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천적 성격과
무엇이든 금방 잊어버리는 단순함.
단점인 줄 알았던 이 것들은
알고 보니 내가 가진 강력한 무기들이었다.
그렇기에 나는 아파트에 살 때도
그곳이 정말 행복한 보금자리였다.
10평대 아파트에 살 때 집은
작고 소중한 나의 첫 보금자리였고,
20평대 아파트에 살 때는 전에 비해
엄청 넓은 보금자리가 생겼다는 사실이 행복했다.
이런 안정적이고 편안한 보금자리를 뒤로하고
주택이라는 곳을 택할 때 나의 마음은,
마을에 살다가 갑자기 집을 잃고
산속 산장에서 살게 된 심정에 가까웠다.
물론 그 와중에도 나는,
‘산에 살면 표고버섯을 키워볼까?’라는
생각을 하는 사람이긴 하지만,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시작하긴 했지만
주택살이는 처음이었기에
최소한의 안전장치가 있는 곳을 골랐다.
대중교통으로 충분히 서울에 접근이 가능하고
쓰레기 처리가 편리할 것.
되게 많다고 생각했는데
글을 쓰며 되짚어보니 저 두 가지가 전부였나 보다.
우려가 무색하게도 처음 이사 왔을 때는
매일매일이 펜션에 놀러 온 것 같았다.
‘이게 정말 우리 집이라니.’
믿을 수가 없었다.
물론 불편하고 힘든 순간들(다각충이나
그와 유사한 벌레를 마주하는 순간이 대부분)이
종종 찾아왔지만 대부분은
내 힘으로 통제가 가능한 범위에 들어있는
문제들이었다.
집이라는 것은
재산가치로도 매우 중요한 존재지만 그에 앞서
쉘터로서의 기능도 충분히 갖춰야 한다고 생각한다.
쉘터는 몸뿐 아니라 마음도 지켜줘야 한다.
비바람을 막아주고
야생동물로부터 안전한 곳을 찾아
동굴에 터를 잡았을 수 천년 전 우리의 조상들도
그 동굴에 들어가면 마음의 안정을 얻었을 것이다.
그러니 그 안에서 그림도 그리고
아기도 낳아 키우고 했겠지,
아파트에 살 때 이미
나는 최대한의 안정감을 누리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단 하나, 힘든 것은 ‘소음’이었다.
특히나 내가 어쩔 수 없는 소음들.
내 의지와 상관없이 송출되는 방송,
몇 층 떨어진 집의 인테리어 공사 소음,
위층 할머니가 새벽부터 마늘 빻는 소리,
자려고 누운 밤, 베란다 배관을 통해 들려오는
다른 집 아이 우는소리,
밤에 세탁기 돌리지 않는다는 암묵적 룰을 무시한
누군가에 의한 세탁실 배관의 폭포소리.
하지만 이것들만 참아내면, 무시하면
나머지가 모두 편안했다.
아무리 좋은 약일지라도
약간의 독성을 갖고 있는 것처럼
이 정도는 어쩔 수 없는 것이니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주택으로 이사 온 후에 알게 됐다.
소음이 아닌 소리를 듣고 사는 일이
나의 정신건강에
크게 이바지하고 있다는 것을 말이다.
단지형 주택이기에 우리 집 앞은
탁 트인 초원이나 숲 뷰도 아니고
그저 앞 집의 뒤통수 뷰에 불과하지만,
담장 안 내 집 마당은 고작 2-30평에 불과하지만
또 하나의 눈과 귀가 트이며
나의 세상은 더 넓어졌다.
나는 생각보다 소음에 스트레스를 받는 타입이구나,
새소리를 좋아하는 사람이구나,
정말 비가 오는 소리만 듣는 건 이렇게 좋은 거구나,
직접 키워 바로 먹는 토마토와 고추는
이렇게 달큼한 맛이 있었구나,
밭에서 딴 채소를 아무렇게나 뜯어 비벼 먹으면서도
나는 의외로 채소를 좋아하는구나.
채식에 도전해 볼까?
이렇게 그동안 몰랐던
나의 취향도 새로이 찾아가는 중이다.
얼마 전,
두 아이를 출산하고 키우며
무릎이 많이 약해진 내게
남편이 다시 아파트로의 이사를 제안했다.
첫째도 많이 나아졌으니
학교 근처 아파트로 가는 게 어떻겠냐는 것이었다.
층간소음이라는 단점이 있음에도
아파트는 주부에게 있어
최적의 주거타입이라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기에
‘아파트’라는 단어를 들은 순간 내 동공은 흔들렸다.
어디가 우리 조건에 맞을까
부동산 앱을 켜고 찾기 시작했다.
작은 핸드폰 화면을 통해 이 집, 저 집을 기웃거렸다.
일주일쯤 찾아봐도 이렇다 하게
꼭 끌리는 곳이 없었다.
‘아직은 주택에 조금 더 살아봐도 괜찮겠구나.’란
생각이 들며 이사는 나중에 생각해 보기로 했다.
평생토록 주택에만 살 생각도 아니고
그렇다고 반드시 아파트로 돌아갈 것도 아니다.
다만 아직은 여기서 사는 일이 즐거우니까,
아직은 생각보다 썩 괜찮으니까,
조금 더 살아보겠다는 것이다.
살다 보면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더 찾을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