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겨울 : 적당하게, 부지런하게

by 까까멜리아

아이가 태어난 해부터

12월 초가 되면

거실 한편에 크리스마스트리를 두기 시작했다.


10평대, 20평대 아파트에 있을 때도

12월 한 달간,

어쩌면 이듬해 1월까지 두 달 가까이

크리스마스트리는 거실 한편을 차지하고 있었다.


나름 30평대 주택으로 오긴 했지만

3개 층으로 나뉘어 있으니 각 층 면적은 10평.


여기에 주방, 화장실, 계단 빼고

식탁까지 두고 나면,

거실이라고 할만한 공간은

우리 네 식구 앉을 정도만 남는다.


이 상태에서 트리를 두려면

TV 보기를 포기해야 한다.


트리냐 티비냐!


당연히! 티비다.






우린 마당 나무에 트리장식을 하기로 했다.


다이소에서 오너먼트를 사서

얼마 전까지 나에게 낙엽 뭉텅이를 선사하고

스키니 하게 서 있는 나뭇가지에 걸어준다.


오너먼트까진 됐으니 이제 전구를 걸 차례다.


실내용 트리전구는 줄이 비교적 짧은 데다

방수처리가 되지 않아 저렴하지만,

야외용 전구는 30m를 구입해도 택도 없다.

게다가 방수기능을 갖춰야 하니

별로 예쁘지도 않은 전구인데

꽤 비싼 값을 줘야 했다.


그래도 트리니까,

전구는 있어야 하니까,

대륙의 제품을 저렴하게 구입해 설치했다.


점등의 순간!


혹시나 안 켜지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무색하게

전구는 짜잔! 멋지게 켜졌다.


요즘은 대륙 제품도 잘 나온다며

너무 좋은 쇼핑이었다고 스스로를 칭찬했다.


그러나!

그 전구는 두 달이 채 안되어 명을 달리했다.


다음번엔 루프탑 카페에 설치하는

굵은 전구를 사겠노라 다짐했지만

생각보다 비싼 값을 보고는

2년째 사지 못하고 있다.


신발 사려 하면 지나가는 사람들

신발만 눈에 보이는 것처럼,

당시 나는 지나가다 카페에 걸린

전구만 눈에 보였다.


전구가 없어도

오너먼트 달린 나무는 여러 그루 있으니

우리 집엔 크리스마스트리가 여러 개 있는 셈이다.






‘트리‘ 제작은

겨울의 시작을 알리는 작은 행사다.


트리 완성 후부터 눈이 오기까지는

특별히 밖에서 할 일이 없다.

이래서 시골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겨우내 마을회관에 모여 고스톱을 치셨나 보다.


지난겨울부터는

눈이 오기 전 길고양이 집을 만들어 두기 시작했다.


우리 동네는 유난히 길고양이가 많은데

고양이에 큰 관심이 없던 나는

그들의 삶에 대해서도 전혀 알지 못했다.


그러다 우연히 겨울에 굶어 죽고 얼어 죽는

길고양이들이 많다는 소식을 접하고는

찬바람을 피할 수 있는 간단한 은신처를 만들어

데크 한편에 놓았다.


고양이 사료까지 구입해 주는 캣맘은 못되지만

얼지 않는 식수와 찬바람 피할 장소만 제공해 주니,

고양이 입장에서 보자면

우리 집은 시즌방과 같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은신처를 만들어두면서도

‘고양이가 정말 와서 자려나?’하는 의문이 들었다.


결과적으로 은신처는

겨우내 충분히 그 역할을 해냈다.


한 고양이가 우리 집에 와서 잠을 자고 갔는데

처음에는 우리 눈에 띄지 않는 시간에만 다녀가더니

나중에는 남편 출근시간이 돼서야 늘어지게

기지개를 켜며 집에서 나오는 모습이

여러 번 목격되기도 했다.


날이 따스해지자

더 이상 고양이가 머물지 않는 것 같아 치워 뒀지만

올 겨울에도 은신처는 그 자리에 그대로

설치해 둘 것이다.






트리를 장식하고

고양이 집을 만들고

매일같이 식수를 갈아주다 보면

드디어 눈이 펑펑 내린다.


part 1.에서 쓴 바와 같이

눈이 펑펑 내리면 이른 아침부터 유산소를 빙자한

눈 치우기를 먼저 한다.

하루 종일 눈이 오는 날엔,

오후에 아이들과 눈을 한번 더 치운다.


노동을 마쳤다면 겨울 놀잇감이 출동할 시간이다.

한때 선풍적 인기를 끌며 품귀현상을 빚었던

눈오리집게,

모래놀이용 삽과 쇠스랑,

눈썰매를 꺼내면 기본 세팅 완료!


방한복들 든든히 챙겨 입고 나가

취향껏 논다.


눈 위에 불어 나오는 사인펜으로

그림을 그리기도 하고

눈덩이를 굴려 눈사람을 만들기도 한다.


어린 시절에나 하던 놀이라 치부하지 말자.


30년 전에도 마흔을 목전에 둔 지금도

눈덩이 굴려 노는 일은 여전히 재밌다.

다만 그때는 지금보다 체력이 조금 더 좋았을 뿐,


아이들이 노는 사이

나는 따뜻한 차를 타서 다시 나온다.

아이들에겐 따끈하게 데운 우유를 주고

나는 따끈한 커피를 들고 담요를 덮고 앉아

잠시 멍 때림의 시간을 갖는다.


이런 하루하루가 모여

겨울날 행복의 순간들이 쌓인다.






겨울날 행복의 순간과는 별개로

주택의 겨울은 실로 어마무시하다.


지금은 몸이 적응되어

긴팔 티셔츠 하나만 입고 있지만 이사한 그 해 겨울,

나는 플리스를 몸에 문신한 듯 입고 다녔다.


겨울철 우리 집 실내 평균온도는 20-21도 사이다.


아파트 생각하고 24도에 맞춰두고 살던

첫 번째 겨울,

가스비 고지서 금액을 보고 등골이 오싹해졌다.


35만 원이 넘는 금액이 찍혀 있었다.

순수 가스비만 35만 원이 넘었다니…

아파트에서는 여간해서 볼 수 없는 숫자를 보고

특단의 조치가 필요하다 생각했다.


난방비 절약 비상대책 위원회 결성!

첫 번째 대책은

실내 평균 온도 조정이다.

처음에 22도로,

몸이 적응하면 조금씩 내리며

20-21도에 안착했다.


두 번째, 계단실 방한커튼 설치!

도톰한 커튼을 구입해 겨울철 계단실에 달아둔다.


세 번째는 합숙 시스템 도입이다.

겨울이 오면 온 가족이 한 방에 모여 잔다.


이렇게 바꾸니

5-6만 원 가까이 아낄 수 있었다.


온수 사용을 줄이면 가스비는 더 줄어들 테지만

적당히 춥게 지내는 와중에

씻는 물까지 차가우면 안 될 것 같아

이 부분은 타협하지 못했다.


대신 좀 덜 씻지 뭐…

겨울이니까.


이렇게

우리의 겨울은 적당히 씻고

부지런히 놀며 지나간다.


이제 그만 추우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즈음,

다시 봄이 찾아온다.


이러니 계절 변화가 너무 재미있고

즐거울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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