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경 / 남해의봄날
책의 홍수 속에서 오래간만에 제대로 된 책 한 권을 만났다. <동전 하나로도 행복했던 구멍가게의 날들>이 바로 그 책이다. 이 책은 글과 그림이 거의 같은 비중으로 구성되어 있다. 대부분의 책이 글을 중심으로 하고, 보조 매체로서 그림을 택하는 것이 일반적이라면 이 책은 그와는 반대로 그림이 주가 되고, 그와 관련된 글이 나온다.
책 속에 수록된 그림들을 보면 어디선가 본 듯한 눈에 익은 풍경들이 많다. 촌스런 글씨체의 간판, 아늑한 느낌을 주는 평상, 구멍가게 한쪽을 차지하고 있는 나무, 가게에 진열된 물건들, 담배표시가 있는 창문, 서있는 자전거 등 마치 추억의 잡학사전을 보는 듯하다. 한 땀 한 땀 공을 들여 만든 수예작품을 보듯 작가의 그림에는 긴 시간 동안 정성을 들였던 흔적이 역력하다. 그림마다 감탄사를 연발하지 않고서는 볼 수 없을 정도다. 아름다운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 그림들은 그냥 바라만 봐도 마음이 치유된다.
이 책은 가급적이면 소장하는 편이 좋겠다. 추억을 떠올리게 아름다운 풍경을 간직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기 때문이다. 아크릴 잉크와 펜으로 작업한 작가의 그림들은 마치 사진처럼 정밀하게 묘사되어 있다. 오래된 구멍가게를 찾아다니며 20년 가까운 세월 동안 그렸던 그림들은 추억 속의 그 모습 그대로 지면을 차지하고 있다. 그런 그림과 어우러진 사연들이 저자의 고유한 문체와 어울려 아름다운 산문으로 재탄생한 것이다.
한 때 동네 사람들의 사랑방이 되기도 하고, 개구쟁이들의 놀이터가 되기도 했던 구멍가게는 이제 거의 자취를 감추었다. 작가가 20년 동안 작업을 하는 동안에도 없어져간 구멍가게가 한 둘이 아니라고 하니 머지않아 자취를 감추고 추억 속의 한 장면으로 밖에 남을 수 없게 되었다. 소장할 만한 책이라는 것은 바로 그 때문이다.
그림과 글이 만나 한 권의 책이 만들어진다는 것은 매력적인 일이다. 이 책처럼 보석과도 바꿀 수 없는 추억의 장면들을 모아놓은 책이라면 더욱 그렇다. 풍경도 풍경이지만 전국 곳곳을 돌아다니며 아름다운 그림을 완성하느라 열정을 바친 작가의 노고를 생각한다면 이 책 한 권이 주는 가치는 가늠하기조차 힘들다. 바쁜 일상 속에서 고향의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 이 책 한 권으로 갈수록 삭막해져 가는 세상에서 잠시나마 시름을 덜고, 추억에 잠길 수 있는 시간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