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로피 독서,면 뭐 어때
#죄책감 없이 책 모으기
이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가장 좋은 방법 같은 건 존재하지 않는다.
-소설 「졸업」中, 히가시노 게이고
@제주 독립서점 그건그렇고
서점에 들어가면 조급해진다.
이상하게 평소에 눈여겨봤던 작가나 책은 떠오르지 않고,
새로운 책들만 하나의 집단적 형상으로 눈에 들어온다.
그래서 변변한 취향 하나 없는 사람처럼, 이 책 저 책 떠들어보게 된다.
저자 모두에게 책을 내는 이유가 명확하겠지만,
독자 모두에게 책은 건성으로 다가가는 무엇이다.
눈으로 훑다가, 손으로 건드려보다, 조금 들춰본다.
그리고 결국, 한 시간 전만 해도 살 거라고 생각지도 않았던 책들을 손에 들고 계산대로 향한다.
두 달 뒤 이사를 앞두고 집을 정리하는 중이다.
책에는 아직 손을 대지 않고 책장의 구석부터 눈으로만 보는 중이다.
읽다 만 책도 있고, 머리말만 보고 잊고 있던 책도 있고, 이런 걸 샀었나 하는 책도 있다.
첨부터 끝까지 본 책이 의외로 적다. 사는 순간은 기억하는데 조금 읽고 덮은 책이 수두룩이다.
'트로피 헌팅(Trophy Hunting)'이라는 말이 있다.
오락을 목적으로 야생동물을 사냥하고 그 사체를 트로피처럼 옆에 두고 사진을 찍는.
읽지 않은 책들을 보면서,
어쩌면 나도 '트로피 독서(Trophy Reading)'를 했던 게 아닐까 싶었다.
사냥이 생존이라는 본래의 목적을 잃고 으스대기 위한 행위가 돼 버린 것처럼,
혹시 나도 읽기 위해서가 아니라, 책으로 나를 꾸미려고 했던 건 아닐까 하는.
하지만, 다시 찬찬히 책을 보다 보니,
반성 아닌 반성 뒤로 은근한 반발 욕구가 생긴다.
트로피 독서면 뭐 어때, 하는.
꽤 오래전부터 '완독'에 대한 강박은 버렸다.
책의 완결된 구성을 무리해서 따라가야 할 때도 분명 있지만,
내 성향 상, 모든 책을 순서대로 읽어치우는 게 버거워서였다.
모든 저자가 뛰어난 이야기꾼은 아니라는 게 이유일 수도 있고,
내가 지치지 않는 집중력을 가지지 못했기 때문일 수도 있다.
여하튼, 완독에 대한 부담을 버린 이후로, 오히려 더 많은 종류의 책을 집에 들였다.
책상이건 책장이건, 탁자건 화장실 앞이건, 사무실이건 소파 옆이건,
되는 대로 늘어놓고, 내킬 때 들춘다.
그러다 보면, 꽤 오래 두고 보는 책도 생기고 몇 장 안 읽고 다른 책의 밑으로 깔리는 책도 생긴다.
뭐 어쩌겠는가.
@제주 독립서점 그건그렇고
당연히, 이런 방법이 독서에 있어서 가장 좋은 방법이라는 말은 아니다.
당연히 독서에 있어서 가장 좋은 방법 같은 건 없을 테니까.
내가 책을 사는 건, 누군가에게 자랑하거나,
스스로의 마음을 안정시키기 위한(이 정도의 독서를 했으니 시간을 헛되게 보낸 게 아니야, 식의)가 아니다.
굳이 말하자면, 그냥 심심할 때 한두 번 펼쳐서 보기 위해서다.
다시 트로피 헌팅에 비유하자면, 책장에서 먼지가 쌓이는 내 책들은,
'무의미한 트로피'가 아니라,
'여전히 격발 가능한 낡은 총' 정도가 아닐까.
이사를 가면서 집에 두지 않을 책들을 골라내 정리할 테지만,
난 여전히 서점에 가거나 인터넷 서점 사이트를 돌아다닐 때,
한번 산 책은 언젠가 펼쳐진다, 는 단순한 원칙을 유지할 듯싶다.
그렇게 죄책감 없이 책을 모아야,
생각지도 못한 곳으로 잠시라도 떠날 여지가 생길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