덜 상냥한 안녕

#낡은 집을 떠나며

by 너무 다른 역할

당신에겐 우람한 오토바이가 있고

나에겐 상냥한 모서리가 있지


-시 '정겨운 우울들' 中, 김경주 시집 「고래와 수증기」





새로운 동네로 이사한 다다음 날,

아침 일찍 일어나 혜화로 향했다.


먼지를 두고 온 게 내내 걸렸다.


이삿짐 업체 분들이 짐을 뺀 뒤 쓸고 닦는 걸 봤지만,

마지막 떠날 즈음에 여전히 뒹굴던 먼지들은 눈에 어지러웠다.


이 집은 내가 이사를 나가고 집주인 아저씨가 내년까지 보수공사를 하기로 했다.

이사 이틀 전의 통화에서 그렇게 말한 아저씨는 본인이 이삿날 못 올라간다며,

오래 잘 살아줘서 고맙다는 말을 건넸다.

특유의 웃음소리가 적절히 섞인 작별인사였다.



집은 작아져 있었다. 어느새 혹은 보란듯이.


짐을 빼면 그만큼의 자리가 날 줄 알았는데,

그래서 집을 떠나는 이에게 후련한 마무리를 선사할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나 보다.

물건들을 들어낸 자리는 비워지지 않은 듯했다.


어쩌면 모든 집엔 '본래의 모습' 같은 건 없을지 모른다.

그곳에 사는 누군가에 따라 집은 자신 안의 선(線)을 적당히 늘이거나 줄이며

한 시절의 공간을 만들어내는 게 아닐까.

이런 생각을 하니 작아진 집 풍경에 울적해졌던 마음이 금세 편안해졌다.


마지막으로 와보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솜처럼 곱게 쌓인 먼지는 하나의 증거이다.


내가 혹은 나와 같이 있던 누군가가 일으켰던 작은 동요(動搖)가 그 안에 가득할 것이다.

그리고, 그 움직임이 멈추고 나서야 먼지는 평온하게 내려앉았을 것이다.


그렇게 층층이 남겨진 기록들이다, 낡은 집의 먼지는.



이사의 번잡한 과정을 다 해치우고 나서 사진을 정리하는 지금,

새로 들어온 집과 떠나온 집 사이엔 서사의 차이가 있음을 느낀다.


혜화의 집에서 했던 공상들과,

그 집이어서 가능한 작은 서사들.

그러니까 어쩌면 그 집에서만 가능했을 생각의 방향들.


새로 온 집에서도 시간이 쌓이면 다른 결의 이야기가 쌓이겠지만,

아직 낯설어서 멀뚱 거리기만 한다.

그래서 낡은 집에 누워 떠올리던 것들을 하나씩 적는 중이다.

그렇게 하나씩 잇다 보면 이곳에서도 편안하게 낮잠을 청할 수 있을 것이다.



아침의 골목은 여느 때의 소음을 얹고 있었다.

간간이 차가 지나가고, 등굣길의 아이는 할머니에게 말을 건다.

골목 맞은편 건물의 주차장 철문이 올라가고, 누군가는 늦은 출근길을 뛰어간다.


뒷베란다에 남겨뒀던 몇 가지를 정리하면서 창문을 연다.

바람이 없는 아침, 12월의 자작나무는 조용하다.


그 풍경을 담고 서 있는다.

잠시라고 생각했지만 꽤 한참이었는지도 모른다.



마지막으로 버릴 것들을 모아놓고

미리 인쇄해둔 폐기물 스티커를 붙인다.

하나씩 들어 대문 밖 담벼락에 내놓는다.


버리기 전까진 그것의 공백을 쉽게 상상하지 못하지만,

버리기로 결정하고 집 밖으로 내다 놓는 순간, 쉽게 잊힌다.

부재(不在)란 그런 것이다.


이 집과 나 사이에도 같은 일이 일어날 것이다.



이 방 저 방, 차곡차곡 남겨진 먼지들을 담는다.

흩날리지 않게 빗자루에 힘을 주어 한번에 담아낸다.


굳이 미련을 남기지 않겠다는 다짐이 있는 건 아니지만,

굳이 물리적인 여지를 둘 생각이 있는 것도 아니니까.


이렇게 내가 쌓았을 먼지를 정리한다고 해서,

이 집에서의 나날들이 과거의 어느 선 밖으로 내몰리진 않을 것이다.



14년 하고 반년.

이 집에서 안녕했다.


이 집에 들른 사람마다 이곳의 낡음을 먼저 말하곤 했지만,

정작 이 안에 살던 나에겐 더없이 상냥했던 집이었다.


먼지를 봉지에 담고 마지막 빈 풍경을 눈에 채운다.

친절하게 '안녕'하고 입 밖으로 작별인사를 할까 하다가 민망해서

웃는 듯 마는 듯한 웃음으로 대신한다.


그렇게, 덜 상냥한 인사가 이 집의 마지막에 어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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