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교토에서는 어떤 일이 있던걸까?
첫 혼자 해외여행이라면 누구나 긴장할 법한데, 지금 돌이켜봐도 이상할 정도로 전혀 긴장감이 없었다.
그때의 나는 그저 영화 ‘나는 내일, 어제의 너와 만난다’에 완전히 빠져 있었고, 비행기에 오르자마자 노트북을 켜 3번째 감상에 들어갔다.
놀랍게도 아직까지도 내가 자발적으로 세 번 이상 본 영화는 이 작품이 유일하다.
여행은 설렘으로 가득했고, 목표 달성을 위해 치밀하게 준비한 만큼 끝까지 순조롭기를 바랐지만...
안타깝게도 첫 시작부터 그렇게 순탄치 않았다.
간사이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미리 예매해 둔 JR 하루카 특급열차에 올라 교토로 향했다.
열차 창밖으로 스치는 풍경은 낯설었지만 이상하리만큼 마음은 평온했다.
교토역에 도착한 건 오후 4~5시 무렵.
에어비앤비 주인에게 도착 소식을 전하자 곧 답장이 왔다.
“숙소 앞 버스정류장에서 내리면 차로 데리러 가겠습니다.”
그 순간까지만 해도 모든 게 완벽했다.
모든 게 술술 풀리고 있었다.
8월, 한여름의 교토였지만 들뜬 마음 때문일까?
더위도, 땀도, 불쾌감도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구글맵을 켜보니 버스 한 번이면 숙소 앞까지 바로 갈 수 있다고 했다.
나는 교토 직장인들 사이에 조용히 줄을 서서, 그저 설렘 가득한 마음으로 버스를 기다렸다.
약 10분쯤 지났을까.
문득 버스 도착 안내판을 보던 나는 이상한 낌새를 느꼈다.
‘내가 타야 할 버스가… 없다?’
이쪽도, 저쪽도, 정류장은 여러 개인데 어디에도 내가 찾는 버스 번호가 없었다.
그제야 조금씩 마음속에 작은 불안이 피어올랐다.
일본에 도착한 지 두 시간도 안 되어, 나는 순식간에 멘붕에 빠졌다.
그리고 파워 I인 내가평소라면 절대 하지 않았을 일을저질러버렸다.
'구그르 맵… 바스 아… 도코니…?'
대충 인상 좋은 일본 직장인 아저씨를 붙잡고 되도 않는 일본어를 하며 화면을 보여줬다.
놀랍게도 아저씨는 전혀 당황하지 않고 내 화면을 한 번 훑어보더니, 환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아무 말 없이 나를 다른 줄로 데려가더니 잠시 생각하는 표정을 짓고는 손가락으로 이곳에서 타면 된다는 듯 가리켰다.
그 짧은 순간, 나는 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도움을 받은 기분이었다.
예상치 못한 친절에 가슴이 벅차올라, 무심코 큰 소리로 외쳤다.
“아리가또 고자이마스!!”
꾸벅 인사하는 나를 뒤로하고, 아저씨는 여전히 미소를 머금은 채 천천히 떠나갔다.
하지만 그 따뜻한 친절이 아쉽게도 좋은 결과로 이어지진 않았다.
기다리던 버스는 끝내 오지 않았다.
정말 버스가 존재하지 않았던 건지, 아니면 내가 타야 할 곳을 끝내 찾지 못한 건지 그때의 나는 알 수 없었다. 다만, 거의 두 시간 가까이 교토역 근처를 헤매며 버스를 찾아다녔지만 목적지로 향하는 버스는 끝내 나타나지 않았다.
지금이야 구글맵이 어딜 가든 정확하게 길을 안내하지만, 그때만 해도 종종 엉뚱한 정보를 알려주곤 했다.
그리고 운 나쁘게도 나는 그 ‘엉뚱한 정보’의 피해자였다.
다른 버스를 반대로 타 더 멀리 가는 등 여러 해프닝을 겪은 뒤 겨우 집주인이 말했던 정류장에 도착했다.
당시 시각은 밤 8시.
한여름이라 해가 길 거라 생각했지만, 이미 교토의 거리는 어둑어둑했고 공기엔 습한 밤공기가 스며들고 있었다.
집주인에게 “늦어서 죄송하다”고 메시지를 보내자, 곧 “괜찮아요, 지금 데리러 갈게요”라는 답이 왔다.
그렇게 일본 땅에서 비 맞은 생쥐 꼴이 된 나는 다행히 집주인의 픽업을 받아 겨우 숙소에 도착했다.
집주인은 정말 친절했다.
숙소에 들어서자마자 준비해둔 지도 한 장을 꺼내어 주변 식당과 관광지를 하나씩 짚어가며 설명해주었다.
하지만 그 말들은 이미 녹초가 된 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가기만 했다.
내가 너무너무 가고 싶고 꼭 들려야겠다고 다짐했던 카페가 집주인이 설명해준 숙소 바로 앞 카페였다는 것을 알게 된 건 다음날이었다.
짐을 풀고 잠시 숨을 고른 뒤 집주인이 알려준 식당으로 향했다.
교토는 다른 대도시에 비해 가게 문을 일찍 닫는다.
그래서 선택지는 많지 않았다.
사실 선택할 기운조차 없었다.
그저 오늘 하루를 무사히 마쳤다는 안도감 하나로 몸을 이끌었다.
그때 나는 유튜버가 되고 싶었다.
그래서 카메라와 삼각대를 늘 들고 다녔지만, 혼자 카메라 앞에서 자연스럽게 말할 만큼의 깡은 없었다.
당시만 해도 ‘유튜버’나 ‘브이로그’라는 단어가 지금처럼 익숙하지 않았던 시절이었다.
그래서였을까. 식당 주인의 허락을 받고 혼자 식사 장면을 촬영하자 옆자리 일본인 커플이 신기하다는 듯 나를 쳐다봤다.
대부분의 유튜버라면 이 타이밍에 옆 테이블에 말을 걸며 ‘유튜브 각’을 노렸겠지만
슈퍼 파워 I에 일본어 한마디 못 하던 나는, 그저 돈까스에 코를 박고 조용히 밥을 해치웠다.
숙소에 돌아오니 밤 9시를 막 넘긴 시각.
예정보다 훨씬 늦게 도착한 탓에 오늘 계획은 완전히 어긋났다.
보통이라면 '오늘은 푹 자고 내일 일찍 움직이자'라고 생각했겠지만
그때의 나는 달랐다.
‘모든 영화 촬영지를 꼭 가보겠다.’
그 목표 하나가 머릿속을 지배했다.
고민은 길지 않았다. 체감상 3분도 안 됐을 것이다.
밤 9시가 훌쩍 넘은 시각,
나는 결국 버스 한 번을 갈아타야 하는 교토 부립 식물원을 향해 길을 나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