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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너무 다른 역할 Dec 12. 2017

카메라 들이대기 -라다크 틱세 사원

인도 라다크  #1

인도 북부 라다크(Ladahk) 지역에 갔을 때 

고등학교 친구와 함께였다. 

예전에도 같이 여행을 많이 갔었지만, 

라다크 여행에선 예전과 다른 점이 하나 있었다. 

바로 우리 둘이 개인 가이드를 썼다는 점이었다. 


둘이 갔이 갔던 모든 여행은 100% 자유여행이었다. 하지만 이번 여행은 기간이 길지 않았다. 여름이 성수기인 지역에 12월에 갔던지라 미리 숙소와 코스를 다 짜야했는데 그러기에 둘 다 너무 바빴다. 인터넷을 이리저리 뒤지다가 한국분이 공동운영하는 여행사에 연락이 닿았다. 비수기이지만 산악마을 트래킹, 빙하 트래킹, 야생동물 관찰 트래킹 등을 하러 오는 사람들이 있다는 얘기와 함께, 가이드와 동행하는 코스를 짜주었다. 수도 레(Leh)에 도착해서부터 트래킹과 도심지 여행을 마치고 떠날 때까지 전 일정이었다. 

#air_india   #before_arrival    #canon    #5Dmark4

처음에는 자유여행이나 자유여행 중에 하루나 이틀 했던 그룹 투어와 크게 다를 게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보고 싶은 것들과 봐야 하는 것들이 있는 것이 여행이었고, 

짧기에 욕심을 내기도 했던 일정이었다. 우리는 적당한 의지와 흥미를 예비하고 있었고 가이드는 조력자였다. 하지만 많은 차이가 있었다. 자유여행 때 경험하지 못한 친절한 설명과 배려가 있었고, 


무엇보다 카메라를 들이대는 기준을 

확실하게 잡아주었다. 


꽤 여러 나라를 다녔고, 많은 상황에 놓여져봤지만 여전히 어려운 것이 사진찍기다. 여행자로서 우리는 '낯섬'을 최대한 담아가려 하고, 그곳에서 사는 사람들은 우리의 기록 욕심에 큰 관심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카메라를 잘못 들이댔을 때 얹짢은 표정을 목격할 때가 종종 있었고 불만 섞인 목소리를 듣기도 했다. 

#tarcho     #canon   #5Dmark4

라다크 여행 때는 그런 부담이 전혀 없었다. 우리 둘에게 온전히 신경 써주는 베테랑 가이드 콘촉 씨가 있었기 때문이다. 독실한 티베트 불교신자인 그는 그곳에서 나고 자란 사람이었다. 우리와 같이 간 모든 곳에 친구가 있었다. 그리고 이곳에 처음 온 여행자들이 뭘 보고 싶어하고 무엇에 관심있어하는지를 가장 잘 알고 있는 사람이었다. 여행자들의 촬영 욕심을 당연히 여기고 여유있게 시간을 두었고, 우리가 예의를 차리며 카메라를 내릴 때에 오히려 괜찮다고 맘대로 찍어도 된다고 독려하기도 했다. 



레 인근 지방을 통털어 가장 큰 티베트 사찰인 

틱세(Thikse) 사원에 갔을 때였다. 


비수기인지라 여행자는 우리밖에 없었고 겨울 초입이라 사원은 스산했다. 본인이 직접 열쇠꾸러미를 받아 여기저기를 보여주고 나서 우리에게, 이곳이 티베트 승려 교육기관으로도 유명하니 독경과 공양을 보겠냐고 물었다. 

#Thikse    #monastery   #leh    #ladahk    #canon    #5Dmark4


예전 티베트 본토 여행 때 사원 안, 특히 승려들이 기도하는 공간에는 여행객들이 들어가지 못한 걸 경험했던 우리는 그게 가능하냐고 반문했다. 가이드인 콘촉은 그게 무슨 대수냐고 승려들과 대화를 하고 독경이 한창인 커다란 방으로 우리와 함께 갔다. 그가 요청한 건 하나였다. 기도 시간이니 최대한 정숙할 것. 사진을 찍어도 되냐는 말에 마음대로 찍어도 좋고, 스님들은 괘념치 않는다고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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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마디도 알아듣지 못하는 언어가 가득 차 있는 방은 

따뜻하고 호의적이었다. 


우리는 꽤 오래 그 방의 문 옆에 앉아서 구경했다. 동자승에서 노승까지 붉은 가사를 입은 승려들이 저마다의 톤으로 경전을 읽고 있었다. 어린 동자승 몇이 우리를 쳐다보았지만 그들의 관심도 이내 잦아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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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벽에 등을 대고 앉아서 사진을 찍으며 시간을 보냈다. 얼마 지나 공양시간이었고 죽이 담긴 양동이를 든 승려가 방을 돌아다니며 공양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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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의 목적이 직업적이거나 세부적이지 않다면-이를 테면, 라다크 남성들의 발 사이즈를 조사한다든가, 전통 가옥의 천장 높이만을 잰다든가-여행에서 하고 싶은 건 '새로운 것을 보고 듣고 느끼는 것'이다. 기도와 공양 시간은 승려들에겐 일상이겠지만, 우리 같이 큰 맘 먹고 라다크 행을 결심한 이들에겐 지극히 새로운 시공간이었다. 평생 하나의 이미지로 각인될 순간이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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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방을 나와서는 잠깐 계단을 올라갔다. 콘촉 씨가 또 한 명의 승려와 대화를 하더니 우리에게 따라오라는 손짓을 했다. 차 한 잔 하고 가자고. 


그가 우리를 데려간 곳은 사원 내에 있는 식당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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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승려들이 식당에서 밥을 먹는 날이 아니라고 했다.

우리는 큰 규모의 식당 홀을 가로질러 나무문을 열고 들어갔다. 



그곳은 주방이었다. 따뜻한 열기, 물이 끓으며 내는 소리와 

철판 위에서 밀가루가 익어가는 소리와 낮은 대화 소리가 한데 섞여 있었다. 


우리를 초대한 승려가 벽 쪽에 있는 의자에 앉으라고 하고 어떤 차를 먹겠느냐 물었다. 정확히는 우리가 외국인임을 배려해, 커피나 블랙티 중에 어떤 걸 택하겠냐는 질문이었다. 우리는 라다크 사람들이 수시로 먹는 차는 야크 버터 차라는 걸 알고 있었지만 쉬이 먹고 있진 않았다. 냄새도 냄새거니와 자칫 장 트러블이 나면 골치 아프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때 무슨 생각이었는지 버티 티를 달라고 해버렸다. 

비수기에 오지인 이곳까지 여행행왔다는 허세 가득한 부심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예상대로 버터 티 냄새는 익숙치 않았지만, 우려와 다르게 장 트러블은 없었다. 


차를 마시며 우리는 자유여행이라면 못 들어왔을 대형사원의 주방을 자유롭게 구경했다. 가이드 콘촉 씨와 승려들은 우리가 무엇을 보건 무엇에 카메라를 들이대건 개의치 않았다. 낮고 일상적인 목소리로 대화를 이어갈 뿐이었다. 

이국의 사원의 주방은 흥미로웠다. 짜파티와 카레(?) 두 가지를 만드는 움직임들은 빠르지 않았으나 멈춤이 없었고, 완성된 음식들은 간결했다. 

열기는 과하지 않았고 조리기구들은 나무 선반 위에 가지런히 올려 있었다. 창밖으로 갈색 산맥과 파랗다고밖에 할 수 없는 하늘이 얌전히 보이는 높은 곳이었다. 



그들은 여기에 사원을 짓고, 기도를 하고, 밥을 먹는다. 


짧게 기도와 공양의 모습을 스쳐보았지만 역시나 여행자로서는 그 일상의 깊이를 평생 알 길은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평소라면 여행자에게 개방된 썰렁한 방이나 기억에 잘 남지 않는 조형물들, 사원 전체 풍경 같은 것만 기록했을 건데, 이번엔 달랐다. 알아듣지 못하는 대화였고, 내 입으로 들어갈 음식은 아니었지만, 

잠시 그곳의 어깨에 얹혀 있었던 기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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