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춘기의 문 앞에서

문 너머의 세계가 시작된다.

by 연서

밤톨같이 귀엽고 사랑스러운 아이가 청소년이 되었다.

중학교 1학년, 키는 나를 따라잡았지만 엄마의 마음은 여전히 어린아이를 보는 듯하다.

밤톨이에겐 이제 키즈폰이 아닌 스마트폰이 생겼다.

학교공지는 왜 카톡으로 하는지, 스마트폰사용 전과 후는 사춘기오기 전과 후와 비슷했다.


“감정은 바꿀 수 없지만 생각은 바꿀 수 있다”는 지나영 교수님의 강연을 듣고 화이트보드에 적어본다.

부모교육강좌에서 들었던 '청소년기의 특징'도 메모해 두었다. 서로 실천해 보자는 취지였다.

(‘질풍노도의 시기가 와서 혼란스러울 밤톨아, 청소년기는 원래 그런 거래, 긍정적으로 생각해 보자 ‘)


다툼이 생기는 날에는 아이의 말을 기록해 봤다. 상황이 되면 녹음도 했다. 그렇게 하면 내가 했던 말에 문제는 없었는지, 좀 더 객관적인 뷰가 생긴다.

삐뽀삐뽀 119만 붙들고 쩔쩔매던 시기가 다시 온 것 같다

어제의 너는 없고 낯섦이 와있다. 나의 애씀은 스스로를 토닥이기 위한 내면의 “임시치료제“들이었을지도 모른다.



문을 닫는 아이에게 이제 문뒤에 세계가 생긴 것이다.


아빠엄마와 같이 자려고 한 밤톨이를 생각해 침대를 킹사이즈로 마련했었다. 밤이면 오손도손 그날의 일들을 이야기하다 잠이 들곤 했었다. 과거형의 문이 닫히고

중학생이 된 밤톨이는 "엄마랑 자면 뭔가 이상해요, 이젠 혼자 잘래요"라고 독립을 선언했다. 우리는 때가 왔음을 받아들여야 했다.

휴대폰의 선기능은 학기 초부터 친구들을 쉽게 사귀는 것이었다. 문 너머의 세계에서 함께 갈 친구들이겠지?

나는 아이가 오픈하는 만큼만 다가가고 보이지 않는 부분은 여전히 '신뢰'하고 있다. 관심은 질문이 되고 질문은 의심이 된다. 위험할 땐 다시 방법을 찾아본다.


'청소년하숙생요법'(지나영교수)을 적용해 볼까? 청소년기에 있는 아이를 하숙생 대하듯 존중하고, 문제상황이 발생할 경우 “사람이 아닌 문제에 집중” 해 함께 해결책을 찾는 방법이다. 스마트 폰도 방법이 있었다. 스마트폰을 사용하지 않는 시간에 무엇을 하는지 관찰하는 것이다. 주로 예체능관련된 것 일 텐데 그것이 스마트폰을 대체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 한다.


매일 만보씩 걷고 건강한 신체와 기분으로 아이를 맞이하려 노력한다.(사춘기부모는 자꾸 걷게 된다) 하지만. 죽일 놈의 사춘기를 처음 마주한 엄마는 버겁다.

절대 포기하지 않기로 스스로와 약속한다.

감정보다는 이성이 좋은 엄마와 감정적으로만 이야기할 수 있다는 아이. 과연 갈등이 좁혀질 날은 올까,

올 테지, 다 지나갈 테지?

숲을 보고 방향만 잘 가지고 가면 됨을 안다.

하지만 눈앞에 턱턱 나무기둥이 와서 시야를 가린다.

주저앉아 엄마도 울고 싶어 진다.

닫힌 문 앞에서 무엇을 할까, 문은 열릴까?


표면은 거칠지만 꼬옥 안아주고 싶은 나무



아이의 사춘기는 나무기둥이다.

나는 코앞의 거칠한 나무껍질을 보며 나무임을 알아차린다. 잘 자라날 위를 올려다보고 숨을 들이마신다.



나무껍질에 손을 올려본다. 거칠다.

꼬옥 안아주고 싶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