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은, 루소 / 아이세움
이 책은 루소의 <사회계약론>을 현대의 시각에 맞추어 풀이한 책이다. <사회계약론>의 위치는 다음 구절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이를 통해 루소의 위대한 저작인 <사회계약론>을 다시금 조명할 수 있는 시간을 가져보자.
킹크스레인 마틴이라는 영국 학자는 역사상 인간의 정신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책으로 <성경>, 카를 마르크스의 <자본>과 함께 <사회계약론>을 꼽았다고 한다. 이는 <사회계약론>의 위치를 단적으로 표현해 주는 대목이다. 그렇다면 과연 <사회계약론>이 방대한 저작이거나 학자들의 연구 대상의 범주에 속할 만큼 무게감이 느껴지는 그런 난해한 저작일까? 저자는 마르크스의 <자본>보다 <공산당 선언>이 더 잘 읽히는 이유를 들어 <사회계약론>이 학자들의 연구 대상이라기보다 민중의 삶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친 팸플릿이라고 정의한다. 이렇게 <사회계약론>이 민중들에게 다가설 수 있었던 것은 루소가 원래 계획했던 것보다 대폭 축소해서 쓴 글(p.84~85)이기에 방대한 저작의 부담에서 벗어난 이유도 크다. 그렇다면 과연 우리가 이런 대사상가의 책을 읽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저자는 루소의 독서법을 인용하며 다음과 같이 말한다. 커다란 지식의 밑천 없이는 결코 올바른 자기 생각을 만들 수 없다라고.
루소가 살던 시기는 종교의 영향력이 크던 시기였다. 그렇기에 종교가 지배적인 사회에서는 인간이 스스로 결정하고 변화를 추구할 여지가 대폭 줄어들 수밖에 없다고 말하는 저자의 생각에 공감이 된 것도 사실이다. 그런 종교적인 구속이 있던 시기임에도 루소는 <사회계약론>의 핵심사상을 다음과 같이 피력한다.
그 누구도 태어나면서부터 자기와 같은 사람들을 지배할 권력을 가지고 있지 않다. 또한 폭력으로는 어떠한 권력도 만들어 내지 못한다. 사람들 사이의 모든 합법적인 권력은 오직 계약에 근거해야만 한다.(1부 4장)
인간은 원래 자유로운 존재로 태어났다. 그러나 인간은 어디에서나 쇠사슬에 묶여 있다.(1부 1장)
'구성원 전체의 공동의 힘으로 각자 신체와 재산을 방어하고 보호하며 각 개인은 전체에 결합되어 있지만 자기 자신에게 밖에 복종하지 않고 이전과 같이 자유로울 수 있는 하나의 결합 형태를 발견하는 것', 이것이 바로 사회계약이 해결해 주는 근본 문제이다. (1부 6장)
사회 안에서 인간은 진정한 자유를 누릴 수 있다. 왜냐하면 오로지 욕망의 충동을 따르는 것은 노예적 굴종이지만 스스로 만든 법을 따르는 것은 자유이기 때문이다.(1부 8장)
루소의 이런 사상은 저자가 밝히다시피 <사회계약론>에서 루소는 이처럼 이치에 맞지 않는 역사와 현실을 모두 거부할 의지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다. 그리고 이치에 맞지 않는 역사와 현실을 거부하는 반면 우리는 오직 '일반의지'에만 복종해야 한다고 명쾌하게 대답한다. '일반의지'라는 개념에 대한 의견은 분분하지만 그런 개념이 있다는 사실을 안다는 것만으로도 <사회계약론>을 이해하는 데는 도움이 된다. '일반의지'라는 개념은 사실 제대로 이해되지 못해 실제로 독재자들에 의해 몇몇 구절이 악용된 사례가 있었다고 하니 그만큼 해석의 여지가 있다는 사실은 부정하기 어렵다. 이런 역사적인 근거를 보더라도 <사회계약론>이 인류의 역사에 끼친 파장은 가히 짐작하고도 남을 만하다.
원전이나 완전한 번역본을 읽지 않고, 책을 소개한 책으로 위대한 사상가의 뜻을 모두 읽어내긴 어렵다. 하지만 종교적인 영향력이 막강하던 시기에 몇 번의 도피를 거듭하면서까지 <사회계약론>으로 인해 핍박받았던 위대한 사상가의 노력이 있었기에 우리는 그나마 자유 의지를 가지고, 사회의 암묵적인 계약이 이행되는 사회에서 살아갈 수 있는 혜택을 누릴 수 있는 것이다. 이 책을 통해 <사회계약론>이라는 저작의 위대성을 인식하는 것만으로도 큰 도움이 될 듯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