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젠 나에게 선물해도 될까요?
꽃을 다듬고 만지는 시간
언제나 특별한 기념일에만 꽃을 사러 기웃거렸다. 한 장의 엽서 그림 같은 꽃가게 안에서는 우아한 주인장이 여유롭게 물을 주며 살짝 미소를 머금고 있다. 여러 차례 들어가 볼지 망설이다 마음을 접는다. 계속되는 끌림을 밀어내다가 어느 날엔가 졸업식이 다가오면 설렌다. 드디어 꽃을 사야 하는 명분이 생겼기에 들뜬 마음으로 가게에 들어선다. 역시나, 눈부시게 어여쁘고 짙고도 옅은 초록들이 사방으로 퍼져있다. 누군가에게 전해주는 떨림은 기분 좋은 기다림으로 이어진다.
그리고 내 손안에 잠시 스쳤다가 다른 이의 품에 한 아름 꽃다발이 안기는 순간 비로소 기쁨을 느낀다.
그러던 내가 이번에 꽃다발 선물을 사러 갔다가 덜컥, 꽃꽂이 수업을 예약해 버렸다.
벌써 네 번째 수업이 이어지고, 선생님은 나를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말했다.
"왜 자꾸 남을 준다 그래요?
꽃을 다시 만져보고 연습하면서 나 자신도 힐링되고 그러면 좋잖아요."
앞선 세 번의 수업 모두 완성작을 다른 이에게 선물했더니, 오늘만큼은 집으로 가져가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나름의 혼을 낸다.
그런데 정말 나는 알지 못했다. 내 마음을 눈치채지 못한 것이다.
꽃바구니를 식탁 위에 올려놓고 한참을 바라본다.
'왜 나는 이곳에 꽃을 데려오지 못했을까?'
쉽게 답이 내려지지 않는다.
'무엇을 위해서 남에게 주려고만 하는 거지?'
한참의 시간이 흐른 뒤에 머릿속에 떠오른다.
아, 나는 어색한 거구나. 나한테 주는 것은 귀한 선물이 되지 못하고 쓸모없게 느껴져 의미를 잃었구나. 선물의 주인공은 당연하게도 "나"를 제외한 다른 모든 사람들이구나.
20대 중반에 부산을 떠났다. 탈출에 가까웠고 집을 벗어남과 동시에 결혼에 뛰어들었다. 안전한 울타리를 두른 듯했지만, 인생의 불확실성은 나아지지 않았다. 살아내야 하는 것에 대한 깊이 있는 성찰 같은 건 없었다.
최선의 길을 향해 앞만 보고 달려갔던 것뿐이다.
그리고 한 가지 나는 계속 주기만 했다. 주는 것이 편했다.
사회복지를 업으로 하게 된 것이 천직이라며 내게 어울린다 했다.
나는 아직도 주는 것이 편하다. 하지만 주고 나서 나는 무얼 바랐던 걸까?
"그래 너 참 잘하고 있어. 잘 버티고 있어."라는 칭찬을 받는 것이 인정받는 것이라 믿었다. 그렇게 해야만 내가 실패하지 않았음을 증명하는 길이라 착각했는지도 모른다.
내가 진정으로 무엇을 원하는지 깊이 들여다보지 못한 채 나에게 선물하는 법조차 잃어버렸다. 하지만 이제부터라도 남에게 반사되어 얻는 기쁨이 아니라 스스로 행복할 수 있는 길을 찾아보려 한다.
다음 수업을 예약하며 "이번 주는 저한테 주는 꽃바구니를 만들고 싶어요."라며 달라진 마음을 보였다.
" 그러면, 더 크고 예쁜 꽃들로 준비해 놓을게요." 선생님의 반기는 목소리가 기분 좋게 귓가를 맴돈다.
회색 필터를 입힌 것처럼 흐리던 하늘이 새파랗게 맑아진다.
"이젠 나에게 선물해도 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