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안, 의도한 건 아니었어..ㅠㅠ
내가 튀르키예에 교환학생으로 갔을 때는 2023년 2월로 규모 7.8의 대지진이 발생했던 때이다.
내가 머물던 이스탄불과는 멀리 떨어진 시리아 접경지역에서 발생한 재해였지만,
방학 기간이었던 탓에 우리 학교 학생도 세 명이나 사망했다.
학교는 일주일 넘게 애도 기간을 가졌다.
그 시기, Koc University에 있던 한국인 학생은 나를 포함해 네 명이었다.
죽음 앞에서 우리도 조용히 지냈지만,
애도 기간이 길어지자 어느새 무료함이 스멀스멀 올라오기 시작했다.
게다가 개강도 계속 미뤄지면서
“그냥 한국으로 돌아가야 하나?” 하는 고민도 생겼다.
결국 우리는 넷이 종종 모여 회의를 했고,
항상 밖에 나갈 수 없으니 자연스레 내 기숙사 방에서 술 한 잔씩 기울였다.
물론 한국 학교들처럼 기숙사 내 음주반입은 불법이었다.
하지만 따로 검사를 하지 않아 가방에 술만 잘 숨기면 들키지 않는 구조였다.
그날도 저녁에 모여 떠들며 술을 마시고 있는데
갑자기 문이 ‘덜컥’ 열렸다.
깜짝 놀라 고개를 돌리니
짐을 한가득 들고 들어오는 한 학생이 보였다.
내 첫 룸메이트였다.
우리는 반사적으로 술을 숨기려 했지만 이미 늦었다.
튀르키예 캔맥주는 1L짜리도 많았고
우리가 마시던 술은 숨기기엔 부피가 너무 컸다.
결국, 룸메이트에게
기숙사에서 버젓이 술 마시는 장면을 들켜버렸다.
너무 당황해 “Sorry”만 남기고
문을 그대로 박차고 나왔다.
나도 어디 갈 상황은 아니었지만
무조건 도망쳐야만 할 것 같았다.
아직 룸메이트가 오지 않은 한국인 친구 방에서
한숨을 돌렸다.
'이 상황을 어떻게 설명해야 하지?'
짱구를 돌려봤지만, 변명거리는 없었다.
그래도 인사는 해야 한다는 생각에
잠시 후 다시 방으로 돌아갔다.
방에 돌아오니
룸메이트는 이미 짐을 다 풀고 컴퓨터를 하고 있었다.
나는 조심스럽게 인사를 건넸고
우리는 간단히 통성명을 했다.
룸메는 튀르키예 1학년 학생이었고,
역시나 이슬람을 믿는 무슬림이었다.
술은 당연히 하지 않는다고 했다.
MBTI 극 I인 나도 말수가 적지만
룸메이트도 그리 활달한 유형은 아니었는지
우리 대화는 금방 끊겼다.
더 이상 할 말이 없어
노트북을 켜려던 순간,
그가 먼저 말을 걸어왔다.
"아까 마시던 거... 술이야?"
너무 놀라 딸꾹질이 나올 뻔했다.
숨을 고르고 겨우 “응…” 하고 답했다.
변명은 떠오르지 않았다.
"기숙사에서 마셔도 돼?"
표정이 무표정이어서
화난 건지, 진짜 궁금했던 건지 구분도 되지 않았다.
어쨌든 나는 흠칫 놀라며 대답했다.
"어... 안 될걸...?"
안 되는 행동을 왜 한 건지 설명할 수는 없었다.
"아, 그래? 응.."
나에게 하지 말라고 경고를 했던 걸까?
그것이 그날 우리의 마지막 대화였다.
이후로 나는 룸메이트 앞에서 술을 마시지 않았다.
물론, 그 친구도 나에게 술을 마시지 말라고 강요한 적도 없다.
그저 예의라고 생각했을 뿐이다.
첫 만남은 큰 사고로 시작했지만, 우리는 한동안 평화로웠다.
하지만, 이 평화를 깨게 된 사건이 귀국 전 발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