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사활동이라는 것이 거창하게 느껴질 수 있는 것이지만 누구나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비록 큰 능력은 없다고 하더라도 자신의 역량만큼 도움을 줄 수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봉사활동을 시작하게 되었다. 지금의 활동은 활동을 한다는 것 자체에 의미를 둘 뿐이지 그리 큰 도움을 주는 활동을 하고 있는 것 같지는 않다. 이런 활동을 하면서 글이라는 걸 쓰게 되니, 좀 더 열정적으로 봉사활동에 매진하고 있는 분들에게 부끄럽고, 글을 쓰기가 망설여지는 것은 사실이다. 또한 왼손이 하는 일을 오른손이 모르게 하라는 성서말씀을 거스르는 건 아닌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동안 봉사활동을 하면서 느꼈던 소중한 경험들을 함께 공유하고, 나눌 수 있는 것만으로도 기쁘고, 많은 분들이 봉사활동에 동참할 수 있다면 더 이상의 행복은 없을 것이다.
천주교재단에서 꽃동네 등 복지시설을 많이 운영하는 것을 알고는 있었지만 주변에 이렇게 훌륭한 복지시설이 존재한다는 것을 몰랐던 것은 그동안 주위를 살피지 않고 살아온 이유 때문일 것이다. 그동안 세상의 일들에 부딪히다 보니 스스로를 돌아볼 겨를도 없었던 것 같아 성당 활동을 통해 마음의 평화를 얻고자 늦은 나이에 성당활동을 시작했다. 활동을 시작한 이후 몇 개월이 지나면서, 그동안 갖고 있었던 많은 부정적인 감정들이 희석되었고, 마음의 평화가 찾아왔다. 봉사활동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회원들과의 관계도 돈독해졌다. 이런 변화를 느끼면서 성당활동을 통해 봉사활동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신의 선물이라고 할만하다.
한 달에 한 번 재활원을 방문해서 실질적으로 어떤 도움이 되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우리가 방문하는 날, 환한 표정으로 맞아주는 원우들의 얼굴을 대하다 보면 조금이나마 그들에게 기쁨을 줄 수 있다는 것이 행복으로 다가온다. 하지만 도움을 준다는 생각보다는 오히려 도움을 받고 간다는 생각이 더 크다. 그것은 다른 데서는 느낄 수 없는 행복과 웃음, 기쁨이 있기 때문이다.
가끔 재활원 희망반에서 무심코 창밖의 풍경을 응시할 때가 있다. 그러면 재활원에서 바라본 하늘은 일상의 하늘 같지 않고, 재활원에서 느끼는 바람은 일상의 바람 같지 않다. 그것은 순수한 마음과 영혼들이 어우러진 좋은 느낌이 자연에 투영되어 새로운 기운을 만들어내는 것이라는 믿음 때문이다. 세속적으로 얽힌 실타래 같은 삶 속에서 이렇게 평온한 마음이 들 수도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럴 때면 이런 것이 기적이구나 하고 느껴질 때가 있다.
원우들이 환하게 웃는 얼굴, 쉽게 마음을 열고 다가오는 행동, 기분이 나쁘면 금방 토라지는 모습에서 사회에서는 보기 어려운 순수한 모습들을 본다. 그럴 때면 속세의 때가 많이도 묻은 모습을 보면서 이전의 순수했던 시절에 대한 감상에 젖어들기도 한다.
재활원에서의 활동은 다양하지 못했지만 늘 기쁨과 함께 할 수 있어서 좋았다. 플레이콘이나 찰흙으로 만들기를 할 때도, 퍼즐 맞추기나 그림 그리기를 할 때도, 항상 그곳엔 웃음이 있었다. 야외활동을 하더라도 재활원 뒷산에 올라가 운동 시설을 이용하거나 그네를 타고, 인근 백제유물전시관을 방문하는 것이 전부였다. 그래도 그 순간엔 웃음이 있어 좋으니, 행복했다. 이런 활동을 통해 너무 많은 것을 얻어가기만 한 것은 아닌지. 그저 한 달에 몇 시간 안 되는 시간으로 이처럼 커다란 기쁨을 느낄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할 뿐이다. 주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을 얻어 가는 것. 그것이 봉사활동을 하면서 누릴 수 있는 속세와는 다른 셈법이다.
그동안 봉사활동을 한답시고, 시간을 때우기에만 급급하지는 않았는지. 원우들에 대한 생각과 말과 행동이 진심에서 벗어나지는 않았는지 반성해 본다. 앞으로는 좀 더 진심 어린 말투와 행동, 열린 마음으로 원우들에게 다가가고 싶다. 진심의 깊이가 깊은 만큼 기쁨의 느낌도 클 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