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피치의 말들
가톨릭 신자로 수십 년간 냉담 없이 신앙생활을 했지만 꽃동네의 기적을 경험하기까지 사실상 기적에 대해 믿지 않았다. 신약성서에서도 예수님의 제자인 토마가 부활했던 스승의 존재를 의심했듯이 나 또한 기적에 관한 한 그랬다. 기적을 보고 믿기보다 내적인 신앙심으로 종교생활을 하는 것이 훨씬 더 큰 가치임을 알았기 때문이다.
신앙생활을 하다 보니 기적에 대한 일화는 종종 듣게 된다. 1984년 방한했던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여의도 광장에서 미사를 집전하던 날, 하늘에 십자가 모양의 구름이 나타났다든지, 성모의 발현을 보았던 아이들이 훗날 수도자가 되어 기적을 설파하고 다녔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도 그저 믿을 교리처럼 심정적으로 크게 와닿지 않았던 것도 사실이다. 세계 곳곳에서 성모마리아상에서 피눈물을 흘렸다는 광경을 목격했다는 예화는 차고도 넘친다. 그럼에도 꽃동네의 기적을 경험하기 전까지 직접 눈으로 기적을 보지 못했으니 그저 신앙심이 부족한 것으로 알고 살았다. 그런데 실제로 눈앞에서 기적이 일어나는 현상을 한두 번도 아니고 여러 번 목격했던 일 발생한 것이다.
2014년, 지금은 선종하신 프란체스코 교황께서 방한했다. 음성 꽃동네는 세계적으로도 알려진 복지시설의 메카라고 불릴 만큼 유명한 곳이다. 그곳에서 일찌감치 교황님의 일정에 앞서 함께 간 성당 사람들과 설레는 마음으로 교황님을 기다렸다. 돗자리를 깔고 앉아 교황님을 기다리는 시간은 가톨릭 신자라면 그야말로 꿈과 같은 시간이었다. 평생 한 번 교황님을 본다는 것도 힘든 일이어서 생애 한 번은 이런 경험 또한 뜻깊은 일이라고 생각해서 이번 기회에 꼭 참석하겠다는 각오로 나선 길이었다.
교황님 도착 시간이 임박하자 하늘에서는 헬리콥터의 굉음 소리가 고막을 찢을 정도로 시끄럽게 들려왔다. 드디어 기다리고 기다리던 순간이 온 것이다. 헬기가 착륙하고 잠시 후 교황님은 수많은 군중들 속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사람들이 워낙 많아 가까이서 사진 한 장 찍기도 어려운 상황이었지만 먼발치에서나마 실제로 교황님의 모습을 보니 감개무량했다. 그렇게 교황님이 탄 차가 움직였고, 사람들도 그 차의 방향을 향해 모두들 몰려가고 있었다. 나 또한 그런 무리에 합류하려다 문득 이상한 광경을 목격했다. 차의 진행 방향과는 정반대인 곳에서 수백 명의 사람들이 같은 방향으로 하늘을 향해 고개를 쳐들고 있는 상황을 목도하게 된 것이다. 교황님조차 관심을 두지 않을 정도로 중요한 일이 있을까 싶었던 의문이 들어 주변에 있던 한 사람에게 무슨 일이냐고 넌지시 물어보았다. 그 사람은 아무 말도 없이 손가락으로 하늘을 가리킬 뿐이었다.
과연 무슨 광경이길래 수많은 사람들이 그토록 한 방향으로 시선을 돌리고, 모두들 스마트폰을 들고 이를 촬영하는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런데 자세히 그 사람이 가리킨 곳을 보니 비로소 의문이 풀렸다. 그야말로 하늘에서는 놀라운 일이 벌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구름 사이로 나타난 하얀 태양이 빙글빙글 돌고 있는 것이 아닌가. 세 개의 원은 각기 다른 방향으로 돌다가 합쳐지기도 하고, 태양의 색깔도 여러 가지로 변하고 했던 것이다. 어떻게 저런 일이 가능할까? 눈을 다시 비비고 봐도 그런 현상은 지속되었다. 신기했다. 태양이 도는 것도 이상했거니와 그것을 바라보고 있는데도 하나도 눈이 부시지 않았다. 그 순간 마치 영적인 기운이 꽃동네를 휩싸고 도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뭔가 내리누르는 듯한 느낌이기도 했고, 뭐라고 설명할 수 없는, 생전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했던 이상한 기운이었다. 눈앞에서 펼쳐진 광경조차도 믿을 수 없어 얼른 스마트폰을 꺼내 사진을 찍기도 하고, 동영상을 촬영하기도 했다. 하지만 눈으로 본 광경이 사진이나 동영상에 그대로 담기지는 않았다. 당시만 해도 크게 휴대폰의 성능이 좋지 않았던 이유도 있겠지만 인간의 눈과 카메라의 렌즈는 비록 원리는 비슷하더라도 그 차이는 엄연히 존재하기 때문에 기록하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라 유추해 볼 따름이다. 아마 요즘 나오는 최신형 스마트폰이라면 혹시 가능할지도 모르겠다. 아직까지 그 기적이 담긴 동영상을 보지 못했으니 그때의 광경을 찍은 사람은 없을 것으로 본다. 중요한 것은 그런 현상이 단 한 번만 일어나지는 않았다는 사실이다. 처음 하늘에서 이상한 현상을 목격했을 때, 주변에 어떤 사람은 자기 딸에게 전화를 해서 지금 꽃동네에서 태양이 도는데 거기도 그러냐고 확인 전화를 했는데도 그쪽에서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는 말만 되풀이할 뿐이었다. 당시 신문 기사를 보면 이상 현상을 목격한 수많은 사람들이 스마트폰으로 그 광경을 찍은 장면을 볼 수 있다. 수천 명이 집단 최면이 걸린 것도 아닐 테고,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이리저리 꽃동네의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면서도 태양의 이상 현상은 계속 목격되었다. 이상 현상이 지속적으로 이어진 것은 아니라서 가끔씩 고개를 돌려 하늘을 볼라치면 여지없이 하늘에서는 태양이 돌고 있었다. 횟수로만 따져도 열 번이 넘게 하늘에서 일어난 현상을 계속 보게 되니 현실감이 없어질 정도였다. 어차피 카메라에는 제대로 현상이 잡히지 않고 해서 무심하게 태양을 보면서 자세히 관찰을 해보았다. 마치 나이트클럽에서 있을법한 각양각색의 조명이 눈을 게슴츠레하게 뜨면 겹쳐 보이는 현상처럼 이상한 장면을 연출하고 있었던 것이 포착되었다. 세 개의 원이 뱅글뱅글 돌다가 다시 한 원으로 합쳐지고, 다시 분리되는 현상이 반복적으로 이어진 것이다.
이후 경험담을 나누면서 놀라웠던 사실은 그런 현상이 모두에게 똑같이 전달되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일정 부분 태양이 빙글빙글 돈다는 것은 일치된 진술이었지만 태양의 색깔이 하얗다고만 한 사람도 있었고, 세 개까지는 보지 못했다는 사람도 있었다. 그렇다면 그런 현상은 과연 집단 최면이었던 것일까? 누군가 청주기상대에 문의를 해보니 그 시점에서 이상할만한 천체현상은 발생하지 않았다는 것이 공식적인 입장이었다. 분명 수천 명의 군중이 목격한 현상을 착시현상으로만 폄하할 수도 없는 일이고, 교황청에서 공식적인 기적이라고 인정한다는 소식도 듣지 못했으니 답답할 따름이다. 하지만 분명 하늘에서는 이상한 일이 일어났었고, 그것은 기적이라고 해도 전혀 손색이 없을 만큼 기이한 현상임은 분명했다.
인간이 가진 감각 중에 시각이 가장 천하다는 말이 있다. 세상에는 보이는 것만이 전부는 아니라는 진리를 반영하는 명제일터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1년 전, 이 즈음 기적을 목도했던 그 경험은 영원히 기억 속에서 사라지지 않을 것 같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기적이라는 현상을 목격했고, 그것도 아주 여러 번 실질적인 확인이 있었으니 말이다. 친구나 주변 사람에게 이런 현상을 이야기하면 반신반의하는 사람, 수긍하는 사람으로 갈리기도 하지만 모두들 과학적인 견지에서는 불가능한 일이라는데 입을 모으기도 한다. 어쩌면 우리는 자신이 알고 있는 지식과 정보 범위 내에서만 모든 현상을 해석하고 정리하려는 습성을 가진 것은 아닌지. 내가 미처 알지 못하는 세계에 대해 인정하지 않으려는 편견과 선입견을 가질 때, 실제로 존재하는 것 또한 그런 가림막에 가리어져 올바른 판단을 방해할 수도 있을 것이다. 누군가에게는 기적이 착시로 보일 수도 있을 테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