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이 건넨 편지

18살 내 첫사랑

by 연서

아주 긴 일주일이었다.

집안일을 하고 책을 보고 모임을 다녀오고 일을 했다. 톱니바퀴 돌듯 어긋남 없이 긴장감속에 움직이는 바쁜 날들이었다. 경칩은 봄을 알리고 못다 내린 눈까지 인사하던 2026년 3월 6일_ 아들에게 편지를 받았다.



수줍게 건네는 하얀 종이엔 핑크색으로 하트가 그러져 있었고 봉투만 봤는데도 왈칵 눈물이 쏟아졌다.

그동안 미안했다고, 엄마는 영향력이 있으며 소중하고 감사하다는 내용이었다. 엄마는 피아노 칠 때가 멋있고 엄마의 꿈을 포기하지 말고 언제나 응원한다는 글이었다. 물론 하루 앞둔 생일을 축하해 주려는 글이었지만 고되었던 일주일의 피로가 싹 가시는 기분이었다.

마지막 멘트는 “저는 저의 꿈을 찾아 떠납니다! ”였다.

자신의 감정을 이입해 쓴 글인 듯 엄마가 꿈을 좇지 않고 돈을 벌러 나간다는 사실이 안타까웠던 것 같다.


꿈은 꿈으로 남겨두고 곁에 둘 때 가장 아름다운 것 같아라고 아들에게 말해준 적이 있었는데 그걸 기억하고 한 말인 듯하다. 아들을 불러 얘기했다. 엄마는 지금도 꿈을 꾸며 살아간다고, 지금 눈앞에 있는 것에 최선을 다하는 것도 행복한 삶이라고… 실제로 난 나의 쳇바퀴를 사랑하니까.




가만 보면 아들과 나는 닮아있는 것 같다.

털털한 듯 예민하고 완벽주의적 성격 탓에 행동력은 달팽이처럼 느릿느릿하다. 눈치가 빨라 손해 보는 일은 적지만 허용범위가 넓어 가만 보면 다 퍼주고 다니는 것 같기도 하다. 자신이 가장 소중한 뻔뻔한 스타일의 소유자이면서 이타적으로 살아보려 노력은 하는 사람. 아무리 T여도 인생에 낭만은 있어야지라며 하늘을 쳐다볼 줄 아는 사람. (물론 아들은 극. 극 F이지만)

결국 좋은 것 말고 나쁜 것도 닮아있는 게 분명하다.




반성문 같은 아들의 편지는 서랍장 위에 고이 올려두었다.


하루가 지나 생일날 저녁, 아들 입맛을 고려해 예약해 둔 솥밥집에 가서 짚불에 구운 장어덮밥과 금태솥밥을 시켰다.

이젠 다 커버린 것 같은 아들과 밥 한 끼 함께 먹는 것에도 나는 마음이 설레고 들떠있었다. 쪼르르 세 식구 앉아 오랜만에 밥을 먹는다. 그것만으로 시간이 천천히 가기를 바랐는지 가운데 앉아 양쪽으로 줄어드는 장어를 보며 모래시계의 모래가 줄어드는 기분이 들었다. 나무문을 열고 내려와 반대편 젤라토가게에서 녹차아이스림을 샀다. 입가심을 한 뒤 집으로 향하기 아쉬워 근처 국립중앙박물관으로 향했다.

슬슬 입이 튀어나올만한 코스였지만 제법 군말 없이 따라왔다. (생일자를 위한 최소한의 매너였으리라) 청소년 아이랑 밥 한 끼 먹는 게 이렇게 어려운 일이었을까?

국중박(요새 이렇게 부르더라)은 학교에서 와봤다며 그때부터 방관자모드가 시작되었다. 사유의 방에서 아들 어깨에 손을 올리고 함께 한 바퀴 걸었다. 속은 집에 가고 싶었겠지만 무뚝뚝하게 라도 있어줘서 고마웠다.


야간개장도 9시에 마감이라 어쩔 수 없이 40분 남짓한 관람을 서둘어 마무리하고 나왔다.

나는 생일자의 혜택을 더 누리고 싶었다. 양팔로 우리 집 남자들을 이끌고 깜깜한 밤하늘 아래 남산타워를 배경으로 함께 사진을 찍으며 1년에 한 번쯤은 서로 원하는 걸 해주자고 얘기했다.

여기서 집으로 바로~ 가면 좋았겠지만 국중박에서 남산타워가 보이니 한번 올라가 보고 싶었다. 나도 참…

결국 아들은 엄만 왜 이렇게 에너지가 좋아라며 볼멘소리가 시작되었고 배도 아프다며 표정이 안 좋아졌다. 배 아프다는 아들을 끌고 다닐 수 없으니 남편은 드라이브로 야경만 보기를 제안했다.

끝까지 올라가기를 포기하고 아래에서 그래, 예쁘다. 충분하다 말했다. 밤하늘의 별도 탁 트인 서울야경도 가슴에 담아 돌아왔다.


너에게는 길었을 나에게는 짧았을 4시간의 밤산책을

글로 묶어둔다.

이렇게 우리는 서로 각자의 생활로 독립해야 하는 시간을 향해간다.

이제 성인까지 2년 , 얼마 남지 않은 것 같다.


내꺼. 금태솥밥
모래시계의 모래가 줄어들듯 사라진 장어
짚불에 구워지는 장어
사유의 방 입구
국립중앙박물관 대동여지도앞에서 훤칠한 나의 밤톨이
남산에서 서율시내 야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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