되는 거 잘하면 되지.
우리 집은 층마다 각 1개, 그러니까 총 3개의 화장실이 있다. 나는 주로 1층이 생활권이다 보니, 1층화장실에 내 물건을 모두 두고 쓰는데, 세면대 앞 거울장 안에 옹기종기 넣어두고 사용하고 있다.
화장품이라고 해봐야, 몇 가지 없는데, 잡티를 옅게 해 준다는(아직까지 효과는 모르겠지만) 비타민C세럼, 비건스킨, 크림, 선크림 이렇게 있고, 색조화장을 하는 날을 위한? 쿠션팩트와 액체타입의 블러셔가 한 개, 붉은빛의 립밤이 하나 있다.
예전에 비하면 정말 단출하디 단출한 화장대다. 화장대가 단출해진 이유는 간단하다. 화장하는 걸 즐기지 않고, 그러니 잘 못하며, 결정적으로 내가 평소에 입는 옷은 메이크업과 맞지 않다.
두 아이 라이딩을 하고 바로 운동을 하고 오는지라, 평일 내 복장은 운동화+운동복바지+운동복상의+캡모자로 늘 똑같다. 운동하고 집에 와서 씻고 나면, 개운한 기분에 그대로 있고 싶으니, 그 이후엔 스킨, 로션, 선크림만 바른다.
화장대 제품군을 줄이기까지 정말 오랜 시간이 걸렸다.
’ 00 아이라인은 안 번진다니까…‘하고 사도,
내가 쓰면 판다가 되고,
‘쉐딩을 하면 얼굴이 작아 보인다니까…’하고
브러시를 사도 내가 하면 땟국물자국 같았다.
‘눈썹을 잘 그리면 인상이 달라진다.’라기에
아이브로우와 마스카라 등등 샀지만,
나는 원래 눈썹부자라 욕심껏 그리다간
짱구 꼴이 되기 십상이었다.
없는 재주로 이것, 저것 사 보고, 다 쓰지도 못한 채 버리기를 반복하다가 결국 인정해 버렸다.
‘난 화장 못하겠다.’
‘그래, 뭐, 피부가 중요하지. 색조가 중요한가..‘
라고 위로하기엔 두 번의 출산을 거치며
기미 재벌이 되어버렸다.
‘그럼 뭐 어때, 건강해 보이면 되지. ’
(정말 많이 양보했다.) 라며 물 많이 마시고, 운동하고, 잠도 많이 잔다.
그리고 가끔, 아주 가끔, 거울장 끝에 세워둔 마스크팩 유통기한을 확인하며 한 장씩 붙여본다. 오늘이 아주 가끔 있는 그런 날이다. 마스크팩 붙이고, 종아리 아래 폼롤러 굴리며 여유 부리는 날.
마스크팩 한 번 붙인다고, 오늘 오전 햇빛 아래 종종 뛰며 생긴 잡티가 없어지진 않겠지만, 남들이 육퇴 후 시원한 캔맥주를 까며 작은 행복감을 얻는 것처럼, 그저 소소하게 행복을 챙겨본다.
부족함을 인정하고, 되는 거 잘하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