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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너무 다른 역할 Dec 19. 2021

이곳의 일은 이곳에 일로

#14년 된 전등갓을 버리며


그건 하나의 목격자였다. 


매일 저녁의 시간에서 새벽의 시간까지 깨어있는. 

이 조용한 목격자는 이 공간의 가장 높은 곳에서 

나의 하는 양을 다 지켜봤다. 


침묵과 고성이 오가고, 

자조와 감탄이 엇갈리고, 

명성과 탁성이 혼재되는,


별 볼 일 없지만 별 볼 일 있는, 

구질구질하지만 윤이 나는,


나의 평범한 하루들과 이 집을 방문한 누군가의 특별한 하루들을 목격하며 

이 등은 14년을 조용하게 서 있었다. 



어떻게 처리할까 고심하다가, 

여기저기 찢어져 스카치테이프를 붙인 모습과 더께를 이루며 쌓인 먼지를 보고는 결정했다. 


이곳의 일은 이곳의 일로 두기로. 


먼지가 흩날리지 않도록 갓을 조심스럽게 위로 들어 떼어낸다.

손가락이 닿은 몇 군데가 힘없이 찢어진다. 

커다란 인형을 안듯이 두 팔에 얹고 밖으로 나간다. 


밖에서 본 스탠드의 갓은 하얀색이 아니었다. 

그것의 처음을 기억하는 나로서는, 그리고 14년 동안 그것을 곁에 두고 '변하지 않았다'라고 생각한 나로서는 당황스러운 일이었다. 

한참을 바라보다가, 어쩌면 내가 전등갓이 품은 빛에만 관심이 있었고, 그것이 주는 위안에만 감사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건, 금세 익숙해진 한 형태, 그러니까 처음 며칠 이질적인 느낌이 들다가 빠르게 이 집의 안정적인 선(線)이 된 둥그런 전등갓의 형태를 나의 한 부분으로 받아들였다는 의미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어쩌면 그건, 내가 그만큼 나를 이루는 무언가를 필요로 했거나 혹은, 

반대로 나를 이루려는 작은 취향들에 대해 관대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갓을 반으로 천천히 접는다. 


얇은 나무 살은 힘을 크게 주지 않아도 구부러진다. 

고운 먼지가 구름처럼 일어났다 가라앉는다. 

14년간 노란빛의 원심력과 공간의 인력을 조용히 감내했던 종이가 힘없이 바스러진다. 

하나의 소용을 마무리한다는 작은 파열음을 내며. 

계절의 힘을 빌더라도 그 소리는 쓸쓸하게 들리지 않는다. 

떠난다는 상황에 빗대더라도 손쉽게 다다른 왜소는 빈약해 보이지 않는다. 


다만,

하나의 주기가 별 탈 없이 마무리됐다는 안도감과 , 

하나의 시절이 옅은 곡선을 그리며 흘러갔다는 조용한 만족감이 있을 뿐이었다. 



적절한 명암을 획득한 곡선을 굳이 확대하면 삐쭉빼쭉한 요철들이 도드라지겠지만, 그럴 필요는 없다. 

남겨진 혜화의 장면들은 하나의 곡선으로도 충분하다. 


이곳과 새로 갈 곳 사이는 단절되지 않을 것이다. 

이 동네에서 천천히 그린 곡선의 끝은, 다른 동네에서 시작할 선의 처음과 맞닿아있고, 

그곳에서도 하루하루가 쌓이면서 가느다란 곡선의 형태가 시작될 것이다. 


그럼에도, 이곳의 일은 이곳의 일로 둔다는 건, 그럴 필요가 있는 일이다. 

(나도 생각지도 않은 이사를 결정하기 전에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필요)

하나의 구간을 정함으로써 하나의 맺음이 생길 수 있고, 

혜화라는 태그를 남겨둠으로써 장면들은 더 구체적일 수 있다. 


차곡차곡. 전등갓을 몇 번을 더 접어 쓰레기 봉지에 넣으며 혼잣말을 덧붙인다. 

이곳의 일은 이곳에서 다 잊어버리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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