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속을 어기는 이유

선택할 수 있는 약속과 책임을 배워가는 아이

by 연서

학교에서 전화가 걸려왔다. “아 네~선생님, 안녕하세요?” 들려오는 목소리는 익숙한 아들의 저음이었다.

”엄마, 나 배 아파서 조퇴해도 돼요? “ 흠… 아침에 배 아프다며 등교하긴 했지만 이렇게 이른 시간에 연락이 올 줄이야. “나 오늘 아프면 조퇴전화 할 거니까 받아줘요 “라고 등교했던 적도 있어서 반갑지가 않았다.

아파도 병원 갈 정도 아니면 참을 만큼은 참았으면 하는 마음이었다: 생기부에 적히는 인정조퇴도 물론 싫지만 얼마큼 아픈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버텨보지 않은 것 같다는 생각에 “어 그래 많이 아파? 그럼 집에 와야지”라는 말을 바로 할 수 없었다. 애가 아프다는데 모질고 나쁜 엄마 같지만 내 마음이 그랬다.

나는 “에고, 나아지지 않았구나, 못 참겠니? 병원 갈 정도야? “라고 머뭇거리는 말을 뭉개고 있었고 끝내 집에 와서 편히 쉬라고 말해주었지만 마음은 불편했다. 나중에 만난 아이는 엄마가 바로 답해주지 않아 교무실에서 정말 창피했다며 병원에 다녀왔다. 아이의 잦은 회피가 부모를 무력하게 하는 순간인 것만 같았다.


밤톨이의 전두엽공사는 언제쯤 끝날까? 실제로도 배가 아프겠지만 스트레스에 예민하게 반응하는 아이의 회피심리를 못마땅해하며 돌덩이를 걷어차내지 못한 듯한 답답함이 시간을 더디게 만들었다. 게으른 게 아니라 두려움 때문에 온 신경이 곤두서있다는 걸 알 것 같지만 아이 편에 서서 생각해 보는 게 참 어려운 못난 엄마다.


학원을 착실하게 잘 다니고 그만큼 결과가 잘 나올 때는 학원비가 아깝지 않았다. 집에서 교육하는 지인언니에게 적극적으로 학원을 추천했었다. 고등학생이 되어 학습량이 많아지고 나서는 학원을 추천할 수가 없게 되었다. 과제는 이미 다 해갈수 없는 수준이고, 하루단위로 쪼개진 숙제를 다 마치는 건 하루라도 밀리면 빚에 쫓기는 사람처럼 조바심이 붙어올 수밖에 없다.

공부냉각기를 지나는 중인 밤톨이는 학원을 빠지는 횟수가 잦아졌다. 해야만 하는 것들이 달력에 빼곡히 적혀있는 걸 불편해하는 아이가 약속을 어기는 이유는 약속이 강요된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었다.

부모가 정해준 일방적인 규칙은 아이가 지켜야 할 의무가 아닌 피해야 할 숙제일 뿐이다.

학원을 가기로 본인이 선택한 것은 맞지만 가기 싫어진데도 다 이유가 있을 것이다.

(과제량이 많은지, 수업진도가 너무 빠른 건지, 수업스타일이 아이와 안 맞는지...)


"엄마 내일 아침 7시에 깨워줘요"라고 했다면 부모는 생중계하듯이 약속이행을 해야 한다. 화가 나는 상황이라면 서로의 감정의 뇌가 가라앉을 시간을 허용해 주자.

약속을 어길 때 화내는 건 '감정적 처벌'이 될 수 있고 깨달음을 얻기 위해서는 지각을 하던, 학원선생님과의 신뢰를 잃던 본인이 겪어야 할 불편감임을 알아야 한다.


5분 서둘러 제시간에 갔다면, 무탈하게 학교와 학원을 잘 가고 숙제를 잘해갔다면, 자야 할 시간에 자고 일어났다면 작은 성공이 이미 여러 번이다. 과한 신뢰를 보태어 인정을 해준다면 조금씩 나아지는 아이를 보게 될 것이다. 나는 이렇게 글을 쓰며 부족함을 채워가 보려는 부모다. 여전히 아이보다 내가 우선이지만 아이를 품고 싶어 글을 쓴다: 아이에게서 진정한 독립을 하고 싶어 글을 쓴다.


이제부터는 스스로 선택한 약속을 지켜나가는 아이가 되길, 강요하는 부모의 그릇에서 손을 빼보자.




아이의 독립기가 아닌 아이로부터의 독립을 위해 발버둥 치는 엄마의 글을 쓰고 있습니다. 언젠가 최재천 교수님이 하셨던 말씀 중에 '아름다운 방황'을 허락하고 절벽으로 떨어지려고 할 때는 막아주자며 그것을 '따뜻한 방목'이라고 하셨습니다. 제가 실천하는 애씀중에 하나가 글쓰기입니다. 각자 가는 길은 다르지만 14화 약속을 어기는 이유에 시간 내어 주심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