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 ‘의 다른 의미
‘철컥’ 하면 ‘띠리리’ 해야 하는데, ‘
철컥’ 하자 ‘띠리리 삐삐삐삐’ 한다.
우리 집 도어락 밥 달라는 아우성이다.
‘왜 이리 건전지가 빨리 닳는 느낌이지?’ 싶지만 일단 버틴다. 건전지의 남아있는 잔량을 조금이라도 더 쓰기 위함이라 포장해 보지만 사실 귀찮다. 서랍에서 건전지 꺼내다 갈아 끼우는 게, 별 일 아님에도 그렇게 귀찮아서 삐삐삐삐 소리를 사흘이나 들었다.
나흘째 되던 날, 경고음이 나는 것 빼면 사흘이나 더 써도 아무 이상이 없는 걸 보니 한 일주일쯤 더 써도 되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잠시 하다가 생각난 김에 갈기로 했다.
그리고는 다시 한번, ‘왜 이리 빨리 닳는가?’에 대해 생각해 봤다. 건전지가 에너자이저가 아니라서 그런가? 란 생각이 드는 걸 보면, 에너자이저가 적어도 나에게는 ‘오래가는 건전지’로 마케팅이 제대로 됐나 보다.
두 번째로 추측되는 이유는 우리 집이 주택이라서다. 복도나 공용현관 없이 현관문 하나를 두고 바람 부는 외부와 실내가 맞닿아있다 보니 기온이 낮아 빠르게 방전될 수도 있지 않을까 싶다.
세 번째 이유는 비밀번호가 너무 길어서다. 보통 도어락 비밀번호는 네 자리가 대부분인데 우리 집은 무려 일곱 자리다. 일곱 자리나 된 이유는 단순하다. 처음 ‘도어락’을 설치할 때 엄마 집에 안 쓰는 도어락을 받아 설치했다. 당시 아빠가 직접 설치해 주며 비밀번호를 엄마아빠 집과 같은 일곱 자리 숫자로 설정해 주셨는데, 당시 살던 집이 공용현관 비밀번호도 없는 복도식 아파트라 보안에 나쁘지 않겠다 싶어 그 번호를 그대로 사용했다.
그 뒤 두 번의 이사를 더 했고, 도어락도 새 거로 바꿨지만 비밀번호는 여전히 일곱 자리 그대로였다. 바꾸자니 귀찮기도 하고, 딱히 쓸 숫자도 없다. 바꾸기 귀찮다고 온 가족이 하루에도 몇 번씩 누르는 도어락을 일곱 자리로 쓰다니… 다시 생각해도 앞뒤가 맞지 않지만, 별다른 일이 없다면 앞으로도 이렇게 지낼 것 같다.
며칠을 미루다 해치우긴 했지만, 사실 도어락 건전지 교체는 정말 간단한 일이다. 안에서 문을 닫은 채 뚜껑을 위로 밀어 올려 열고, 건전지를 교체하고 뚜껑을 닫으면 된다. 심지어 ’드르륵‘하고 다시 작동되는 소리가 들리면 잔잔한 성취감도 느껴진다. 불과 5년여 전까지 나는 도어락 건전지 하나를 스스로 갈아본 적 없었다. 부모님과 살 때는 당연히 아빠의 몫이었고, 자취하던 시기에는 열쇠를 사용했으며 결혼 후에는 남편이 맡아서 하던 일이었기 때문이다.
어릴 때부터 집에 무언가 고장이 나거나 오작동이 일어나는 등의 일은 모두 아빠가 처리했기 때문에 당연히 이런 일(?)은 남편의 몫이라 생각했다. 막상 하자면 또 하는데, 그 맘이 잘 안 먹어진달까? 남편도 집안일 지분참여도 시킬 겸, 그렇게 신경 쓰지 않고 지내다가 남편의 회사 일이 바빠지며 내가 할 수밖에 없게 됐다. 도어락 뿐 아니라 보일러 살피기, 주방소형가전 간단한 수리(?) 등 이것저것 작지만 스스로 집을 돌보는 일을 하나씩 해 내자 좀 더 ‘어른’의 모습에 가까워진 것 같아 기분이 좋았다.
깊은 생각은 얼마나 깊은 것인지, 능숙함은 몇 번째 정도에 하던 일을 성공해야 하는지 명확한 기준은 없지만 그저 막연하게, 나이를 먹으면 자연스레 깊이 생각하고 모든 걸 능숙하게 해 내는 어른이 되어 있을 줄 알았다. 불과 10년 전까지만 해도, 서른 살의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막상 마흔이나 된 지금의 나는 아직도 어리숙하고 헐랭이 같은 구석이 넘쳐난다.
인터넷에 도는 ‘짤’ 중에, 과거 서른과 현재의 서른 살, 서른 살을 보는 주위 시선 들을 재미있게 각색한 것들이 있다. 가볍게 웃고 넘어갔지만, 서른이 아니라 마흔이 돼도 별반 다르지 않은 것 같다. ‘나이는 숫자일 뿐’이라는 카피가 나이와 무관하게 도전할 수 있다는 응원의 메시지인 줄만 알았는데, 지금 보니 나이만 먹지 마음은 똑같다는 의미 같기도 하다. 나는 여전히 흔들리고, 여전히 허술하다. 어쩌면 ‘어른’이라는 것은 언젠가 될 수 있는 대상, 목적이 아니라, 되어가는 과정이 전부일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