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의 르쿠르제

by 너무 다른 역할

그녀는 내가 없는 동안 집에서 냄비를 가져가겠다고 했다.

그 편이 내가 불편하지 않을 거라는 말을 덧붙이면서.

헤어지기 전과 다를 바 없는 말투의 문자메시지였다.


이별을 통보받은 지 며칠 지나지 않았던 그때,

나에겐 그녀와의 모든 대화가 반투명했다.

평소 알던 단어들의 의미와 그녀의 어감은

100%의 명도를 잃고 어딘가 모르게 흐리멍덩했다.

A라고 말하면 a나 AA로 알아들어도 대충 상황이 흘러갈 정도로. 그래서 그녀가 집을 통째로 가져간다고 해도 그러라고 했을 것이다.


그녀가 말한 냄비는 빨간색 르쿠르제 무쇠냄비였다.


한창 사람들 사이에서 입소문이 날 즈음이었을 것이다.

평소 인테리어와 주방기기에 관심이 많던 그녀는 나를 데리고 어느 동네에 생긴 매장으로 가서 빨간색 냄비를 하나 샀다.

그리고는, 부모님과 같이 사는 집이어서 자기 방에 그걸 두기가 애매하니 내 집에 놓겠다고 했다.

그때 우리는, 같은 집에서 살 미래를 입 밖에 내었던가 아니었던가.


우리는 집에 와서 냄비의 묵직해 보이는 빨간색을 잠시 감상하고 벽장에 넣어두었다.

그리고 몇 달 후, 우리는 헤어졌다.



그녀는 냄비를 가져간 후, 잘 지내라는 문자를 남겼다.

흐릿한 독해력으로, 나는 그 말을 고맙다 미안하다, 로 오독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렇게 읽는 게,

이 헤어짐을 보다 평범하게 만드는 방법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몇 달, 힘들었다.

일상을 멈춘 건 아니었는데 많은 것들을 해치우듯 넘겨버렸다.


그 후 우리 둘이 헤어졌다는 사실을 완전히 받아들인 뒤,

그러니까 브로콜리 너마저의 '보편적인 노래'를 천 번쯤 듣고 난 어느 시점부터는

절반쯤 무게가 찬, 그리움이란 단어를 사용하기 시작했고,

얼마의 시간이 더 흐른 뒤에는, 재밌게 사는지 가끔 궁금할 정도가 되었다.



중고매매 앱에 올라온 빨간색 르쿠르제 냄비를 보고 그녀를 떠올렸다.


몇 년 전, 나는 그녀가 아들 둘을 낳아 잘 살고 있다는 걸 우연히 알게 됐다.

하지만 그녀의 현재를 들여다볼 생각은 그 전에도 없었고 지금도 없다.

당연히, 연락이 닿았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없다.


어디선가 나와 같은 속도로 늙어갈 그녀는 아마 그 냄비를 아직도 사용할 것이다.

원래 물건을 오래 쓰는 사람이었고, 이 물건은 그녀가 고심해서 고른 것이었으니까.

그 묵직한 색감과 더 묵직한 질감은 이제 그녀의 손에 완전히 익었을 테고,

수많은 요리들이 냄비를 드나들었을 것이다.



그녀와의 연애 이후, 오랜 시간이 흐르면서 몇 번의 연애를 더 거친 지금은,

그녀에게서 그녀를 찾지 않는다.


어느 계기로 그 시절을 떠올릴 때 생각나는 건,

그 당시 두 사람이 나눴던 대화나 취향 같은 것들이다.


우리는 지금보다 덜 확고했고, 그런 이유로 덜 판단했다.

그리고 그런 이유로 더 많은 얘기를 할 수 있었다.



그리운 사람에게선 그리움을 찾을 수 없다.


억지로 그리워하는 순간, 과거는 왜곡된다.

그 왜곡 속에서는 우리가 찾던 순수함을 찾을 수 없다.

그리워했던 누군가에게서 확인할 수 있는 건, 부등호의 세월뿐이다.


어쩌면 어느 날, 굳이 빨간색 무쇠 냄비를 사러 갈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건 20대의 어느 시절 그녀와의 기억이 떠올라서가 아니라,

천천히 끓고 천천히 식는 묵직한 무언가가 필요해서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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