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로코 #1
직장인이 할 수 있는 요행으로 크리스마스를 껴서 총 10일이었지만, 도시마다 이동시간이 꽤 긴 모로코를 느긋이 여행하기엔 턱없이 짧은 기간이었다. 선택은 두 가지였다. 도시를 몇 개 포기하느냐, 여유를 포기하느냐. 나와 동행인 2명은 후자를 선택했다.
<마라케시 IN>과 <카사블랑카 OUT>으로 끊어놓은 비행기표를 기준으로, 대표적인 여행지를 끼워넣자 일정은 금세 찼다.
마라케시 > 사하라 사막 투어 > 페스 > 쉐프샤오엔 > 라바트 > 카사블랑카
유명한 곳의 정샷들은 구글에 치면 쏟아질 테니, 의도치 않게 맘에 든 사진 위주로...
아라비안 나이트, 속에 들어와 있는 느낌이 드는 제마 엘프나 광장.
밤에는 사람들로 더 살아난다.
입 생 로랑이 사랑한 곳으로 유명한 이 정원은 원색적이다.
하지만, 눈이 피로하지 않아, 정원 특유의 느린 속도를 유지할 수 있다.
일상의 모임을 하는 사람들에겐 내가.
여행을 떠나온 나에게는 이 사람들이, 각자의 풍경이 된다.
버스 티켓을 예매할 지점을 찾아헤매던 때 찍은 사진.
헤매다 보면, 희한하게 여유가 생기는 게 여행.
사람 얼굴과 안경을 찍은 게 아니라, 마라케시에 있는 사진박물관 (maison de la photographie))에 있던 스테레오스코프라는 나무 상자에 눈을 대는 부분을 줌인해서 찍은 사진
민트티와 더불어 늘 마시게 되는 모코칸 커피.
에스프레스만큼 쓰고 적은 양에 설탕을 무조건 준다.
좋은 카페에서는 생수를 한 병 같이 준다.
간지에 적격이다.
낙타의 뒷목에는 침범할 수 없는 소유물 같은 갈기가 있다는 걸,
여행에서 돌아와 사진을 들여다보고 알게 됐다.
막상 저 위에선 고정이 잘 안 된 손잡이 부여잡고 중심잡느라,
그리고 영사된 듯 흘러가는 사막 풍경 쳐다보느라 몰랐다
페스의 메디나 투어 가이드 요셉 씨의 설명에 따르면,
북아프리카 토착민들을 부르는 단어가 세 가지가 있다.
베르베르(Berber) 혹은 베두인(Bedouin) 혹은 블루맨(Blue Man, 파란색 스카프와 옷을 즐겨입어서).
그 중에서 베르베르는 왠지 바바리안과 비슷하다고 해서 현지 사람들은 그닥 내켜하지 않는다는 설명을 곁들였는데, 그건 판단이 잘 안 선다. 박물관 이름이나 공식 표지판에서 berber란 단어를 워낙 많이 봐서.
메디나(Medina)는 구시가(old part of city)를 뜻한다.
마라케시를 비롯해 대도시의 메디나는 흙벽으로 둘러싸여 있고
그 안에 건물들과 골목이 미로처럼 뻗어있다.
그 중에서 페스의 메디나가 제일 규모가 크다고 하고 약 9,500개의 골목이 있다고 한다.
한나절 둘러본 나로서는 그 안에서의 삶은 잘 모르겠지만.
학교 다닐 때 지구과학에 젬병인 걸 알았지만,
달이 온전한 나머지를 늘 품고 있다는 걸
모로코 밤하늘을 찍고 나서야 알게 되다니...
관광객의 동선은 대개 같다. 그들에게 부여된 시간이 늘 비슷하기 때문이다.
가끔 관광객이 아니고 싶은 욕망이 들 때가 있지만,
그건 관광객으로서의 의무방어전을 끝내고 난 때일 때가 많다.
봐야 할 거 일단 보고 나서 여유를 즐기든지,하는 마인드. 나도 거기서 자유로울 수 없다.
파란 마을로 유명한 산골마을 쉐프샤오엔을 한 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스페인 모스크에
5시쯤 올라갔을 때 자리는 만석이었다.
모로코 사람, 중국 사람, 유럽 사람 쪼르르 앉아 해지기를 기다리는 모습이 귀여웠다.
저렇게만이라면 세계 평화는 매우 쉬울 텐데...
어렵게 짬을 내서,
17시간 걸려서 날아와서 이 도시 저 도시 빠뜻한 일정에
차 타느라 몸이 젖은 걸레가 될 정도로 돌다가 저런 모습을 보면
마냥 개부러움.
카스바의 여인,이라는 노래가 있다고 여행 초에 친구가 말했다.
다운받아 온 그 노래를 같이 들으며 왜 카스바가 등장했는지 의아해했다.
카스바(Kasbah)는 성채를 뜻한다. 사진의 오른쪽에 보이는 게 카스바다.
라바트의 숙소인 Hôtel des Oudaias에서 아침에 일어나 짐을 싸다가 커튼을 젖히니 온통 안개다.
얼른 사진기를 들고 호텔 옥상으로 올라가니 이런 풍경이었다.
해무가 걷히고 지상에서의 햇빛 점유율이 꽤 될 때까지, 옥상을 벗어나지 못했다.
조형적으로, 색감적으로, 문자의 형태가 주는 미학으로,
매우 아름다웠던 기차 플랫폼의 전광판.
비록 예상을 벗어나 해안을 끼고 가는 열차는 아니었지만 만족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