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일 놈의 사춘기

감각할 수 없는 시간의 의미

by 연서






“제발 그만 좀 해요, 내가 이렇게 말하잖아요!”

“살고 싶어요, 나도 생각이 있어요 “ 십 대의 아이가 엄마의 양팔을 붙잡고 입에서 터져 나오는 포효를 향해 더 크게 울부짖으며 포효한다. 맹수의 눈처럼 날카롭고 매서운 기세에 엄마는 낮게 으르렁거리며 한 발 물러난다. 날카로운 생명은 목표물을 향해 달려왔고, 자신힘의 최대치를 생존(대학)을 위해 쓰고 있다.


두렵고, 두렵고 또 두려운 시간.

달리고 달려도 또 달려야 하는 시간.


공부사춘기는 따로 있다더니 고등학생이 된 밤톨이(아이를 부르는 애칭)에게도 올 것이 온 것 같다.

주 3회 석식을 먹고 야자를 마치면 밤 10시, 스카(스터디카페)까지 다녀오면 12시를 훌쩍 넘기고 잠들기를 반복한다. 휘몰아치는 시험과 평가를 해치우고 나면 비교과 활동을 신청해서 책도 읽고 토론도 해야 한다.

학생의 본분인 공부를 성실하게 임해왔지만, 그래야만 인정받는 구조속에서 한숨을 쉰다.

학교에서는 꿈은 묻지 않지만 희망전공은 묻는다.

국어시간조차 진로에 관한 조사와 설계가 평가 주제기에 어쩔 수 없이 제출일까지 희망전공이 정해진다.

전공에 따라 과목을 선택하게 되고 이후엔 선행을 하고 다시 시험을 치르는 쳇바퀴가 돌아간다. 함께 공부하던 친구들과는 어쩔 수 없는 줄 서기를 해야 한다.( 5등급제는 또 뭐야, 엄마들은 한우만 봐도 1등급부터 찾는다니)


번아웃이 온 밤톨이는 귀에 이어폰만 남기고 나머지를 잠시 내려놓았다.

먹잇감은(성적) 잡히지 않는데 배가 고파도 할 수 있는 건 늘어져서 낮잠을 자는 것.

태평하다는 부모의 잣대는 걱정근심 없이 한가로이 늘어진 상태를 말하겠지만

밤톨이는 이어폰을 낀 채 천하태평하게 누워 음악을 들으면 땅의 차가움과 해의 따스함이 충전되나 보다.

태평한 시간이즈 충전시간으로 해석하지 뭐. 별 수 있나요?


"공부는 때가 있지요" " 눈 깜짝할 새 애가 벌써 고3이에요"

때가 있다는 말, 눈 깜짝할 새라는 말속에서의 시간은 잠시 감각하지 못한 순간을 의미한다.

아기였던 녀석이 그리운 날이 찾아오면 휴대폰 속 어린 시절의 사진과 동영상을 찾아본다.

빨래더미 앞에서 막춤을 추고, 서투른 수저질로 시리얼을 푸다가 조금 담기면 안 먹을래, 많이 담긴 것만 먹으며 욕심과 의지를 보여주고, 움직이지도 않는 양을 보며 "양아 이 풀을 먹어주겠니" 라며 예쁜 말을 쏟아내던 모습, 부산태종대 절벽에서 "엄마 안쪽으로 와요, 내가 지켜줄게요"라며 감동적인 말을 해주었을 때, 너는 모르겠지만 고맙다. 이런 추억을 담게 해 줘서,라는 말이 절로 나온다.

시간은 느리게 가는 듯했지만 어느새 자란 아이를 보며 이 시간이 그리워 추억하고 있다니,

답답한 시기에는 시계를 들여다봐도 침의 이동이 더디기만 하다.


겨울은 두 계절의 감각이 섞여 있다. 본질만이 남아 새로운 시작을 준비한다.

포효하는 아이는 겨울나무다.

불확실하고 계산이 불가능한 흙이다.




불확실한 기다림, 꼭 필요한 참을성, 느린 성장이 특별한 시간감각을 불러온다(땅의 예찬-한병철)




쉽고 편안한 길은 어딜 가도 안 보인다. 다만 포효와 포효가 만나고 뒤돌아서는 자리에 피어난 작은 꽃 한 송이.

미움과 사랑과 이해 사이에서 피어나는 미안함과 사과, 반성의 따스함이 한걸음 나아가게 할 뿐.



“구원이란, 무언가 풀어주어 본래의 본질로 되돌린다”는 거라고 한다. 양질의 흙을 다져본다. 떨어진 낙엽의 의미를 새겨낸다. 겨울나무처럼 외로워 보이는 아이에게 남아있는 가지의 본질을 보고 찬 바람과 겨울의 해가 꼭 필요함을 알아차려본다.

아무도 찾지 않는 겨울의 고요한 시간이 지나면 죽일 놈의 사춘기에도 봄 눈꽃이 올라올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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