한 일정한 감수를 기초로, 가치 의식적 산물이 되어야한다고 하였다. 이러한 김기림의 모더니즘은 유럽의 아방가도르 경향과는 구별되는 영ㆍ미계통 그리고 이에 경향을 받은 일본의 모더니즘을 수용한 것으로서, 그는 다분히 이미지즘적 경향의 시론, 즉 기계적인 리듬의 구속에서 벗어난 자연스런 내적 리듬과 명료한 일상어(日常語) 사용과 시각적 이미지의 구사에 의한 회화성(繪畫性)의 추구를 제시했다. 즉 말의 소리[音]로서의 가치, 시각적 영상, 의미의 가치, 또는 이 여러 가지 가치의 상호작용에 의한 전체적 효과를 의식하고 일종의 건축학적 설계에 의해 시가 쓰여 져야 한다는 의미다. 이처럼 그는 음악성을 전적으로 배제한 것은 아니었다. 즉 그가 주장한 것은 시에 있어서 음악성만을 추구하는 것을 반대하는 것이지 극단적으로 회화성을 주장하는 것도 병적이므로 음악성과 회화성을 잘 조화된 하나의 전제로서의 시가 바람직하다고 주장한 것이었다.
또한 김기림은 일종의 역사주의의 성격을 띠는 엘리어트(T. S. Eliot)의 주장을 받아들여 시의 ‘센티멘탈리즘’ 속성을 극복하기 위해선 명징한 지성이 필요하다고 역설하였다. 그리고 주지적 정신은 한 시대가 또는 사물이 혼돈과 무질서의 상태에 있을 때에 그것을 비판하고 정리하기 위하여 요구되는 정신으로, 한 개의 새 시대를 열 수 있는 시인의 힘으로서의 ‘지성’을 의미하였는데, 이러한 주지주의 정신은 감정을 절제함으로써 객관적 현실을 드러낼 수 있게 하였고, 사물의 본질을 바로 볼 수 있게 하는 힘으로 작용하였다.
김기림은 처음에 전대의 우울하고 퇴폐적인 문학에 대한 반동으로 애매몽롱한 감정주의 시가 관념적인 내용의 시를 부정하고 힘과 건강의 균형 상태에서 감정을 적절히 절제할 때 시의 ‘명랑성’이 가능하다는 그 나름의 시론을 전개하였다. 즉 지성에 의한 감성의 정화작용이 명랑성이며 또한 시적 건강성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본래 근대화가 내포한 희망과 억압의 요소에서 희망적인 요소, 곧 서구화한 일본자본주의의 긍정적인 면만을 부각시킨 것으로, 동시대 문단의 현실이나 식민지 조선의 현실과는 동떨어진 상황인식이라는 비판을 받게 되었다.
그리고 초기의 그의 시론은 철저히 모더니즘에 입각하여 ‘강열한 문학적 반역의 정신’과 ‘문학적으로 시대적 의의를 의식한 행동’으로서 시적 기술 즉 형식의 혁신을 주장하였는데, 이점에 대하여 김기림은 다음과 같이 언급하였다.
“시인은 그가 위치한 시대-즉 과거로부터 미래로 향하는 특정한 시간성-는 어떠한 특수한 ‘이데(idée)에 의하여 추진되고 있는가를 항상 이해하지 아니하면 아니 된다. 따라서 그것의 특수한 구상작용으로서의 양식의 발견에 열중하지 아니하면 안 된다. 그러므로 시의 혁명은 양식의 혁명인 동시에 아니 그 이전에 ’이데‘의 혁명이라야 한다. 그렇다고 ’이데‘의 혁명에 그침으로써 시의 혁명이 완성되었다고 볼 수는 없다. 한 개의 ’이데‘가 필연적으로 발전 형성한 특수한 양식을 획득하였을 때 비로소 시의 혁명은 완성되는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개념이 바로 ‘이데’와 ‘양식’이다. 즉 새로운 시대정신(이데)은 새로운 문학양식을 요구하는 것이고 정신의 혁명은 양식의 혁명을 수반한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정신적ㆍ혁명적 앙양기는 적극적인 로맨티시즘의 양식을 요구하였고, 과학적 물질적 정신이 넘치는 시대에는 실험적이고 과학적인 리얼리즘 양식을, 그리고 세기말적 퇴폐시대에는 심볼리즘이나 소극적인 로맨티시즘의 양식을 요구하였다는 것이다. 물론 이 시기에 김기림이 주장한 이 시론은 모더니즘을 주장한 것으로서 ‘이데’가 리얼리즘 시론에서 주장하는 역사적 전망을 획득한 ‘사상’의 의미로 사용한 것은 아니었다. 왜냐하면 그는 기존 시단에 팽만해 있는 감상적 낭만주의 시를 포함한 허무적ㆍ퇴폐적 경향의 시나, 민요ㆍ시조 부흥론은 물론 내용에만 치우쳐 있는 프롤레타리아 시도 다같이 비판하면서 이들 형식은 모두 새로운 시대의 정신에 부합되지 않는다는 주장의 근거로 본 논의를 진행시킨 것으로 보아, 사실 여기에서 그의 본의는 형식의 근대성에 대한 문제제기에 불과하다는 한계를 지니고 있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그이 시론은 점차 기법만을 중요시한 나머지 차츰 현실사회로부터 유리된 기교주의의 나락으로 빠져들게 되었다.
하지만 이러한 두 가지 모순에 직면한 김기림은 곧 자신의 잘못을 자각하고 해결책으로 문학에 있어서의 모더니티 추구도 역사적 상황에 대한 정확한 관측과 판단에 기초하여 이뤄져야 할 것으로 시론을 수정하였고 이러한 반성적 노력은 이후 임화, 박용철 등과의 ‘기교주의 논쟁’을 거치면서 점차 구체화되고 세밀화 되었다. 그 결과 “오늘의 시는 우선 현실의 시, 살아있는 시기 되어야하는데, ‘산 시’라고 함은 사상과 형식이 혼연 융합한 전체”라고 하여 ‘사상과 기술의 결합’이 되어야한다는 결론에 이르게 되었다. 이러한 주장이 바로 김기림의 ‘전체시론’이다.
그리고 김기림의 전기적 사실을 살펴보면 8ㆍ15 광복이 되자 마침내 식민지 상황으로 인한 근대의 파행성을 떨치고 현실 참여에로 나아간다. 시인을 당대의 문사 혹은 지식인으로서 시대정신을 포착하고 그것을 가장 효율적인 양식으로 대중에게 전달하며, 시대정신의 나침반 구실을 하는 새로운 세계의 계시자이며 예언자로서 어떤 소명의식과 선교열망을 지닌 존재로 보는 김기림으로서 “시는 새로운 문화 건설의 한 날개로서 새로운 나라의 등불이며 별”이어야 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제 파행적 근대의 종말과 함께 조선에서의 문학은 ‘새로운 공화국의 건설’이라는 지상명제에 복무하는 ‘오늘의 문학’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였다. 그것은 지식인과 대중이 분리되지 않는 공동체, 집단의 소리로서 민족의 감격을 노래함과 동시에 역사의 발전에 적극적으로 동참하는 모습이 되어야한다는 주장을 의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