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계 걱정

by 정작가

먹고 살아가는 일은 누구에게나 피할 수 없는 절체절명의 과제다. 우리가 하고 있는 일들의 대부분은 그래서 먹고 살아가는 일과 직간접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공부하고, 취업을 하고 연애 후 결혼에 이르기까지 성인이라면 생계를 걱정할 수밖에 없는 것이 우리들의 운명이기도 할터이다. 비단 이는 자본주의 사회에만 국한된 일도 아니다. 사우디아라비아와 같은 석유부국 또한 이렇게 먹고 살아가는 일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먹고 살아가는 일이 돈만으로는 해결될 수 없는, 사회적인 존재로서 인간의 삶이 단순한 목표만을 지향할 수 없다는 한계에서 찾을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린 여전히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돈을 벌고 일을 해야 하는 숙명적인 운명의 수레바퀴 속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모친과 함께 살림을 합쳤던 것은 만 스무 살이 되기도 전이었다. 모친이 다리를 다치는 바람에 괴산에 있던 집을 팔고 청주에서 자취하던 살림과 합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렇게 월 5만 원짜리 단칸방에서 생계를 책임지는 인생이 펼쳐지게 된 것이다. 채 스물도 되기 전에 일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보니 할 수 있는 일은 적고, 스펙도 제대로 쌓을 수 없었던 상황이라 아르바이트에 의존해 생활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 당시의 형편이었다. 그때만 해도 주유소 아르바이트를 하던 지인에게 단 돈 몇 만 원을 주고 산 자전거를 7년 정도 타게 될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20대 초반의 나를 기억하는 사람들은 '자전거'라는 단어를 떠올릴 만큼 교통수단으로써의 자전거는 상징적인 물건으로 자리 잡았다.


그렇게 자전거를 교통수단 삼아 살아가던 어느 날이었다. 의지와는 상관없이 신호를 위반한 자동차 운전자의 과실로 교통사고의 피해자가 되었다. 파란 신호등이 바뀐 것을 보고 자전거를 타고 가던 횡단보도에서 자동차가 주황색 신호를 보고 급히 액셀을 밟는 바람에 그대로 자전거를 직격 하게 된 것이다. 순간 몸은 공중으로 날아올랐고, 상대편 자동차의 앞 유리창과 보닛을 거쳐 그대로 아스팔트 위로 널 브러지는 상황이 연출된 것이다. 다행히 크게 다치지는 않았지만 그대로 아스팔트 위에 잠시 누웠던 시간은 천년처럼 길었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모두들 혼비백산하고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당시는 사고 직후라 순간적으로 상황을 파악하기 힘들었었고, 얼마나 부상을 당했는지 의식이 있는 것인지 없는 것인지조차 분간이 안될 정도로 멍한 상태였다. 순간 어떤 생각을 한 것을 보니 의식이 살아있었던 것은 분명했다. 자동차가 자전거를 직격 하고, 아스팔트로 떨어진 순간에 들었던 생각은 명징했다.


'이제 엄마는 누가 먹여 살리지?'


다행스럽게도 근처 병원에 가서 진찰을 받아보니 - 당시 20대 초반의 나이라서 그런지 - 발목에 간단한 타박성 정도로 판명이 났다. 운전자는 어찌할 바를 몰랐지만 실상 큰 부상은 아니라서 간단히 치료비를 부담하는 선에서 사건을 마무리했다. 정작 그때 큰 사고로 생계를 유지할 수 없을 지경이었다면 어땠을지 지금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한 치 앞도 예측할 수 없는 절체절명의 상황에 생계걱정을 하게 되었던 것은 그만큼 부양에 대한 부담감이 컸던 탓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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