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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너무 다른 역할 Jan 28. 2018

모든 시스템이 외면할 때, 당신은 체념할 것인가

[ 더 트루스 : 무언의 제보자 ]


"느끼는 모든 감정을 추스르고 섞으면 결국 체념이 된다.

그것은 캄캄하고, 끝없이 깊고, 풍부하다.

인간이 이를 곳은 결국 체념이다."

-소설 '근처', 박민규


http://movie.daum.net/moviedb/main?movieId=47639


반짝이는 영웅을 만들어낼 수 있는 소재였지만,
영화는 끝내 영웅을 내보이지 않았다.

대신, 영화가 택한 길은 '시간의 흐름'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그 흐름 속에서 주인공들은 저마다 내보이지 않으려 했던 자신의 얼굴과 감정을 서서히 드러낸다. 그들이 이른 곳은 과연 어디였을까?


영화는 미국 부시 행정부 때의 '리크게이트'를 토대로 만들어졌다. 리크게이트는 이라크 침공의 명분으로 부시 행정부가 주장했던 대량살상 무기의 보유 주장이 근거가 없다는 주장을 한 대사의 기고와 관련하여, 다른 칼럼니스트가 그 대사의 부인이 CIA 요원임을 실명으로 밝히면서 벌어진 사건이다. 법적으로 비밀로 유지돼야 할 CIA 요원의 정체를 백악관 관료가 흘렸고, 이 관료의 정체(제보자)를 알고 있던 다른 두 명의 기자에게 법원이 제보자의 정체를 대라고 명령했다. 한 사람은 제보자의 동의를 얻어 실명을 말했고 한 사람은 끝내 이름을 대지 않고 수감생활을 했다. 영화는 리크게이트의 모든 실화적 요소를 가져오지는 않았다. 이라크는 베네수엘라로 윤색됐고, 대량살상 무기는 미국 대통령 암살사건으로 치환됐다. 그 외의 세부적인 요소들과 등장인물도 같은 맥락에서 영화적으로 재탄생됐다.

출처 : Daum 영화


줄거리는 이렇다.


1. 베네수엘라 정부가 미국 대통령 암살기도 사건의 배후에 있다는 미국 정부 조사가 발표되고 미국은 베네수엘라 군사기지를 공격한다.

2. 여기자인 레이첼은 CIA의 보고서에는 베네수엘라가 연관이 없다고 적혀있었고, 이를 대통령이 무시했다고 보도한다. 이 기사에는 보고서를 작성한 CIA의 요원 에리카의 실명이 포함돼 있다.

3. 정부는 신속하게 특검을 구성해, 레이첼에게 CIA 요원의 정체를 흘린 최초 제보자의 정체를 대라고 한다. 언론의 자유를 들며 거부하던 레이첼은 법정모독죄로 구치소에 수감된다.

4. 특검과 판사의 갖은 회유와 협박에도 레이첼은 입을 다물고, 350여 일이 흐른다.

5. CIA 요원이었던 에리카는 배신자로 낙인찍혀 CIA를 그만둔 상태에서 우익 정신이상자에게 살해된다.

6. 죄책감에도 불구하고 끝내 입을 다문 레이첼은 판사에 의해 석방되지만, 집으로 가는 길에 다시 특검에 의해 기소되며 구치소로 되돌아간다.

7. 특검은 법정모독죄로 레이첼을 기소해 결국 구치소가 아닌 감옥으로 향한다.



영화는 350여 일의 구치소 생활을
시간의 흐름에 따라 정갈하게 보여준다.

하지만 정갈하다는 것이 임팩트가 없다는 뜻은 아니다. D-OOO으로 표현되는 몇 개의 날짜에, 레이첼은 엘리트 기자로서 겪으리라고 생각지 못했던 일들을 겪는다. 사건 초반 정부를 비난하던 모든 언론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그녀를 잊었고, 작가인 남편은 다른 여자와 바람이 난다. 원칙을 수호하자던 변호사들(회사에서 고용해 준)은 점점 원칙의 그늘에서 벗어나려 하고, 그녀가 정체를 밝힌 CIA 요 에리카는 살해된다. 구치소 첫 면회 후, 1년 가까이 흘러서야 만난 아들은 그녀에게 웃어주지 않다. 그녀는 그것들을 차근차근 감내한다. 물론 순순하게는 아니다. 그녀는 낯선 환경에 지치고, 시스템에 분노하고, 사람에게 실망한다. 중간중간 자신에게 일어나고 있는 일들을 되돌릴 수 있는 방법(제보자를 밝히는 일)에 대해 고민하지만 끝내 입을 다문다.

출처 : Daum 영화


일상이라고 믿던 것들이 서서히 망가지는 상황.
레이첼은 이 과정에서 철저히 '개인'으로 존재한다.

그녀가 속한 선타임스라는 신문사, 그보다 상위 개념인 언론, 그녀가 사랑해마지않던 가족이 있지만, 그건 개인으로서의 레이첼에겐 도움을 주지 않는다. 반대편에서는 연방 정부, 연방정부에서 임명한 특별 검사, 하급심 판사와 대법원 판사들이 있지만, 이들 역시 레이첼과는 동떨어져 존재한다. 자신이 속한 조직들과 자신에게 적대적인 조직들. 제대로 굴러갈 것 같던 이 시스템들이 레이첼이란 개인에게는 무의미해진다.


레이첼이 견뎌야만 했던 '개인과 시스템의 무관성'은, CIA 요원인 에리카에게 똑같이 적용된다. CIA는 그녀가 자신의 보고서를 무시한 정부에 앙심을 품고 일부러 기자에게 비밀을 누설했다고 의심한다. 레이첼과 에리카의 아이들이 같은 학교를 다니는 상황에서, 둘이 접촉한 적이 정말 없는지 끊임없이 의심한다. 엘리트 요원으로서 조직에 바친 수십 년의 세월은 아무런 소용이 없다. 조직은 개인을 추궁하고 답을 내놓으라고 한다. 개인은 자신도 내놓을 수 없는 답 대신 자신을 내놓고 조직에서 떠날 수밖에 없다. 에리카가 국립묘지를 걸으며 자신의 상관과 동료에게 추궁당하는 신이 있다. 거짓말탐지기까지 통과한 자신을 CIA가 아직도 의심하고 있다는 것에 대해 에리카는 처음에는 놀랐다가 바로 뒤에는 분노를 하고, 그 분노마저 추궁하는 동료들에게 결국 일을 그만두겠노라고 말한다. 그리고는 뒤돌아서서 차로 걸어가던 에리카는 몇 걸음 뒤 울음을 터뜨린다. 하지만 그녀는 걸음을 멈추지도 소리를 내지도 고개를 숙이지도 않는다. 자동차의 기어가 살짝 바뀌듯 덜컥대는 제스처 (뒤에서 봤을 때는 거의 티도 안 날)가 잠깐 을 뿐이다. 에리카의 이 울음은 개인의 울음이다. 더 정확히는,


자신이 기대고 있던 시스템이
정작 자신의 삶에 아무런 관심도 없었음을 깨달아버린
개인의 울음이다.

이 장면에 바로 붙여, 영화는 개인의 비애를 이어서 보여준다. 레이첼이 다니던 신문사 편집실. 직원들은 레이첼을 비롯한 몇 명이 퓰리처 상 후보로 선정됐다는 소식에 환하게 웃으며 환호한다. 레이첼은 이 소식이 적힌 메모를 구치소 뒷마당에서 전달받고 무감한 표정으로 응시한다. 그리고 이어지는 아들과의 전화 통화 장면, 수감된 지 113일째, 아들의 목소리는 무미건조하다. 뒤이어 건네받은 남편의 말 한마디."당신 퓰리처 된 거야?" 화면은 별다른 무빙 없이 레이첼의 무감한 전화통화 장면을 보여주고 있지만, 관객들 앞에서 퓰리처 상을 비롯한 시스템은 더없이 비루해진다. 개인은 끝없이 작아지고, 이렇게 작아진 개인조차 시스템은 감내하지 못한다. 정의롭다고 공고하다고 믿고 있던 것들이 그렇게 서서히 무너진다.

출처 : Daum 영화
하지만 시스템은 자신은 잘못이 없다고 말하며,
모든 것은 개인의 선택에 달렸다고 말한다.

특별검사도, 판사도, 심지어 남편까지 이 모든 상황은 레이첼이 스스로 초래한 일이라고 강변한다. 남편은 레이첼의 변호사에게 외도 현장을 들키고도 이 상황을 초래한 건 "그녀의 선택이었다"라고 말한다. 그리고 레이첼에게 말하든 말든 알아서 하라고 하며 한마디를 덧붙인다. "keep up the good work!". 그에게 중요한 건 레이첼이라는 개인이고, 그건 레이첼이 지키고자 하는 언론의 자유나 원칙 같은 것보다 소중한 것이다. 놀랍게도 관객들은 쉬이 남편을 비난할 수 없다. 그건 이해가 되는 상식 선상에 있다. 사람들은 완벽하지 못하다. 하지만 여기에 하나를 더 추가해서 생각해야 한다. 완벽하지 못한 인간이 만들어낸 시스템 역시 완벽하지 못하다. 그러면 질문이 하나 남게 된다. 완벽하지도 않은 시스템을 지키려는 인간을 어떻게 봐야 하는가.


서서히, 관객들은 레이첼에게 '누설'을 바라게 된다.

시간이 흐를수록 그녀에게 던져지는 상황을 굳이 감내해야 할 필요가 있을까? 하는 합리적인 의심을 갖게 된다. 그게 뭐라고, 자신의 삶이 망가지는데도 지키지? 그냥 말해, 라는 심정적인 요구. 그게 크게 무리한 요구는 아니다. 국가안보라는 명분(나라를 위해 일하는 CIA 비밀요원의 정체를 누설한 건 반국가적 행위이고, 그런 배신자를 당연히 처벌을 받아야 한다, 라는 명분)은 폭력적이긴 해도 꽤 합리적이다. 이것에 반박할 명분은 언론의 자유와 국가권력에 맞서는 시민으로서의 권리다. 이런 가치들은 미국에서건 한국에서건 늘 그 모호함과 추상성을 이유로 경시되고 무시된다. 어쩌면 영화는 관객을 시험하고 있는 건 아닐까. 당신이라면 어떤 판단을 내리겠는가, 하고.


출처 : Daum 영화


영화에 묵직함을 더하는 건,
서브 캐릭터들의 현실감이다.

레이첼을 변호하는 노회한 거물 변호사는 애써 정의로움을 가장하지 않는다. 그는 절체절명의 상황에 처한 레이첼 앞에서 한 땀 한 땀 장인이 만든 자신의 양복을 자랑하고 레이첼 남편의 양복 브랜드를 무시하는 속물적 습성을 보여준다. 고급 레스토랑에서 필라프와 화이트 와인을 먹으며, 레이첼 남편에게 당신이 다른 여자를 만나든 말든 상관하지 않겠다고 말하는 여유도 있다. 하지만 동시에 대법원에서 국가 권력의 비대함과 그에 맞서는 언론인들의 사명, 그리고 그것이 없다면 벌어질 반시민적 상황에 대해 감동적으로 말할 수 있는 사람이다. 레이첼 신문사의 편집장도 마찬가지다. 기사가 나간 후 레이첼을 지원하지만 개인적인 유대감, 언론 자유에 대한 명시적 주장보다는 팩트 확인과 신문사가 받게 될 영향을 냉철하게 따진다. 특별검사는 일견 악역으로 보이지만, 자기 일에 열심인 사람이다. 그는 무리해서 악독하게 굴지 않으며 화를 내거나 비열하게 말하지 않는다. 앞서 말한 남편 역시 평범한 욕망과 감정을 가진 현실적인 인물이다. 이 인물들을 등장시키며 영화에는 선과 악의 이분법은 없으며, 흔히 말하는 '조미료'도 첨가되지 않는다. 이런 현실적인 사람들이 얽히고설키고 지지고 볶으며 '현재'라는 시스템을 굴린다. 관객들 역시 이런 현실적인 사람들의 현실적인 시스템에 익숙하다. (그게 영화에서 기대하는 게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적어도 영화에 나왔을 때 당황하지는 않는다)


출처 : Daum 영화


영화를 보고 나면 이런 의문이 들 것이다.
레이첼은 체념을 한 것일까, 하지 않은 것일까?

그녀가 겪는 모든 감정들을 유추하며 관객들은, 어쩌면 체념이야말로 가장 편한 선택지가 아닐까 하는 확신이 들 수 있다. 실제로 레이첼의 얼굴엔 고단함과 신산함 외의 다른 표정이 사라지면서 체념을 체득한 듯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1년 가까이 지난 상황에서도 특별검사에게 쏘아붙이는 그녀의 한 마디를 들으면 과연 그녀가 체념을 했는지 혼란에 빠지게 된다.


"당신은 권리와 권력을 혼동하는군요. 드부아 검사"



1. 얼마 전 들은 팟캐스트 '필스교양'에서 소개한 영화였다.  


2. 영화는 2008년에 제작됐고 2014년에 개봉해 54명의 누적관객을 기록했다.

6년이라는 간극의 이유에 대해선 아는 바가 없지만, 2018년인 지금 봐도 영화적 만듦새는 전혀 낡지 않았다. 누적관객 수가 영화 선택의 기준인 사람이라면 당연히 보지 않는 게 좋다.

드라마틱한 서스펜스나 액션에 익숙하거나, 판타지적 영웅을 기대하는 사람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그런 거와 무관한 영화 취향을 가졌다면,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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