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관계의 전성시대를 보내고 나서 제법 고독한 시간을 길게 보냈다. 이런 시간은 자발적, 혹은 비자발적 요소가 결부된 것이기는 했지만 그래도 스스로 선택했다고 보는 것이 옳을 듯하다. 어릴 때부터 혼자 있기를 즐겨했던 습성이 청춘 시절의 관계전성기를 지나 다시금 유년 시절로 회귀하는 듯하다. 인생에도 복고풍이 있을까? 나이가 들면 애가 된다든데 그런 순환의 고리 속에서 인간의 삶은 무르익는 것일까? 여하튼 고독이 고착화되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인 것 같다.
라디오 방송을 들으니 우리나라 1인 가구의 수가 천만을 돌파했다고 한다. 전체 가구의 42%에 해당되는 수치라고 한다. 한때 4인 가정이 표본이었다고 한다면 수십 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가계구조가 확연하게 바뀐 것은 인정할 수밖에 없다. 이젠 바야흐로 고독의 전성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우리'라는 말이 '나'라는 말보다 자연스럽게 들렸던 그 시절을 뒤로하고, 진정한 '나'를 찾아가는 행로가 인생의 트렌드가 되었다. 다소 결혼비율과 출산율이 늘었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젊은 층에서는 가정 꾸리는 일에 부담을 갖고 살아가고 있다. 초혼인 연령대도 수십 년 전에 비해 예닐곱 살 정도 늘었다는 통계도 보인다. 과연 왜 이런 현상이 일어난 것일까? 그리고 이런 현상을 꼭 부정적으로만 볼 이유가 있을까?
국가를 운영하는 입장에서는 이런 현상이 바람직하지 않을 수도 있다. 훈련받을 장병이 없어 군부대도 통폐합되는 시대에서 과연 이전처럼 회귀하는 것이 정답이 아니라고 단언할 수도 없는 상황이다. 그렇다면 이런 상황을 변화시키려고 하는 노력보다 주어진 현상을 그대로 받아들인다면 또 어떤 일이 일어날까? 이대로 국가는 소멸되고, 대한민국은 지구상에서 최초로 먼저 사라지는 비운의 국가로 전락할 수밖에 없는 운명을 받아들여야만 하는 것일까? 해법은 결코 만만치 않아 보인다.
일찌감치 고독에 대한 견해들을 성현들은 고전을 통해 설파해 놓았다.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월든>, 제임스 앨런의 <생각의 지혜>, 쇼펜하우어의 저서들을 보면 그런 내용들이 곧잘 눈에 띈다. 이런 시대의 흐름을 예견이라도 했던 것일까? 유년 시절 고독의 습성은 중년을 넘어서는 지금에서 빛을 발한다. 혼자 잘 놀 수 있는 사람이 인간관계를 풍성하게 맺을 수 있다는 역설 또한 고독의 가치를 빛나게 한다.
고독은 단순히 외로움을 버티는 방식이나 형태가 아니라 인간의 근원적인 운명처럼 요람에서 무덤까지 이어지는 여정의 자연스러운 흐름임을 인정해야 한다. 그래야 세상이 만들어 놓은 규칙과 제도에 종속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본질적인 삶에 대한 속성에 대해 이해하고, 주체적으로 삶을 가꾸어 갈 수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