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공동체를 향한 운동 - 공산주의 선언

박찬종, 마르크스 & 엥겔스 / 아이세움

by 정작가


이 책은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지은 <공산주의 선언>을 풀이해 놓은 책이다. 공산주의의 태동은 이 책의 제목처럼 새로운 공동체를 향한 운동으로부터 시작된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공산주의는 소수 권력을 독점하는 세력, 즉 당과 당의 요직을 차지하는 소수의 전유물이 될 수밖에 없는 한계에 봉착하고야 만다. 이는 전제군주 정치를 타파하고 새로운 시민 세력으로 성장한 부르주아지의 출현이 대안세력이 아닌 그 자체가 타도되어야 할 대상이 되어버린 이유로 탄생한 공산주의에서 그 연원을 찾을 수 있다. 공산주의는 이처럼 불공정한 권력에 대한 견제를 위해 탄생했지만 역설적으로 그 주체들이 또 다른 소수 독점 권력으로 자리매김하는 현실 속에서 이전 시대의 방식으로 회귀한 것일 뿐, 전혀 다른 세계의 탄생에 일조하지 못한 채 이념의 갈등만을 조장하는 실패한 체제로 전락했다. 이는 중국과 북한을 보더라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과연 이렇게 공산주의가 쇠퇴하고 자본주의가 만연한 시대에 '공산주의 선언'이 가지는 의미를 고찰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는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활동했던 시대의 상황을 돌아보는 것만으로도 알 수 있다. 이들이 살았던 시절은 전제군주정을 거쳐 프랑스혁명 등으로 부르주아라는 새로운 집단이 시민 세력의 주류층으로 확산해 가던 시절이다. 전제군주정하에서 소외받는 시민계급이었던 이들은 부를 통해 새로운 사회의 주축세력으로 성장한다. 산업혁명을 통한 비약적인 산업의 발전은 이런 계층을 양산한 반면 대다수의 시민들은 노동자로 전락할 수밖에 없었다. 이런 노동자들의 삶은 부르주아지들의 삶과는 확연히 달랐다. 아무리 노동을 해도 나아지지 않는 살림살이. 기계의 부속품으로 전락한 노동자의 운명은 위대한 사상가들에 의해 그 실체가 드러나게 된다.


이들 위대한 두 사상가가 바로 마르크스와 엥겔스다. 이들은 사회구조적인 모순을 볼 수 있는 혜안이 있었고, 투쟁을 통한 기존 체제의 전복이라는 위험한 발상을 통해 대중을 선동했다. 그러다 보니 기득권세력들에 탄압을 받을 수밖에 없었고, 도피생활마저 감수해야 했다. 사회 구조의 모순을 적나라하게 직시한 이들의 선구적인 사상 덕분에 <공산주의 선언>은 세상에 나올 수 있었다. 이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이들의 사상에 심취해 새로운 공동체를 향한 원대한 꿈을 향해 나아갈 수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이들은 새로운 공동체를 만들기는커녕 오히려 이를 기화로 권력을 잡은 이들의 희생양이 되었을 뿐이다. 대부분의 공산주의 세력이 몰락한 지금 다시 이런 <공산주의 선언>이라는 고전이 주목받는 것은 전제군주제의 시대처럼 여전히 권력과 부는 소수에 집중되어 있고, 대다수의 시민들은 그저 최소한의 생활만을 누리며 살아갈 수밖에 없는 상황에 처해 있기 때문이다. 부의 균등한 분배는 비단 공산주의 하에서만 가능한 것은 아니다. 아니 오히려 공산주의 사회에서의 부의 양극화는 더욱더 심화되고 있다. 자본주의에서도 얼마든지 법과 제도의 정비를 통해 시민들을 위한 정책을 펼침으로서 부와 권력을 균등하게 분배할 수 있다.


<공산주의 선언>이 여전히 많은 세인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것은 아직도 우리 사회가 불평등한 사회임을 말해주고 있다. '공산주의 선언'이 빛을 잃게 될 때라야 비로소 우리는 모두가 평등하고, 공평한 사회에서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체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사회가 혁신적으로 개혁되지 않는 이상 <공산주의 선언>은 인류의 영원한 고전으로 남아있을 가능성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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