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브로커」(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 2022)
그러나 바다는 다르다. 물이 차가워질수록 삶에 가속이 붙는다.
게들은 더 빨라지고, 가자미는 더 저돌적으로 바뀌며,
바다연어는 더 단단해지고, 조개는 더 맛있어진다.
-에세이「고무보트를 타고 상어 잡는 법」 중, 모르텐 스트뢰크스네스
브로커 개봉 전에 있었던 술자리, 이 영화에 대한 얘기가 나왔다.
송강호며 아이유의 이름이 지나가고 감독의 이름을 말했을 때,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을 잘 모르는 누군가가 나한테 어떤 감독이냐고 물었다.
나는 바닷마을 다이어리, 어느 가족 같은 영화 이름을 댔지만, 그 영화들을 보지 않았던 사람이었기에 나의 설명은 부족했다. 곰곰이 생각하다가 난 짧게 설명했다.
남루한 걸 낭만적으로 바꾸는 감독이야.
한국의 배우들과 한국에서 찍은 영화 브로커에서 감독의 장점은 여전했다.
어판장, 유원지, 지하철역 네온사인의 조잡한 색과 남루한 선들은
이야기의 낭만적인 배경이 되어 시선을 끈다.
세탁소나 승합차, 모텔 같은 실내 공간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자주 봐왔던 무질서하고 밋밋한 공간은
정교한 레이어가 겹친 공간으로 변한다.
그렇게 평범한 것들을 이야기의 힘(뒷배)으로 끌어올리는 장점이 있는 영화다.
"세탁소를 운영하지만 늘 빚에 시달리는 `상현`(송강호)과
베이비 박스 시설에서 일하는 보육원 출신의 `동수`(강동원).
그들은 베이비 박스에 놓인 한 아기를 몰래 데려간다.
하지만 이튿날, 생각지 못하게 엄마 `소영`(이지은)이 아기 `우성`을 찾으러 돌아온다.
아기가 사라진 것을 안 소영이 경찰에 신고하려 하자 솔직하게 털어놓는 두 사람.
우성이를 잘 키울 적임자를 찾아 주기 위해서 그랬다는 변명이 기가 막히지만
소영은 우성이의 새 부모를 찾는 여정에 상현, 동수와 함께하기로 한다. "
(줄거리 출처 : 다음 영화 https://movie.daum.net/moviedb/main?movieId=144096)
영화의 모티브는 베이비 박스다.
영화를 보기 전, 이걸 모티브로 잡았다는 걸 알고 감독 특유의 스토리텔링이 나오겠다 싶었다.
버려진 아기, 그 아기를 향한 몇 개의 시선이 교차되면 벌어지는 작은 사건들.
감독의 전작 중에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와 비슷한 류의 영화이겠지 싶었다.
'그렇게~'는 산부인과에서 아이가 뒤바뀐 두 가정의 이야기를 다뤘고,
감독 특유의 작은 사건들과 감정의 동요를 따라 조용히 흘러갔다.
그런데, 브로커는 예상과 달리 과했다.
감독이 예전 작품들에서 끊임없이 시도했던, 가족이라는 동류를 만들려는 시도는 브로커에서도 이어진다.
상현(송강호), 동수(강동원). 소영(이지은)과 소영의 갓난아이와 동수가 살던 보육원에서 합류한 아이.
갓난아이를 팔기 위해 낡은 승합차에 함께 타고 다니는 그들은 혈연과는 다른 관계로 얽힌 하나의 가족이다.
그러나, 영화는 이 단순한 여정에 너무 많은 요소를 더한다.
그건 인물들의 현재보다는 과거에 관련된 이야기들이고, 각각의 이야기가 무거운 측면이 있어서,
현재 벌어지고 있는 이 특별한 가족에게서 오히려 관객들의 시선을 분산시켜 버린다.
어느 교회의 아기바구니를 모티브로 했다는 걸 알지만,
두 남자 상현과 동수가 일회성이 아니라 그 아기를 빼돌려 매매로 돈을 벌고 있다는 설정이나,
미혼모 소영이 아기를 버렸다가 다시 찾아와 같이 아기를 판다는 설정은 과해서 쉽게 받아들이기 힘들다.
인물들의 과거도 결핍 일변도의 과한 설정이다.
아이를 버린 소영(이지은)은 본인도 버림받아 집단 위탁 가정에서 불우하게 자랐고,
동수(강동원)는 보육원 출신이다. 상현(송강호)은 이혼한 상태로 딸에게 외면받고,
이들을 따라다니는 형사 수진(배두나)은 아이를 잃은 아픈 상처가 있다.
하나하나 따지고 보면 그럴 법하긴 한데, 한데 모아놓으니 어지럽다.
주인공들을 결핍에 놓음으로써 인물들을 살린다기보다는 이야기를 죽이는 셈이다.
송강호, 강동원, 아이유, 배두나가 한 작품에 나오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의 감탄은,
영화를 본 후 아쉬움으로 바뀐다.
처음에는 그게 이 화려한 배우들이 영화 속 남루하고 결핍된 인물들을 구현하지 못해서 그런가 싶었는데,
그보다는 톱배우들을 너무 많이 모아놓아서 그런 듯하다.
뭐랄까, 각양각색의 고급 세단에서 제일 좋은 부품을 떼다가, 클래식카에 억지로 조합한 느낌이다.
차는 보기 좋고 잘 굴러가지만, 어딘가 어색하고 덜컹대는 듯한.
어쩌면 그건 이 배우들이 기존에 쌓아온 이미지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나의 협소한 시야 때문일 수도 있고, 수많은 배역들을 인상적으로 만들어온 배우들의 힘 때문일 수도 있다.
바닷마을 다이어리,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어느 가족 같은 감독의 전작에서 나온 일본 배우들이, 일본에서는 유명하지만 나 같은 한국 관객에겐 낯설어서 그런 측면도 있겠다.
하지만, 영화를 보는 내내 저 중에서 몇 명은 익숙하지 않은 배우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계속 들었다.
한두 명 정도의 주연과 다른 조연으로 갔으면, 난 인물들의 보잘것없음에 더 잘 집중했을 듯하다.
일본 감독과 한국 배우, 한국어 대사 사이의 간극도 어쩔 수 없이 드러난다.
앵글과 색, 호흡에서 오는 감독 특유의 감성은 여전하지만,
배우들의 연기와 대사와는 어딘가 어긋나 보인다.
감성 버튼의 위치가 다른 건 아니겠지만, 버튼을 누른 후 묘한 시간차가 있는 그런 느낌.
이러한 문화적 간극이 어쩔 수 없었다면, 일본어를 직역한 듯한 몇 개의 대사를 차치하더라도,
대사의 양을 줄이고 배경의 힘과 표정의 스토리텔링을 강화해서 갔으면 좋았겠단 생각이 들었다.
욕심 혹은 노파심에서 온 설정이었겠다는 생각은 든다.
아마 이 감독과 작업하고 싶은 배우도 많았겠고.
히로카즈 감독이 한국에서 영화를 종종 만들면 이런 과함은 적어질 텐데.
이번 한 번에 모두, 많은 걸 담으려 한 듯하다.
지금도 영화는 아름답지만, 더 심심했으면 좋았을 영화다.
뭍과 다르게 물이 차가워질수록 그 안의 것들이 매력적이게 되듯,
캐스팅이나 인물의 설정이 더 심심했다면, 감독이 그리고자 했던 보잘것없는 인물들의 특별한 가족 이야기가 더 잘 살았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