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후쿠오카」(장률 감독, 2019)
우리가 과거에 시선을 멈춰두는 건, 현재의 공백을 견디기 어려워서가 아닐까.
그때의 나라면, 누군가와 함께 했던 그때의 나라면,
볼품없는 공동(空洞)을 가진 지금의 나를 토닥여줄 수 있을 테니까.
영화 「후쿠오카」는 그런 성향을 지닌 세 사람에 관한 영화이다.
영화의 줄거리 소개는 간단하다
"책방 단골 ‘소담’ 때문에 불쑥 후쿠오카에 도착한 ‘제문’은
그녀와 함께 작은 술집 ‘들국화’를 찾는다.
그곳은 28년 전 첫사랑 ‘순이’를 동시에 사랑한 ‘해효’의 가게다.
순이가 좋아하던 책방의 주인으로 사는 제문과
순이의 고향 후쿠오카에서 술집을 운영하는 해효에게
“둘이 똑같아”라고 말하는 ‘소담’.
어울리지 않을 듯 어울리는 세 사람의
3일 낮밤 기묘한 여행이 시작된다"
https://movie.daum.net/moviedb/main?movieId=128568
극 중 세 사람의 이름은 배우 실명과 같다.
이 단순한 설정 덕분에 영화는 독특한 긴장감을 갖는다.
원래 어디에 갖다 둬도 어울리는 세 명의 배우 권해요, 윤제문, 박소담은
자신과 배역 사이, 실제 독백과 연기 사이 어디에 위치한다.
그들은 그 자유로운 유착을 영리하게 이용해 인물 각자의 심리를 자연스럽게 내뱉는다.
28년 전 대학교 때 같이 좋아했던 여자 때문에 연락을 끊고 살던 두 남자는
다시 만나도 과거를 이야기한다.
그 여자가 두 사람 때문에 학교를 떠나기 전날, 누가 그녀와 잤는지를 얘기하며
서로 얼굴을 붉히는 두 사람들을 보며, 그들이 청춘을 넘지 못하고 아저씨가 돼버렸음을 알게 된다.
아, 두 사람은 그 이후에 공백을 메우지 못했구나.
두 사람 사이에서 소담은 연극을 하자고 제안한다.
자신이 28년 전 그 여자 '순이'를 맡겠다고.
두 사람은 소담이 참 특이하다고 말하면서 연극은 아무나 하는 거냐고 말하지만,
후반부 정전이 된 술집 씬에서 그 연극은 한 번 구현이 된다. 느닷없지만 강렬하게.
(물론 전기가 들어오는 순간 막이 순식간에 닫힌다.)
그녀는 미스터리하다. 스무 살이 넘었음에도 교복을 입고 제문의 헌책방을 찾아오고,
일본에 가서도 한국말로 일본 사람, 중국사람과 대화한다.
배우 특유의 '난 다 알아. 나한텐 무슨 말을 해도 다 들어줄 수 있어' 식의 표정은,
이 영화의 배경이 된 후쿠오카의 풍경과 닮았다.
무채색에 스며든 원색이 수줍은 거리와 낡음을 인정하되 체념적이지 않은 사람들의 무엇과.
소담은, 영화 내내 가벼운 주문을 걸듯이 말을 한다.
그녀는 처음 와봤다는 일본에서 주저없이 행인에게 한국말로 길을 물어보고
나이 차가 나는 해효와 제문에게 친구처럼 말을 던진다.
두 사람은 그녀가 이상하다고 생각하면서도 그녀의 말을 경청한다.
어느 날 그녀는, 후쿠오카의 벤치에서 울고 있는 자신에 대한 꿈을 꾼 후 실제 이곳에 찾아와 울고 있는 한 중국 여자와 대화를 한다. 대화는 가볍되 공감이 넘치고 일회적이지만 산뜻하다.
각자 한국어와 중국어로 대화했음에도 대화 씬은 자연스럽다. 제문과 해효 역시 '이상하게' 이 대화를 먼발치에서 알아듣는다. 이 상황이 이상하다는 두 사람에게 소담은 말한다.
우린 너무 긴장하고 살아서 그래요
하지만 내내 긴장하지 않고 지내는 것처럼 보이는 그녀에게도 과거의 사연은 있다.
후쿠오카의 헌책방에서 발견한 인형, 그리고 소담이 몇 년 전 그 서점에 찾아와 인형을 놓고 갔다는 서점의 여주인. 소담은 그 기억을 잊고 있었다. 교복을 입은 과거의 소담은 인형을 안은 채 자장가를 불렀다.
5살 때 다른 남자와 결혼해 자신을 떠난 엄마처럼.
하지만, 해효가 건네는 위로가 무색할 만큼, 그녀가 회상하는 '엄마 없는' 과거는 별 게 아니다.
소담은, 엄마는 그럴 만했다는 짧은 말로 과거를 이해하고 있음을 말한다.
과거와의 이런 화해는 영화의 후반부 서점의 여주인과 소담이 손을 잡고 길을 걷다가 가볍게 키스를 하면서 완성된다.
28년 전의 인연에 매여 그녀가 자주 찾던 서점의 주인이 된 제문과,
재일동포였던 그녀의 고향 후쿠오카에 술집을 낸 해효.
현재가 아닌 과거에 사는, 거류민(居留民/남의 나라 영토에 머물러 사는 사람) 같았던 두 사람도,
과거를 대하는 소담의 담백함을 닮아간다.
술에 취한 제문은 강하지 않지만 옅지도 않은 말투로 말한다.
난 포기할 거야. (...)
저 또라이 말처럼, 아무 생각 없이 긴장 안 하고 살 거야.
영화는 수많은 메타포와 의미심장한 대사를 던져주고
장률 감독 특유의 롱테이크와 뒷꼬리가 길게 남겨지는 컷들을 보여준다.
덕분에 영화는 꽤 수다스러운 세 사람 사이에서 사색의 영역을 확보한다.
그 사색은 고요하거나 무겁지 않다.
어디에 둬도 어울리는 세 사람의 배우처럼,
영화가 조장하는 사색은 일상 어디에 적용해도 심상해 보일 정도의 무엇이다.
현실적으로 따지고 들면 리얼리티를 벗어나는 몇 개의 설정 덕분에
(앞서 말한 다국어 대화라든지, 모든 걸 이미 알고 있는 듯한 소담의 말, 2년 전에 죽은 서점 주인의 할아버지와 대화를 했다는 해효의 대사나, 28년 동안 연락 없던 후쿠오카의 해효가 서울 헌책방에서 일하는 제문에게 말을 거는 상황이라든지) 영화는 일종의 판타지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런 판타지를 관객들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이유는 하나일 것이다.
과거가 만든 현재의 공백을 안고 사는 세 사람이 더 이상 비틀거리며 걷지 않기를
그들의 시간을 감싼 긴장을 풀고 좀 더 가벼워지기를 바라서.
*넷플릭스에서 볼 수 있다.
*장률 감독의 스타일을 지루하다고 생각한다면 그다지 추천하지 않는다.
*위태로움이나 극단의 감정표현 혹은 성적 관계에서 오는 극적 긴장감을 기대하다면, 마찬가지로 추천하지 않는다. 그런 건 전혀 나오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