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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디어닝 Feb 20. 2023

교환학생으로 살아남기 EP.2

하나의 작은 걸음으로

13일 날이 밝는대로 일어나 확인한 메일함에는 충격적인 메일이 와있었다.

한국 학교측으로부터 Koc 대학의 개강이 더 미뤄질 거라는 이야기였다.

정확한 2월말에서 3월초를 생각하지만 정확한 날짜는 미정이라 하였다.

'미정이라고? 그럼 더 밀릴 수 있다는 이야기잖아!!!!'

MBTI 결과 INFJ, J만 80%이상 나오는 나다.

아무런 기약도 없고, 언제 개강할지 모르는 이 상황이 정말 스트레스였다.


학교에서는 잔류를 할지, 돌아올지 빠르게 정해달라 했다.

개강이 2월말에 한다는 확신이 있으면 상관 없었지만, 더 밀린다면 앞으로의 계획에 너무 큰 변수였다.

Koc 대학 한국인 교환학생이 모인 단톡에 이와 같은 고민을 올렸고 만나 이야기를 나누기로 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나에게 튀르키예, 이스탄불은 크게 한국과 다르지 않으며, 음식은 입에 맞지 않고(다른 친구들은 다 잘 먹더라...) 우유부단한 나라였다.

한마디로 첫인상은 0점! 난 다시는 이스탄불에 안 올거야! 라는 말을 달고 살았다.


아이란과 홍합밥, 내 입맞엔 별로다

전날 밤늦게까지 술잔을 기울인 회의 끝에 남기로 결심했다.

4학년이기 때문에 다시는 교환학생을 못 온다는 게 큰 이유였다.

또 졸업학년으로 앞으로의 인생을 설계해야 하는데 한국보다 외국이 나을 거라 생각했다.


이스탄불에 남기로 결심한 우리는 본격적으로 이스탄불을 즐기기로 했다.

아야소피아와, 블루모스크에 방문했는데 블루모스크는 공사중이었고, 아야소피아는 낮줄이 너무 길어 저녁에 다시 오기로 했다.

점심시간이 되어 들른 튀르키예 대표 프랜차이즈 'MADO'.

튀르키예식 아침을 먹기 위해 들른 곳이었는데 나쁘지 않은 가격에 다양한 음식을 맛 볼 수 있었다.

사실, 우리 넷이 먹기엔 양이 작았는데 왼쪽에 보이는 무한리필 빵과 오른쪽에 보이는 딸기잼으로만 포만감 넘칠게 배를 채울 수 있었다.

왼쪽에 보이는 음식은 '고즐레미'로 맛은 감자전 맛이 나는데 튀르키예 음식이 입에 안 맞는 나도 맛있게 먹을 수 있었다.

내 옆 친구는 극찬을 하면서 먹었는데 나는 여기와서 그런 맛을 느끼진 못했다...부럽ㅠㅠ


식사를 마치고 지하궁전(?)을 갔다.

규리가 데려간 곳이었는데 여기서 문제가 생겼다.

나는 사진을 늦게 제출해서 학생증을 받지 못하고 있었다.

한국이었으면 사진을 제출하고 얼마 안 있어 학생증을 받을 수 있겠지만, 여긴 유럽이다...

일처리가 진짜 느려 나는 일주일 뒤에나 학생증을 받을 수 있었다.

학생증이 없으면 여러모로 불편한 이유가 이스탄불의 박물관이나 미술관 등은 현지 학생증으로 할인되는 경우가 많다.

이 지하궁전도 같은 경우였는데, 한국의 학생할인처럼 큰 차이가 아닐 거라 생각하고 정가를 지불하여 들어가려 했지만, 학생가격 20리라가 정가 300리라가 되는 광경을 보니 도저히 돈을 꺼낼 수 없었다.

결국 나만 제외하고 나머지 셋만 지하궁전을 구경하였고 나는 그 사이에 주변 사진을 찍으며 돌아다녔다.


나만 못간 그 곳

이후에는 사진도 찍으며 바자르를 돌아다녔다.

말 그대로 한국의 시장을 생각하면 되는데 이스탄불에는 여러 바자르가 있다.

우리는 세 군데 정도의 바자르를 돌아다녔는데 나는 여행을 다닐 때 최소한의 경비만 지출한다.

악세사리나 옷, 음식 등 대부분의 소비를 안 하고 보고 즐기는 여행을 한다.

따라서 바자르 구경도 사진을 찍고 같이 즐기는데 의미가 있었지 뭔가를 사려고 하지는 않았다.

딱 하나 쓴 곳이 있다면, 기념품용 작은 컵받침과 우정반지(?).

물가가 올랐다지만 이런 로컬시장의 물가는 확실히 한국보다 저렴하여 추억을 공유할만한 기념품을 사기엔 좋은 것 같다.


저녁에는 '고려정'이라는 한식당에 가기로 했다.

우리가 있던 바자르에서는 많이 멀었지만, 아야소피아로 주변에 있었기 때문에 튀르키예 음식에 적응 못하는 날 배려해 먹기로 한 곳이다.

근데, 이날 한국인 단체 관람객이 왔었는데 그들이 예약한 것인지 단체손님 때문에 우리를 받을 수 없다고 했다.

아쉬운데로 주변 식당에 들어갔는데 여기서 소중한 인연을 만났다.

사장님 아들이 한국을 많이 좋아한다고 한다.

튀르키예에는 한국을 좋아하는 사람이 많고 한국 이미지가 좋은데(이번 지진 구호활동으로 인해 더 좋아졌다.) 이렇게 직접 만나는 건 처음이었다.

덕분에 우리는 메인 음식을 다 먹고 사장님 아들이 쏘는 디저트까지 배부르게 먹을 수 있었다.

아~ 참 따뜻한 곳이야. 이스탄불에 대한 생각이 조금씩 바뀌어 갔다.


마지막으로 들른 아야소피아는 정말 굉장했다.

밖에서도 웅장함을 자랑했듯이 안에 들어가니 그 어떤 유적지보다 장관이 펼쳐졌다.

압도된다는 느낌을 이 날 처음으로 느꼈던 듯 하다.

우리는 모두 눈앞에 펼쳐진 절경에 감탄했고 나는 이슬람에 대한 편견마저 조금씩 깨졌다.

'이런 멋진 사원을 짓는 종교가 내 생각만큼 나쁠까?'하고 말이다.


다음날 아침, 우리는 어제 먹지 못한 한식에 매우 아쉬워했다.

그래서 직접 만들어 먹기로 했다.

라면을 챙겨온 친구들이 있어 점심은 신라면을 먹었는데 와... 지금도 그 맛에 감탄이 나온다.

어렸을 때부터 길들여진 식성은 성인이 된 이후로는 절대 바뀌지 않는 것 같다.

미국에서 6주 동안 6kg이 찔 정도로 미국음식에 열광했던 내가 가끔 컵라면을 찾고, 매운 음식을 찾아 헤맸다.

하물며, 미국은 한인마트라도 잘 되어있지 튀르키예는 이슬람 국가라 돼지고기가 들어간 식품을 수입하지 못해 한국라면도 찾기 힘들고 매운 음식도 고추, 할리피뇨밖에 없다.

더군다나 나는 여기 음식이 입에 맞지도 않으니... 이런 상황에서 라면과 김치는 나에게 한 줄기 빛과 같았다.

특히 김치를 먹을 때는 감동에 목이 멜 뻔했다.


교환학생을 오며 결심한 일이 있다.

이국적인 풍경을 찍고, 인물사진을 연습하여, 한국에 돌아가면 취미사진으로 돈을 벌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 놓는 것!

그러기 위해선 인스타 계정을 활성화할 필요가 있고, 올릴 사진도 필요했다.

그래서 혼자 주변 바닷가인 Sariyer에 갔다.


살리예르는 우리학교에서 가장 가까운 시내이기 때문에 가끔 나가는 곳이다.

처음 왔을 때는 눈보라가 몰아치는 날이라 스산한 분위기까지 들었는데 지금은 한적한 시골마을 느낌이 난다.

특히, 한국인 포함 외국인이 굳이 이스탄불에서 찾아올만한 장소는 아니어서 외국인을 찾아볼 수가 없는데, 덕분에 길거리는 한국 느낌이 나도 주변인은 외국 느낌이 뿜뿜난다.


이날, 튀르키예 장례식도 처음 봤는데 사실 처음에는 이슬람 예배 드리는 건 줄 알고 사진을 찍을 뻔했다.

그러다 아직 이슬람이 조금 무서워서... 왜 신성한 예배시간에 사진을 찍냐고 뭐라 할 것 같아서 안 찍었는데 현지친구에게 물어보니 여기는 야외장례식을 한다고 했다.

교회로 치면 목사로 보이는 사람이 앞에서 일장연셜을 하고 관을 들고 어딘가로 떠났는데 다행히 사진을 찍는 실수를 하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오늘은 그냥 한식날로 정했다.

김치볶음밥에, 계란국, 피카츄맛 나는 튀김에 양파링을 준비했다.

김치볶음밥은 현지 밥이 버터밥으로 밥에 간이 되어있고 김치도 부족했어서 고추장을 넣는 바람에 고추장 맛이 더 강했지만 한국음식을 먹을 수 있는 현재에 매우 감사했다.

현지음식에 감탄하는 친구들도 가끔 한식을 떠올리는 걸 보면 우리의 피는 이제 바꿀 수가 없나보다.


드디어 내 학생증이 나왔다는 소식에 아침 일찍부터 학교에 갔다.

학생증만 받고 다시 기숙사로 돌아왔는데 그동안은 학생증이 없어 입구에서 왜 학생증이 없는지 설명하고 들어가야 했다.

근데, 이제 그럴 필요가 없다니! 당당히 학생증을 찍고 기숙사에 들어가니 그것만큼 기쁜 게 없었다.


기숙사에 들어가기 전 구내염이 여러 개 나 약국에서 뿌리는 약을 샀는데, 현지인은 좋은 약이라는데 한국의 알보칠을 이길만한 구내염약은 없나싶다.

면봉으로 상처부위를 지지면 길어야 이틀이면 낫는데 여기 약은 내가 목요일에 샀고 일요일에 글을 쓰고 있는데도 아직 낫지 않았다.

여행객이라도 웬만한 약은 조금씩 한국에서 챙겨오길 바란다.


학교 개강이 미뤄지면서 여가시간이 너무 많이 생겼다.

우리는 이 시간을 이스탄불에서만 보낼 수 없다는 생각을 하여 페티예 여행을 계획했다.

우리학교는 유럽 사이드로 페티예에 가기 위해선 아시아 사이드에 있느 사비하 괵첸 국제공항에 가야했는데, 학교에서 사비화괵첸-달라만공항-페티예 숙소까지 7시간 이상이 걸렸다.

하지만, 의지의 한국인은 뭘 해도 뽕을 뽑아야 하지 않겠는가.

10시에 숙소에 도착하고 바로 나와 주변 음식점을 탐색했다.

비수기에 늦은 시간이라 대부분이 문을 닫거나 주방을 마감했는데 기어코 음식을 하는 곳을 발견해 술과 햄버거를 먹고 잤다.


카메라로는 절경이 담기지 않는다

그리고 대망의 다음날 우리는 세계 3대 패러글라이딩 명소라는 욀뤼데니즈로 향했다.

하기 전에는 마냥 신나기만 했는데 눈덮인 산을 끝도없이 오르니 두려움만 커졌다.

저때는 더이상 맨바퀴로 오르기 힘들 거라 생각했는지 중간에 차를 멈추고 체인을 감았다.

그래도 겨울산이라 끝까지 오르지 못해 원래는 1900m 높이에서 하강하는데 우리는 끝까지 오르지 못하고 1200m에서 출발했다.

나와 함께 타는 전문가 분들은 모두 영어를 어느정도 하기 때문에 간단한 소통은 충분히 되고 안전사항이나 내가 꼭 해야 하는 일은 몇번씩 반복해 준다.

그리고 제일 중요한 출발하는 과정은 '달려'라고 한국어로도 말해줬다ㅋㅋㅋㅋ.


10달러, 200리라에 360도 사진을 구매할 수 있다.

내 생각하도 매우 천천히 떨어졌다.

비행을 끝낸 지금 한 가지 아쉬운 점이 남는데 내가 너무 쫄아있었다.

패러글라이딩에서 편하게 앉으면 엉덩이가 쑥 빠지고 안정적인 자세가 되는데 나는 쭉 빠지다 보니 혹시나 내가 떨어지진 않을까 하고 어느정도 몸에 힘을 주니 사진이 어정쩡하게 찍혔다ㅠㅠ.

그래도 위에서 바라보는 블루라곤과 푸른 바다는 정말이지 최고의 광경이었다.

전문가 아저씨는 쉴틈 없이 사진과 동영상을 찍어주었고 영어롤 주변 경관을 설명해줬다.

마지막에 내릴 때 보니 내 앞에서 화려한 묘기를 부리는 친구가 있길래 멋있다 하니 자기 아들이라고 했다.

나중에 알고보니 아들도 아저씨와 같은 직업을 같기 위해 연습하고 있는 것이었다.

아저씨는 내가 묘기가 멋있자 하자 해보고 싶냐고 물었고 나느 바로 "Yes!"를 외쳤다.

이후 아저씨는 카메라를 나에게 맡기고 좌우로 화려한 묘기를 선보였는데, 스릴은 최고였지만 관성력에 몸을 가누기 힘들었다. '대체 한바퀴는 어떻게 도는거지???'라는 생각만 계속 들었다.



아저씨는 끝까지 젠틀하게 나의 환상적인 비행을 도왔고 우리는 인스타를 교환하고 헤어졌다.

페티예는 5월쯤 날씨가 지금보다 따뜻해지면 다시 한번 올 생각이다.

다만, 패러글라이딩을 또 할 생각은 없었는데 1200m가 이정도면 1900m는 어느정도이지?란 생각에 돈만 있다면(성수기는 훨씬 비싸다ㅠㅠ) 여름에도 또 해보고 싶다.


이 날 숙소에서 픽업돼 패러글라이딩을 탄 사람은 한국인 네 명이었다.

즉, 한국인 한 명이 우리보다 먼저 차에 타있었는데 혼자 여행 온 화가 누나였다.

튀르키예의 관광명소를 모두 돌고 여행 막바지였고 자유여행 온 한국인은 처음 본다며 반가워했다.

우리도 여행객 신분으로 새로운 인연(게다가 같은 한국인이라니!)은 언제나 환영이었기에 이날 하루 우리는 같이 다니기로 했다.


패러글라이딩이 끝나고 잠시 해변가에 앉아 휴식을 취한 후 우리는 페티예 시내로 이동했다.

이 누님이 다음날 새벽 1시차를 타고 다른 지역으로 이동해야 했기에 우리는 역에 짐을 맡기고 카야코이로 ㅇ동했다.

카야코이는에는 옛 그리스 유적지가 있었다.

우리의 눈으로는 옛 폐허가 남아있는데 관광객 손으로도 만질 수 있을 정도로 관리는 전혀 안 되어있었다.

게다가 비수기여서 그런지 찾아온 이도 우리밖에 없었다.

땀을 뻘뻘 흘리며 정상에 오른 우리는(거기가 정상인지도 확신이 안 서서 더 올라갔었다.) 인생샹만 건지고 내려왔다.


다시 내려와 페티예 시내올 돌아가기 위해 우리는 현지 미니버스인 돌무쇠를 기다렸다.

돌무쇠는 구글맵에서도 나오지 않는 교통수단이지만 현지에서는 버스보다도 유용하게 쓰인다.

하지만, 타는 곳과 오는 시각을 확인할 방법이 없기 때문에 주변에 도움을 요청하거나 막연이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앞서 말했듯이 이날 여기에 온 관광객은 우리밖에 없었기 때문에 승엽이가 주변 지나가는 분께 길을 물어보았다/

"어때? 알아냈어?"

"모른대..."

그 말 한마디에 좌절하고 있을때쯤 모른다고 하신 그분들이 다시 와서 도와주고 싶다고 말씀하셨다.

그리고는 자기 아들이 한국을 정말 좋아한다고 말해주었다.(대체 어떤 컨텐츠를 보는거지?)

그분들은 꽤 오랬동안 자신들이 한국을 얼마나 좋아하며 서울,인천,부산을 알며 가보고 싶다고 말했다.

재밌었던 건 우리 셋의 고향이 서울,인천,부산이었어서 공통점을 찾을 수 있었다ㅋㅋ.

아들은 한국어로 인사와 감사, 이름이 뭐냐고 우리에게 물었고 우리는 '지금 대체 우리가 뭘 보고 있지?'라는 눈빛으로 이 가족과 대화했다.

그 와중에 어머니는 주변 가게에 들어가 돌무쇠가 15분 정도 뒤에 이곳에 온다고까지 알려주셨다.


맨 앞 애기 뾰루퉁한 건 지금 봤네ㅋㅋ

그렇게 헤어지려는데 누나가 이 가족을 붙잡았다.

만난 것도 인연인데 사진이나 같이 찍자는 이유였다.

가족도 흔쾌히 이에 응해주었고 우리는 먼 타지에서 한국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들과 행복한 사진을 찍었다.

손하트도 즉석에서 우리가 가르쳐 주어서 한국식 사진을 찍을 수 있었다ㅋㅋ.

하지만 이들의 보답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이제 차를 타고 가나 싶었는데 디저트 박스를 두 개나 주면서 우리보고 먹으라 했다.

우리는 괜찮다고 사양했지만 자기네들은 이미 많이 먹어서 배부르다고 했다.

우리는 감사에 마음을 거듭 전했고, 이들의 대가 없는 사랑에 놀라며 이 디저트 만큼은 배가 터지더라도 다 먹어야 한다고 다짐했다.


놀랍게도 이 경험은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다시 시내로 들어가 술집에 들어간 우리는 마침 그곳에서 식사를 마친 아저씨의 타겟이 되었다.

우리가 한국인임을 알아보고 온 그는(다행히다...) 자신이 블랙핑크를 무척 좋아하며 한국 드라마와 영화를 엄청 많이 보았다며 인스타 팔로잉 목록과 넷플릭스 계정을 보여주었다.

그곳에는 많은 한국 아티스트들과 이미 시청한 수많은 K-드라마가 있었다.

손예진,원빈... 등등 많은 한국 아티스트 이름을 줄줄이 말하고 많은 한국 아티스트들과 국민들이 튀르키예 지진에 헌금을 보냈다며 감사해했다.

특히, 앞서 만난 가족도 그렇고 이 아저씨도 특징이 있었는데 아주 오랜 시간 대화를 끊지 않고 우리와 길게 말하고 싶어한다는 것이었다.

영어도 잘 되지 않아 더듬거리고 어쩔 땐 가게 사장님께 통역을 부탁했지만(사장님은 외국인을 상대하다보니 뜻은 다 전달 가능하시다.) 한국을 사랑한다는 말을 반복하며 진심을 계속 꺼내 보여주셨다.

이 아저씨와 30분 가량을 대화하며 나는 처음으로 '언어가 부족해도 진심은 통한다'라는 말이 어떤 말인지 깨달았다.

한국을 사랑하는 아저씨와 사장님

전날부터 긴거리를 이동하였고 아침부터 팰러글라이딩에 산을 타며 많은 에너지를 쏟은 우리였지만 웬일인지 이 믿기지 않는 광경이 신기하기만 하고 마음 한구석이 따뜻해졌다.

또 한국을 빛내는 많은 이들에 감사함을 가졌고 오랜 술자리 우리의 주제는 우리와 만난 한국을 좋아하는 따뜻한 이들에 관한 말이었다.


술자리를 마치고 다음날 이스탄불로 돌아오는 길, 내가 가진 튀르키예에 대한 생각은 180도 바껴있었다.

그리고 나는 이 생각이 내가 만난 단, 두 팀의 튀르키예인이라는 생각에 놀라웠다.

학창시절 국어선생님이 비유를 들며 한 말이 있다. '어제 만난 일본인이 싸가지가 없고, 오늘 만난 일본인이 싸가지가 없다고 내일 만날 일본인도 싸가지가 없다고 생각하면 안된다.'

이 말에 따르면 내가 한국을 좋아하고 조건 없는 사랑과 관심을 준 두 팀의 튀르키예인을 만났다고 튀르키예라는 국가에 대한 이미지를 긍정적으로 재고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사람 마음이 그렇듯이 나는 단, 하루만에 튀르키예에 대한 이미지가 매우 부정에서 매우 긍정으로 바뀌었고, 이건 모두 사람 때문이었다.


다시 한번 나의 행실을 되돌아본다.

어쩌면, 내가 무의식적으로 행한 사소한 행동에 한국에 대한 이미지가 나빠진 외국인이 있을 수도 있다.

반대로 내가 한국에서 도와줬던 외국인들은 나로 인해 한국에 대한 이미지를 좋게 봤을 수도 있다.

새로운 곳으로의 여행은 새로운 생각을 깨우치게 해주며, 나는 그들에게서 무한한 사랑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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