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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너무 다른 역할 Dec 30. 2020

아저씨들은 꽤 근사했었음을

p는 심각한 이야기엔 심각하게, 웃긴 이야기엔 웃으며 맞장구쳐줬다. 나는 한때 p에게 사람들 말에 반응하는 법을 배우기도 했었다. 내 반응이 일반적이지 않대나.


-소설 '한낮의 잠' 中, 송지현 (소설집「혼자서는 무섭지만」)





20살이 넘은 한국 남자의 신분(?)은 크게 두 부류다.

학생 혹은 아저씨.


구분도 쉽다. 길 가던 사람이 말을 걸 때, '학생~'이면 전자이고

'저기요...''아저씨!'면 후자다.  


학생과 아저씨 사이의 단순한 선을 넘는 순간, 남자는 취약해진다.

체력이 극적으로 약해졌다거나, 취향이 급작스럽게 올드해지지 않았는데,

이상하게 아저씨에 걸맞은 태도를 취해야 할 것 같고,

아저씨가 아닌 누군가를 대할 때 조심해야 할 것 같다.

(아저씨가 된 입장에서는 뭔가 억울하지만 어쩔 수 없다.)


학생의 신분에서 밀려나 아저씨로 넘어온다는 건,

일종의 강등이다. 


학생 때는 아무렇지도 않았을 말 한마디로 변태나 꼰대로 낙인찍힐 수도 있고,

생각 없는 표정 하나로(심지어 무표정으로도) 극혐의 대상이 될 수도 있다

평소처럼 밥을 먹어도 아저씨스럽다는 소리를 듣거나

별다른 욕망을 드러내지 않고 가만히 자리를 지켜도 불편한 시선을 느끼기도 하고

예전의 경험에 대해서 얘기를 할라치면 굳이 왜, 라는 묘한 침묵을 신경 쓰게 된다

(는 걸 직간접적으로 알고 있다)



그런 이유로, 엄청난 개체수와 전투력에도 불구하고

 '아저씨들'은 꽤 조심스러워한다.


잠재적 말실수에 대해 자기 검열을 하고, 만취했을 때 터질 법한 것들을 경계한다.

누군가를 생각 없이 바라보다가도 문득 자기의 눈빛이 이상하진 않은지 따져보게 되고,

농담을 던지려다가도 이게 기준에 부합하는지를 두세 번 속으로 고민한다.


아줌마라는 말의 폭력성과 별개로,

아저씨라는 말은 수많은 아저씨들의 표현을 억압하는 도구가 된 셈이랄까.

(조금 해이해졌다 싶으면 주위의 누군가가 '아저씨스럽다'거나 '아저씨 같아'라고 한 마디만 던지면 되니, 꽤 편리한 도구이기도 하다.)


그래서, 이것저것 노력을 해서라도

아저씨의 영역에 들어가지 않으려고 했다.


수십 년 동안 차곡차곡 쌓인 사고와 언어 체계가 여전하다는 걸 알기에 의식적으로 그걸 거부하고,

불편함을 감수하며 새로운 말과 취향과 문화를 따라가려 애썼다.

어떻게 보면 가엽게 보일 정도로.



하지만, 어느 순간 놓아버렸다.

내가 아저씨임을 부끄러워해야 하는지 의문이 들었기 때문이다.


과거, 아저씨 주류 문화가 만든 수많은 과오들은 어차피 조금씩 바뀌어간다.

'아저씨로서 갖게 된 불편한 측면들'에 대한 교정을 요구받았을 때 버틸 생각은 없으니,

그 정도면 충분하지 않을까.


사회생활을 계속하는 한, 불편한 아저씨 문화에 대한 문제제기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고 자연스럽게 교정이 된다.

그건 내가 아저씨라는 사실을 부끄러워한다고 더 나아지거나 빨라지지 않는다.

그럴 필요가 없는데 과도하게 지우려고 노력한다면,

아저씨는 오히려 무색무취의 매력 없는 존재가 되어버리지 않을까.



어느 패션 디자이너의 책에서 이런 구절을 읽었다.

"나는 소비로부터 많은 것을 배웠다."

그 구절을 슬쩍 이렇게 바꿔본다.  

"나는 아저씨들로부터 많은 것을 배웠다."


생각해보면 나의 아저씨들은 꽤 근사했었다.


어렸을 때 본 아버지 세대의 아저씨들은 여유와 고집이 넘쳤다.

별다른 유흥이나 자기만의 시간이 없던 시절,

아저씨들은 고스톱이나 술자리 정도로 스스로를 위무하면서도

별다른 불평을 입밖에 내지 않았다.

가족을 자기 책임의 영역으로 훅 끌어안았던 그들은,

고집스럽게 일을 하고 고집스럽게 밥을 챙겨 먹였다.


대학에 들어간 후, 그러니까 가족의 울타리에서 벗어난 후에 만난 아저씨들은, 모든 것의 기준이었다.


 말을 하고 어떻게 행동을 해야,

별다른 혼돈의 과정 없이 이 사회에 안착할 수 있는지,

수많은 아저씨들을 보며 학습했다.

(물론 그 와중에 당연히 '불편한 측면'들이 자연스럽게 습득되기도 했지만.)



회사 생활을 하면 만난 아저씨들은, 레벨이 달랐다.


수년, 수십 년의 회사 생활을 해온 그들은, 생존을 유희로 즐기는 법을 체득한 사람들이었다.

토씨 하나로 결과가 달라질 수 있는 회삿일의 최전선에서도,

아저씨들은 스트레스를 버텨내는 자기만의 스타일을 가지고 있었다.

단순히 하루하루 견디는 게 아니라,

어떻게 해야 자신이 훼손되지 않으면서 일이 되게 하는지를 알았고,

벽돌같이 단단한 공식적인 직함들 속에서

오롯이 자기가 중심이 되는 말랑말랑한 관계망을 만들 줄 알고 있었다.


(모두가 그런 건 아니었지만)

손가락질 하나로 처리해버릴 수 있는 일, 그러니까 후배나 부하직원이 저지른 어처구니 없는 실수, 꾸역꾸역 다른 답을 만들어내고 그걸 위에 설득하는 모습을 볼 때는,

아저씨라는 게 어쩌면 꽤 근사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길 가던 누군가가 나한테 아저씨라고 부른 지 꽤 됐다.

그리고 아저씨처럼 되지 않으려 하던 노력을 그만둔 지도 얼마의 시간이 흘렀다.

내가 봐왔던 최고의 아저씨들까지는 아니어도,

나는 이제 적당한 형태의 아저씨가 되었다.  


평범한 아저씨가 되고 나서 가장 좋은 점은, 조바심이 적어졌다는 것이다.


내 욕심을 내보이는 데 주저하지 않고,

기형적인 미래상(像)은 애초에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최소한의 예의를 벗어난 상황에선 화를 내고

모든 걸 내 책임으로 환원하는 잘못은 이제 하지 않는다.

그렇게, 마음에 힘을 빼니 많은 걸 여유롭게 보기 시작했다.


아저씨스러움이 가져다준 이 온건한 일상도 늘 흔들릴 테지만,

그걸 꾸역꾸역 처리하는 방법을 조금은 알고 있으니 됐다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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