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티스트 낸시랭의 비키니 입은 현대미술

낸시 랭 / 랜덤하우스코리아

by 정작가


걸어 다니는 팝아트로 자신을 소개하고 있는 아티스트 낸시랭은 홍익대 미대 서양학과와 대학원을 졸업한 미술학도다. 간혹 방송에서 그녀를 볼 때면 상당히 끼가 있다는 느낌이 들긴 했는데 미술을 전공한 예술가였다는 생각이 드니 유난히 가볍게 느껴지던 그녀의 행동들이 조금은 이해가 간다. 아직도 목에 두른 고양이 목도리가 트레이드마크로 각인되어 있을 만큼 강렬한 인상을 주었던 그녀는 최근 개인적인 일로 매스컴에 오르내리기도 했지만 그런 것과는 상관없이 예술가로서 자기의 길을 무연히 걸어갈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예술도 비키니처럼 가벼웠으면 좋겠다”라고 하는 낸시랭에게 미술은 그만의 ‘놀이’이다. 이 책 또한 그런 그녀의 인식과 무관하지 않다. 상반신을 드러낸 표지 또한 도발적이다. 브래지어 양쪽에 새겨진 모나리자와 메릴린 먼로의 팝아트는 인상적인 것을 넘어서 예술 그 자체를 몸소 체현(體現)하고 있다는 느낌마저 들게 한다. 이런 것 또한 행위 예술의 범주에 들어가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책날개에 소개된 그녀의 이력을 보면 더욱 놀랍다. 2003년 베니스 비엔날레에 초대받지 않는 손님으로 찾아가 란제리를 입고 바이올린을 켜는 퍼포먼스를 펼쳤다고 하니 그 대범함과 아이디어는 인정해 줄 만하다.


<아티스트 낸시랭의 비키니 입은 현대미술>은 결코 가벼운 책이 아니지만 저자의 성향처럼 그만의 언어로 어려운 미술의 세계를 쉽게 설명하고 있다. 알타미라 동굴 벽화의 미학적인 가치에서부터 마치 검은 색종이를 연상하게 하는 아드 라인하르트의 <추상페인팅>으로 상징되는 현대 미술의 성향에 이르기까지 해박한 지식과 개성미 넘치는 설명을 접하자면 바로 다음 장에는 어떤 내용이 자리하고 있을까 기대감도 생긴다. 책을 보면 낸시랭이 퍼포먼스 한 사진들을 볼 수 있는데 판피린 걸을 흉내 낸 <컬트 로보틱스_판피린 걸>이라든지 앵그르의 유채화인 <터키탕>을 패러디한 낸시랭의 <찜질방>은 그녀가 일상 속 퍼포먼스의 대가임을 쉽게 짐작할 수 있게 한다.


낸시랭의 작품들은 비단 행위 예술에만 국한되지는 않는다. 캔버스에 혼합재료로 <비너스의 탄생>을 패러디한 낸시랭의 <비너스의 탄생>은 로봇 형상으로 전신이 변한 비너스의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실소를 자아내게 한다. 이와 비슷한 <터부 요기니 아담과 이브>, <터부 요기니_모나리자>, <터부 요기니_ east> 등의 작품들을 보면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작품에 건담 로봇을 전신에 접목한 듯한 우스꽝스러운 이미지를 볼 수 있다. 그 누구도 쉽게 상상할 수 없는 이질적인 것들의 조합이 묘한 여운을 갖게 하는 그녀의 작품들을 보면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샘솟는 예술가로서 그의 위치를 가늠해 볼 수 있다.


그녀가 말했던 것처럼 예술이 깃털보다 가벼워 어디든 날아갈 수 있는 경지에 이를 수 있다면 그것은 바로 예술 그 자체를 일상의 삶으로서 즐기고 싶다는 바람이 있다는 얘기다. 고로 그런 바람은 일상 속에서 기존 작품들을 패러디하고, 군중 속에서 대범하고 아이디어가 넘치는 퍼포먼스 형태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예술가로서 낸시랭을 보기 전에 색안경을 끼고 바라본다면, 그녀의 말처럼 자주 벗는 것에 대해 말들이 많다.이러는 이유 또한 '어두운 곳에서 할 짓 못할 짓 다하면'서 내숭을 떠는 인간의 이중성을 인정하는 것밖에 달리 설명할 도리가 없다. 그래서 그녀는 말한다. 욕망이 무슨 죄인가. 욕망을 포장하는 권력이 오히려 죄라고 일갈하는 것이다. 역설적으로 그녀에게 벗는다는 행위는 새로운 방식의 입기가 되는 것이다.


현대미술은 이해하기 어려운 예술 장르 중 하나다. 그런데도 이 책을 보면 그렇게 어렵다고 느껴지지는 않는다. 다양한 문예사조와 미술의 변천 과정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져 있지만 깃털처럼 가볍게 예술적인 접근을 시도한 저자의 노고에 힘입어 예술이 대중과 친근하게 어울릴 수 있는 일상의 한 부분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기 때문이다. 낸시랭이 우리 문화계에서 가장 주목받는 아티스트로 인정받고 있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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