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답을 찾으려는 부모와 내버려 두기를 바라는 아이
밤톨이가 14살 되었을 무렵이다.
스마트폰 못쓰게 했다고 화를 내버리고 학교로 가버린 아침 가슴에 꽂힌 화살을 뽑던 시간, 단정하게 입던 옷 대신 힙합하는 형들이 입는 물결번지는 느낌의 타이다이 티셔츠를 사달라고 하던 날의 놀람, 멀쩡하게 귀여운데 살짝 시커메진 콧수염과 짙는 눈썹이 불만이라며 해결책을 요구했던 대화, 이름을 불렀을 뿐인데 칼 뽑는 듯한 눈빛을 쏘아내던 시선, 밤톨이에게 노여운 감정이 요동치던 날들이면 나의 일기장엔 걷고 떠들고도 남았던 토사물들이 기록되어 있다. 일기장인들 부정이 박제되는 글만 담고 싶었으랴만 그땐 어쩔 수 없었다.
가슴에 불덩이라도 옮겨 붙은 것 같은 날이면 열까지 세며 심호흡을 했다. 덜 자란 나를 탓할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저때의 마음을 다시 꺼내는 이유는 두 가지, 하나는 잔불씨를 꺼보기 위한 용기와 그때보다는 어른이 된 나를 칭찬하기 위해서다.
돛단배를 띄우는 마음이었다.
잘 접은 종이배지만 덜 튼튼해서
내 손에서 내려놓을 때면 설렘 속에 불안함이 가득했다.
유속이 느리기를,
얕은 물살이지만 종이로 만든 약한 돛단배가 물속 돌부리에 걸리지 않기를,
지켜보는 내내 조마조마하기만 했다.
모르면 불안함이 생기고 바람 부는 대로 둘 수밖에 없는 체념의 상태가 되는데 불안해결 레시피라도 있는 듯 의지할 것이라고는 책을 찾아보는 것뿐, 나는 그 쳇바퀴를 매일 돌려야 했다.
'뇌의 가소성'이란 뇌가 경험에 의해 변화할 수 있으며 플라스틱처럼 성형이 가능하다는 이론이다.
인생의 결정적 시기에 양육방식, 즉 환경이 천성을 바꾸어놓을 수 있다.
아이들에게 사건은 어느 때든 일어날 수 있고, 문제가 생기고 좋지 않은 결말을 맺게 될 상황이 여러 가지로 다르게 일어날 수 있다는 사실을 상기시켜주어야 한다.
10대의 뇌 -프렌시스 젠슨
경험이나 학습, 훈련에 따라 뇌가 기능을 바꾼다는 “뇌의 가소성”이라는 말은 무서운 말 같다. 뇌가 플라스틱처럼 성형이 가능하다면 , 달리말해 부모가 환경과 자극을 잘 제공한다면 아이는 제가 가진 재능을 더 확장시킬 수 있다는 말일까?
그렇다면 오케이, 밤톨이(사춘기아이)를 위해 더, 좋은 환경과 더 좋은 경험을 찾아 보여주자. 선택하게 해 주자. 이 다짐은 나쁜 자극이 침범해 부정적 경험이 반복되면 성격형성에도 나쁜 영향을 끼칠 것 같은 불안함도 담고 있다. 그러니까 밤톨아, 엄마가 여기 유속이 느린 곳에 너를 놓아줄게 잘 좀 건너가 보렴.
부모는 이 시간이 답답해 정답을 찾으려 하고
아이는 그냥 내버려 두기를 바란다.
목 뒤로 뜨끈한 땀이 흘러내리는데 시원해야 할 바람은 맵고 칼날같이 아프기만 했다.
감정이 요동치는 밤톨이(그렇게 귀여운 시절의 아이로 계속 불러주고 싶다)는 오히려 나를 나의 미성숙한 사춘기시절로 끌어내렸다: 쭈욱 잡아당겨 그 거친 바람이 부는 시간으로 되돌려 놓는다. “엄마(아빠)는 어땠어요? 나는 어디로 가야 해요? 나 좀 이해해 줘요. “라고 말하듯이.
열네 살 즈음의 밤톨이를 나는 그저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더 좋은 경험을 찾아 눈앞에 물어다 놓아주는 것보다 말갛고 따스한 눈으로 바라보는 것, 여전히 잔불을 끄는 데도 효과적인 방법임을 안다.
밤톨이가 끌어내려 둔 어린 사춘기의 나를 마주했다면 나는 아이를 품어 혼자가 아님을 알려주고 무언의 지지자가 되어 보기로 한다. 정답을 찾는 대신 어른으로 가는 고개를 하나 더 넘어보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