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 선생, 그거 아시오? 신이라도 과거를 바꿀 수는 없어. 전능한 신은 현재와 미래를 지배하지.
하지만 과거는 어쩔 도리가 없어. 신조차 과거를 바꿀 힘이 없을 때 과거는 우리를 어떻게 만들까?"
-소설 「이스탄불 이스탄불」中, 부르한 쇤메즈
이사 준비의 막바지, 짐은 끊임없다.
잊고 있던 수첩이 뭉텅이로 나오기도 하고, 언제 샀는지 기억도 안 나는 복근 만들기용 저주파 자극기도 나온다. 이 집에 오기도 전에 샀던 필름 카메라와 CD플레이어도 여러 개다. 대학교 때 썼던 플로피디스크도 아직 건재하다.
넓지도 않은 집의 섹션들을 하나씩 클리어할 때마다,
구석으로 처박아뒀던 나의 과거를 하나씩 조우하는 기분이다.
도대체 무슨 미련이 있어서 그것들을 차곡차곡 보관하고 있었을까.
오랜 세월 쌓아 둔 물건들을 보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내가 과거의 흔적들을 버리지 못한 건,
과거의 것들이 언젠가 나를 그 시절로 데려갈 거라는 막연한 기대 때문이 아니었을까, 하는.
꾸준하게 다가오는 오늘도 완전하게 소비하지 못하면서,
그래서 더 성실하게 밀려오는 내일을 허둥대며 맞으면서,
어제의 나에게 미련이 남아서 어떻게든 잡아두려 한 게 아니었을까.
집의 어느 구석에, 오래 전 내가 묻어 있는 것들이 남아있는 한,
처리하지 못한 과거가 부패하지 않으리라는 순진한 착각.
그렇게, 14년이 넘게 산 이 집은 나에 대한 장력(張力)을 키워왔는지 모른다.
어쩌면, 시시때때로 나를 주저앉히던 이 집의 낡은 장력은,
내가 이 집에게 한 구애였을 수 있다.
오늘의 내가 스스로에게 미진할까 봐,
내일의 내가 누군가에게 부족할까 봐 두려워하는 나를 안심시켜 달라는.
하지만, 짐을 버리면서 알게 됐다.
물건들이 없어져도 빈자리가 생기지 않는다는 걸.
과거를 버려도 현재는 여전하고,
흔적을 정리해도 기억은 무탈할 수 있다.
결국 중요한 건,
어정쩡하게 버려둔 과거로 돌아갈 수 있다는 허망한 믿음이 아니라,
과거를 거치며 내 안에 남아있는 지금의 눈으로,
지나간 시절의 나를 편하게 바라보는 여유일 것이다.
풀어헤친 짐 사이에 우두커니 서 있는다.
마지막을 맞게 될 물건들과, 같이 갈 물건들이 섞여있다.
두 부류 사이의 기준을 넉넉하게 하고 편한 마음으로 짐을 정리한다.
어떤 쪽에 속하건 나의 일상을 가능하게 한 것들이기에,
굳이 매몰차게 이리저리 던지지는 않는다.
한참을 정리하다, 짐 가운데로 상을 들인다.
이사가 다가오면서 이 집에서의 마지막 경험들이 이어지는데,
아마 밤중의 막걸리 상도 이번이 마지막이지 싶다.
무탈한 마지막이어서 다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