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전하는 게 두려운 나이가 되었다

싫어하던 어른을 닮아간다

by 김남우
오빠는 진짜 한다면 다 하는 사람같아


내가 살면서 들은 그 어떤 말보다 기억에 남는 칭찬이다.

대학교 3학년, 진로 고민으로 머리가 복잡하던 시기였다.


하고 싶은 일을 찾지 못한 채 이것저것 건드리다 보니

‘잘하는 것 하나 없는 무색무취의 낙오자가 되어가는 건 아닐까’

하는 불안이 늘 마음 한편을 짓눌렀다.


전날에도 혼자 10km 마라톤을 뛰겠다 동네방네 떠벌리고 완주를 하고 돌아왔다.

완주하긴 했지만 마음은 씁쓸했다.


'그래, 이게 내 커리어에 무슨 도움이 되겠어.'

그런 생각이 들던 참에 여자 동기로부터 저 말을 들었다.


나는 늘 ‘시도만 하고 뭐 하나 이룬 게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누군가에게는 시도 자체가 어려운 일이었다.


사실 나에게는 이해가 잘 되지 않았다.

마라톤, 혼자 여행, 쇼핑몰 창업…

큰 성공이 어려운 것뿐이지 ‘그냥 해보는 것’은 두려울 이유가 없다고 여겼다.

새로운 시도를 망설이는 건 지킬 게 많은 어른들의 변명이라고 생각했다.


1690772501879.jpg 내 쇼핑몰 new-serendipity 사진


그런데 군대에서 만난 또래들도 비슷했다.

내가 혼자 다닌 여행 얘기를 해주면 다들 여행 난도에 혀를 내둘렀고

“절대 혼자 여행은 못 간다”라고 손사래를 쳤다.


그때 처음 깨달았다.

'아, 나처럼 이것저것 해보는 사람이 생각보다 적구나.'
'도전을 두려워하는 사람이 이렇게 많구나.'


그 사실을 알게 된 뒤 전역하자마자 혼자 여행한 기록을 담은 에세이를 출간했다.

많은 사람들이 읽진 않았지만 적어도 ‘두려워서 시작조차 못 하는 일’은 없었으면 했다.


KakaoTalk_Photo_2022-08-11-22-07-37.jpeg 공동출판 에세이 <당신을 추억하고, 위로합니다>


책을 출판한 뒤로도 나는 처음 하는 것들에 계속해서 도전했다.

교환학생을 갔고, 여성 쇼핑몰을 차려봤고 모 치킨 브랜드의 SNS 담당이 되기도 했다.

과학기술원 출신의 공대생이 이런 길을 간다고 하면 누구나 “대체 왜?” 하고 물을 만한 선택들이었다.


그러나 그 많은 일을 하면서도 나는 결국 내가 원하는 일을 찾지 못했다.

좋아하지 않은 일을 하면서 큰 성공을 거둔 것도 아니었다.

결국 “그래도 돈은 벌어야지”라는 생각으로 전공을 살려 모 제약회사에 취직했다.


회사생활은?

말 그대로 끔찍했다.

누가 보면 철없다 할 정도로 자유로운 영혼인 내게 제약회사는 지옥이었다.


약물은 사람의 생명과 직결되기 때문에 모든 절차가 극도로 엄격했다.

식약처 감사만 1년에 한두 번은 기본으로 받았다.

게다가 우리 회사는 CDMO 회사라 고객사 감사, 미국 FDA, 유럽, 일본, 튀르키예...

1년 반 만에 내가 경험한 실사만 10번이 넘었다.


공장에서 일어나는 모든 행동에는 근거 문서가 필요했고

절차에서 벗어나는 일은 절대 허용되지 않았다.
행동 하나, 기록 하나까지 모두 문서로 증명해야 했다.


이런 환경에서 하루를 보내고 집에 돌아오면 기운이 하나도 남지 않았다.
회사–헬스장–집,
내 하루는 그게 전부였다.


퇴사를 생각하지 않은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스물여덟이라는 나이에 모아둔 돈 하나 없는 현실이 나를 붙잡았다.


20240429_180828.jpg 입사 첫날-그래도 설렜던 퇴근길


입사할 때는 ‘3년 악착같이 벌어서 1억 만들고 나가야지’ 생각했지만,

잘못된 투자로 통장 잔고는 100만 원을 넘기기도 힘들었다.


모든 걸 포기하고 시체처럼 회사와 집을 오가던 어느 날,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난 이렇게 살고 싶었나?”


어린 마음에 회사를 욕하면서 떠나지 못하는 어른들을 비웃었던 나이다.

그런데 어느새 나는 ‘현실’이라는 말을 방패 삼아 그들과 똑같이 버티고 있었다.

생각지도 않았던 일을 하며 원치 않는 출근길을 나서고 있는 나 자신이 너무 낯설고 부끄러웠다.


회사생활뿐만이 아니다.
여러 실패가 남긴 트라우마 때문인지 어느 순간부터는 도전을 해도
“어차피 또 안 될 거야” 하는 마음이 먼저 들었다.


속으로는 그 사실을 외면했지만 결국 나 또한
‘현실’을 핑계로 몸을 웅크리고 있었다.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더는 퇴사를 미룰 수 없었다.

자유롭게 도전하던 시절의 이야기를 지금의 내가 계속 소비하며
현실을 도피하는 일은 이제 그만해야 한다고 느꼈다.


그래서 결국 퇴사를 선택했고

내 혼자 여행기를 묶은 브런치북을 발간하기로 마음먹었다.


새로운 도전을 해야 하는 이 시점에서
‘도전이 두렵지 않았던 나’가 지금의 나에게
따끔한 한마디를 해주기를 바랐다.


스물여덟.
어느덧 나는 내가 싫어하던 어른들의 모습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었다.


별별 핑계를 대며 현실에 안주하려는

내 모습이 너무나도 싫었다.


그래서 이제는 내게 더 이상 유예를 주지 않기로 했다.


아직 못다 한 여행 이야기도 많지만,
이쯤에서 여러분에게 내 각오를 먼저 들려주고 싶었다.


혹시 나처럼 도전이 두려운 나이가 되었다면,
내 글을 읽고 조금이라도 용기를 얻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