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은 미약하나
비상이다! 개강했다...
미뤄지고 미뤄졌던 개강을 드디어 했다.
다만, 웬만한 강의는 온라인이다.
첫 날에는 마케팅 수업과 체스 수업을 들었다.
그리고 역시 유럽 및 서양권의 수업은 우리와 명백히 다름을 느낄 수 있었다.
첫날 수업은 오리엔테이션으로 진행이 되었는데 나는 전공은 아니지만 마케팅에 관심이 많기 때문에 MARKETING MANAGEMENT 수업을 들었다.
여느 오티와 비슷하게 교수님 약력과 수업에 대한 전반적인 설명이 이어졌다.
근데 갑자기 수업이 어떻게 진행되면 좋겠는지에 대해 친구와 토론을 해보라며 소회의실로 보냈다.
각 방 당 인원은 2명, 즉 나와 다른 친구만 있는 것이다.
우리는 아이스브레이킹도 안 된 상황에서 수업방식에 대해 의견을 나눠야 됐던 것이다...
약 30초 정도의 침묵이 흐르고, "Hello" 상대방이 먼저 말을 걸었다.
"Hello" 나도 화답을 하였고 수업방식에 대한 이야기보다 먼저 아이스 브레킹이 진행됐다.
내가 튀르키예식 이름이 아니다 보니 "Where are you from?"이란 질문을 받았다.
"Guney Kore" 남한의 튀르키예 표현이다.
지난 3주간 어디서 왔어?라는 말을 너무 많이 들어서 아예 튀르키예어로 외웠다.
내가 한국 사람인 것을 알게되자 우리의 대화는 더 쉬워졌다.
비록, 캠을 켜지 않아 둘 다 서로의 얼굴은 몰랐지만 K culture를 많이 접한다는 그녀의 말과 질문 10번은 넘게 받은 것 같은 "왜 튀르키예로 온거야?"에 대한 정석 답변, "한국 사람들은 튀르키예를 형제의 나라로 생각하고, 튀르키예는 동서양에 문화가 섞여있어 꼭 와보고 싶었어."으로 우리는 대화를 이어갔다.
그리고 정작 하라는 수업방식의 이야기보단 드라마에서 보면 "한국 친구들은 다들 늦게까지 공부하던데 진짜야?"에 대한 이야기를 이어갔고 나는 밤 10시까지 학교에 있었던 고등학교 시절 이야기를 해주었다.
친구는 상당히 놀라는 눈치였다.
그렇게 약 7분 정도의 대화를 나누고 수업을 다시 듣는 것도 잠시 우리는 '마케팅이란?"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또다시 소회의실로 보내졌다.
이번엔 남자인 친구와 토론을 하게 됐다.
이전 질문과 달리 이번에는 간단한 인사 후 바로 의견을 나누었다.
나는 마케팅이란 상대를 설득하여 물건을 보다 비싼 값에 사도록 유도하는 행위라고 말하였고, 상대도 이에 공감하며 광고를 마케팅이라고 이야기 하였다.
이전 대화와는 반대로 본론이 끝나고 사적인 대화가 오갔다.
내 전공이 생명공학이다 보니 왜 마케팅 수업을 듣는지 궁금해 했고, 나는 평소 나의 생각이었던 "지금도 그렇고 미래에는 마케팅을 안다는 것이 큰 무기가 될 것이고, 그렇기에 누구든지 마케팅을 무조건 배워야 한다.'라는 의견을 말하였다.
분위기는 비록 어색하였지만, 평소 생각하던 마케팅에 대한 생각이어서 그런지 이 친구와 토론할 때 꽤 많은 말을 내뱉었다.
그리고 나는 생각했다. 아 튀르키예에서 수업... 진짜 힘들겠구나...
수업을 마치고 저녁시간 우리는 주말에 부르사에 갈 계획을 짜기위해 모이기로 하였다.
그런데 한국 친구들이 그사이에 비빔밥 재료를 사고 외국친구들을 위한 요리를 하고 있었다.
나도 내려가서 계란찜을 만들었다.
고추장은 한국에서 가져왔고 야채도 한국과 비슷하여 큰 문제는 없었는데 고기에 잡내가 굉장히 크게 났고, 별다른 양념을 할 게 없었다.
결국 우리는 비장의 무기로 간장을 모든 음식에 쏟아 부으며 조리를 하였는데 결과적으로는 고기 잡내도 어느정도 잡히고 꽤 한식과 비슷한 맛이 되었다.
계란찜도 만들 냄비가 없어서 전자레인지용 그릇에 계란을 풀고 전자레인지에 돌려 만들었는데, 계란을 10개나 넣어 만들었더니 속 깊이 읽을동안 먼저 익어버린 겉 부분의 수분이 모두 날아갔다.
소금도 너무 적게 넣어서 밍밍한 맛이 났는데 다음에 하면 더 맛있는 계란찜을 대접하고 싶다.
사실 나는 외국인 친구들에게 한식을 대접하는 취미는 없다.
한국에서도 요리를 안 하는 탓도 있지만, 뭐랄까 내가 백종원이나 쉐프도 아닌데 한식의 맛을 대표하기 부담스럽고 무섭달까?
다행히 요즘은 한식도 많이 세계화 돼서 한식을 안 먹어본 친구를 찾기 힘들고 우리가 대접하는 친구들도 이전에 다들 한식을 먹어봤지만, 현지화된 한식이 아닌 찐 한식의 맛을 그 친구들이 내가 만든 맛으로 기억할까봐 대접할 생각을 안 했다.
다행히 다른 친구들은 이런 생각보다는 우리나라의 음식을 직접 만들어 외국 친구들에게 소개한다는 사실에 매우 신난듯 했다.
요리도 내가 제일 못해(사실 못 한다는 것보단 할 줄을 모른다는 게 더 정확한 표현이다.) 가장 간단한 계란찜만 내가 하고 나머진 알아서 만들었다.
그렇게 요리를 마무리 짓고 있는데 한 가지 비상사태가 발생했다.
바로 이슬람을 믿고 히잡까지 쓰고 있는 한 튀르키예 친구와 관련된 문제였다.
고추장이 쇠고기 고추장이다 보니 돼지고기와 같은 곳에서 조리되었다.
이슬람 종교는 돼지를 안 먹는 걸 넘어 돼지의 숨결이 닿았기만 해도 모두 먹을 수 없다.
비빔밥에서 가장 중요한 고추장을 제외한 것도 문젠데 더 따지고 보니 김치도 줄 수가 없었다.
고추장과 김치가 빠진 비빔밥이라니...
부랴부랴 고기를 그 친구에게 몰아주고 다른 재료들을 더 넣어줬지만 속으로 저게 과연 한식을 대표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해 많은 의구심을 품었다.
요리를 하다보니 종교뿐만 아니라 문화도 존중하고 깊게 생각해야 했다.
한국은 밥을 한데 모아 나눠먹는 문화를 갖고 있는 반면, 다른 친구들은 아니었다.
사실 세 친구가 대만, 홍콩, 튀르키예여서 튀르키예를 제외한 대만, 홍콩은 나눠먹는 문화를 갖고 있을지 모르지만 그래도 위생상 나누는 게 좋으니 각자 접시에 정성스럽게 플레이팅한 비빔밥을 내줬다.
세 친구의 음식을 만들고 나니 진이 빠져 우리 거는 큰 웍에 모조리 때려박아 비벼 먹었다.
드디어 평가의 시간.
사실 많이 걱정됐는데 모두 맛있게 먹어주었다.
접시가 깊은 접시가 아니어서 비비는데 어려움이 많긴 했지만 모두 그릇의 바닥까지 비워 먹었다.
고기도 잡내가 진짜 심했는데 비벼 놓으니 별로 냄새가 나지 않았다.
완전 한식맛은 아니었는데 왜냐하면 여기서는 밥도 그냥 밥을 주지 않는다.
밖에선 그냥 밥도 팔긴 하는데 보기 어렵고 기숙사 구내식당에서는 버터밥을 판다.
그렇게 우리는 버터비빔밥을 만들었고, 한 70%정도 한식의 맛을 냈던 것 같다.
(고추장, 간장, 참기름, 김가루가 들어갔는데 70%인 걸 보면 여기 음식들의 강한 특색을 유추할 수 있다.)
우리도 맛을 한번 보았는데 완전 한식은 아니지만 생각보다 너무 맛있어서 허겁지겁 먹었다.
튀르키예에 와서 첫 강의를 듣고 처음으로 친구들과 한식을 나눠 먹었다.
한국에만 있었다면 몰랐을 즐거움과 색다른 경험이었다.
뭔가 이 시점부터 내 진로에 대한 고민을 더 깊게 하게 된 것 같다.
화요일은 수업이 하나다.
오전에 수업 하나만 들으면 되기 때문에 점심을 먹고 아이스 스케이팅을 타러갔다.
Koc University는 듣던데로 돈이 많고 부자들이 다니는 학교였다.
헬스장, 수영장이 기숙사, 학굑 각각 하나씩 있고 본관에는 아이스 링크장도 있었다.
규리의 안내를 받아 아이스 링크장으로 들어갔는데 맙소사!
우리가 보통 돈을 내고 이용하는 아이스 링크장과 똑같은 시설이 있었다.
빙질이 부드럽다고는 못하지만 학교 구성원만 이용할 수 있기에 사람도 별로 없고 한적했으며 무엇보다 단 1원의 비용도 지불하지 않고 스케이트와 보호구를 모두 빌릴 수 있었다.
내 마지막 아이스 스케이팅 기억은 초등학교로 거슬러 올라간다.
사실, 그때도 그렇게 잘타진 못했고 겨우 서있는 상태에서 조금씩 앞으로 갈 뿐이었다.
이번에도 빙상 위에 딱 서는 순간 느꼈다.
아, 많이 넘어지겠구나...
성인이 되어 감이 발달해서 그런지 기억을 다시 떠올려 천천히 앞으로 가기까지는 몇 초도 걸리지 않았다.
문제는 몸에 힘이 너무 많이 들어가고 이로 인해 금방 지친다는 거였는데, 가끔 빙질이 안 좋은 곳에 걸리거나 균형을 못 잡고 넘어지기도 하였다.
이때 무릎 보호구를 먼저 차고 스케이트를 신어야 하는 걸 몰라서 스케이트를 신은 상태에서 다시 벗기 귀찮음에 보호구를 하지 않고 들어왔는데 무릎이 아작 날 것만 같아서 바로 나가서 무릎 보호구와 손 보호구를 착용하고 다시 들어왔다.
이후에도 몇 번 계속 넘어졌는데 신기한 건 한 시간이라는 짧은 시간에 생각보다 많은 발전을 이뤘다.
나 스스로도 걸음마 정도만 하면 다행이라고 생각했는데 가끔 뛸 수 있을 정도로는 성장했다.
그리고 욕심이 났다.
더 자주 와서 계속 몸으로 부딪혀 배우고 더 많이 성장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운동에 흥미를 갖다니 21살, 마라톤에 흥미를 갖고 하프마라톤까지 뛰고난 후 5년만에 느끼는 설렘이었다.
아직도 못 해본 것이 많고 내가 잘하고 좋은할 수 있는 수많은 것들을 놓치고 살아가는 것 같다.
정말 이번 한 주는 매일매일 내 진로에 대한 고민을 계속 하게되고 어쩌면 내 미래를 바꿔놓을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었다.
아, 물론 이때 넘어져서 무릎에 생긴 혹과 상처는 아직도 아물지 못했다.
학교에 갈 일이 없어 기숙사에만 있는데 한국인 친구 두 명이 본관 밥이 그렇게 맛있다고 하여 이 날은 밥을 먹으러 학교에 갔다.
한국에 있는 우리 학교는 전교생의 수가 1000명도 되지 않기 때문에 그나마 먹을만한 음식점은 김밥천구이 전부다.
그에 비해 이 학교는 교환학생만 한 학기에 100명이 넘게 받을 정도로 넓고 큰 학교이기 때문에 정말 다양한 음식점이 많다.
물론, 그게 우리 입맛의 맞을지는 별개의 문제지만 이날은 한 친구가 맛있다고 한 음식점에서 음식을 주문했다.
방식은 유리 너머 여러 음식 중 먹고 싶은 음식을 담고 결제하는 형식이었다.
나는 red rice와 감자가 올라가 있는 쾨프테를 주문했다.
이렇게 주분하면 약 4300원 정도가 나온다.
밥과 반찬을 적당히 먹는 가격치고는 나쁘지 않다.(튀르키예 물가도 많이 올라 비싸다.)
또 고른 음식이 내 입맞에도 어느정도 맞았다.
아마, 앞으로 자주 신세 질듯한 가격과 맛이었다.
밥을 먹고는 기숙사로 돌아와 미용실에 갔다.
1층은 여성, 2층은 남성인 규리가 추천해준 미용실이었다.
이전에 승엽이의 머리를 나쁘지 않게 깎아줬기에 믿고 간 미용실이기도 했다.
나는 군 전역한 이후로는 겨울에 머리를 기르고 봄, 여름이 되면 너무 답답해서 결국 다 잘라버리는 패턴을 계속 보였다.
이번에도 똑같았다.
펌까지 해가며 머리를 길렀지만, 매일 손질하기 너무 귀찮고 무엇보다 시간이 지나 머리가 헝클어지면서 긴 앞 머리가 눈을 계속 찔렀다.
결국, 나는 미용실에 가서 내 긴 앞머리를 가리키며 잘라달라 말했다.
그리고 나는 이 말을 절대 하면 안 됐다...
앞머리를 잡고 눈썹을 가리키며 "front hair, eyebrow cut OK?" 내가 영어가 유창하지 않은 것도 있지만 튀르키예의 일반 시민들은 영어를 단 한마디도 못 알아듣는 사람들이 많아 쉽게 설명해주었다.
미용사는 알겠다고 엄치를 치켜들고 내 머리를 자르기 시작했다.
그 전에 옆머리를 어떻게 할건지를 물었는데 나는 투블럭을 싫어해서 가위로 잘라달라 말하였다.
이에 미용사는 바리깡으로 밑에를 살짝 밀고 가위로 하는 게 어떻냐고 물었고 나는 한국처럼 12,15mm 캡을 끼우고 깎는 것을 생각하고 OK 하였다.
그러자 미용사는 거리낄 것 없이 바리깡으로 바로 내 옆머리를 밀었고 그 순간 나는 뭔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달았지만 바뀌는 건 없었다.
이후 가위로도 길이를 재단하는 것 없이 순식간에 머리를 잘라나갔다.
나는 분명히 앞머리만 눈썹까지 잘라달라고 말하였지만 미용사는 내 머리 곳곳을 아작을 내갔다.
머리가 정말 망해버리면 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됐다고 말해야 할지 모른다.
나는 영어도 안 통하는 이 상황에서 어떻게 해야할지 고민하다 여기서 멈쳐버리면 더 이상해질 것만 같아 일단은 미용사에게 모든 걸 맡겼다.
그 결과, 옆머리의 양쪽 층을 누가봐도 1cm는 넘게 차이날 정도로 다르게 내놓고는 다 끝났다는 것이었다.
나는 조용히 있다 이건 아니다 싶어 양쪽 층을 가리키며 밸런스가 안 맞는다 했다.
미용사도 그때서야 양쪽을 번갈아 가며 보다 뭔가 잘못됐다고 느꼈는지 한 쪽의 층을 높였다.
근데 이 사람 재단을 안 한다고 했던 거 기억하는가?
왼쪽 층을 높이다 오른쪽 층을 넘겨버렸다.
그러자 오른쪽 층을 다시 높였다.
이렇게 가다가는 머리 끝까지 자를 때까지 밸런스를 못 맞추고 나는 변발을 해야만 할 것 같았다.
결국 나는 조금 틀어졌긴 했지만 괜찮다는 의사표현을 했고 무려 13000원을 쥐어준 뒤 미용실을 나올 수 있었다.
이런 대참사는 군대를 말년으로 다시 가야할 것만 같은 머리로 재현되었고, 나는 거울을 볼 때마다 피눈물을 흘리며 충성을 박을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짧은 것만 문제가 아니라 섬세함이라곤 찾아볼 수 없다보니 마감을 제대로 하지 않아 뒷머리와 옆머리, 앞머리 등이 모두 삐죽삐죽하고 정돈된 느낌을 주지 못하고 있다.
머리를 자르고 난 직후에는 여성분들이 머리가 망하고 나서 미용실에서 왜 우는지를 이해할 수 있었고 머리를 볼 때마다 진심으로 화가나 기숙사에 들어오자마자 졸리지도 않은 눈을 억지로 감으며 낮잠을 잤다.
지금은 이제 적응돼서 볼 때마다 헛웃음이 나오고 아무렇지 않은데, 그 이유는 앞으로 튀르키예에서 미용실에 갈 일이 없을 것 같다며 스스로 돈 굳었다고 자기 합리화 세뇌를 해서 그렇다.
튀르키예에 방문해 머리를 자를 일이 있으시다면 스타일 같은 건 꿈도 꾸지 말고 현재 자신에 머리 스타일에서 정말 살짝만 다듬어 달라고 말하는 걸 추천드린다.
목요일에 수업 세 개를 몰빵해 놨는데 어쩌다보니 첫 주라 두 개의 수업이 취소되고 하나만 오티를 가졌다.
근데 하나가 이스탄불의 역사였는데 알고보니 사학과 학생들의 전공이고 4학년이 나 포함 4명, 대학원생이 4명이 듣느 정말 정말 어려운 수업이었다.
오죽하면 교수님도 들을 수 있겠냐고 걱정을 하셨다.
그래서 나는 오티가 끝나고 바로 다른 수업으로 도망을 갔다...하하...
나도 꿀과목 듣고 싶은데 우리 학교가 허락을 안 해줘...ㅠㅠ
금~일, 2박 3일로 부르사 여행을 갔다.
두 친구가 감기로 빠지게 되어(한국 친구 한 명은 코로나였다...) 한국인 2명, 대만인 1명, 홍콩인 1명, 튀르키예인 1명의 조합으로 가게 됐다.
사실, 먼저 한국인 한 명이 빠지고 이후 다른 한 명이 빠지게 되면서 다른 외국인 친구 셋이 어색했던 우리는 우리도 빠질까 했지만 숙소를 취소할 수는 없고 우리가 빠지는 상황도 민폐고 어색해서 같이 가게 됐다.
뭐, 결과는 대만족에 내 인생 처음으로 외국인과 같이 여행을 간 아주 재미난 시간이었지만 처음에는 참으로 어색하기만 했다.
금요일 아침 9시 반에 모여 버스터미널로 갔다.
나는 영어울렁증과 외국인 공포증이 꽤 있는 편이다.
무엇보다 영어를 잘 못말하기도 하지만 못 알아듣는 경우도 많고 이런 경우 내가 대답을 해야함에도 말을 시작할 수도 없는 경우가 많아 더 긴장하고 들을려다 못 듣는 편이다.
또한 듣는 데에만 엄청나게 집중하고 있으니 말은 더욱더 생각을 못한다.
따라서 엄청 걱정하고 있고 분위기가 어떨지 긴장하고 있었다.
하지만 대만친구(티파니)가 밝고 말을 많이 거는 성격에 홍콩친구(자스민), 튀르키예 친구(빌게)도 나보다는 말이 많았다.
무엇보다 승엽이가 친구들 앞에서 한국어로 당당하게 계속 이야기할 정도로 웃기고 자신감 넘치는 친구여서 대화가 생각보다 잘 통했다.
그렇게 첫만남의 어색한 분위기 보다는 알아가는 즐거운 분위기 속에 버스터미널에 도착했다.
11시경 간단한 점심을 먹고 부르사로 가는 버스를 탔다.
12시에 타서 3시 반에나 도착하는 강행군 버스였는데, 버스회사도 이를 알아서 그런지 중간에 간식카트를 운영하였다.
예전 한국 기차에 있던 간식카트와는 달리 간단한 과자와 음료를 공짜로 먹을 수 있었다.
나는 처음 보는 빨간 봉지에 있는 과자와 오렌지 주스를 받아 들었다.
빨간 과자는 아마 안에 건포도가 들어있었던 것 같다.
오렌지 주스도 탄산이 들은 오렌지주스였다.
배를 채우고 잠시후 나는 원래 불편한 곳에서는 잠을 못자는 편인데 아침 일찍 깨고 버스에서 있는 시간이 길어서 그런지 잠시 깜빡 졸기도 했다.
숙소에 도착하니 4시경 우리는 짐을 풀고 바로 밖으로 나왔다.
부르사에서 여행하는 3일 내내 날씨는 좋지 못했다.
해도 잘 나지 않아서 매우 추웠다.
나는 이스탄불 날씨가 2월만 버티면 따뜻해질 줄 알고 얇은 못만 챙겨왔기에 남들 보다 배로 떨었다.
하지만 추워도 볼 건 봐야한다.
내 여행의 테마는 항상 조금 더 걷고 조금 더 보자이다.
이날도 추위를 잊고 열심히 돌아다녔다.
부르사의 가장 큰 모스크인 울루 자미를 향해 걷다가 시계탑을 발견했다.
뜻밖에 발견한 명소에 가보자!하고 올라갔는데 살짝 후회했다.
왜냐하면 너무 높다...ㅋㅋㅋㅋㅋ
계속해서 오르막길을 걷고 걷가가 겨우 도착했다.
올라가면 I SEOUL YOU 처럼 BURSA 조형물이 눈에 띈다.
이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으면 된다.
다른 튀르키예 가족이 찍어줄 사람이 없어 힘들게 셀카모드로 찍고 있길래 도와줄까 하다 오지랖이라 생각하고 관뒀는데 다음부터는 보이면 찍어줘야 겠다.
사실 이곳의 명소는 시계탑보다는 높은 곳에서 보이는 도시전경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우리가 간 날은 날씨가 너무 안 좋아 멋진 풍경은 보진 못했다.
사진을 자세히 보면 저 멀리 높은 건물들도 보이는데 날씨가 좋았다면 부르사 메인 시티의 모든 모습을 한 눈에 봤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많이 보일 것 같다.
또한 시계탑이나 BURSA가 아니더라도 미니 기차도 있고 아기자기하게 사진을 찍을 만한 공간은 많아서 BURSA에 잠깐 들를일이 있다면 시계탑에서 도시 전경을 감상하는 것도 좋은 선택이라고 추천드린다.
하루종일 점심에 빵 한 조가리만 먹고 돌아다녀서 그런지 5시가 넘어가면서 배가 고파졌다.
다른 여자애 3명은 그렇게 배고픈 눈치는 아니었지만 우리는 울루 자미에 가기 전에 밥을 먹자고 제안했다.
처음에 계획은 부르사에서 유명한 이스켄데르 케밥을 먹으러 가는 것이었다.
부르사는 오스만 제국이 시작된 곳이면서 이스켄데르 케밥의 원조인 곳이다.
내가 지난주에 카디쿄이에서 먹은 이스켄데르 케밥집은 분점으로 부르사에 본점이 있다.
아마 우리의 계획은 여기를 가는 것이었다.
근데 나와 승엽이는 물론 이스켄데르 케밥이 맛있었고 경험해 볼만하긴 하지만 2주 연속으로 먹기에는 큰 매력이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친구들과 헤어지고 주변 한식당으로 갔다.(한식은 매일 먹어도 안 질려...)
빌게가 좀 실망한 눈치긴 했지만 요거트 고기를 2주연속 먹을 정도로 우리가 튀르키예에 완적히 적응한 건 아니었다.
Little Korea Restaurant이라는 곳이었는데 부르사에 있는 유일한 한식당으로 보였다.
이스탄불에서 먹었던 두 곳의 한식당 보다는 메뉴가 많아 보였다.
우리는 이미 이전 한식당에서 한국과는 다른 맛에 데여봤기 때문에 신중하게 메뉴를 고르고 있었다.
"라면 맛을 믿을 수 없어. 여기도 한국 라면맛이 아니겠지?"
"떡볶이 저번에 별로였잖아. 여기도 현지화 됐을듯. 짜장면이나 먹을까?"라는 대화를 나누다 승엽이가 비빔국수를 보고 "비빔국수나 먹을까?"라고 이야기 하자 카운터에서
"비빔국수 오이 없어서 안 돼요."라는 말이 들려왔다.
우리는 깜짝 놀라서 카운터를 쳐다봤고 한국인 사장님이 지금은 비빔국수가 안된다고 말씀해 주셨다.
지금까지 구글리뷰에서 우리가 간 모든 한식당의 사장님이 한국인이라는 말은 들었는데 단 한번도 한국인을 볼 수 없었다.
근데 여기는 진짜 한군분이였고 우리 말을 듣고 계셨다.
여기 음식을 욕한 건 아니지만 한식당에 대한 불만을 늘어놓는 중이어서 괜히 부끄러웠다ㅋㅋㅋ.
치킨평이 좋아서 각자 치킨 하나씩과 나는 짜장면 승엽이는 라면을 시켰다.
놀라웠던 건 여기 라면이 한국라면 맛 80%를 재현했다.
살짝 다르긴 했지만 다른 한식당에 비해선 더 싼 가격이었고 맛은 더 한식에 가까웠다.
다만, 짜장면이 맛은 있는데 소스를 아껴서 좀 밍밍했다.
치킨은 저렇게 나오고 120리라 였는데 치밥이라는 것이 아무 마음에 들었다.
치킨은 꽤 바삭하고 소스는 교촌의 레드콤보를 따라한 맛이었는데 왜 리뷰에서 칭찬을 받는지 알 수 있었다.
한국인이라면 싫어하지 않고 매콤하게 먹을 수 있는 맛이었다.
좀 더 크리스피하고 좀 더 매우면 더 좋지 않나 싶지만 외국에서 만나느 한식당에 너무 큰 기대는 하지 않기로 했다.
먹는중에 옆에 한국인 회사원 세분이 오셨는데 우리가 간단한 터키어로 주문을 하니 왜그렇게 터키어를 잘하냐고 물어보셨다.
우리는 교환학생이라고 대답을 했다.
그러자 기념품으로 뭘 사가야 되냐고 물으셨고 우리는 카펫이나 커피세트, 작은 악세사리, 찻잔 등을 추천해줬다.
식사를 마치고 나와 왜 우리가 터키어를 잘한다고 생각한 건지 돌이켜 봤는데 딱 우리가 규리를 처음 봤을 때 모습이었던 것 같다ㅋㅋ.
터키어로 직원을 부르고 한 개, 두 개 정도의 간단한 터키어와 감사합니다.를 할 수 있는 실력ㅋㅋ.
터키에 온 지 한 달 우리가 초보자에겐(우리도 초보자지만) 잘 하는 것처럼 보인다는 게 좀 웃겼다.
이슬람 종교는 기도드리는 시간이 있다.
하루에 5번 거리에 기도하라는 신호가 울려퍼진다.
이때 모든 모스크는 기도하는 사람 외에는 입장할 수가 없다.
공교롭게도 우리가 밥을 먹고 모인 시간이 이때와 겹치게 되어 먼저 바로 옆에 있는 바자르를 구경하기로 했다.
구경하다 보니 전통 사탕을 파는 할아버지를 만났다.
여러가지 색깔의 사탕을 막대에 돌려 만들어 줬는데 재미난 구경이었다.
먼저 먹어본 친구가 처음에는 시다해서 안 먹었는데 처음에는 시고 단맛이 같이 나다가 나중에는 단맛이 강하게 났다고 한다.
딱딱한 캔디와는 다르게 물엿같아서 잘 늘어나 조심히 먹어야 한다는 게 특징이다.
간단한 바자르 투어를 마치고 울루 자미에 들어갔다.
내부는 다른 모스크와 비슷했지만 특인한 점이 하나 있었다.
바로 중앙에 분수대가 하나 있었고 주변에서 사람들이 발과 몸을 닦고 있었다.
빌게가 히잡을 쓰고 있고 계속해서 이슬람과 튀르키예 문화에 대해 설명해 주고 있었기 때문에 나는 사람들이 왜 씻고 있는지 바로 물어봤다.
빌게 말로는 신에게 기도 드리기 전 몸을 닦는 것이라 하였다.
또 항상 기도 드리기 전에 닦는 게 아니라 담배를 폈거나 화장실을 갔다온 등 더럽다고 여겨지는 행위를 했을 때만 몸을 닦는 거라고 말해줬다.
또한, 이슬람에서는 몸을 건강하게 유지하라고 가르치기 때문에 술을 멀리한다고 했다.
이 말을 들으니 빌게가 승엽이가 모스크에 들어오기 전 담배 피는 걸 보고 "Oh, no"라고 말했는지 알게 됐다ㅋㅋ.
불경한 행동을 하고 모스크에 들어온 게 된 거였다.
또한 각 그림들이 알라와 무함마드를 상징하며 이 둘을 연결한다고 말해줬고, 알라만이 유일신이고 무함마드는 목사와 같은 이를 다른 인간에게 전달하는 역할이라고 설명해줬다.
그동안 모스크를 보면서 웅장한 모습에 놀라기만 했는데 정보를 알고 나니 안 보이는 것이 보이게 됐다.
특히, 모스크 내부 뿐만 아니라 식당이나, 심지어 우리 숙소에도 알라를 상징하는 그림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다른 문화를 이해하고 느끼기 위해선 공부가 필요한 것 같다.
울루자미를 보고 8시경 빨리 숙소로 복귀했다.
처음에는 다들 어색해서 그런지 TV를 틀어놓고 몇몇만 대화하고 그랬는데 1시간 정도 지나니 둘러 앉아 조금씩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승엽이와 나는 술을 마시기로 약속했었는데 원래는 다들 방으로 들어갈 때 따로 마시려 하다 지금쯤 치킨을 사와서 같이 먹으면 좋을 것 같아서 10시에 맥주를 사러 가겠다고 말했다.
그러자 다른 두 친구도 빌게 눈치를 봤던 건지 덥석 자기네들도 술을 마시겠다고 말했다.
그래서 빌게를 제외하고 같이 술을 마시자가 됐는데 빌게가 10시 이후로는 술을 못산다는 걸 상기시켜줬다.
튀르키예에서는 10시 이후에는 마트에서 술을 못산다.
가끔 파는 사람도 있긴한데 전산에 안 잡히게 현금만 받는다.
그때가 10시 5분 전이어서 우리는 바로 나가서 술과 전기구이 통닭을 사왔다.
빌게에게는 음료수를 사줬고 술이 들어가니 이전보다 더 화기애애하게 이야기가 진행됐다.
근데, 지금 생각해보면 뭔 이야기를 했는지 잘 생각은 안 난다.
술도 많이 안 마셨는데 생각이 안 나는 걸 보면 그렇게 생산적인 이야기는 아니었나 보다.
이튿날 아침 8시부터 주말르크죽으로 출발했다.
주말르크죽은 부르사에 있는 작은 마을이다.
전통을 간직하고 있기 때문에 부르사에 들르면 방문하는 사람들이 많다.
특히 튀르키예 아침인 카바르가 유명하기 때문에 아침부터 방문했다.
주말르크죽은 특히 승엽이고 매우 가고 싶어했던 곳이고 하루종일도 있겠다 한 곳이었는데 사실 정말 작은 마을이어서 별 거 없었다.
또한, 지난주에 간 쿠즈군죽과 마찬가지로 여기도 봄이나 여름에 와야 더 이쁠 것 같았다.
그래도 온 게 아쉬워서 여기서 부루사와 주말르크죽 마그넷을 구입했다.
소소하게 마을 구경 좀 하고 아침식사 파는 곳에 들어가 카발트와 괴즐레메를 시켰다.
이렇게 시켰을 때 인당 133리라(9300원)가 나왔던 것으로 기억한다.
난 음식맛에 대한 만족도 스펙트럼이 크지 않아서 엄청 맛없지 않는이상 웬만하면 먹는데 카발트는 대부분 맛있게 잘 먹었다.
무엇보다 다양한 음식이 나오다보니 입맛에 맞는 음식이 꼭 하나씩은 있어서 좋았다.
괴즐레메는 지난번 MADO에서 먹은 건 무난했는데 여기서 먹은 건 맛있었다.
감자 괴즐레메 였는데 왜 간판 이름에 괴즐레메가 들어가는지 알 수 있는 맛이었다.
빵도 여기서 자주 보이는 바게트 빵이 아닌 식빵같은 걸 줘서 좀 더 신선했다.
특히 잼 3종이 다 맛있었는데 안에 있는 과일을 그냥 먹어도 너무 시거나 떫지 않고 맛있었다.
튀김도 안에 크림치즈(?)가 들은 것 같은데 느끼한 걸 싫어하는 나도 너무 역하지 않게 만족하며 먹을 수 있는 맛이었다.
다만, 올리브는 원래 내가 싫어해서 안 먹는다 쳐도 포도잎으로 쌓인 사르마는 내가 정말 기대한 음식인데 내 입맛에 맞이 않았다.
빌게가 자국 음식과 문화에 대한 자긍심이 높고 별로라고 생각되는 것 같으면 좀 삐지는 모습을 보여줘서 맛있다고 먹긴 했는데 좀 시큼한 맛이 나서 더이상 손은 안 댔다.
카이막은 뭐 항상 꿀과 먹으면 맛있고 전반적으로 만족할만한 식사였다.
우리는 5명이서 먹었는데 남자 5명이면 무조건 배고프고 4명이서 저렇게 먹어야 딱 맞지 않을까 싶다.
주말르크죽에서는 아침만 먹고 바로 울루산으로 이동했다.
여기 온 이유는 스키를 타러!
좋은 날씨를 기대했지만 일기예보처럼 날씨는 좋지 않았고 산 밑에서는 눈에 눈자도 찾아볼 수 없었기 때문에 과연 스키를 탈 수 있을지 의심을 많이 했다.
그래도 여기까지 왔는데 스키를 안 타고 갈 수가 없어서 케이블카를 타고 올라가기로 했다.
튀르키예에 있으면 자국민 우대가 매우 심하다고 느낄 때가 있는데 바로 이런 티켓을 끊고 입장하는 경우이다.
이전에 지하궁전에서도 말했듯이 우리처럼 50% 할인이거나 해봐야 몇천 원 할인 수준이 아니라 정말 말도 안 되게 깎아준다.
여기도 자국민은 케이블카를 70리라에 탈 수 있는데 외국인인 우리는 490리라를 내야했다.
이카멧을 받으면 130리라에 탈 수 있지만 이때 아직 우리는 이카멧을 받지 못한 상태였기에 현지인보다 무려 7배나 비싼 비용을 내고 케이블카를 타야 했다.
케이블카를 타면 탈 수록 불안감만 증폭됐다.
끝없는 안개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우리는 비싼 돈 주고 케이블카를 탔는데 아무것도 안 보이자 실망했다.
또, 볼 수가 없는데 스키를 어떻게 타냐. 스키장 문을 닫았을 것이라 생각했다.
정말 심할 때는 바로 앞 케이블카도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울루산 케이블카는 비싼만큼 정말 길었다.
무려 케이블카를 중간에 한 번 갈아타야 하는데 중간지점까지 약 30분 정도 소요된다.
내가 지금까지 탄 케이블카 중에 가장 길었다.
처음에 우리는 중간지점이 스키를 타는 곳인 줄 알았다.
눈도 꽤 있었고 스키복을 입은 사람들도 있었다.
그렇게 주변을 게속 찾아보고 있는데 아무것도 없어 당황하던 찰나 케이블카가 계속 올라가는 게 보였다.
우리는 설마 했는데 맞았다.
우리는 이제 2/3정도 온 거였고 더 올라가야 했다.
안개가 걷히고 나니 눈덮인 산이 등장했다.
놀랍게도 케이블카는 너무 길어서 안개와 구름을 뚫고 그 위로 올라왔고 우리는 눈 위에서 스키를 타게됐다.
처음에 승엽이와 나는 스키를 탈 생각이 없었기 때문에 스키 아이디어가 다른 세 친구의 의견합의 끝에 나온 건 줄 알았는데 빌게는 춥기만 하고 별로 타고 싶어하지 않아 보였다.
결국, 자스민이 자진희생 해서 빌게만 같이 있기로 했다.
자스민도 스키를 타고 싶은 눈치였지만 착하게도 2시간이 넘는 시간동안 빌게와 근처 카페에서 같이 있어 주었다.
케이블카에서 내린다고 끝이 아니다.
거기서 돌무쇠(미니버스)를 타고 스키를 타는 곳까지 이동해야 한다.
가격은 10리라인데 짧은 거리를 잠깐 가는 것 치곤 비싼 가격이다.
여기서부터는 이런 사소한 비용이 높아지니 놀라지 말길 바란다.
그렇게 나와 승엽이, 그리고 티파니만 스키를 타게 됐다.
나는 왕초보에 4년만에 스키를 타보고, 승엽이는 10년만, 티파니는 아예 처음이어서 셋다 초보자 코스도 어려운 수준이었다.
특히 티파니는 아예 타는 법을 모르기 때문에 기본적인 A자만 알려주고(내가 알려줄 수 있는 건 이게 전부다.) 나도 내 코스와 속도를 제어하지 못하기 때문에 따로 내려갔다.
그렇게 승엽이는 왼쪽, 나는 가운데로 내려가서 한동안 서로를 볼 수 없었다ㅋㅋㅋㅋ.
우리는 스키장비 250리라, 스키복 100리라 총 350리라에 모든 걸 대여했는데 스키 리프트를 이용하기 위해선 추가금이 필요했다.
하지만 우리는 초보자여서 높은 곳까지 올라갈 필요도 없었기에 돈이 아까워 걸어 올라가기로 했다.
한 번 탈 때마다 스키를 벗고 조금 올라간 뒤 다시 내려오기를 반복했다.
나와 티파니는 처음 내려오고 만나게 되어 그렇게 한 번을 타니 승엽이가 연락이 왔다.
아마 이때 연락 안 했으면 끝날 때까지 못 났을거다.
승엽이까지 만나고 계속해서 위로 좀 걸어 올라고 내려오고를 반복하니 오른발 종아리가 쓸려 통증이 크게 왔다.
이상하게 내 왼쪽 종아리는 아프긴 해도 쏙 들어가고 참을만 했는데 오른쪽은 종아리가 더 두꺼운건지 발이 다 안 들어가 조금 떠있고 걸을 때마다 쓸려서 참기가 어려웠다.
그래서 계속 앉아서 최대한 풀어보고 별짓을 다 했는데도 끝까지 발은 바닥에 닿지 못했다.
나중에 스키를 반납하러 걸어갈 때는 통증이 너무 심해 오른발에는 거의 힘을 안 주고 왼발에 의존해 걸어갔는데 숙소에 돌아가서 보니 살아 아예 까져있었다.
덕분에 나는 계속 신발 정리를 하느라 다른 친구들보다 적게 탈 수밖에 없었는데 이게 너무 아쉽다.
또 분명히 나는 A를 하면 속도를 제어할 수 있다고 배워서 그렇게 타는데도 속도 제어가 안 되길래 인터넷에 검색해 봤는데 내가 디테일을 놓치고 있었다.
그래서 이 디테일을 챙겨 다시 타보고 싶었는데 이미 복귀하기 전 몸을 녹이려 카페에 들어와 커피를 마시고 있던 상황이라 더 못 탄 게 너무 아쉽다ㅠㅠ.
결국 마지막까지 내려가긴 내려가도 속도 나려하면 제어하고 나려하면 멈추고를 반복하면서 아주 천천히 내려갔는데 내년 겨울에는 한국에서 꼭 스키장에 가서 배운 걸 써먹어 봐야겠다.
그래도 케이블카는 비쌌지만 스키는 350리라(약 24000원)에 합리적으로 잘 탔다.
우리가 스키를 반납하고 5시쯤 내려오기 시작했는데 내려오는 줄이 너무 길어 케이블카를 탈 수가 없어 7시가 넘어서야 밑에 도착할 수가 있었다.
혹시 갈 사람들이 있다면 일찍 갔다가 4시쯤에는 내려오는 걸 추천드린다.
또 케이블카의 시작과 중간 끝에 있는 화장실에 가격은 4리라지만, 돌무쇠를 타고 스키장으로 이동하면 10리라나 받는다...
공용화장실이 공짜인 우리 입장에서 너무 아깝고 피같은 돈이다.
그러니 화장실은 스키장 오기 전에 미리 이용하자.
나는 추워서 그런지 계속 화장실에 가고 싶어 스키장에서도 이용했다...
덕분에 이날 화장실 비용으로만 1500원을 사용했다(TMI)
또한 내려올 때 우리처럼 사람이 많을 때 내려오면 중간지점에서 케이블카를 타기 위해 매우 오래 기다려야 한다.
이때 화장실에 가고 싶으면 낭패인데, 케이블카가 멈추는 지점을 지나야만 화장실로 가는 길이 나오는데 사람이 많아 이 지역을 프리패스 할 수가 없다.
승엽이가 위에서 화장실을 가지 않아 이때 화장실을 정말 가고 싶어했는데 사람이 많아 거의 30분은 기다리고 나서야 겨우 화장실에 갈 수 있었다.
그러니 커피를 마셨거나, 조금이라도 화장실이 가고 싶다면 그냥 위에서 4리라 내고 화장실 다녀오자.
괜히 중간에서 고통과 인내의 시간을 보낼 수 있다.
내려오니 7시가 넘은터라 주변에서 저녁을 먹으려 했는데 케밥이 다 팔렸다하여 택시를 타고 city center로 돌아와 택시기사 추천 맛집에 갔다.
이 집에서도 닭고기 종류를 먹으려 했더니 다 팔렸다 하여 쾨프테를 먹었다.
100리라에 맛은 쏘쏘.
여담으로 앞서 말했듯 빌게는 자국 문화에 대해 자긍심이 높은데 밑반찬으로 나온 하얀 배추를 보고 우리가 한국의 백김치 같다고 말했는데 바로 그거랑 다르다고 정정해줬다.
그걸 진짜 백김치라고 우긴 건 아니었는데... 그래도 항상 옆에서 설명을 해 준 덕에 이슬람 문화와 튀르키예에 대해 많이 배울 수 있었다.
숙소에 돌아가서는 어제와 다르게 술은 없었지만 더 다양한 이야기를 할 수 있었다.
홍콩과 대만 친구가 있다보니 중국에서 손가락으로 숫자를 세는 방법을 배웠다.
튀르키예어를 우리가 규리가 하는 걸 보고 많이 배웠는데 규리는 항상 음식을 한 개, 아니면 두 개만 주문해 줬기 때문에 우리는 세 개부터는 알 수 없었다ㅋㅋ.
그래서 1부터 10까지 세는 방법을 배웠는데 3이 웃츠고 10이 온인 건만 추가로 기억나고 나머진 기억이 안 난다.
그리고 어쩌다보니 튀르키예어 알파벳송까지 불러가며 공부하는 분위기가 형성됐는데 티파니의 전공은 튀르키예어다.
따라서 튀르키예어를 할 쭐 아는 사람이 두 명이나 있다보니 어느새 우리는 발음교정까지 받아가며 튀르키예어를 배웠다.
또한 실생활에서 쓰이는 간단한 튀르키예어, 수고하세요. 천만에요. 음식을 준비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등 튀르키예 문화와 언어 공부를 아주 빡쎄게 한 여행이었다ㅋㅋ.
그래도 한국어 선생님, 승엽이를 빼놓으면 안 되는데 앞서 말했듯이 당당하게 외국인 앞에서도 한국어를 내뱉는 친구다.
또한 티파니와 자스민은 동양권 친구들이다 보니 한국매체에 노출이 많이 되어있었고 우리의 말을 꽤나 알아 들을 수 있었다.
여행의 시작부터 내가 버스에서 "아, 힘들다."라고 말하니 "힘들어?"라고 답해준 친구들이다ㅋㅋㅋㅋ.
맛있다. 재밌다 정도의 기본적인 한국어는 물론이고 가끔 내가 승엽이와 따로 한국어로 대화한 것도 이해하고 질문하거나 답하는 친구들이다.
이들이 있어서 그런지 승엽이는 더 한국어를 많이 내뱉고 이에 노출된 친구들은 자연스럽게 한국어 실력이 짧은 기간안에 늘어갔고 나중에는 간단한 한국어는 빌게도 알아듣게 되었다ㅋㅋㅋㅋ.
외국인끼리 비록 영어가 주이긴 하지만 각자의 언어와 문화를 공유한다는 점이 이번 여행에서 가장 뜻깊고 정말 재밌었다.
그렇게 빌게를 제외한 우리 넷은 새벽 1시까지 떠들다 잠들었다.
다음날, 완전히 지친 우리는 11시에 체크아웃을 하고 버스터미널에서 간단한 점심을 먹고 학교로 왔다.
이상하게 기운은 안 났는데 10시까지 자서 그런지 버스 안에서 잠은 안 왔다.
근데 학교에 6시쯤 와서 잠시 누워있으니 너무 피곤해서 저녁 약속은 파토냈다ㅋㅋ.
승엽이도 피곤하다 해서 우리 둘이 따로 만나 라면 끓여 먹고 빠빠이 했다.
이 다음 이야기는 이제 이카멧이다... 제발 잘 마무리 되길...
개강 첫 주가 정말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갔다.
한국에서도 이렇게 빠르게 지내가나 싶다.(아마 학점을 적게 들어서 그런 걸지도)
중간중간 언급했지만 여기에 있으면서 내가 얼마나 우물 안 개구리였는지를 느끼고 있고 새로운 진로에 대한 탐색도 즐겁게 이루어지고 있다.
지금으로서는 꼭 생명공학이 아니더라도 즐겁게 돈을 벌며 즐기는 삶을 살 수 있을 것만 같은데 앞으로에 이야기는 학교생활뿐만 아니라 이런 이야기도 담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