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테반 에셀 / 돌베개
<분노하라>는 선동문구다. 불순한 의도에 의한 선동은 지탄의 대상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이 책에서 말하는 ‘분노하라’는 그런 것과는 거리가 멀다. 아니 소수의 선택 받은 이들에겐 불순한 선전, 선동 문구일수도 있겠다. 하지만 여기에서 선동하는 대상은 대중들이다. 평범하기 이를 데 없는. 소수의 1%가 지배하는 자본주의 모순을 더 이상은 보아 넘기기 어렵다는 각성은 뉴욕 시위를 촉발했다. 이 책은 그런 대중적인 시위를 가능케 한 위대한 텍스트다. 비록 많은 사람들이 참석하고, 세계의 도시로 확산된 산발적인 형태의 시위로 나름의 영향력을 보여주긴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자본주의의 폐해가 개선된 것은 아니다.
한나 아렌트가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이라는 책에서, 나치에 협력한 아이히만의 죄를 사유하지 못하는 인간의 악의 평범성에서 그 이유를 돌출해냈듯이, 이 책에서 또한 대중의 무관심으로 현재 세계에서 벌어지고 있는 자본주의의 폐해에 대해 문제점을 지적하고 있는 것이다. 제2차 세계대전 중에 레지스탕스로 활동하기도 한 저자는 비록 나치에게 폭력으로 대항했지만 이 책에서는 오히려 비폭력적인 ‘평화적 봉기'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다. 세상의 부조리함에 대해 사유하되 그것을 해결하는 방식은 비폭력적이어야 한다는 것에 방점을 찍고 있는 것이다.
<분노하라>에서 말하고 있는 것은 자본주의에 대한 거대 담론이라고도 할 수 있다. 자본주의의 병폐는 다수의 대중을 힘든 상황으로 몰아간 것이 사실이다. 그런 현실에 대해 침묵하지 말고 분노하라는 저자의 일침은 고개를 숙연하게 한다. 그러니 거대 담론은 차치하더라도 일상에서 조금이나마 부조리한 것들에 목소리를 내고, 주체적으로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을 전해주는 인생의 교본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