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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홍콩! 나같은 또라이도 처음이지?

by 김남우

야밤에 일본에서 국제 미아가 되었던 그날보다,

오늘 이야기할 홍콩 여행은 더한 또라이 같았다


때는 2019년 봄.

남들보다 일찍 중간고사를 마친 나는 마카오로 떠난다.


가난한 대학생이었지만 꼭 홍콩을 가보고 싶던 나는 3박 4일 일정으로 마카오-홍콩-마카오를 선택한다.

그마저도 첫날은 공항에서 노숙하느라 딱 하루 홍콩을 구경할 수 있는 미친 일정...

홍콩에 도착했을 때부터 지칠 대로 지친 나였지만 숙소에 가보지도 못한 채 거리 구경에 나섰다.


그리고 그때는 알지 못했다 이 여행이 내 n번 여행 인생에

가장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여행이 될 줄은...




EP1. 그냥 내가 일을 만든다 만들어!!


#1 첫 장면부터 불길했다


홍콩의 거리는 누아르 영황에서 보던 것과 다르지 않았다.

첩첩이 늘어진 건물들과 베란다 밖으로 널어놓은 빨래들은 내가 홍콩에 왔음을 상기시켰다.


이 멋진 홍콩 거리를 더 잘 둘러보기 위해 나는 한 가지 플랜을 계획했다.

바로 트램 오라믹 투어!

이층 트램을 타고 홍콩섬 시내를 도는 투어였다.


언제나 그랬듯 구글맵은 정확한 위치를 알려주지 못했지만 주변을 헤매다 출발 직전 간신히 트램에 탑승했다.

약하게 비가 내리는 날씨였지만, 나는 서둘러 우비를 입고 2층으로 올라갔다.

거기에는 이미 옷보다는 낭만을 선택한 여행객들이 들뜬 미소로 자리를 꿰차고 있었다.


20190420_140138 (2).jpg 홍콩 트램 오라믹 투어

"우와 홍콩의 거리는 이렇게 생겼구나!"

"오 저기가 거긴가? 저기는 꼭 가봐야지!"


짧은 영어실력 탓에 음성 해설은 집어치우고 온전히 거리를 즐기고 있는데 한 가지 문제가 발생했다.

갑자기 먹구름이 끼고 한 치 앞도 보이지 않을 정도로 거리가 어둠에 물들더니 천둥번개가 몰아쳤다.

어느새 우비가 의미 없어질 정도로 폭우가 몸을 파고들었다.


그렇게 길진 않았다.

한 2,3분간 영문도 알지 못한 어둠에 옴짝달싹 못한 채 갇혀있었다.

잠시 후 도시가 다시 빛을 되찾고 트램이 운행을 재개하나 싶더니 이내 다시 운행을 멈추었다.


상황은 점점 심각해졌다.

곧 정비사 두 분이 2층으로 올라와 트램의 전선을 살펴보더니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문제가 생겼나?'


알고 보니, 잠깐의 비바람이 큰 나뭇가지를 쓰러뜨려 트램 전선을 덮어버린 것이었다.

단순한 해프닝인 줄 알았는데, 예상보다 심각했는지 곧 승무원의 방송이 들려왔다.


"현재 열차 운행이 어렵습니다. 정비에 시간이 오래 소요될 예정이오니 내일 이 시각에 다시 오시면 트램 투어가 가능하도록 하겠습니다."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대부분의 승객이 트램에서 내렸다.

시간이 많았다면 나 역시도 그랬겠지만 나에게 주어진 시간은 24시간이 채 안 됐다.

결국 내일이 없는 나와 한 모녀만이 트램운행이 재개되기를 기다렸다.


한 30분쯤 지났을까.

트램이 멈춘 거리엔 비 냄새만 남아 있었고, 나는 ‘이대로 끝인가’ 하는 생각에 괜히 초조했다.


그때, 멈춰 있던 트램이 미세하게 흔들리더니 서서히 앞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렇게 나는 예상치 못한 정전을 지나, 다시 홍콩의 거리를 달릴 수 있었다.


옷이 물에 젖는 걸 극도로 싫어하는 내 입장에서는 매우 짜증 날 상황이지만,

당시에는 트램 투어를 할 수 있다는 사실에 신나서 연신 셔터를 눌렀다.


홍콩에서의 액땜이 참 혹독하다 생각했는데 이제 와서 보면 솜방망이 수준이었다.




#2 미슐랭 별의 함정


비에 젖은 생쥐꼴로 트램 오라믹 투어를 마친 나는 밥이라도 맛있는 걸 먹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연신 인터넷 검색을 해본 끝에 팀호완이라는 미슐랭 원스타 딤섬집을 방문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딤섬이 정확히 어떤 음식인지 몰랐다.

그저 블로그에서 사람들이 ‘꼭 먹어봐야 한다’고 추천한 메뉴 몇 개만 알아둔 게 전부였다.


그런데 한 가지 치명적인 문제가 생겼다.

바로 한국어 메뉴판이 없다는 것..!!


중국어 밑에 영어가 적혀있긴 했다.

그렇지만 우리는 과거 한식이 영어로 어떻게 번역됐는지 알지 않은가?

영어만 보고는 도대체 어떤 음식인지 감을 잡을 수 없었다.


그래서 나는 먹어보고 싶었던 BBQ Burn과 함께 가장 첫 번째 메뉴를 시켰다.

메뉴판의 첫 줄은 언제나 ‘대표 메뉴’라고 믿는, 그 단순한 믿음으로...

이 믿음이 완전한 패착이었다.


20190420_173129 (1).jpg 아직도 충격적인 닭발과 돼지 내장(?) 솥밥

잠시 후,

눈앞에 놓인 음식은 내 예상과는 완전히 달랐다.


윤기 흐르는 닭발과 돼지 내장으로 보이는 무언가가 솥밥 위에 얹혀 있었다.

지금 다시 떠올려도 꽤 충격적인 비주얼이었다.


조심스럽게 한 입 먹어보았지만 양념 하나 없이 소금 간만 된 낯선 풍미는 내 입맛에 맞지 않았다.

메뉴명에 ‘chicken foot’이 적혀 있었던 걸 그때는 눈치채지 못했던 것 같다.


‘이게 진짜 베스트 메뉴라고?’


속으로 중얼거리며 젓가락을 내려놓았다.


후에 튀르키예에서 교확학생으로 만난 홍콩 친구에게 이 사진을 보여주니

그 친구는 환하게 웃으며 “이거 정말 좋아한다”라고 답했다.


그제야 알았다.

입맛은 문화처럼, 각자 자라온 환경의 언어라는 것을.


그날 이후, 나는 여행지에서 낯선 음식을 마주할 때마다
‘못 먹을 음식’이 아니라 ‘아직 익숙하지 않은 언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래도 이건 지금 먹으라고 해도 못 먹을 것 같다..


결국 홍콩에서 음식마저 실패하고 가게를 나왔다.




#3 충전 10분, 멍청 비용 2만 원?


마카오에 도착한 순간부터 나는 숙소와 인연이 없었다.

공항 벤치에서 노숙하고, 숙소에는 제대로 들어가지 못했다.

그러다 보니 핸드폰 배터리는 늘 위태로웠다.


홍콩으로 넘어왔을 때도 사정은 다르지 않았다.

식사를 마치고 나는 유명한 ‘심포니 오브 라이트’를 보기 위해 홍콩섬에서 침사추이로 건너가야 했다.


스크린샷 2025-11-06 오후 3.39.02.png 홍콩 지도/ 출처: 구글 지도 데이터

문제는 방법이었다.

그때의 나는 페리로 바다를 건너는 길이 있다는 걸 몰랐다.

지도 앱이 켜져 있었다면 금세 알았겠지만 남은 배터리 몇 퍼센트에 조마조마하며

택시만이 유일한 방법이라고 믿고 있었다.


그 와중에도 사진 욕심은 버리지 못했다.

저 멀리 대관람차와 빌딩 경치를 담고 싶어 한참을 찍다 보니 핸드폰은 내 여유를 비웃듯 꺼져버렸다.


불이 꺼진 화면을 손에 쥔 채
나는 홍콩의 낯선 거리 한복판에 서 있었다.


그때 근처에서 야외 공연을 준비하던 한 여성이 눈에 들어왔다.
나는 급히 다가가 영어로 말을 건넸다.


“잠시만 충전해도 될까요?”


그녀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가능해요, 대신 10분에 얼마예요.”


순간 귀를 의심했다.

일본에의 경험으로 충전요금이 있다는 건 알았지만 생각보다 비쌌다.


하지만 선택의 여지는 없었다.

나는 사정을 하며 요금을 조금 깎고 그 짧은 10분 동안 내 생명줄을 충전했다.


배터리 표시가 겨우 7%를 넘기자 안도하듯 바로 앞에 있던 택시를 잡았다.

그 택시는 나를 심포니 오브 라이트가 펼쳐지는 바다 건너편으로 데려다주었다.


나중에서야 알았다.

그녀가 공연을 준비하던 그 자리가 페리 선착장이었다는 사실을.

그곳에서 배를 탔다면 더 싸고 더 빨리 도착할 수 있었다는 것도.


그날 나는 전기를 충전한 게 아니라 내 무지를 충전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행의 비용 중에는 항공권도, 숙박비도 아닌 ‘멍청비용’이 가장 값비싸다는 걸 그때 처음 알았다.


그리고 믿기 어렵게도 그보다 더 큰 역경이 그다음에 기다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