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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너무 다른 역할 Aug 04. 2022

자의(自意)라는 위로

#가수 신지훈의 노래에 부쳐

어떤 노래는 정교하게 짜인 구조를 즐기는 맛이 있고,

어떤 노래는 화려함에 압도당하는 재미가 있다.

어떤 노래는 담담함으로 주위의 색을 풍성하게 만들어 주고,

어떤 노래는 강렬함으로 머릿속의 잡다함을 잠재운다.


그리고 어떤 노래는

처음 내놓는 호흡만으로, 잊고 있던 세계로 우리를 슬그머니 넘어가게 해 준다.


https://youtu.be/uS5U3_-f_9k


요새 뒤늦게 가수 신지훈의 노래를 찾아 듣고 있다.

유튜브 뮤직의 알고리즘이 처음 들려준 '추억은 한 편의 산문집 되어'라는 노래 이후로 죽.

'추억은...'은 이렇게 시작한다.


그대는 어떤 장면들을 지우고파서 후회 속의 꿈꾸는 걸 잊었나요

견뎌냈다는 이유 하나로 그때의 당신을 이해해줘요


누구나 나를 정지할 때가 있다. 더 정확히는, 내가 정지될 때.

그럴 때, 세상은 나라는 존재는 아랑곳하지 않고 흘러간다.  

나를 배제한 채 지나가는 것들을 멍하니 바라볼 때의 당혹감.

감정도, 시간도, 관계도 한순간에 멈춰 설 때 우리는 해결할 수 없는 무력감에 시달린다.


하지만, 분명 그런 시기를 겪은 후에 썼을 이 노래의 문장들은,

담담하게 자신의 의지를 내보인다.

이건 내 추억이야, 이건 내가 살아낸 시간이야, 그러니까 내가 규정할 거야.

세상은 나를 버리고 흘러간 게 아니라, 내가 잡았다가 보내준 거야.

견뎌낸 지금의 내가 그때의 나에게 보내는 하나의 자의(自意).


그녀의 자의는 그러므로, 다정하다.


담담한 감상은 그녀가 천천히 그러나 또박또박 짚어내는 음에 내려앉고

읊조리는 듯한 그녀의 목소리에 얹혀, 하나의 위로가 된다.


추억은 한 편의 산문집 되어 길 잃은 맘을 위로하는 노래가 되고

그건 긴 어둠을 서성이던 청춘이 남기고 간 의미일 거야


청춘을 살아냈지만 정작 그 시기의 말랑말랑함이 부끄러워 잊고 사는 우리는,

그러니까 그녀가 건네는 자의라는 위로에 쉽게 빠져들 수 있고,

그 위로가 꺼내놓으라 말하는 자신만의 그 시절로 돌아갈 수 있다.


그건 우리가 쉽게 찾지 못한 자기 자신과의 대화법이자,

입 밖에 내지 못한 자기의 시간에 대한 수줍은 예찬 같은 게 아닐까.


https://youtu.be/Y79jdipHlEs


같은 앨범의, '스물하나 열다섯'이라는 노래는 이렇게 시작한다.


시간을 되올 수 있다면

스물하나, 초봄에 갈 거야


그녀가 만들었을, 되오다, 라는 단어는 새롭지만 낯익다.

되짚어 간다는 뜻일 수도, 되짚어 갔다가 다시 살아낸다는 뜻일 수도 있다.

되돌아가서 함께 울어주고 싶다는 뜻일 수도 있고,

되돌아간 그때의 사람들과 같이 하고 싶다는 뜻일 수도 있다.


그녀는 되올 시간에 남겨져 있는 사람들에게 말을 건다.

자신의 옛사랑에게, 빛을 잃은 가족들에게 하는 그녀의 말들은,

아마 그 시절의 그녀는 미처 하지 못한 말들일 것이다.

너무 어렸기에 조심스러웠기에, 떠올리지 못했거나 내뱉을 용기가 없던 말들.

지금의 그녀는 그 말들을 잊지 않았다.

그리고 자신의 음(音)을 만들어 못다 한 말들을 꺼내놓는다.


그녀처럼 우리에게도,

하지 못한 말들을 묻어둔 채 떠나온 사람이 있지 않을까.

돌이켜보면 빈약한 변명 안에 가둬둔 자신의 말이 있지 않을까.

그렇다면 우리도 우리의 자의(自意)를 찾아내 말을 건넬 수 있을 것이다.  

그녀처럼 담담하고, 그녀처럼 다정하게.


https://www.melon.com/album/music.htm?albumId=10938010&ref=W1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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