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든 일이 지나가면 좋은 일이 온다
가난한 대학생 신분으로 어떻게든 홍콩에 들어온 나.
그런 나를 시험이라도 하듯 하늘은 폭풍우를 퍼붓고 입에 대기도 힘든 음식을 내민다.
결국 아끼고 아낀 돈마저도 뜯겨버린 나!
과연 나의 불운은 어디까지 이어질까???
심포니 오브 라이트까지는 시간이 남아 있었다.
먼저 숙소에 짐을 두고 오기로 했다.
에어비앤비 호스트에게 문 비밀번호를 물어본 뒤, 체크인을 마쳤다.
몸은 이미 한계에 가까웠고 잠시 눕고 싶었지만
배는 고프고 시간도 얼마 남지 않아 부랴부랴 다시 거리로 나섰다.
그때 배터리는 5% 남짓.
“설마 또 큰일이 나겠어?”
아직도 정신을 차리지 못한 채 그렇게 생각하며 근처 음식점을 검색해 들어갔다.
그리고 그날의 마지막 식사와 함께 핸드폰도 완전히 방전되었다.
이쯤 되니 고독을 즐기고 매사 긍정적이던 나에게도 조금씩 한계가 찾아왔다.
난간에 몸을 기대 바라본 홍콩의 야경은 지독히도 아름다웠지만 그날따라 하루가 너무 길게 느껴졌다.
그래도 가만히 있을 수는 없었다.
오늘의 마지막 일정인 심포니 오브 라이트를 강 위에서 볼 수 있는 아쿠아루나 크루즈를 이미 예약해 둔 상태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기에 또다시 문제가 있었는데 탑승장소를 정확히 몰랐다.
예약 시 주소를 받아두긴 했지만 모든 정보가 방전된 핸드폰 속에 있었다.
그때까지는 그래도 낙관적이었다.
“어차피 배가 계속 오가니까 따라가다 보면 어디서 타는지 알겠지.”
하지만 몇 번을 왔다 갔다 해도 그 장소를 알아낼 수는 없었다.
다급한 마음에 식당 직원, 관광객, 현지인처럼 보이는 사람들까지 모두 붙잡고 내 상황을 설명했지만 돌아오는 답은 같았다.
“잘 모르겠어요.”
결국 나는 강가에 서서 멀리 아쿠아루나가 떠가는 모습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이윽고 쇼가 시작되었다.
레이저가 빌딩을 수놓고 화려한 빛들이 물결 위를 흔들었다.
모두가 환호했다.
커플은 사진을 찍고 가족은 웃고 친구들은 장난을 쳤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이틀간 쌓여온 피로와 설움이 한꺼번에 밀려왔다.
'나 혼자 먼 타지에서 이게 뭐 하는 꼴이지?'
'가족, 친구 목소리가 듣고 싶어... 나도 이 행복한 순간을 누군가와 공유하고 싶어.'
하지만 애석하게도 핸드폰은 이미 방전된 뒤였다.
쇼는 끝이 났다.
모두가 상기된 표정으로 여운을 즐기고 있었지만 나는 더 이상 이곳에 있고 싶지 않았다.
무엇보다도 너무 지쳐 있었다.
단 한 가지 생각뿐이었다.
‘숙소로 돌아가야 한다.’
하지만 숙소 주소를 외우지도 못했고 에어비앤비 숙소명을 말해도 택시기사가 알아들을 리가 없었다.
결국, 핸드폰을 충전해야만 했다.
그곳에는 길거리 공연자도 없었다.
나는 거의 미친 사람처럼 모든 대형 호텔을 돌아다니며 전기를 구걸했다.
몇 번이고 거절당했다.
다섯 번, 여섯 번쯤 됐을까.
드디어 한 직원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네, 충전 가능합니다. 핸드폰을 저에게 주시겠어요?”
그때의 안도감은 그 어떤 포상보다도 컸다.
지금도 그렇지만 나는 인생을 그렇게 간절하게 살아오지 않았다.
한두 번 시도해서 안 되면 금세 다른 길을 찾았다.
그런데 목숨이 걸리니 그날만큼은 포기란 단어가 떠오르지 않았다.
그 마음으로 지금까지 살았다면 지금쯤 더 크게 성공하지 않았을까?
가끔 그런 생각을 한다.
잠깐의 충전이 되는 동안 호텔 로비 소파에 몸을 기대 잠시 눈을 붙였다.
그리고 마침내 다시 숙소로 돌아갈 수 있었다.
숙소에 도착했을 때는 밤 11시를 훌쩍 넘긴 시각이었다.
온종일 젖은 몸으로 돌아다닌 탓에 머릿속에는 오직 한 가지 생각뿐이었다.
‘샤워하고 자자. 제발 오늘은 푹 자자.’
그렇게 천근만근인 몸을 이끌고 숙소 문을 열었는데 뭔가 이상했다.
거실에서 떠들던 홍콩 여대생들이 나를 보자 흠칫 놀라더니 재빨리 방 안으로 들어가 문을 닫았다.
그리고 내가 내 방에 들어갔을 때 1층 침대에서 묵고 있던 여성이 나를 보고 매우 경악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제야 짐작이 갔다.
아까 짐을 두러 들렀을 때 느꼈던 이질감이 불안으로 바뀌었다.
숙소의 짐이나 향 등이 남성이 묵을 곳이라고는 생각이 안 들었었다.
나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에어비앤비 페이지를 다시 열어보았다.
그리고 거기서 발견했다.
숙소명 밑에 적힌 작은 글씨를.
‘여성 전용 숙소’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나는 의자에 앉아 초조하게 손톱을 뜯으며 집주인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하지만 늦은 밤이라 답장은 오지 않았다.
그 사이 방 안에서 회의를 마친 듯 여대생 한 명이 나와 내게 말을 걸었다.
"어떤 문제 있으세요? 여긴 어떻게 오셨어요?"
나는 황급히 말했다.
“정말 몰랐어요. 미안해요. 지금 호스트랑 연락이 안 돼서…”
그녀는 고개를 끄덕이며 “제가 대신 연락해 볼게요.”라며 직접 집주인에게 전화를 걸었다.
결론은 우리 둘 다 잘못한 게 있으니 나는 일단 집을 나가고 후에 환불을 받기로 했다.
나도 여기에 더 있을 수는 없으니 수긍했다.
하지만 한국으로 돌아온 뒤 호스트는 말을 바꾸며 환불을 해주지 않았다.
당시 내 입장에선 핸드폰도 방전된 데다 새벽의 홍콩 거리에 나앉는 건 거의 자살행위나 다름없었다.
그래서 “샤워만 하고 나가겠다”라고 사정했고 호스트는 “좋다”라고 했다.
그렇게 잠시 숨을 돌리며 핸드폰을 충전할 시간을 벌었다.
샤워를 마치고 나왔을 때 화장실 문 앞에 서 있던 여대생과 눈이 딱 마주쳤다.
그녀의 얼굴엔 경멸과 혐오가 동시에 스쳤다.
그 표정은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잠깐의 충전을 더 하고 짐을 챙겨 숙소를 나왔다.
하지만 낯선 홍콩의 새벽, 갈 곳은 어디에도 없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구글맵에 ‘사우나’를 검색해 봤지만 있을 리가 없었다.
그때의 나는 너무 지쳐서 무슨 생각으로 길을 걸었는지도 기억나지 않는다.
두려움은 크지 않았다.
한국에서는 새벽 거리를 돌아다니며
공포를 느낀 적이 없었으니까.
그보다 막막함이 더 컸다.
숙소를 구해야 한다는 절박함, 몸을 눕힐 곳이 없다는 현실.
그 모든 게 공포보다 더 무거웠다.
그렇게 정처 없이 걷다가 저 멀리 지하에서 빛이 새어 나오는 걸 봤다.
나는 본능적으로 그곳으로 향했다.
가까이 다가가자 그곳은 지하철역이었다.
운행이 끝났는데도 역은 닫히지 않았고 불도 꺼지지 않았다.
갈 곳이 없던 나는 고민도 하지 않고 지하로 내려갔다.
역 안을 둘러보니 이미 두 명의 노숙자가 자리 잡고 있었다.
신문지와 나무판자로 만든 그들만의 작은 아지트.
그 모습을 보는 순간 이제 고민할 필요가 없다는 걸 알았다.
'여기도 사람이 자고 있잖아. 너무 피곤한데 나도 괜찮겠지.'
지독한 악취 때문에 그들과 멀찍이 떨어져 길 가장자리에 자리를 잡았다.
한국과 달라 짐이 도둑맞을까 겁도 났지만 누군가 노숙하는 나를 보는 게 부끄럽기도 했다.
아직 최소한의 자존심은 남아있었나 보다.
나는 옆으로 누워 새우잠을 청했다.
캐리어와 기념품을 품에 안고 겉옷으로 얼굴을 가린 채 잠이 들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사람들 발소리에 잠에서 깼다.
눈을 뜨자 시계는 새벽 4시, 첫 지하철이 다닐 시각이었다.
나는 짐을 확인하자마자 그 상태로 냅다 역 밖으로 뛰쳐나왔다.
다사다난했던 하루가 비로소 끝나는 순간이었다.
잠은 어찌어찌 해결했지만 또다시 갈 곳이 없었다.
마카오로 넘어가기엔 너무 이르고 배는 고팠지만 문을 연 식당이 없었다.
그렇게 검색을 하다 보니 홍콩 사람들이 아침으로 즐겨 먹는 음식이 있다는 걸 알게 됐다.
그리고 그 음식으로 유명한 식당이 6시가 조금 넘으면 문을 연다는 정보도 함께 나왔다.
그 순간 나의 새로운 미션이 생겼다.
‘특명: 6시까지 버텨라’
또다시 시간을 어떻게 보낼까 고민하며 거리를 헤매다 한 호텔을 발견했다.
전날 핸드폰을 충전하며 호텔 로비에서 잠시 쉬었던 기억이 떠올랐다.
이제 와서 염치 따질 상황도 아니었다.
나는 조용히 로비 안으로 들어갔다.
벨보이가 의아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봤지만 고개를 숙인 채 핸드폰을 만지며 일행을 기다리는 척했다.
밝기는 최소로 줄이고 한 시간쯤 그렇게 버티다가 조용히 호텔 문을 빠져나왔다.
식당에 가보니 이미 길게 줄이 늘어서 있었다.
나도 맨 뒤로 가 줄을 서있는데 직원이 한 명만 온 손님을 찾았다.
홍콩의 합석문화로 인해 3인만 있는 4인 테이블에 앉을 손님을 찾는 거였는데 이 새벽에 혼자 아침을 먹으러 온 관광객은 나밖에 없었다.
그 덕에 나는 줄을 서지 않고 빠르게 식당 안으로 들어가 세 분의 아주머니와 합석하게 되었다.
"부야오 샹차이"
이미 어떤 음식을 시킬지는 다 알고 갔어서 고수를 빼달라 하며 능숙하게 주문을 마쳤다.
그리고 카톡을 하던 중, 문득 옆자리 아주머니가 말을 걸어왔다.
"한국인이세요?"
나는 잠시 당황했지만 웃으며 고개를 들었다.
"아, 네. 한국인이에요. 한국인이세요?"
사실 나는 이미 그들의 행색과 대화를 통해 한국인임을 눈치채고 있었다.
"아~ 난 또 중국어 써서 중국인인 줄 알고. 놀랐네."
그중 한 아주머니가 웃으며 말했다.
외모로 착각한 건 아니겠지…
그렇게 농담처럼 생각하며 대화가 시작됐다.
그리고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됐다.
세 분 모두 자녀가 있고 그 아들들이 나와 같은 나이였다.
심지어 셋 다 군대에 가 있다는 것도 같았다.
나는 재수를 했어서 또래보다 군대를 늦게 갔다.
게다가 더 놀라운 건 세 분 모두 내가 사는 동네 주민이었다.
낯선 홍콩에서 같은 동네에 살며 나와 동갑인 아들을 두신 분들과 이야기를 나누게 될 줄이야.
이때 세상이 참 작다고 느꼈다.
얘기가 여기까지 이어지니 우리는 급속도로 친밀해졌다.
그렇게 우리는 학업 이야기, 여행 이야기, 시시콜콜한 일상 이야기까지 세대차도 잊은 채 오랜 친구처럼 대화를 이어갔다.
세분은 내가 시킨 음식 외에 자신들이 시킨 음식도 나눠주셨다.
그리고 식사를 마치고는 내 식사값까지 계산해 주셨다.
나는 괜찮다고 정말 괜찮다고 거듭 말했지만 세 분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이런 것도 인연이에요.”
그분들이 떠난 뒤 남은 음식을 마저 먹으며 말로는 설명할 수 없는 감정이 밀려왔다.
불과 30분 전까지만 해도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그 따뜻한 온정 덕분에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 되어 있었다.
‘끝이 좋으면 모든 게 좋다’고 했던가.
하루 종일 비를 맞고 밥도 제대로 못 먹고 돈도 시간도 잔뜩 낭비했지만 비행기를 타고 한국으로 돌아오는 길, 자꾸만 그분들이 생각났다.
그때 문득 이 여행의 목적이 처음부터 이 만남을 위한 것이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본 미아 썰을 쓸 때도 그랬지만 이번에도 기억을 더듬으며 글을 쓰다 보니 한 가지 의문이 들었다.
‘나는 도대체 어떤 여행을 하고 다닌 걸까?’
그래도 한번 의미를 찾아보자면 아마 이때의 경험 덕분에 ‘도전’이라는 단어가 두렵지 않게 된 게 아닐까 싶다.
내 여행 이야기가 누군가에게는 무모하고 철없어 보일지도 모른다.
그래도 단 한 사람이라도 이 글을 통해 작은 용기를 얻을 수 있다면, 그걸로 만족을 얻으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