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민 없이, 프렌치토스트

#푹신하면 됐지

by 너무 다른 역할

반올림으로 즐거워할 수 있는 마음이 내게도 있었으면 좋겠다.


-에세이 「신들이 노는 정원」中, 미야시타 나츠





냉동실에 식빵이 몇 조각 남아있다는 사실에,

그리고 냉장실의 계란이 네 알이나 있다는 사실,

거기에 가장 중요한, 공복이라는 사실을 더해서

토요일 아침 메뉴를 정했다.


오늘은 프렌치토스트.


놀랍게도(혹은 놀랍지 않게도) 실제로 입 밖으로 이렇게 말하고

주섬주섬 재료를 꺼낸다.



간단하다면 간단한 과정이다.

계란, 소금, 두유, 계핏가루를 섞으면 된다.


거기에, 고민과 계량을 생략해, 과정을 더 간단하게 한다.


계란을 두 개 넣느냐, 세 개 넣느냐 하는 고민에는

남은 계란물을 프라이팬에 넉넉하게 두르면 되니까, 라는 빠른 결론을,


소금을 얼마나 넣어야 하나 싶을 때는,

덜 짜면 건강하고, 좀 짜면 더 혀에 맞겠지, 라는 안이한 생각을,


우유가 없었나? 하는 자각에는,

두유면 되지, 라는 대체적인 해결책을,


계핏가루가 많이 들어가면 어쩌지, 라는 걱정에는,

그래도 계피, 그래 봐야 계피, 라는 미맹적 사고방식을 가동하면 된다.



여하튼 그런 주말 아침적 태도로,

거품기 따위 귀찮아서 꺼내지 않고 젓가락으로 휘휘 젖는다



냉동실에서 꺼낸 지 얼마 되지 않은 식빵은 금세 말랑말랑해 바로 계란물에 넣는다


프렌치토스트를 만들 때의 원칙은 딱 하나다.

듬뿍.


빵을 젓가락으로 여기저기 찔러서 침투(?) 공간을 만들어서 더 듬뿍 배게 한다.

시간을 잴 필요도 없고, 너무 물러지면 어쩌나 고민할 필요도 없다

듬뿍 적시면 된다.



프렌치토스트는 엄마의 음식이다.


어릴 때부터 아침에 종종 해주던.

엄마가 프렌치토스트를 해주던 건 주로 주말 아침이었던 것 같다.


엄마의 요리 콘셉트를 한마디로 요약하면 뚝딱, 이다.

모든 요리를 빠르고 간결하게. 프렌치토스트도 그랬다.

형이랑 내가 졸린 눈을 어버버 뜰 즈음이면 뚝딱 토스트가 담긴 접시가 상에 올랐다.

자르는 것도 가위로 뚝딱,

1인당 식빵 두 장씩, 총 8조각의 토스트가 놓였고

우리는 시럽이나 황설탕을 뿌려 역시나 뚝딱, 먹었다.


그렇게 먹여졌고 키워졌다.

당연히 뚝딱, 은 아닐 것이다.



익힌다.

기름도 역시 듬뿍 두른다.


경험상, 기름이 적으면 뭔가 주말 느낌이 나지 않는다.

건강을 염려할 수도 있겠지만, 한 끼 정도야 어떤가.

한 끼 정도 스스로 눈치 보지 않고

이거 저거 넘치는 대로 해서 만들어도 세상이 어긋나진 않는다


불은 적당히 약하게 한다.

겉면이 너무 익으면 프렌치토스트라고 할 수 없다.

씹었을 때의 첫 느낌이 푹신해야 한다. 적어도 폭신하거나.


이건 늘 어렵다.

매일 해 먹는 게 아니다 보니

어느 정도의 불로 어느 정도 익혀야 하는지 감이 있지도 않다.



확률적으로 푹신하게 되는 경우가 30% 미만이지 않을까.


물론 덜 푹신하거나 혹은 정도를 많이 지나쳐 겉이고 속이고 뻣뻣한 정도라고 해도

주말 아침의 프렌치토스트를 실패했다고 볼 수는 없을 것이다.

빵과 계란과 우유(혹은 두유)가 들어간 음식은

도저히 '실패로운' 맛이 날 리가 없을뿐더러,

주말 아침의 느긋한 허기가 그렇게 냉혹한 기준을 갖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여하튼,

익히는 과정이 좀 미숙하더라도,

푹신함 확률 30% 이하일지라도,

프렌치토스트는 늘 기분 좋게 시도하게 되는 음식이다.



다 익힌 프렌치토스트를 접시에 담으면

빵의 가운데가 살짝 꺼진다.

겉을 많이 익히지 않아서 빵 안에 있는 김이 빠져서 그런가 싶기는 한데

정확히는 모르겠다.


그저 그런 형태에 익숙하고

그 익숙함에서 다시 허기가 오른다는 건 확실하다



시럽도 듬뿍 뿌린다.

다시 한번, 한 끼 정도야,라고 정당화를 하며.


힘을 뺀 느낌이다. 먹는 나도, 프렌치토스트의 맛도.

굳이 토요일 아침이 아니라도 이 맛이 반감되진 않겠지만,

그래도 토요일 아침이라 만족감은 더 크다.



요즘, 요리를 하건 재료를 손질하건 주방에서 뭘 하나 하려고 하면 검색하는 게 일이었다.

평소 내가 아는 방법이 있는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내가 하는 것보다 더 나은 방법이 있겠지,

남들이 하는 비법을 따라 하면 더 좋겠지, 하는 막연한 기대가 있달까.


오늘 아침의 프렌치토스트는 그렇지 않았다.

내가 늘 봐오고 해오던 방식대로, 고민 없이, 였다.


어쩌면 자신의 경험이 별 것 아니라고 생각하며 다른 사람의 방식을 찾는 일은

불필요한 에너지가 필요한 일일 텐데,

요즘 별다른 고민 없이 검색 버튼을 치고 따라만 하고 있었나 싶기도 하다.

그러다 보면, 다들 비슷한 레시피에 비슷한 취향만 가진 밋밋한 주방이 될 텐데.



빵 봉지에 식빵이 두 쪽이 남아서 다시 계란물을 묻혀 얌전히 구웠다.


잠시, 이걸 먹어치워야 하나 고민했지만 그만뒀다.

그러다 보면, 비슷한 비만에 비슷한 고지혈증만 가진 밋밋한 몸이 될 수도 있으니.


접시에 담아 냉장고에 넣었다.

덕분에 내일이나 모레 아침도 프렌치토스트로 느긋해질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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