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슬림 앞에서 술마시면 생기는 일2

기억이 나지 않아..

by 김남우

나는 술을 잘하지 못한다.

그럼에도 술자리의 분위기는 좋아한다.


지금은 그나마 주량을 알고 어느 정도 컨트롤이 되지만,

20대 초반의 나는 필름이 끊기는 날이 잦았다.

버티다가도 술 잘 마시는 친구들과 흐름을 타면

끝내 주체하지 못하고 무너졌다.


그날은 한국인 친구의 생일이었다.

주중에는 각자 선물을 사고 시간을 보내다
저녁이 되자 한 식당에 모였다.


솔트배 누스렛 스테이크 본점.
방송에도 자주 등장하는,
소금을 흩뿌리는 퍼포먼스로 유명한 쉐프의 스테이크 집이다.
이스탄불에 본점이 있다.


이스탄불을 다니며 만난 한국인 여행객들의 평은
솔직히 썩 좋지 않았다.
그래도 네 달을 머무는 동안
이곳을 안 가볼 수는 없었다.


“한국 돌아가기 전에 꼭 가보자.”


그렇게 다짐했는데 미루고 미루다
드디어 그날 방문하게 되었다.


워낙 여기저기 돌아다니는 사람이라

그날 솔트배는 가게에 없었고

대신 동생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우리는 대표 메뉴인 버터 스테이크와 양갈비를 포함해 여러 가지를 주문했다.

이곳에 온 이유로 빼놓을 수 없는 퍼포먼스!



결코 저렴하진 않았지만

눈과 입이 모두 즐거운 식사였다.

식사를 마친 뒤
우리는 기숙사 근처 술집으로 2차를 갔다.


튀르키예는 이슬람 문화권이지만
국가 공인 종교가 이슬람은 아니다.


이는 세속주의를 추구했던 초대 대통령,
무스타파 케말의 영향이 크다.
오스만 제국이 무너진 뒤
서구 세력에 맞서 국가를 지켜야 했던 그는
튀르키예를 종교의 속박에서 벗어나게 하려 했다.


그래서인지
자국민 중에는 술을 마시지 않는 사람이 많지만
도시 곳곳에는 술집이 꽤 많다.
(돌이켜보면 술 마시는 튀르키예인도 적지 않았다.)


우리도 외부 테이블에 앉아
도란도란 술자리를 이어갔다.


한국에서의 이야기,
튀르키예 수업 이야기,
앞으로의 계획까지.


이야기가 길어지다 보니
술도 한두 잔씩 계속 비워졌다.


원래라면 적당히 끊었어야 했다.
하지만 친구의 생일이기도 했고
오랜만에 한국에서처럼 마시다 보니
컨트롤 하지 못했다.


어느 순간 문득 정신이 들었을 때,
나는 내 첫 룸메이트 앞에서
끊임없이 질문을 쏟아내고 있었다.


정확히 말하면
정신이 들었다기보다는
필름이 끊긴 기억 중
그 장면만 남아 있었다.


“넌 술 안 마시는데 내가 마시는 건 괜찮아?”


“라마단 때 밥 안 먹는 거 힘들지 않아?”


기억은 흐릿하지만
나는 폭풍 질문을 하고 있었고
룸메이트는 잠도 못 잔 채
짧은 영어로 하나하나 답해주고 있었다.


모든 의문이 해소되자
나는 스페인 그라나다에서 사 온
알함브라 궁전 마그넷을 꺼냈다.


그라나다는 과거 이슬람 왕국이 있던 곳이고,
알함브라 궁전은 그 흔적을 고스란히 간직한 건축물이다.


그곳을 여행하며
룸메이트가 떠올라
마그넷을 하나 사 두었었다.


흐린 눈으로 답하던 룸메는
내 선물을 보더니
신기한 표정으로 한참을 바라봤다.


“알함브라 궁전 알아? 스페인도 예전에 이슬람이었더라고.”


그는 들어본 적 있다며 선물에 고맙다고 말했다.


그리고 그게 그날의 마지막 기억이다.


술에 취해선 대화를 잘 나눴는데
다음 날 우리는 다시
서먹한 사이로 돌아갔다.


룸메이트는
내가 돌아가는 날까지
그날의 일을 꺼내지 않았다.


금주가 기본인 나라라
튀르키예에서 술과 관련된 추억은 많지 않다.


라마단 기간,
그들이 낮에 밥을 먹지 않을 때
나는 자유롭게 식사를 했고
(물론 눈치는 조금 봤지만),


그들은 술을 마시지 않지만
나는 자유롭게 술을 마셨다.


무슬림들이 가득한 세상 속에서 살아가며
나는 문득 이런 생각을 했다.


서로의 삶을 강요하지 않고
그저 존중할 수만 있다면,
세상에 갈등이 이렇게까지 많을까 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