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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너무 다른 역할 Jul 03. 2020

여름밤, 그 파티

#종로 실내포장마차 촌 술자리

시작 신호는 BBQ치킨 봉지였다.


홀 서빙 복장을 한 젊은 알바는 실내포장마차에 들어와 치킨 봉지를 구석 테이블에 무심하게 놓고 사라졌다. 다른 테이블에서 술을 마시던 나와 친구는 손님 중의 누가 치킨을 시켰나 했다. 잠시 후 주인아줌마가 들어왔고 봉지를 본 그녀는 누군가들을 호출했다. 그렇게 다섯 명, 그녀들의 파티가 열렸다.


어디 거야, 이거? 맛있네.


투박한 포트와인 병에 든 술을 따르며 한 명이 말했고, 누군가가 '바로 옆에 있는 치킨 가게'에 대해서 말을 이어갔다. 와인 병에 담긴 술은 투명한 걸로 봐서 와인은 아니고, 소주나 보드카이지 싶었다.


언니, 잘 먹고 잘 사슈.


또 다른 한 명이 포장마차의 주인한테 툭 던지듯 말했다. 주인아줌마가 호탕하게 웃었다.


언니, 졸업 축하해.


술을 따르던 주인아줌마가 더 크게 웃었다. 덕분에 모두의 얼굴이 더 편해졌다. 실내포장마차 촌 다섯 명의 친구들은 그렇게 자리를 즐겼다.



술집에 처음 들어왔을 때, 계산을 하던 손님과 주인아줌마가 나누던 대화가 떠올랐다. 그녀는 '이십 며칠에 일단 내려간다'라고 했고, '그 뒤에 다시 한번 올라온다'라고 말했다. 단골인 듯한 손님은 허허로운 웃음으로 몇 마디를 더 건넸는데, 자세히 듣지는 못했다.


주인아줌마가 장사를 졸업하고 고향으로 내려가는 게 아닐까 싶었다.


실내포장마차 촌의 그녀들은 곧 떠나는 그녀를 축하해주기 위해 짬을 내서 온 듯했다. 이 도시의 한 공간을 같이 쓰던 사람들, 집에서 싸온 간식을 나눠먹고, 폭염과 한파를 같이 보내고, 손님들의 음주 취향을 공유하던 사람들. 그녀들의 배웅은 요란스럽지 않았지만, 즐거워 보였다. 종종 높은 톤으로 깔깔대며 그녀들은 (내가 모르는) 이곳의 사람들에 대해, 그들의 근황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녀들의 홀가분한 대화 사이로 적당히 데워진 장맛비가 내리고 있었다.



파티는 길지 않았다. 실비가 내린다고 해도, 평일 저녁 장사를 할 시간이었다. 주인아줌마가 새로 들어온 손님의 주문을 받고 주방으로 갈 즈음, 닭을 다 먹은 그녀들이 인사를 하고 일어났다.


'배웅'은 내 오해일 수도 있다. 앞에 앉은 친구와 술을 먹고 대화하느라, 그녀들의 대화는 간간이 들었을 뿐이니까. 분명히 '졸업'과 '내려간다'라는 단어를 듣긴 하지만, 그 역시 '자식의 졸업', '본인의 늦깍이 공부가 끝났다'거나 '잠시 다른 일로 내려갈 수'도 있으니까.


그럼에도 이 여름밤, 누군가의 즐거운 술자리를 엿봤다는 느낌은 그대로다.


포장마차 주인으로서 '해야만 하는 말'이나 '서글서글함'이 필요하지 않은 술자리, 한 겹 벗겨진 표정을 해도 되는 술자리를 그녀들은 편하게 즐겼다. 닭똥집을 볶고, 상을 닦던 '이모님들'이 사라지고, 그 자리에 닭을 뜯으며 편하게 수다를 떠는 중년의 '그녀들'이 있었다.



호탕하게 웃는 아줌마에게 계산을 하고 나왔다. 여전히 비는 조용히 내리고 있었다. 흐릿한 빌딩에서 빛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한 야외 테이블 손님들에게 악사가 색소폰을 불고 있었다. 입으로 같이 흥얼거렸는데 노래의 제목이 생각나지 않았다.


여름의 한밤에는 다 가능한 일이지 싶었다.


이름이 기억나지 않은 노래를 따라 부르는 것도, 호탕한 술집 주인이 잠시 앞치마를 벗고 친구들과 닭을 뜯는 일도, 그 술자리가 배웅이라 확신하며 덩달아 기분이 좋아지는 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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