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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너무 다른 역할 Feb 20. 2021

훠궈의 속도

#대림역 중국거리

아주머니들은 자기 남편의 배를 보자 작은 손수레를 끌고 가 연안에서 맞이할 준비를 한다. 이런 생활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여행자의 감상일지도 모르지만 나는 단조로운 생활을 동경한다. 어시장이 파하면 예외 없이 하루가 끝난다. 기분 좋게 한잔 걸치고 잠자리에 들기만 하면 된다. 이것이 바람직한 인생이다. '보람'이나 '자아 찾기'와 같은 것은 현대병의 일종이다.


-에세이집 「오! 수다」中, 오쿠다 히데오





탕은 무심히 놓인다.

술잔을 빼고는 어떤 것도 세팅되지 않은 상황에서.


탕이 끓는 것도 고기나 채소를 넣을 것도 아닌데

세 사람 모두 약속이나 한 듯 탕만 바라본다.

훠궈는 큼직한 냄비가 테이블 중앙에 놓이는 순간, 마치 요리가 다 된 듯한 기분 좋은 착각을 준다.

그걸 알기에, 주인아주머니도 나머지 재료들을 서둘러 내오지 않는다.


오늘 같이 술을 먹는 나의 고등학교 친구와,

나의 대학교 후배는 몇 년째 애매하게 아는 사이였다.


몇 년 전에 친구의 결혼식이 있던 곳이 후배의 '나와바리'여서 결혼식에 가서 인사까지 했지만, 그때가 처음이자 마지막 대면 인사였고 그 외에는 페이스북 게시글과 댓글로 친해졌다. 둘의 직업은 달랐지만 연구하는 영역이 겹치는 부분이 있어서 의외로 자연스럽게 얘기가 통했다. 이번 술자리는 친구가 후배에게 술을 한잔 산다고 마련된 자리였다. 



굳이 대림역 근처에, 굳이 훠궈라는 메뉴를 선택한 건 나였다.


세 사람 동선의 중간인 곳이 몇 군데 있었지만,

갑자기 추워진 날씨에 뜨끈한 게 먹고 싶었고 지도에서 대림역을 보는 순간 훠궈 외의 대안은 없었다.

미리 검색해서 사람이 많을 듯한 무한리필 집은 피하고, 테이블이 넓어 보이는 곳을 택했다.

코로나가 걱정되기도 했지만, 왠지 재료를 하나씩 천천히 익혀 먹고 싶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순풍(顺风)훠궈'이라는 가게 이름도 마음에 들었다.

왠지 제대로 된 음식을 먹으며 겨울의 막바지 추위를 지날 수 있을 듯했다.



"고기 한 접시는 서비스."

수북한 고기 두 접시를 놓으며 아주머니가 무심하게 말한다.


매운 탕인 홍탕만 끓고, 백탕이 끓지 않는 이유를 친구가 아주머니에게 묻는다.

"홍탕 쪽이 기름이 많아서 먼저 끓는 거예요."라는 대답이 시원하게 돌아온다.

대오각성이라도 한 듯 셋이 동시에 고개를 끄덕인다.

그러는 사이, 나머지 재료를 담은 카트가 들어온다.



재료들은 담백하다.


먹기 좋은 크기로 잘랐을 뿐, 다듬어진 재료 본연의 상태 그대로다.

간도 하지 않고 익혀 나오지도 않는다.

그러나, 잠시 후 탕에 들어가면 맛은 금세 화려해질 것이다.


듣기로는 문화 대혁명 때 사치스러운 음식을 금한 후에 화려한 중국 요리의 명맥이 끊어졌다가,

90년대 초반 개인 식당들의 영업을 다시 허용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러면서 가장 먼저 메뉴로 등장한 게 만들기 쉬운 만두였고 그다음이 훠궈였다고 한다.

훠궈는 탕만 끓여서 내놓으면 어느 곳에서건 그 지방에서 나는 재료를 넣어서 먹으면 되는 요리라,

쓰촨의 지방 음식인 훠궈가 그때를 계기로 중국 전역으로 퍼졌다고 했다.


그 얘기를 들을 때, 나는 아무 재료나 넣는다는 게 제일 마음에 들었다.

오래 봐와서 흔하고, 제철일 땐 넘쳐나서 싼 재료들이,

탕의 도움으로 다시 주인공이 되는 셈이니까.

새로운 맛을 내려고 재료 혼자 기를 쓰지 않아도, 본연의 맛만 유지하고 있으면 된다는 의미니까.



다행히 '주식과 부동산'은 화제에 오르지 않는다.

친구와 후배의 관심사는 경제 쪽보다는 사회 쪽이어서, 그쪽 이야기가 천천히 시작된다.

사람들은 자기의 관심사에 대해선 스토리텔링 방법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얘기는 지루하지 않다.  


마치, 재료가 하나씩 훠궈 탕 속으로 사라져 가듯,

세 사람 각자의 영역에서 본 시각이 차례로 테이블에 오른다.



훠궈를 먹을 때마다 어떤 속도로 먹는 게 적당할지 고민한다.


많은 재료를 넣어서 푹 익혀서 먹는 게 맞는 건지,

먹고 싶은걸 조금씩 데쳐먹듯 하는 게 맞는 건지 잘 모르겠다.


무간도나 다른 중국 영화에서 훠궈를 먹는 장면이나,

중국 여행 갔을 때 먹었던 훠궈 집의 풍경을 애써 떠올려보지만

이랬던 듯도 하고 저랬던 듯도 하다.


재료마다 대략의 익히는 시간과, 탕에 재료를 넣는 대략의 밀도(?) 같은 게 있을 텐데......

늘 이런 고민을 가볍게 하다가 대충 먹는다.

누군가가 뭔가를 왕창 넣으면 다들 그걸 건져먹고, 탕이 비었다 싶으면 내가 뭔가를 내키는 대로 넣으면서.



이번에도 마찬가지로 흘러간다.

후배가 집게와 가위를 선점하고 재료를 탕에 때려 넣는다.

잠시 후 모든 재료를 풍족하게 넣는 후배를 내가 제지한다. '좀 천천히'

취향과 상관없이 후배가 넣은 '초반의 재료'로 셋 모두 배를 채운다.

하지만 조금 시간이 지나자 셋 다 각자 넣고 싶은 대로 넣고 되는 대로 건진다.


생각해보니, 그게 적당한 훠궈의 속도가 아닐까 싶다.

재료마다의 까다로운 규칙이나 테이블에서의 법도 같은 건 생각하지 않고

허기가 강할 때는 왕창 넣어서 다 같이 빠르게 먹다가, 이후엔 각자 감당할 만큼만 익혀 먹는 그런.

 

서로에 대한 배려와 공격적이지 않은 자기애가 적당히 섞인 테이블에서만 가능한,

불규칙하면서도 완급이 있는 묘한 속도.  



우리가 누군가의 이야기를 받아들이는 속도도,

훠궈를 먹는 속도와 비슷하다.


한꺼번에 쏟아낸 이야기를 어느 순간까지는 다 같이 공감하겠지만,

어느 세부적인 지점에서는 고개를 끄덕이는 속도와 빈도가 달라진다.

누군가는 격하게 인정하는 이야기를 두고, 누군가를 팔짱을 끼고 생각에 잠긴다.



마지막 소주병은 다 비우지 못한다.


굳이 10시 영업제한이 아니더라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누군가의 빈 잔을 위해서 한 병을 더 시키지만 한두 잔을 채운 후에 우리는,

꽉 찬 잔을 하나의 표식처럼 앞에 두고 안심한 채 각자의 말을 한다.  


하지만 우리는 안다.

열심히 말을 하고 귀 기울여 말을 들어도, 집에 가면 늘 못했던 말들이 생각난다는 걸.

그래서 언젠가 비우지 못한 소주병을 핑계로 또다시 술 약속을 잡으리란 걸.

그리고 그게 아마, 우리가 누군가와 함께 일상을 살아가는 속도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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