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택에 사는 사이,
몇 가지 잔기술들이 좀 늘었는데
그중 1순위는 단연 ‘운전’이다.
수능시험이 끝나자마자 운전면허를 취득했기에
서류상으로는 20년 차 드라이버지만,
실제 운전대를 본격적으로 잡은 것은 10년 정도다. 그리고 매일매일 운전대를 잡은 것은 5년 정도 됐다.
여기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과거에 비해 운전이 늘었다.‘이지,
‘나는 운전을 잘한다.‘는 아니다.
갓 나온 따끈한 면허증을 출생에 비유한다면,
아장아장 걸음마를 떼고
이제 막 운동화를 신고 폴짝이는 정도랄까?
나의 운전실력이 초급단계까지 성장하는데
큰 도움을 준 일이 있었으니
바로 ‘라이딩’이었다.
아이 학교는 왕복 4km가 조금 안 되는 거리인데,
매일 그 거리를 걸어 다니게 하기에는
아직 여덟 살 어린아이였다.
그래서 매일매일 아이 라이딩을 했다.
그러는 사이 둘째가 태어났고,
어느새 자라서 어린이집에 다니게 되며
라이딩 코스가 +1 됐다.
기동성이 늘자 활동반경도 자연스레 넓어졌다.
육아를 하며 필요한 문화생활을 즐기는데
운전이 이렇게 도움이 될 줄 몰랐다.
서당개도 풍월을 읊기까지 3년이면 족하다는데
나의 본격 라이딩 인생은 어느덧 5년 차.
그래서 셀프로 ‘라이딩의 여왕’이라는
타이틀을 달아주기로 했다.
두 번째 잔기술은 요리다.
도보 5분 거리 단지 앞 상가에 마트가 있고,
마트 닫는 날은 편의점에서라도
필요한 재료를 긴급 공수할 수 있던
지난날은 잊어야 했다.
우리 집은 편의점까지 도보 왕복 20분,
그마저도 빠른 걸음일 때 이 정도고
마트는 이 거리의 1.5배는 족히 더 된다.
그렇다 보니 저녁밥을 하다가
갑자기 필요한 재료가 없는 경우,
내가 가진 것들 중에서 대체제를 찾아야 했다.
이런 일은 보통 부재료나 양념류에서 발생하는데,
갑자기 양파가 없고, 마늘이 없고, 파가 없거나,
고추장, 된장이 떨어지거나
설탕이 떨어지거나,
혹은 간장이 똑 떨어지기도 하고,
방심하는 사이 기름이 떨어지는 날도 있었다.
준비성이 철저한 타입이었다면
애당초 일어나지 않았을 일이지만
안타깝게도 나는 계획, 준비 이런 단어의
반대편에 서 있을 때가 많은 유형의 사람이다.
처음엔 ‘어쩔 수 없이‘ 배달을 시켜 먹었다.
정신없이 저녁밥 하던 와중에
너무나도 적절한 명분이 생긴 것 같아
내심 기뻤던 것도 같다.
그러나 우리 집은 배달도 그리 빨리 오지 않는다.
게다가 저녁시간에 시키면
먹을만한 메뉴가 식탁에 오르기까지는
1시간 반~2시간 가까이 걸린다.
그럼 그날 저녁식사는 망친 것과 다름없다.
이런 시행착오를 몇 차례 겪자
없으면 없는 대로 대체제를 찾는 능력이 생겼다.
‘이게 없으니 저걸 이렇게 넣기.’
‘원래 이만큼인데 조금씩 양을 조절해 섞어 넣기.’
이래저래 음식을 완성시켜 식탁에 올린다.
그런데 이렇게 만든 음식이
가족들에게 반응은 더 좋다.
남편은 이제 요리의 어느 단계를 넘어선 것 같다며
조만간 경지에 이르겠다고 칭찬을 했다.
‘그럼 지금까지는?????’
어쩌면 음식은 정해진 정량의 레피시보다
한 두 가지 사이드킥이 있을 때
진정한 풍미를 갖게 되는 것 일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세 번째 잔기술은 식물 키우기다.
난 오래전부터
식물계의 조용한 암살자로 활동해 왔다.
내가 꽃에 손을 대면 금방 시들었으며
신경 쓰지 않아도 잘 큰다는 다육이나 선인장조차도
나의 손을 거치면 빠른 시일 내에 말라죽거나
물러 죽었다.
이런 내가 손바닥 몇 개 만한
텃밭 한번 해 보겠다고 식물을 찾아보고
파종시기, 모종 심는 시기와 모종 간의 간격,
생육환경 등을 체크한다.
좋은 천연비료는 무엇인지도 찾아본다.
역시 모든 일은 ‘관심’에서 시작해야 함을 느낀다.
내가 땅에 심는 식물의 90%는 먹는 것들인데
아직은 식물관리 초급반 단계라
노력에 대한 보상을 받는 게 중요하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언젠가 머리가 희끗한
프로페셔널 가드너가 될지도 모른다는 꿈도
마음 한편에 가지기 시작했다.
이 외에도
풀 뽑기, 벌레 잡기, 모기 덜 물리기 등
정말이지 하나하나 언급하기엔 너무 소소한
삶의 잔기술들이 점점 쌓여가고 있다.
이런 잔기술들이 모여 나중에 ‘연륜’이라는
이름으로 불릴지 모르겠다.
잔기술을 얻게 된 것도 뿌듯하지만
가장 크게 얻은 게 있다면 아이의 피부 개선이다.
주택이라는 옵션은 은퇴 후,
노후 계획에도 존재하지 않던 내게
주택으로 이사 결정은
아토피로 힘든 아이를 위해 잡은 지푸라기였다.
가장 큰 자본이 움직이는 ‘집’ 문제였기에
집값이 가장 중요했지만
선택 가능한 옵션들 중
일부러 산이 가까운 곳에 있는 집을 선택한 것도
아이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까 싶은
마음에서였다.
물론 아이 피부 상태의 호전은
비단 집을 바꿔서만은 아닐 것이다.
그 사이 병원 치료도 꾸준히 받아왔고
아이도 성장했으며 편식도 줄어드는 등,
생각보다 다양한 변화가 있었으니
이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했을 것이다.
어쨌든, 결과적으로 아이가 많이 나아졌으니
그것만으로도 나의 주택살이는
성공적이라 할 수 있을 것 같다.
만약 호전되지 않았다면
나는 이곳도 뒤로 한 채
지금쯤 지리산 산자락 어딘가에
산장 속으로 들어가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거기까지 가지 않고
이 정도에 머물게 된 것에 감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